옳고 그름의 기준을 바로 하라. 막3:1-6
주신 말씀 막3:1-4을 중심으로 ‘옳고 그름의 기준을 바로 하라’ 는 제목으로 선포되는 멧세지를 통해 큰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 합니다.
본문은 안식일 논쟁에 대한 연속부분입니다.
안식일에 보리를 잘라 먹은 것은 사건을 바리새인들이 공격하자 2:23-28까지 방어적인 면을 보이신 예수님께서 예수께서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사건을 통해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실증적으로 교훈합니다.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주님의 안식일을 고의적으로 범한 사건은 마른 무화과 잎 하나를 옮기는 것보다 더 큰 일을 금지하고, 2000규빗(약1km)이상 걷는 것을 금하고 있어 지금도 유대인들은 엘리베이터를 sw를 누르지 않고 안식일엔 고층건물도 걸어 다니는데 당시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는 것은 자기들 판단에 하나님의 법을 어긴 이단 사이비 신성모독자였기에 반드시 예수님을 살해하려는 음모가 시작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축구에서 드리볼을 할 때 빨리 달리면 시야가 좁아지는 것처럼, 이들은 오직 율법을 생명처럼 지키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율법주의에 깊이 함몰되어 있어 다른 세상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북한의 김정은이 북한군 30만명 즉 군관5만명 사병25만명을 경제부문으로 전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이는 원자폭탄을 보유한 안보에 대한 자신감의 피력이라고 합니다. 경제논리나 백성들의 삶의 질 향상, 절대 빈곤의 탈피 같은 백성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무력증강만 일삼고 있습니다.
독재세력의 공통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을 연장하여 자기들만의 이익을 수호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 뿐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집단을 말합니다. 국민의 뜻을 왜곡하는 국정원은 반드시 개혁되어야 할 것입니다. 옳은 것을 옳다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할 수 있는 세상,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고 노력한 만큼 보상 받는 세상이 좋은 세상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서 4절에서 어느 것이 옳으냐 물으십니다.
이미 양심의 법에는 생명을 살리고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정보 세뇌된 율법준수에 대한 오인이 안식일 논쟁의 결과 예수님을 죽이겠다는 각오만 다지게 한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바로 토브논쟁(טוב)즉 진선미 논쟁인 것입니다.
첫째는 진리냐 아니냐 즉 참이냐 거짓이냐 입니다. good. 眞
둘째는 선이냐 악이냐 입니다. perfect, 善
셋째는 아름다운 일이냐 추한일이냐는 것입니다. betiful 美
넷째는 질서냐 무질서냐의 문제입니다. order, 法
옳고그름의 기준을 바로 세우고 지키는 것이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의 뜻대로 옳고 그름의 기준을 바로 세울 수 있나요?
첫째로 고난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1)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의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공공연히 노출되었고 밀 이삭을 안식일에 잘라 먹은 것을 핑계 삼아 적대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다시 안식일이 돌아오자 이번에는 손 마른 자 중풍으로 손이 바싹 말라 기능을 하지 못하는 자로써 특히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므로 생활에 많은 지장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에도 안식일에 함정에 빠져 생명이 위험한 짐승은 건져내어도 좋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하물며 사람이 손이 불편하여 생활에 불편한 손을 고쳐 생명을 건진 예수님을 이들은 안식일을 범했다고 살해할 음모를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사랑의 율법임에도 불구하고 근본취지를 애써 외면하고 문자적인 율법에 얽매여 한발도 나가지 못하고 사람을 죽이고 활동을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손 마른 자를 고쳐 주었든지 아니면 바리새인들이 손마른자를 매수하여 세웠든지 간에 전 후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다만 손 마른 사람이 생활하는데 얼마나 불편하고 애타겠는가만 생각하고 그를 고쳐 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손 마른 자를 참으로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긍휼의 마음으로 환난이 닥쳐올 것이고 유대인들이 엄청 반발하며 적대시 할 것을 훤히 알고도 불쌍히 여기시고 연민의 정을 가지고 사랑으로 고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어려움이 닥칠 줄 알면서도 옳은 일이면 바른 일이면 참이면 그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때로는 고난과 핍박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지만, 바른 일 옳은 일 정의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순교를 각오하고 일터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사역할 때 대적하는 자들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그 곳에서 사역하기를 원하셨기에 그곳을 떠나지 않고 지켰습니다.
어렵고 힘들고 외롭고 궁핍하고 자존심상하고 고독할 때 그곳을 피해 여유있고 풍성하며 교제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싶은 인간적인 욕망을 억제하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고쳐 주시고 채워주시고 변화시켜 주실 줄 믿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라는 것이 중요하다할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일을 시작하고 경제적으로 인간적으로 힘들고 어렵다고 주의 뜻이 아닌가보다 혼자 생각하고 포기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복음전도, 기도생활, 봉사활동 어려움 때문에 환난 때문에 마귀의 방해와 장난 때문에 포기하는 것은 곧 사탄의 세력에 패배한 것입니다.
다니엘 처럼 설사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뜻을 좇는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공중권세를 마귀가 잡고 있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자들에게 항상 어려움이 따르지만, 최후 승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반드시 주어질 것이므로 위협한다고 손해라고 물러나선 안 될 것입니다.
딤후3:12“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 하신 말씀을 새기면서, 성도가 가는 길에 환난과 핍박이 있을지라도 성도가 주어진 사명을 목숨을 걸고 감당하며 자리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전도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이 생명을 걸고 지옥처럼 고통스러운 일일지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전도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는 것이 바로 옳은 일이며 바른 일인줄 믿습니다.
어떻게 주님의 뜻대로 옳고 그름의 기준을 바로 세울 수 있나요?
둘째로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4)
주님께서는 회당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한 것 중에 어느 것이 옳으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회중들에게 손 마른 자를 안식일에 고치는 것이 옳으냐 고치는 것이 잘못된 것이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중에 어느것이 옳으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안식일 규례에 묶여 사람을 죽이고 악을 행하고 있다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신성모독하는 종교지도자들이나 위선이나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착취하는 탐관오리나 부자들을 눈감아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의를 행하는 자들과 권세자나 재력 앞에서 비굴하게 무릎 꿇어서는 안 됩니다.
불의한 권세 잡은 자들이나 약한 자들을 착취하여 부를 축적한 자들을 부러워하며 돈이 최고라고 결혼도 친구도 모두 상위2%의 독점적인 상류사회 진입에 두고 사는 그런 기회주의자가 되어선 더 더우기 안 됩니다.
헤롯이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하여 자기 아내를 삼은 일에 대해 옳지 못하다고 비판한 세례 요한처럼 불의와 불법을 방조하거나 침묵해서는 안됩니다. 국가권력을 이용해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일을 모른척 해선 안됩니다.
성도는 어둠에 빛을 비추는 빛입니다. 썩어져가는 세상을 썩지 않게 막아주는 소금입니다. 교회나 성도가 불의하고 악한 자들을 보고도 침묵한다면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구하지 않은 사람이 방조죄가 될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빛의 신분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와 같은 짓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도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땅의 권세는 비록 한시적으로 사탄이 장악하고 있을지랄도 온 세계는 하나님의 세계임을 잊지 말고 지옥의 땔감으로 쓰려고 세상 사람들을 꺼지지 않는 불로 밀어 넣으려는 악한 자들의 음모를 경고하고 책망하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여 구원해야 될 줄 믿습니다.
4절에서 선을 행하는 것은 손 마른 자를 고쳐 행복한 삶을 주는 것이고, 악을 행하는 것은 고쳐 주지 않고 안식일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손을 고치지 않는 것이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그 기회를 포기하고 이유를 달고 핑계대고 고쳐 주지 않는 것은 바로 악을 행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선과 악에는 중간지대가 없습니다.
선이면 선이고 악이면 악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죽어가는 영혼을 보고 구하지 않으면 살인방조죄라 했습니다.
신고하고 취할 수 있는 응급조치를 취해야할 의무가 보는 자에게 누구에게든지 주어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죽어가는 영혼을 보고 복음을 전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지 않아서 나의 사랑 없음과 부덕으로 불신 이웃이 영원한 지옥에 떨어진 책임을 물으실 것이고 그 상당한 책임을 우리가 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소극적으로 악을 행치 않아야 하며 적극적으로 불의를 보면 선을 행하고 구원하는데 앞장서는 성도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어떻게 주님의 뜻대로 옳고 그름의 기준을 바로 세울 수 있나요?
셋째로 보시기에 아름다워야 합니다.(5)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즉 아름다워야 합니다.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신 것처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둘러보실 때 아름다운 존재가 되어야할 하나님의 백성이 탄식과 노하심의 대상이 되어 있었음은 슬픈 일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헤롯당과 결탁하여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에 화가 나신 것이 아닙니다.
종교지도자들이란 사람들이 명백한 진리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자기들 생각대로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의논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에서 탄식하사라는 말 ‘συλλυπέω 쉴루페오’는 어떤 사람으로 인하여 깊이 슬퍼하고 괴로워하다는 말입니다.
노하심으로 말 ‘όργής 오르게스’는 일반적으로 감정적인 분노를 가리키며 여기에서는 악에 대한 신적 반응으로 언급될 때 하나님의 공의적 심판과 형벌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인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율법에 대한 편협한 해석에 연연하여 주님을 감히 판단하고 정죄하려는 바리새인 무리들에 대해 공의로운 신적 분노를 품으시면 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깊은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심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손 마른 자를 고치는 과정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손을 내밀라하는 예수님의 명령에 손 마른 자가 자기 손을 내밀어 순종하지 회복이라는 즉각적인 결과가 찾아왔습니다.
병이 발발하기 전 건강한 모습으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 모든 성도들이 잠든 자나 살아 있는 자 할 것 없이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회복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첫 창조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회복은 그저 첫 창조의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첫 창조보다 더 나은 새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성이 임할 때는 손 마른자처럼 주님께 나아오는 자들이 모두 온전하게 회복되어 주님과 영원한 행복한 삶을 영원토록 누리며 영화롭게 살게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헤롯당과 함께 예수님을 제거할 모략을 세우는 자들 앞에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공의를 행하신 모습을 그리며 항상 세상의 권세자들 특히 악을 행하는 자들 추하고 더러운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그들에게 부화뇌동하지 말고 주안에서 항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신앙생활을 이렇게 항상 악한 세력 불의한 세력 더럽고 추한 적과 마주한 전쟁 즉 사느냐 죽느냐의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촌각이라도 긴장을 늦추고 살수 없는 것입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 앞에서 이스라엘이 벌벌 떨고 있었듯 적은 세상 권세를 등에 진 강력한 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붉어 동안이며 아름다웠던 다윗이 물맷돌 하나로
담대하게 나아가 갑니다.
즉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를 용서할 수 없다는 영적 정신적으로 아름답게 전신갑주로 무장한 다윗은 이미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도구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나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 즉 보시기에 심히 좋은 사람은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인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어떻게 주님의 뜻대로 옳고 그름의 기준을 바로 세울 수 있나요?
첫째로 고난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1)
둘째로 적극적으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4)
셋째로 보시기에 아름다워야 합니다.(5)
서두에서 오늘 말씀을 토브논쟁(טוב)즉 진선미 논쟁이라 했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옳고 그름의 기준을 바로 세워 공의를 행하기 위해서 진선미의 질서를 유지해야 합니다.
옳은 것을 옳다하고 옳으면 반드시 지지해야하며 불의를 보고 잘못되었다고 경고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보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세우신하나님의 나라 즉 가정과 교회가 참 평안과 행복의 바른 보금자리가 되게 해야 될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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