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한복음10장22~42절
제목 : 목자와 양, 아버지와 아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임을 밝히라고 예수께 요구했고, 신성에 대한 예수의 주장에 격분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과 자신이 행한 선한 일을 제시하며 정죄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변호하십니다.
1. 예수를 믿지 못하는 이유(22~27절)
“22.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1) 때와 장소(22,23절)
“[22]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수전절"은, 유다의 매코비가 성전을 중수(重修)한 뒤에,
그것을 기념하는 절일을 정했는데, 그것을 말합니다.
이날은 12월 25일입니다.(매코비 4:51,메코비 10:5-8).
"솔로몬 행각"은, 비를 피하기 위하여 시설한 현관과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팔레스틴에는 12월이 우기(雨期)이므로,
예수님께서 그 때에 솔로몬 행각에 다니신 듯합니다.
2) 그리스도이면 밝히라고 합니다(10:24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주님께서는 자기가 메시야이신 사실을 직설(直說)하심보다,
흔히 비유적으로 하시고 밝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 때 민중의 메시야 관념이 그릇되어서 정치적 메시야를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에 유대인들은
예수님더러 그의 메시야이신 여부를 "밝히 말하시오"라고 합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1) 말하고 증거였으나 믿지 않았다(10:25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이 말씀에는, 예수님의 메시야격에 대한 두 가지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①그의 말씀의 증거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음.
예수님의 말씀은, 신자들이 등한히 해도 언제나 살아 역사(役事)합니다. 그의 말씀을 오해하고 선전하는 자들이 많아도 그의 말씀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의 말씀을 반대하는 자들이 많아도 그의 말씀은 계속 살아 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그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마 24:35에는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하였고, 요 8:51에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권위 있고 진실합니다.
② 예수님의 행하는 일들이 그를 증거함.
예수님의 일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그의 이적들을 가리킵니다.
현대인은, 기독교에서 그 이적 요소를 제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독교는 이적으로 된 종교인데 거기서 이적을 제외하고 믿으려고 하는 것은, 돌 집에서 돌을 모두 다 뽑아 버리고 남은 데서 살아 보려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이적은
구원사적(救援史的)인 진실과 구속적인 사랑을 그 성립 요소로 한다는 것입니다.
메시야께서 이런 권능을 행하시리라는 것은 구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사29:18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에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
*사35:5~6절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그것이, 과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구원사적 이적이고 합니다.
이것을 보고도 믿지 않음은 메시야를 보고도 믿지 않는 죄악입니다.
(2)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한다(10: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아셨습니다(벧젠 1:2).
곧, 그가 우리를 택한 백성으로 삼으셨으므로,
우리가 그를 믿게 된 것입니다.
"양"이란 말은 택한 백성을 비유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게 할 증거들은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 증거들은 하나님의 진실성에 의하여 완전하게 나타났습니다.
기독교는 이렇게 가장 믿을만하게 된 유일하고도 진정한 종교입니다.
그래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쌀이 가득한 창고 안에서
굶어 죽는 자들과 같고, 샘 앞에서 목 말라 죽는 자들과 같습니다.
결국 그들은 영생의 복을 받도록 택함이 되지 못한 자들입니다.
(3)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를 알며 나를 따른다(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이 귀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양(택한 백성)의 성질이 어떠함을 밝혀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음성(하나님 말씀)을 알아 듣고 따른다(닮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음성을 안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대한 그들의 편애(偏愛)가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먼저 택하신 사실에서 일어난 반응입니다.
그것은, "나는 그들을 알며"란 말씀이 밝혀 줍니다.
2. 영생을 빼앗을 수 없는 이유(28~30절)
1) 그리스도의 양 된 자의 행복(10:28,29)
“[28]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이 귀절들은, 그리스도의 양 된 자의 행복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 행복은 그들이 영생을 받음입니다.
아무도 그들의 받은 영생을 빼앗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양들을 위하여 원수들(도적, 갇도 같은 자들)과 싸워 이기시므로, 양들은 영원토록 안전합니다.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2)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은 일체이다(10:30절)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28절에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로서 29-30절 말씀이 나왔습니다.
그들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지 못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지 못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은 일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하심은,
본질적으로 그가 아버지로 더불어 일체로서
영원하신 하나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아버지의 계시자(啓示者)로서 세상에 보내심을 받아 아버지의 뜻을 완전히 순종하시는 것 만큼,
그의 모든 행동은 곧바로 아버지의 행동과 완전히 일체(一體)였습니다.
3. 예수님을 정죄하는 것이 부당한 이유(31~39절)
1) 선한일을 보였습니다(10:31,32)
“[31]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그 때 유대인들은 자칭 경건하다고 하며, 거짓 선지자를 돌로 치라는 성경 말씀(신 13:5)을 실행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악행을 연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담대히 답변하십니다.
그 답변은, 유대인들의 완강한 불신앙을 지적하신 것이니,
곧, 그들이 너무도 하나님의 계시(啓示)를 몰라 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어떻게 완전하고 철저함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말씀들이 보여줍니다.
곧,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선한 일", "너희에게 보였거늘"이란 말씀들입니다.
(1) "아버지께로 말미암아"란 말은, 그의 하신 선(善)이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신 사실이 증명될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그들의 불신앙은 현저합니다. (2) 그 뿐 아니라, 그 선한 일이 한 가지만 아니고 여러가지였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신앙 이였습니다.
(3) 또 그 뿐 아니라, 그런 선한 일들을 그들에게 밝히 보였으되 그들은 불신앙 이였습니다.
"보였거늘"이란 말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공중 앞에서 행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밝히 보여주었으되, 그들은 강팍하여 아직도 믿지 않았습니다.
2) 유대인들의 불신앙(10: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
유대인들의 불신앙의 철면피는 저렇게 두텁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듯이 자처합니다. 곧, 그들이 하나님께 특별히 충성하는 듯이, 예수님의 발표하신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 말씀을 책잡아 그것이 "참람"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그 말씀이 진리와 시실에 근거한 여부는 알아 보지 않고 먼저 정죄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교만과 편견과 시기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3)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 아들이라함을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10:34-36)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여기 "율법"이란 말은 시 82:6을 가리킵니다.
*시82:6절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시편을 왜 율법이라고 하였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됩니다.
곧, 모세의 율법이 구약의 처음부분에 있는 것만큼,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구약 전체의 책 이름을 "율법"이라고 하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요 12:34, 15:25; 롬 3:19; 고전 14:21 참조
시 82:6에는 재판장들을 가리켜 "신들"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재판장들이 신(神)의 시키심을 받아 재판을 대행(代行)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이고, 그들 자신이 영원한 신들이라고 함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의 신격(神格)이나 신자격(神子格) 주장의 정당성을 이 시구에 두셨습니다.
그것은 얼른 보아 예수님도 순 인간으로서 신의 시키시는 일을 맡은 의미의 하나님 아들이고,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아들(Ontological Sonship)이 아님을 증거하시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시구에 근거한 예수님의 논증의 귀결은, 추론의 등위적 이론(等位的理論=Analogical argument)이 아니고 강이유 결론(a fortiori)이니,
곧, 보통 인간들도 신의 시키심을 받은 자라면, 그 본질에 있어서는 신(神)이 아니로되 그들을 "신들"이라, 또는 "자존자의 아들들"(시 82:6)이라고 하였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영원하신 하나님 아들이야 말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결론입니다.
4) 예수님이 아버지의 일을 하였다(10:37,38)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
여기 "내 아버지의 일"이란 말은 그가 행하신 이적들을 가리킵니다.
그는, 그의 이적 행하신 사실을 저 불신앙자들 앞에 도전적으로 내세우십니다.
그것은, 그 이적들의 역사성과 진실성에 대하여 천하가 공인한 사실을 지적함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이적들은, 어떤 한 구석에서 되어진 것이 아니고 대중이 주목하는 공석에서 되었으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은 강퍅한 교권자들이 끈질기게 책잡으려는 무서운 눈초리 앞에서 성립된 일들입니다.
"그 일은 믿으라."이것은, 그의 행하신 이적들이 초자연적이고,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신 표적인 사실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다 함은,
하나님께서 땅에 있는 그의 기관(organ)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성(예수님)에게 하늘의 모든 부요(富嶢)를 충만히 전달시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하나님) 안에" 계신다 함은,
그리스도께서 전적으로 자기를 포기 하시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부요에서 모든 것을 가져오심을 가리킵니다(Godet).
예수님의 이적은, 저렇게 땅에 계시면서 하늘에 계시는 (3:13) 오묘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내세(來世)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바빙크(Bavinck)는 말하기를, "내세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성되는 것이니 거기 의(義)가 거한다. 그 때에는 이적과 자연이 하나가 된다. 그 때에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가 하나가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10:39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아직도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므로 원수들이 그를 해하지 못하였습니다.
5. 요한의 증언과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10:40,41)
“[40]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예수님은, 불신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떠나 요단강 저편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은 물론 적막한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곳에도 대중으로 하여금 그를 따르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은 이유는, 세례 요한의 이적(세례 요한은 이적을 행치 않았음)을 본 까닭이 아니고 그의 증거한 말(그의 메시야 증거)이 참된 까닭이었습니다.
말의 진실성은 이렇게 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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