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확증과 제자들의 파송 요20:19-23
주신 말씀 요20:19-23중심으로 부활의 확증과 제자들의 파송이라는 제목으로 멧세지가 선포될 때 큰 은혜의 시간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지난 한 주 동안 평안 하셨는지요?
어느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지고 교회 화단에 개나리도 아름다운 노란 황금 꽃 덩이가 되었네요.
부활절을 지나고 나니 이제부터 무엇인가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산적한 문제들이 해결되고 어둠의 세력들이 물러가고 새로운 소망과 희망이 용솟음친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제 우리 모두 잘될 것입니다. 이길 것입니다.
모든 엉킨 실타래가 잘 풀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과 가정과 교회위에 이러한 복이 임하시길 소원합니다.
특히 요즘 남북관계가 긴장관계를 넘어 일촉즉발의 전쟁위험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북한은 오늘 내일 전쟁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전면전 징후가 아니라고 하며 면역이 되었는지 도저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를 황당하게 하는 사건이 또 발생했습니다.
북한은 계속 전쟁운운하고 최고의 경계태세가 발령된 상황 하에서 탈북자가 꽃게잡이를 한다며 서해5도 지역에 들어가 조업을 하다가 민간인 선박을 훔쳐 타고 유유히 북으로 돌아갔는데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 우리 군의 방비의 허술함입니다. 서해5도 방어사령부를 만들면 뭐 합니까?
더욱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기념한다고 떠들어대더니 도대체 실질적인 안보태세의 확립을 위한 방어준비는 안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럴 때 미군은 첩보기 스텔스 폭격기등 핵항모함을 한반도에 투입하며 연일 무력시위를 하며 한미연합 작전체계는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니, 결국 한국에 대한 폭격기 판매를 승인하였더군요.
이것도 오비이락이겠지요. 혹시 한국에 무기를 판매하려고 남북관계를 긴장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니겠지요....
우리 힘이 아닌 남의 힘을 빌어 나라의 안보를 지키겠다는 것은 처음부터 어리석은 짓입니다. 동상이몽도 한 두번이지 이제 그만 속아도 될 것 같은데... 우리도 핵을 개발하고 자주국방체제를 갖추어 가야할 당위성을 말하고자 합니다.
부활절 후에 첫 주간에 정말 진정한 평화는 어떻게 해야 이루어질 것인지 생각하며 최근의 남북긴장관계가 속히 해소되기 위해 기도할 때 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은신한 제자들을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 문을 잘 봉하고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신령한 부활체의 몸으로 제자들을 방문합니다.
자신의 부활 사실을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생긴 손의 못자국과 로마 군병들에 의해 찔린 옆구리 창 자국을 보여 주심으로 주님께서 확실히 부활하셨음을 확실히 증거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의 확증을 통해 제자들은 비로소 불 신앙적 태도에서 벗어나 온전한 믿음을 갖기 시작했으며 슬픔과 공포를 벗어버리고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있게 된 줄 믿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그들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유약한 신앙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셔서 성령을 주셨으며, 그들에게 특별한 권세 즉 죄 사하는 권세를 부여하고 계신 줄 믿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 할 때 그 복음을 믿고 회개하는 자가 하나님께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부활을 확증한 후 권세를 주시고 파송하셨는가?
첫째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 (19)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 제자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여인들의 신고로 빈 무덤을 확인했고,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말씀도 전해 들었고,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말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단단히 닫아 건채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어떤 말도 어떤 증거도 들리지 않고 다만 예수님이 죽은 것 같이 자신들도 죽게 될 것이라는 공포가 밀려오고 있었기에 숨기에 급급했던 것입니다.
이들이 환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당연한 절차임에도 불구하고 핍박과 환난에 대해 두려워하고 무서워 떨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믿음을 지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세상을 두려워하여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갑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다니엘이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총리직도 생명까지도 초개와 같이 버린 굳건한 신앙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세상이 주는 아주 작은 당근 때문에 예수를 포기하고 세상과 짝하여 나아가고 있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성도가 왜 세상을 두려워할까요?
먼저는 이 세상 임금인 마귀의 실상에 대해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시어 (요일3:8) 그가 당분간 세상에서 활동할지라도 결코 성도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들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다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난 존재들이기에 이제 더 이상 사망이 없고 죄가 없는 신령한 존재가 된 줄 믿기 원합니다.
주가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 안에 살기 때문에 세상 왕인 마귀 사탄을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대장 되신 예수께서 반드시 이기게 하실 줄 믿습니다.
다음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해 바로 알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세상과 하늘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 증거 합니다.
빌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말씀처럼 예수님은 이 땅에 왕중의 왕이 되셨고, 땅 아래 지옥에서 사망권세를 이기시어 부활하셨고, 승천하셔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모아 아버지께 올려 드리며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즉 우리의 눈과 주님의 눈을 함께하고 우리의입과 주님의 입과 함께하고 성도의 귀와 주님의 귀를 함께하고 있는 상태 즉 온전히 일체를 이룬 상태에 있는 함께 하는 자를 이길 권세는 이 세상 어디에서 엎어 성도는 반드시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해 세상을 두려워한다면 우리 주님께서 일부러 제자들을 찾아와 내 못 자국을 보고 창 자국에 손을 넣어 보고서라도 믿으라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만유의 주재이십니다.
그분은 이미 마귀의 사망권세를 깨뜨렸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대해 담대해야 합니다. 어떤 순간에도 믿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흔들림 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당당히 감당하기 원합니다.
요즘 젊은 애송이 김정은이 계속 남한을 협박한다 해도 흔들림 없이 모든 기독 성도가 한 마음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기만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선한 방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왜 부활을 확증한 후 권세를 주시고 파송하셨는가?
둘째로 성령을 받으라 (22)
여기에서 ‘숨을 내쉬며’라는 말은 엠퓌사오(έμφυσάω)의 부정과거능동3인칭 단수형인 ‘에네퓌세센’( ένεφύσησεν)은 창2:7에서 ‘생기를 코에 불어 넣으니 생령이 되었다’는 창조의 말과 에스겔 37:9절 ‘생기야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하라’는 회복시 사용되는 동일한 말이라 할 것입니다.
즉 생명이 없었던 자에게나 생명을 잃은 자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육적인 생명과 관계없이 영적인 생명을 상징하는 성령을 상징하는 성령을 부여하는 상징적 문맥에서 사용되었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즉 본문에서는 구약성경이 말하는 생명을 부여하는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의 보냄 받은 자’ 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게 하기 위하여 영적인 능력으로서의 생명을 부여하는 상징과 관계된다는 말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의 천지 창조 사역에서 생기를 불어넣는 일도 육적인 생명에서 더 나아가 능력까지 부여하는 작업이었고, 에스겔서의 문맥도 능력과 관련되었듯이 본문에서 역시 복음을 전하는 능력과 관계되었다는 점에 주목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생기가 불어 넣어진 인간에게 창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는 대 문화명령을 주셨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시고 마28:18-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게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며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으라는 대 선교명령이 주어졌습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대 문화명령을 잘 감당하고 대 선교명령을 이루기 위해 복음 전파를 위해 필수사항이 바로 성령을 받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성령을 받으라(Λάβετε πνεύμα άγιον)’라는 말은 명령형이 사용된 것은 성령을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받아야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은사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필요Λ한 능력을 받는 것이 급선무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보혜사 즉 파라클레톤(παράκητον)이란 말의 뜻처럼 제자들의 사역을 돕는 자, 조언자로써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말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장래 일을 알게 하시는 분이 되어 주신다는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특히 여기에서 받으라는 말 람바노(λαμβανω)가 요18:31,19:36에서 사용되면서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서 예수님을 데려가라는 문맥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목적이 자신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여하시기 위해서임을 밝혀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16:7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성경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성령을 받으라’가 아니라 ‘성령을 받아들이라’ 라든지 ‘성령을 거하게 하라’로 읽어야 합니다.
성령을 가지고 무슨 피구합니까 받고 던지고 하는 공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받아 모셔 들여야 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사명을 위임하시고 그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시면서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여야 한다고 명령하신 것은 제자들의 파송이 복음 전파의 새로운 시작일 뿐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재창조 행위로써 이는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결코 감당할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성령을 받아 모셔 들이라고 하신 말씀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약속하는 상징적 행위로써 실질적으로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신 사건은 오순절 때라고 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전도사명 즉 복음을 전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해 우리는 성령을 받아 모셔 들임으로서 성령의 사람으로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 되시기 원합니다.
왜 부활을 확증한 후 권세를 주시고 파송하셨는가?
셋째로 세상 자녀와 구별된 삶을 살라.(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라는 말을 카톨릭에서는 베드로에게 주었고, 베드로의 권세를 교황이 이어받았기에 교화에게만 사죄권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말씀을 오해한 것입니다.
여기서 “너희가 아파테(άφήτε)”는 베드로 한 사람이 아닌 제자들 전체를 말합니다.
막2:7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한 말씀처럼 죄를 사하는 권세는 근본적으로 인간 어느 한 두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온 천지 만물을 지으셨고 다스리고 계시며 앞으로 심판하실 하나님의 고유권한입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제자들의 공동체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이 말씀하신 의미가 무엇인가요?
1, 성령의 내주와 도움 없이는 사역을 할 수 없다
22절에서 성령의 내주를 강조한 말씀에 곧바로 이어서 죄사함의 권세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다른 사람의 지를 사하거나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고, 신자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인 줄 믿으시기 원합니다.
2,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영생을 믿으라 합니다.
이 말씀은 부활 신앙의 확증과 복음 전파의 문맥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즉 본절은 일상적인 사람에서 부딪치는 문제라기보다는 이제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이 주어진다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제자들에게 부여하시는 내용인 줄 믿어야 할 것입니다.
3, 예수는 성령세례를 주시는 분이신줄 믿으라 합니다.
요1:29“...보라 세상 죄를 지시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3“...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에게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줄 알라...” 하신 것처럼 성령세례가 단회적인 사건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면 성령으로 세례는 인생을 사는 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할 성령충만한 상태인줄 믿으라 합니다.
즉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는 구속 주로써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성령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사역을 다른 이에게 위임하시면서 성령 세례를 주신 분이신줄 믿습니다.
4, 신적 대리인으로써 세움을 받았음을 믿으라 합니다.
마18:18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신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
‘사하여 질 것이요’이라는 말씀 아페온타이(άφέωνται)가 수동형인 것은 성령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어떤 사람에 예수의 이름으로 거듭 났을 때 에 그 사람을 향해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선포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교회 지도자 몇몇 사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온 모든 자들에게 주어진 특권인 줄 믿습니다.
위의 말씀들을 종합하면 죄 사함은 성령 사역의 신적대리자로서 예수의 제자된 자들이 복음을 선포하는 행위를 통해서 가능케 된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선포되고 회개의 기도가 이루어진 곳에 우리의 죄가 성경에 근거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사하여 진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죄 사함을 선포자일 뿐 그의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 원합니다.
요즘 청문회에서 단 한 사람이 청문회가 아니라 칭송회가 되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캐면 캘수록 아름다운 미담만 쏟아지는 그런 삶을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대리자로써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할 권세를 가진 거룩한 성도가 된 자들의 삶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 정결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워야 할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왜 부활을 확증한 후 권세를 주시고 파송하셨는가?
첫째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 (19)
둘째로 성령을 받으라 (22)
셋째로 세상 자녀와 구별된 삶을 살라.(23)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두려움에서 헤어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슬픔만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을 살 힘도 없고 언제 나에게 죽음이 닥칠지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해 온 것입니다. 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신 주님께서 직접 찾아 오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평강이 그들에게 넘쳐났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한 인생이 죽음으로 달려간다면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기쁨과 평강 즐거움만이 충만해질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의 주님을 만나 기쁨이 항상 샘솟고 평강이 흘러넘쳐나는 진정으로 행복한 성도 부요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무리 북한이 핵위협을 해 온다 할지라도 개성공단이 폐쇄된다 할지라도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는 악의 축은 반드시 멸하고 조국은 신앙의자유가 확보된 아름다운 모습으로 통일되게 될 줄 믿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아멘 ...설교문..서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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