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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최고의 가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빌레몬서1:1-7

하나님아들 2013. 8. 1. 18:56

최고의 가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빌레몬서1:1-7

빌레몬서는 골로새교회의 성도이며 바울의 제자였던 빌레몬에게 그의 도망친 노예이자 바울이 옥중에서 개심시킨 오네시모를 용서할 것을 당부하고 있는 극히 개인적인 서신임에도 불구하고 신약 성경에 당당히 포함되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빌레몬서는 크게 나누면 1-7절의 도입부, 8-21절의 본론부, 22-25절의 종결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빌레몬이란 사랑 받는 자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빌레몬의 핵심주제가 사랑이니 성경전체를 대변한다, 바울 서신의 정수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송수신자의 표기와 축도 감사와 칭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3절은 예수를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믿음의 형제이며 제자인 빌레몬 역시 자신을 희생하여 오네시모를 용납하라 합니다.

4-5절에서 빌레몬의 믿음 및 성도를 향한 헌신과 사랑에 감사 합니다.

6-7절에서 주 예수를 믿음으로 모든 성도를 사랑하는 더 큰 사랑을 하라 합니다.

최고의 가치인 사랑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첫째로 자신을 희생하여 용서하라(1-3)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소개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고 있듯이 빌레몬도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오네시모를 용서하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라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에 비하여 나이가 많이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형제라 부릅니다. 형제 아델포스(άδελφός)는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를 말하지만 비유적으로 동일한 신앙을 갖는 영적공동체의 일원이란 의미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즉 바울은 자기와 디모데 그리고 오네시모가 형제인 것처럼 빌레몬과 오네시모도 동일한 신앙을 갖는 신앙공동체 안에 있는 형제라 부르면서 오네시모를 자신처럼 친근하게 형제로 대하여 줄 것을 은연중에 예시하고 있다 할 것입니다. 이 편지를 AD62년 기록되었습니다.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부자로써 바울에 의해 회심한 골로새 교회의 핵심멤버로써 에바브로 디도에 이어 골로새 교회의 2대 감독이 되었다가 AD64년 네로의 핍박으로 돌에 맞아 순교한 자입니다.

바울은 한껏 빌레몬을 띄워 줍니다.

우리의 사랑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이라 합니다.

이 서신은 빌레몬과 그의 집에 세워진 교회에 보내진 것입니다.

사랑 받는 자란 말은 빌레몬이 하나님과 바울 및 믿음을 가진 여러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만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빌레몬은 복음 전파를 위해 자기 집을 예배처소로 제공했습니다.

당시 골로새를 포함한 소아시아 지역은 심한 핍박 때문에 예배 처소를 찾기가 아주 위험한 상황에서 자기 집을 예배 처소로 드릴만큼 헌신적인 믿음을 가진 사랑받을 만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빌레몬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된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복음의 사역에 헌신적인 일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 받을 만한 성도 되기 원합니다.

더욱이 동역자라 합니다. 동역자(쉬네르고;συνερϒώ)는 목적을 가지고 같이 수고하는 자란 의미인데 주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역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참된 동역자는 지향하는 목표가 같기 때문에 어려움이 닥쳐도 변치 않고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돕고 세워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빌레몬처럼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해 힘써 같이 일하는 동역자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2차 수신자로 언급된 압비아는 빌레몬의 아내로 ‘가장 사랑하는 자매’라는 뜻이며, ‘말 주인’이란 뜻을 가진 아킵보는 빌레몬의 아들로 함께 군사된 자라 하는데 이들이 빌레몬과 더불어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들이 함께 깊이 생각하고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함으로써 오네시모를 따뜻하게 영접하고 용서해 주라는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특히 ‘함께 군사된 자’는 동료군사란 문자적 의미로써 그리스도를 위한 사역과 투쟁의 동료 즉 복음을 위하여 바울과 함께 맹렬하게 생명을 내놓고 싸우는 동지를 나타냅니다.

3차 수신자로 교회 즉 엑클레시아(έκκλησία)밖으로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 즉 교회는 건물의 개념이 아니라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개념으로 성도들 서로 간에 사랑과 용서를 배우고 나누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사랑받는 동료요 군사로써 같은 목적을 가지고 어려움과 시련을 함께 극복하며 사랑과 용서로 주님의 한 몸을 이루어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사랑과 용서하는자, 자기를 희생하여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동역하며 한몸을 이루는 자가 최고의 가치를 이루는 자인줄 믿습니다.

최고의 가치인 사랑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둘째로 믿음 안에서 사랑함을 감사하며 소문내라(4-5).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주 예수와 모든 성도를 향한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에 대해 감사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생각하며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 하나님이 아니라 바울이 [내 하나님]이라 호칭한 것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만난 하나님, 그 자신의 삶 속에서 독특하게 역사하는 하나님을 강조적으로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의 하나님이기도 하지만, 또한 각각의 성도들과 개인적으로 만나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항상 자신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긴밀한 유대를 나누는 분으로 이해하고 만나는 ‘내 하나님’이라 부르는 하나님 되기 원합니다.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빌레몬을 왜 말했을까요?

바울은 사역을 위해 많은 기도시간을 가졌고 공동기도가 아니라 개인적인 기도시간에 동역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한 것입니다.

이는 기도할 때마다 은혜를 베풀어주는 빌레몬을 회상하며 떠올리며 그에 대한 중보기도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기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5절은 4절에서 바울이 기도할 때마다 항상 빌레몬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까닭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주 예수와 모든 성도들에 대하여 빌레몬이 가진 사랑과 믿음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들음의 내용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입니다.

네 사랑과 믿음은 바로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를 향한 것입니다.

본문은 네 사랑(A)과 모든 성도에 대한(A'), 믿음이 있음을 (B)과 주 예수와 (B')가 각각 한 쌍을 이루며 교차 대구구조 즉 키아즘으로 되어 있습니다.

왜 바울은 믿음을 사랑보다 앞세웠을까요?

실천적 성격을 가진 사랑은 내면적 성격을 갖는 신실한 믿음의 소산이기 때문에 믿음을 먼저 언급하고 사랑을 언급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여기서는 믿음과 사랑 사이의 논리적 순서가 아니라, 빌레몬이 모든 사람에게 베푼 사랑을 오네시모에게도 베풀어 주기를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주 예수께 대한 믿음의 근거 위에서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가능했음을 보여 주기 위하여, 그리고 믿음을 가진 자는 마땅히 사랑도 가져야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기도할 때마다 빌레몬을 기억하여 감사하며 그를 위해 중보기도한 것은 주예수와 모든 성도에 대한 실천적인 사랑과 신실한 믿음에 대해 한번만 들은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에바브라와 오네시모를 통해 계속 들음이니(아쿠온:άκούων)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믿음과 사랑은 소문이 날수록 좋습니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려는 평범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으려는 각고의 노력이 있을 때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어지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할 때 빌레몬처럼 아름다운 믿음과 사랑의 소문을 많이 일으켜 대한민국에서 일으키는 나비의 날개짓이 전 세계를 휩쓰는 허리케인이 되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기 원합니다.

최고의 가치인 사랑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셋째로 믿음 안에서 교제하며 더 큰 사랑을 하라(6-7)

6절은 빌레몬을 위한 바울의 기도 내용으로 믿음의 교제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을 우리에게 얼마나 풍성하게 누리게 해주는지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빌레몬은 골로새교회의 예배처소를 제공한 물질적 후원자 봉사자였습니다.

그런 빌레몬에게 ‘네 믿음의 교제’라 함은 주님을 믿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는 삶을 산 것이며,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에게 위로와 말씀을 통해 격력하고 북돋아 주었고, 주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영적인 풍성함을 얻는 성도가 다른 성도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중보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빌레몬은 믿음의 교제를 통해 다른 성도들에게 큰 유익과 은혜를 끼치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배운 자가 먼저 깨달은 자가 있는 자가 먼저 헌신하고 봉사하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만이 아니라 믿음의 교제를 통해 우리가 주 안에서 누릴 수 있는 복들을 함께 실질적으로 나누고 풍성하게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의 믿음의 교제를 통해 주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신비롭고 황홀한 경험을 한 성도는 주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열심을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영광을 보고 기뻐할 때 영광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로 하여금 성도들이 서로 돕고 힘이 되어 주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엄청난 기근으로 인해 궁핍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유대인도 아닌 마게도냐 지방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에서 자기들도 핍박과 착취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구제 연보를 기쁨으로 자원하여 힘에 지나도록 하였습니다.

요즘은 나눔이 일상이 되었지만, 그때는 다른 사람을 위해 내 것을 내놓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때입니다.

믿음의 교제 즉 구제와 전도, 위로와 힐링, 나눔과 섬김이 성도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나눔과 섬김 도움과 케어를 통해 부요하신 자로써 우리를 위해 가난해 지신 예수님의 은혜를 받은 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일 뿐 아니라, 위로하고 감싸줌으로 주님의 은혜를 더 잘 묵상하고 주님의 사랑을 더 잘 느끼게 됩니다.

성도가 믿음 안에서 교제할수록 그리스도의 복을 더욱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믿음의 교제가 그리스도의 복을 경험하게 해 주시는 놀라운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기쁜 일이 있는 성도를 진정으로 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슬픈 일이 있는 성도를 마음을 다해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행2:42 “ 저희가 사도이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한 말씀처럼 믿음의 교제가 절실할 때 찾아가 힘이 되어주는 성도가 되기 원합니다.

최고의 가치인 사랑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첫째로 자신을 희생하여 용서하라(1-3)

둘째로 믿음 안에서 사랑함을 감사하며 소문내라(4-5).

셋째로 믿음 안에서 교제하며 더 큰 사랑을 하라(6-7)

용서(容恕)없이 사랑할 수 없고 , 용서 없는 믿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용서하기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믿음 안에서 사랑하며 믿음 안에서 교제하며 더 큰 사랑을 이루어가는 사랑받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

설교문..서대장.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시원한 바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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