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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 아버지 (눅 15:11-24)

하나님아들 2013. 8. 1. 18:53

하나님 아버지 (눅 15:11-24)


이 시간에 “하나님 아버지”라는 제목입니다. 조금은 부정적인 말이지만 우리 사회 청소년들의 아버지 인식 가운데 특징적인 두 가지를 소개하면 하나는 아버지는 돈 벌어오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간섭하는 사람입니다. 돈은 벌어다주되 간섭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로 들리는 말입니다. 아버지 부재 시대의 한 단면입니다. 자신들도 자라면 아버지가 되겠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른 철부지한 마음입니다.


2010년8월 탈무드의 저자 마빈 토카이거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기독교100주년 기념관에서 강연하면서 그는 유대인의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이미지와 역할에 대해서 소개했습니다. 그는 가정교육이 잘되고 있는 유대인의 가정에서 아버지는 네 가지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공급자(Supplier), 둘째 보호자(Protector), 셋째 인도자(Guider), 넷째 교육하고 훈육하는 자(Instructor)입니다. 이 네 가지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미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즉 유대인들은 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의 탕자의 비유에 나타난 아버지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아버지이실까요?


1.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12절에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돌아올 분깃이란 헬라어 ‘에피발로 메로스’는 유산을 뜻합니다. 이런 요구는 십계명의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 전적으로 상반되는 요구였습니다. 세상을 떠나지도 않은 부모에게 유산을 요구하다니 유대인들의 전통과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요구였습니다.


출 21:17에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했는데 죽지도 않은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하는 것은 율법에 따라 아버지를 저주하는 것으로 인정되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온 이 둘째 아들의 행동은 당시 사회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떻게 합니까?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여기 각각 나누어 주었다 했습니다. 유산을 요구한 둘째만이 아니라 맏아들에게까지 나누어주었습니다. 물론 지혜로운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너무 일찍 자녀들에게 상속하고 자녀들의 무관심 속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사는 부모들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보여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좋으신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권리대로 하셨으면 될 수 없는 것을 자기의 권리를 다 포기하셨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지만 아무나 다 지나요? 좋은 부모니까 지지요. 사극을 보면 자식이라도 왕권을 노리면 죽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원리원칙대로 했다면 우리는 이미 버림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너무 원리 원칙적 법리적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적인 사람은 서로가 피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십니다. 마7:7-11에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말씀하신 다음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타난 아버지상은 인자한 상입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 창기와 함께 삼켜버린 패륜아를 용서하고 받아준 것만도 큰 건데, 버선발로 달려가 맞이하고 송아지 잡아 잔치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아빠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아바'입니다. 막14:36에 예수님은 죽음을 앞에 두고 "아빠 아버지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그 순간에도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좋으신 아바 아버지가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부요의 아버지이십니다.


상속 받은 둘째가 어떻게 합니까? 그 돈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여 다 낭비하고 맙니다. 사업의 실패라면 용서할 수 있어도 이런 건 용서할 수 없습니다. 대 마침 흉년은 크게 들었지 돈은 없지 돌아올 명목도 없어 할 수 없이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살면서 돼지를 치지만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습니다.


이 때 둘째 아들의 마음속에는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17절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탕자가 어려울 때 생각나는 아버지, 어떤 아버지였습니까? 따뜻한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풍족하신 아버지였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품꾼들조차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입니다. 날일하는 품꾼들이 그렇다면 아들이야 말할 것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부요의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학2:8에 “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전5:19에서는 재물과 부요를 능히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시50:12에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했습니다.


예수님도 부요하셨으나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고후8:9).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이 없으신 영원하신 최고 부자입니다.


육신의 부모는 한계가 있습니다. 부모를 너무 의지하지 마십시오. 사업한다고 부모의 노후대책까지 가져가지 마십시오.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이 습관화가 되어 부모가 걷지도 못하고 기어 다녀도 최후까지 부모를 부려먹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마음껏 의지해도 됩니다. 하나님은 자녀가 받아 누리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온갖 영육 간의 아름다운 모든 것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풍족하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3.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20-24절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이것은 아들의 죄를 탕감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아들로서의 모든 권리를 회복시키는 행위입니다. 손에 가락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표시입니다.

또 신을 신겼습니다. 당시 종들은 동시에 종들은 맨발로 다녔습니다. 아들만이 신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버지는 아무 조건 없이 아들로서의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아들은 품꾼의 한 사람으로 봐달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모두를 회복시켰습니다.


어떻게 하니까? 아버지께로 돌아오니까. 아버지께로 돌아온 것밖에는 없습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면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더 마음으로 가까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부르나 마음은 멀었던 유대인들처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온전히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황태자로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품 안을 떠난 탕자와 같은 인간이지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만 돌아오면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하늘의 영광으로 영육 간에 가득히 채워주십니다. 고난 속에서 탕자는 중대한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 탕자의 인생을 바꾸어놓는 결심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 부요의 아버지, 회복의 아버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복된 결심이 이 시간에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성진목사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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