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22: 6-15(행한대로)

하나님아들 2013. 4. 17. 14:45

22장6-15(행한대로)

성경본문 : 계시록 22: 6-15

○ 속히 오실 그리스도

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계19:10

9.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계1:1

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단8:26, 단12:4, 단12:9, 계1:3

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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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처| 김상복목사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납니다.

이것은 농사의 법칙이요 보편적 진리입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은 우주의 법칙이며, 어떤 결과의 뒤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원인과 결과의 과학 법칙이기도 합니다. 영적인 법칙이요 농사의 법칙이요 과학의 법칙입니다. 법칙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 변한다면 법칙이 아니지요.

진리에는 네 가지 레벨이 있는데, 첫째는 의견(opinion)의 레벨입니다. 의견은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럴듯한 의견이 좀 더 강해지면 가정(hypothesis)이라고 합니다. 또 그 가정이 좀 더 확실해지면 학설(theory)이라고 하지요. 그 학설이 세계의 모든 환경과 여건에서 절대적으로 불변하면 법칙(law)이라고 합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은 불변의 법칙입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조금 심으면 조금, 선을 심으면 선을,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둡니다. 이 법칙은 우리의 인생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꾸준히 순종하며 살아온 사람과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유익을 위해 남 해치는 것도 개의치 않고 산 사람의 결과는 반드시 다를 것이고 또 달라야 합니다.

 

어떤 무신론자는 “하나님이 만약 전능하시고 공의로운 분이라면 이 세상의 모든 악을 제거하고 악이 없는 세상을 만드셨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이 세상에 악이 판치고 있는 것을 보니 전능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님은 없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나 여러분, 악한 자가 오늘도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때문임을 아십시오! 하나님은 악한 자가 회개하여 하나님을 향해 새롭게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오늘 하루 더 기회를 주신 것이지, 능력이 부족하거나 의롭지 않거나 선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악한 자가 돌아서기를 마지막 순간까지 참으며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자비 때문입니다. 만약 전능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 지을 때마다 벌을 주셨다면 오늘 여기 아무도 남아 있지 못할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인간이 죄를 범할 때마다 벌을 주셨다면 이 지구에는 남아있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기다리셨는데도 인생 칠팔십년을 살면서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은 심판 날에 하나님 앞에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얼마나 참고 기다렸는지, 네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주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네게 보내 네가 변하고 회개하여 새사람 되기를 권고했는지 아느냐?” 하실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도 아무렇지 않다면 바로 오늘 회개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회개하고 돌아서서 새롭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인내하시며 자비를 베풀고 계심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요즘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말세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땅에 악이 범람해서 악에서 악으로 치달으며 인간이 타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계의 종말이 오기 전에 이 땅에 엄청난 형벌을 일으켜서 악한 자들을 처벌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 중에도 끝까지 주먹을 들고 하나님을 저주하는 자가 있습니다. 사람이 악해지면 끝을 모릅니다. 이 땅의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악을 얼마나 미워하시는지를 안다면 그 즉시 돌아서야 할 텐데 그러지를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형벌을 받을 자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돌아서지 않습니다. 우리는 양심이 마비되고, 악이 인격화 되어 악을 자랑으로 여기는, 과거에 전혀 본 적이 없는 극단의 악으로 치닫는 현대 인간의 모습을 요즘 TV와 인터넷을 통해서 보고 있습니다.

 

본문말씀은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누고 있습니다.

“불의(不義)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되게 하라”(11절). 의 이 말씀에서는 사람을 악한 자와 선한 자, 불의한 자와 의로운 자로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정욕과 욕심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과 더불어 삶의 방법에도 두 유형이 있습니다. 악한 생활로 치닫는 삶과 선을 추구하고 도모하는 두 가지 삶의 방향입니다.

 

15절에는 악인들에 대한 묘사가 나옵니다.

“개들과,” 더러운 인생을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술객들과,” 귀신을 빙자해서 영적으로 사람을 속이는 사람을 말합니다. 지금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음행하는 자들과,” 성적으로 타락한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형벌이 있습니다.

“살인자들과,” 사람을 죽인 자들이지요.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 사실을 과장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자들입니다.

저도 오랫동안 목회를 하면서 이런 모습을 종종 보았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퍼뜨리는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잘못 생각했거나 부분을 보고 전체라고 말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거짓말을 좋아하고 의도적으로 만들어 퍼뜨리는 자는 “성밖에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날 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요,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갚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때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갈 자들의 유형이 계시록 21장 8절 이하에 또 나옵니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 여기서 “두려워하는 자”란 겁내는 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는 자를 말합니다.

 

언어나 물리적인 폭력으로 사람을 겁먹게 하는 자들입니다.

폭력적인 사람들, 성질이 난폭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지 않으면 유황불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폭력으로 재산을 모으는 사람도 있지 않았습니까? 과거 독일의 나치정권이나 현재의 북한정권도 그렇습니다. 독재자로 절대적 폭력을 휘두름으로써 국민들이 겁나서 숨도 못 쉬게 하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형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있어야지요. 사람을 죽이고 폭력을 행하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다? 어디 그런 불의가 있습니까? 마지막 심판이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지만 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정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지옥이 있습니다. 악한 자들을 위해서 지옥이 있어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의 폭언이나 폭력 때문에 자식들이 벌벌 떨고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가정교사를 했는데, 그 집 주인이 자그마한 남잔데 보통 때는 착해요. 그러다가 술만 먹으면 장작개비를 갖고 아내를 마구 때리는 거예요. 결국 아내가 도망을 갔어요. 잘 도망갔지요. 만일 여러분의 가정에 폭력이 있다면 그냥 맞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경찰에 신고해요. 폭력과 폭언으로 식구를 겁에 질리게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어느 부인은 남편의 폭력을 참다가, 참다가 어느 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남편이 잠든 사이에 몽둥이로 다리를 내리쳐 분질렀다고 합니다. 제가 들어보니 25년을 참고 참은 거예요. 미리 경찰에 신고해서 감옥에 들어가게 했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그러면 감옥에서 반성할 시간이 있었을 텐데, 25년 동안이나 계속 맞다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으니까 남편의 다리를 부러뜨린 거예요. 심은 대로 거두리라! 폭력을 행사하는 자는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저는 그 여자가 그렇게 했다고 해서 그렇게 독한 여자가 어디 있냐고 하지 않겠습니다. 독한 남자 때문에 그렇게 된 거지요.

 

만약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생각하며 겁을 먹는다면 회개하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돌이켜 여러분의 가슴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자식들이 아빠를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도록 좋고 그 품에 안기고 싶은 그런 모습이 될지언정 공포를 일으켜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 안에서 새사람이 되도록 성령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온유하고 겸손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서 영원히 지옥 불에 던져지는 자가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 흉악한 자는 악을 주저 없이 겁 없이 행하는 자입니다. 다른 사람을 해치고 억울하게 하면서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이 이 땅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사람이 잘 먹고 잘 살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마지막에 심판이 있어야 됩니다!

 

한편 의로운 자는 의롭게, 거룩한 자는 거룩하게 삽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굴곡이 있습니다. 선을 도모하다가 악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은 바로 돌아서서 성령의 도움을 구하고 새롭게 살기를 갈망합니다. 22장 14절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라고 했습니다. 영혼이 씻음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영혼의 더러워진 옷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이 씻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씻음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왜 복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13절) 하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계셨고 오늘도 계시고 영원까지 모든 것을 아시고 주관하시며 심판하시는 예수님의 사람이 된 자들에게는 영원한 천국의 은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의롭고 거룩하게 사는 자들에게도 사후에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은 지옥의 심판이 아니라 상급의 심판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12절).

여러분, 여러분이 인내한 것, 의롭게 산 것, 선을 베푼 것을 다른 사람들이 몰라주었습니까? 상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모든 수고와 희생을 반드시 갚아주실 것입니다. 올림픽 경기에서도 레슬링 선수가 시합에서 이겼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금메달을 걸어주지는 않잖아요. 경기가 모두 끝나고 입상자들이 단상에 오르면 먼저 국가를 연주한 후에 영광의 메달을 걸어줍니다. 이 땅에서도 다 끝나야 상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이 인생의 달려갈 길을 다 마친 다음에 상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지켜보셨습니다. 부자들은 자랑하듯 보란 듯이 헌금함에 큰 돈을 집어넣었으나 한 과부는 조용히 와서 고개를 숙이고 엽전 두 냥을 넣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과부가 부자보다 훨씬 많은 헌금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어느 수학자가 계산을 했습니다. 그 과부의 엽전 두 냥을 예루살렘 은행에 연리 4%로 예금했다고 가정했을 때 2천년이 지난 지금 얼마가 되었을까? 제가 숫자를 세다가 제 수학으로는 계산이 안 되더군요. 결과는 48만조에 0이 네 개나 더 붙은 금액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부는 예루살렘 은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행에 저금을 했습니다. 오늘날 그 여자의 상급이 클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만원을 가지고 음식을 먹는 데 썼다면 아마 4-5시간 정도 유효하겠지요. 만약 만원으로 휘발유를 사서 자동차에 넣었다면 여기에서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 정도를 왕복할 수 있겠지요. 만약 만원어치 파마를 했다면 며칠은 가겠지요. 스타킹을 샀다면 찢어지기 전까지 두서너 주는 신겠지요. 모자를 샀다면 한 두 계절 정도는 쓸 겁니다. 가정의 장식품을 샀다면 아마 한 세대 정도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만원을 하나님을 위해 썼다면 영원히 갈 것입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모슬렘 사람들은 전쟁 중에 자살테러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하드 즉 성전(聖戰)을 위해 죽는 것을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성전에서 죽으려고 하는지 궁금해서 제가 코란을 읽어보았어요. 코란에 의하면 그들이 지하드에서 자폭하여 죽으면 천국으로 바로 간다고 합니다. 천국에 도착하면 왕의 대접을 영원히 받는다고 합니다. 도착하자마자 3백 가지의 음식이 차려진 환영 연회가 베풀어지고, 즉시로 영원히 젊은 사람의 건강과 힘을 얻고, 8만 명의 하인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영원히 젊은 처녀 72명이 아내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기를 낳으면 한 시간 안에 성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7살짜리가 지하드에서 죽고 싶지 않겠어요? 후세인이 자기나 죽지, 15-20살짜리 아직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한 꽃 같은 젊은이들을, 자기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 자살해서 죽으라고 하다니! 그런 짓을 하려면 자기가 해야지! 그런 식으로 10대의 젊은이들을 부추겨 자살테러를 유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없다면 정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여러분과 저도 불의한 자로 살 것인지 의로운 자로 살 것인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것인지 하나님을 무시하며 살 것인지, 선을 도모하며 살 것인지 악을 도모하며 살 것인지 여러분의 일생에 결단해야 합니다.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 되고. . .”

 

하나님 없이 살다가, 악을 향해 가다가, 지옥 길로 내려가다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향해, 선을 향해, 의를 향해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 앞에서 많은 선을 행함으로써 이후에 하나님 나라에 갔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의 상이 우리 모두에게 베풀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 : 성경 벌레들
글쓴이 : 성경 벌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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