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믿음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5:11-14
들어가는 이야기
요즈음 날씨가 무더워서 지내시기에 많이 힘드시지요?
열대야 현상이 일어나는 등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날씨가 무덥고 비가 자주올 때 식물들은 한참 성장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산에 올라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상적인 등산로 외에는 산에 올라가기가 어려울정도로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있습니다.
무더위 속에서 많은 곡식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고 과수나무는 열매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은 자란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피조물이 자라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뭔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생명이 있는 피조물은 자랄 수밖에 없고 당연히 자라야 합니다.
그것은 신앙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 성도들도 똑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이면서 에베소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믿음의 성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4:15)
이것은 비단 목회자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도 권면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신앙적으로 성장해야 할 것과 그 성장의 모델과 목표가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장의 목표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 말씀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목표라고 하는 것은 이제는 되었다고 교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주님을 온전히 닮았다고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애쓰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그리스도에게 좀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고 그리스도를 조금이나마 더 닮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목표요 자세라고 할 때 우리가 어떤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까?
본문 속으로
오늘 본문은 히브리서의 일부분입니다만 히브리서를 쓰게 된 배경에는 몇 가지 주목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먼저는, 히브리서는 히브리 기독교인들 즉 유대교 신앙을 갖고 있다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두 번째는, 이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런 박해 속에서 히브리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버리고 유대교로 다시 돌아갔고 그렇지 않은 성도들도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고 적당하게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편 속에서 히브리 기독교인들에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신앙은 무엇이겠습니까?
어린아이와 같은 연약한 신앙입니다.
박해자들이 두려워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떠났습니다.
남아있는 자들도 박해자들의 눈이 두려워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보니 담대한 신앙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고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오늘 본문 12절에서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때가 오래 되었음으로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할 너희가 다시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단단한 식물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성인아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 본문을 설명하면서 나이 30이 되어 젖병을 물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이 30이 되어 젖병을 물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이야기입니까?
그런데 죄송하게도 이런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오늘도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교회의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 새 신자가 등록하였는데 사진관을 경영하는 분이었습니다.
당연히 목사님은 그 새 신자를 소개하면서 사진관을 하니까 사진 찍을 분이 있으면 그 집에 가서 찍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인 중에 사진관을 하는 집사님이 그 말을 듣고 교회를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새 신자 사진관에 가서 사진 찍으라고 했다고 신앙생활을 20여 년 동안 했던 그 집사님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20살이 되어 젖병을 물고 있는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한국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2, 30년 아니 4,50년의 신앙연조를 갖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젖병을 떼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직도 자기밖에 모르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하나 잘되고 자기 가족 잘되는 것을 위해 평생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집안에 무슨 잘못된 일이나 안타까운 일이 생기면 미련 없이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조그마한 일이나 말에도 상처를 받고 신앙생활을 포기하고 교회를 떠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고 희생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주님을 통해 무엇인가를 받으려고 합니다.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이단에 유혹에 넘어가는 자들은 또한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신앙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숙하고 성장하는 신앙입니까? 아니면 지금도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숙한 신앙생활이란?
우리는 당연히 이런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을 버리고 성숙한 신앙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숙한 신앙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신앙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히브리서를 수신하는 성도들에게는 유대인들의 핍박과 박해가 큰 문제였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흔들렸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포기했습니다.
유대교로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는 자들도 열심을 내지 않고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모이기를 적당히 하고 모이는 횟수를 점차로 줄이고 출석하는 일에 게을렀습니다.
예배하는 일을 폐할 뿐 아니라 기도하고 봉사하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일에도 게을러졌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런 문제는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핍박과 박해는 없는 대신에 수많은 유혹으로 인해 오늘날 신앙생활을 포기하고 적당하게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너무 세상의 것을 바라보고 붙잡고 살다보니까 신앙생활에 집중할 수 없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끈을 붙잡는 신앙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고 하는 사람은 다른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알이라고 하는 다른 한 세계를 깨지 않고서는 새가 될 수 없고 새로운 세계를 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끈을 붙잡으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가 잡고 있는 끈 아닌 끈을 놓아야만 합니다.
세상의 끈, 물질의 끈, 명예와 쾌락의 끈을 놓지 않는 한 하나님의 끈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신앙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아직도 어린아이의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은 세상의 끈을 놓지 않고 그 끈도 잡고 하나님의 끈도 잡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끈을 놓으라고 말씀하고 있고 그 끈을 놓을 때 내가 더욱 단단한 끈이 되어 너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끈을 끊고 하나님의 끈만 붙잡는 믿음으로 신앙적으로 더욱 성장하고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장하기 위하여 붙잡아야 할 하나님의 끈은 무엇이겠습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끈입니다.
11절 하반절에 보면,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멜기세덱에 대한 설명을 하고 싶은데 듣는 것이 둔하여 설명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들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끈이 없거나 아니면 그 끈이 약해져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는데 듣는 것이 없으므로 믿음이 생길 수 없고 믿음이 성장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말을 듣는 그 끈을 놓고 어떻게든지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들어야 하고 많이 들어야 하고 깊게 들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세상의 말을 듣는데 사용하고 있고 그렇다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적어질 수밖에 없고 아예 없어지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티비에 시간을 많이 뺏기면 뺏길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은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에 시간을 많이 뺏기면 뺏길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은 그만큼 적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인터넷에 시간을 많이 뺏기면 뺏길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은 그만큼 적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성도들이라고 해서 현대문명의 이기를 외면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너무 굳게 붙잡고 있으면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끈은 약해질 수밖에 없고 그 끈을 놓치기 쉬운 것입니다.
구약 사무엘상에 보면 엘리 제사장과 그를 수종 들던 어린 사무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였던 제사장 엘리에게는 아무런 말씀을 하시지 않고 어린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의 환경을 볼 때 저는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엘리 제사장과 사무엘이 붙잡고 있던 끈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안락의 끈을 붙잡고 있었고 가족의 끈, 자식들의 끈에 너무 매달려 있다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의 끈을 붙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비해 사무엘 선지자는 세상의 끈을 다 끊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끈만을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에게 하나님의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세상의 끈을 조금 놓으시기 바랍니다.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조금 줄이시고 스마트폰을 조금 내려놓으시고 인터넷에 매달리는 시간을 조금 줄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조금 더 늘이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묵상한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신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지금보다 훨씬 더 성장하고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같이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끈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13절에 보면,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젖을 먹는 자는 어린 아이고 그 어린아이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말씀은 반대로 보면 의의 말씀을 경험할 때 어린 아이의 신앙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신앙이 성장해야 어렵고 큰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신앙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신앙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먼저 의의 말씀으로 나아갈 때 그 경험이 우리를 신앙적으로 성장시키고 성숙시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들어가게 될 때 처음으로 닥친 장애물은 차고 넘치는 요단강 물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넘치는 요단강물속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요단강물이 끊기는 역사를 경험하였고 그 마른 땅으로 이스라엘이 다 건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 끊어놓으시고 그곳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들어가면 끊어질 것이라는 말씀을 우리는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는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너무 어리다고 아직 신앙이 부족하다고 가만히 계시지 마시고 그것을 핑계로 삼지 마시고 하나님의 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언제까지 나는 어린아이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면서 평생을 어린아이로 살아가시겠습니까?
한 걸음 한걸음 주님의 말씀 앞에 더 가까이 다가가시고 조금 부담되는 말씀 앞에서도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 아이의 연약하고 두려워하는 끈을 놓으시고 이제는 강하고 능력 있는 주님의 끈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순종의 강도를 한 단계씩 더 높여나갈 때 더 크고 강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연단을 기쁘게 받는 끈을 붙잡아야 합니다.
14절 말씀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장성한 자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다른 번역으로 보니까 ‘성숙한 사람은 훈련을 받아서 좋고 나쁜 것을 분간하는 세련된 지각을 가지고 있습니다.’고 했습니다.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운동선수가운데 골프의 박인비 선수가 있고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류현진 선수가 있습니다.
이들이 버는 돈은 어마어마합니다.
가끔씩 저런 친구들이 우리 교회에 한 명만 있어서 십일조만 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공하고 성숙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그런 사람들이 받는 연단을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선수치고 연단을 받지 않고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훌륭하고 성공한 선수일수록 그들이 받는 훈련의 강도는 더욱 강하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서도 영적인 연단,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편하게 신앙생활하면 우선은 편할지 모르지만 그런 신앙은 절대 성숙할 수 없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곧 넘어지고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래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자들의 신앙이 될 뿐입니다.
모세는 40년간 쓰임받기 위해 80년을 준비하고 연단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하여 아들까지 바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가 되기 위하여 광야생활의 연단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많은 어려움과 핍박을 받고 넘어지고 신앙을 버리고 다시 옛 신앙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도 없거니와 신앙의 성숙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히브리서 기자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을 생각하면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끝까지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편안의 끈을 붙잡지 마시고 기도의 연단, 봉사의 연단, 사랑의 연단, 섬김의 연단의 끈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고 아름다운 신앙으로 성장하여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신앙으로 성장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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