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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려면 (눅 24:13-35)

하나님아들 2013. 8. 1. 19:16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려면 (눅 24:13-35)


이 시간에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려면”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본문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동행자가 주님이신 줄을 몰랐다가 신령한 눈이 열리므로 부활하신 주님이신 줄 아는 놀라운 일을 만났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믿을 뿐 아니라 삶 속에서 부활의 주님으로 말미암아 역동적인 삶을 살아야합니다.


살전5:10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계3:20에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하셨습니다.


어떻게 부활의 주님이 우리의 삶에 나타날까요?


1. 임재하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실망하여 엠마오 마을로 가던 두 제자의 이야기입니다. 15-16절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여기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동행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졌지만 예수님이신 줄 몰랐습니다. 눈이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믿음이 없으면 함께 한 줄 모르고 삽니다. 육신의 눈에는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주님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하셨습니다.


진리는 변치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우리가 없다 해서 하나님이 안 계시거나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다 해서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삶 속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방법입니다.


고후5:7에 지상에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천상에서는 주님을 눈으로 보며 살 수 있지만 지상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기에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입니다.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제자처럼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가진 것처럼 우리도 그것을 영적으로 조금씩 느낄 수도 있습니다. 나 혼자 있는 것 같지 않고 말씀이 우리 생각 속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체험이 있든지 없든지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에 준해서 사시기 바랍니다.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귀에 아무 소리 안 들려도 주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 언제나 내 곁에 계신다. 지금도 내 말을 들으시고 나에게 말씀하신다. 이렇게 늘 자각하며 대화하고 찬송하고 조심하고 의식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의 음성이 마음으로 느껴집니다. 부활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2. 성경을 바로 앎으로 주님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17-27절의 내용인데 예수님은 성경을 가르쳐주셨습니다. 25절부터 몇 절 보면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유대인들은 성경을 외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말씀한 것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두 제자도 성경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선지자로 알았고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로 바랐을 뿐이었습니다. 즉 희망사항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지 않았고 여인들의 부활소식도 허탄하게 느껴졌으며 스승 잃은 허탈한 심정으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행하신 예수님께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는데 마음이 어찌나 뜨거운지 견딜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구주로 믿어지기 시작하더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바로 믿을 수 있고 그 믿음의 분량만큼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두 제자에게 강조하셨던 것처럼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잘못 받아들이면 다른 예수 다른 영과 교제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단들이 성경을 마치 퍼즐 맞추듯 논리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 같아도 전문가가 보면 얼마나 여러 과정에서 비약이 많고 얼마나 비성경 비논리적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도들이 혼란할까봐 열매로서 알리라. 열매로서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의 태아 모양은 반원형처럼 비슷비슷합니다. 그러나 태어나고 보면 사람인지 짐승인지 달라집니다. 이처럼 이단들도 성경을 말할 때 무식자가 들으면 이것이 더 성경적인 것 같고 더 진리같이 느껴지지만 결론이 다릅니다.


기껏 성경을 설명해 놓고 나를 믿으라. 가짜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어야지 왜 사람을 믿습니까? 성경을 잘 배워야 합니다. 모르면 속습니다. 모르면 부활의 예수를 모시지 못하고 부활도 못한 가짜 예수를 믿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으나 사흘만에 다시 사신 예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치 않노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참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려면 성경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3. 기도를 통해서 주님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28-29절 “그들의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여기 기도했다는 말은 없지만 강권했다는 말씀을 삶에 적용해 본다면 기도입니다. 이 구절은 분명 주막에 들어간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도 강권해야 하는데 육신의 예수는 보지 못하니 어떻게 예수를 강권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기도로 주님을 강권합니다.

고라 자손들이 이렇게 노래했지요? 시42:1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이처럼 기도로서 주님을 더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이 임합니다. 눅11:13에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초대교회가 기도하다가 능력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기도 속에서 만나주시고 기도 속에서 부활의 큰 능력을 주십니다.


그 뿐 아니라 기도할 때 안디옥 교회처럼 놀라운 비전을 받습니다. 또 기도할 때 예루살렘 교회처럼 능력을 받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도 성도들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셔서 풀어주셨습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면 찾아질 것이요,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라. 그러므로 늘 기도함으로 생명과 능력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4. 성찬을 통해서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30-31절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주님이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성찬의 자리는 아니었건만 주님은 잡히시던 날 밤과 똑 같이 주님은 행하셨습니다. 그 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이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교훈은 성찬의 은혜입니다. 성찬이란 떡과 포도즙으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화체설(化體說)과 공재설(共在說)과 상징설(象徵說)과 영적임재설(靈的臨在說)이 있습니다.


우리 개혁파에서는 영적임재설과 상징설을 믿습니다. 영적 임재설이란 그리스도께서 떡과 포도주에 영적으로 임재하신다는 것이고, 상징설이란 떡과 즙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 혹은 비유하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고전11:27-29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주님의 몸으로 알고 먹고 마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떡과 즙을 많이 쌓아놓고 먹는다 해도 의미 없이 먹으면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거룩을 범하는 죄가 됩니다. 나의 죄를 위해 흘리신 속죄의 피, 나의 생명을 위해 주신 영생의 살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찬을 통해서 주님의 신령한 몸에 참예한 자가 되었으며 함께 떡을 떼는 성도들도 한 몸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찬을 통해서 혹은 그 믿음으로 매일매일 이 복음의 핵심을 날마다 묵상하고 견고히 서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온전한 용서의 은혜와 풍성한 생명 안에 들어가 주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약하여 넘어지고 쓰러지십니까? 실망하지 말고 세상을 다 이기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실망하여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주님을 만난 것처럼 믿음으로 성경으로 기도로 성찬으로 복음의 핵심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더 깊이 체험하여 우리도 함께 이기고 승리하는 부활의 능력으로 충만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한성진목사.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시원한 바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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