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라. 요한계시록 3:7~13 2010.11.14. 주일설교
충성!! 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사전에서 충성(忠誠)은 “특정한 인간이나 집단, 또는 신념에 자기를 바치고 지조를 굽히지 않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충성을 중세 봉건사회의 유물이고 제국주의 시대의 낡은 가치 기준이라고 쓰레기장으로 보내어서는 안 됩니다. 시대가 변해도 고려 말 포은 정몽주나 목은 이색, 세조를 끝까지 거부한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이 지금도 존경받듯이 충성은 공동체 삶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현대는 마케팅 시장에서나 충성도가 환영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정과 교회 국가에서 여전히 충성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바티칸을 지키는 자들은 스위스 용병들입니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충성심이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대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호위병은 프랑스 병사와 스위스 용병 7백 68명을 포함한 외국의 용병들이었다고 합니다. 시위대가 접근하자 루이 16세와 외국 용병은 물론 프랑스 병사들도 대부분 도망가고 말았답니다. 루이 16세는 그때까지 남아 있던 스위스 용병들을 불러 "너희는 프랑스 와 아무 상관이 없으니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당시 스위스 용병을 지휘하던 12명의 스위스 장교들은 긴급회의를 가졌고 그들은 "한번 지킨 신의는 끝까지 지킨다"는 말과 함께 만장일치로 결사항전을 맹세한 뒤 전투에 나섰다고 합니다. 그 결과 7백 68명의 스위스 용병들은 대포로 무장한 시위대의 맹공에 장렬히 전사했다고 합니다. 세네카는 “충성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가장 성스런 선이다.”이라고 말했고 R.W. 에머슨은 “충성심을 품지 않고 사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파수하고, 자기 직책에 전력하고, 가정을 지키며 신앙의 정조를 지키는 충성을 가치 있는 미덕으로 말씀합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잠25:13)”라고 했습니다. 충성은 상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딤후2:2), 많은 것을 맡김 받으며(마25:21), 생명의 면류관을 받고(계2:10), 권세를 얻을 것(눅19:17)”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2)” 언젠가 인생의 마지막 평가를 받는 날이 옵니다. 어떻게 평가받겠습니까?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그리스도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칭찬과 권면과 약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곱 교회 가운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더불어 아무런 책망을 받지 않고 칭찬을 받은 모범 교회였습니다. 당시 서머나 교회가 순교의 교회로 유명했다면 빌라델비아 교회는 인내의 교회였습니다.
1. 칭찬의 말씀입니다. 8절“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여기서 적은 능력이란 빌라델비아 교회가 수적으로 많지 않았고, 물질적으로 풍부하지 않았으며, 규모면에서도 크지 않았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외소하고 보잘 것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내적으로 강했고 영적으로는 부요한 교회로 환란과 핍박에도 요동하거나 굴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말씀을 지켰고 그 이름을 배반치 아니함으로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것입니다.
당시 빌라델비아 교회를 핍박한 주요 세력은 서머나 교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일찍부터 그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스스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왜곡된 우월 의식과 거짓된 율법관에 사로잡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오하고 핍박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참유대인이 아니요(롬2:29), 거짓 유대인(롬2:28)으로서 사단의 회에 불과했던 것입니다.(9절) 적은 능력으로 꿋꿋이 인내하고 믿음을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를 사랑하는 그 시랑의 증거를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1). 9절“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사도행전 9장에 보면 핍박 자였던 바울이 예수님의 빛 아래 굴복한 것처럼 그렇게 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사60:14)“너를 괴롭히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아래에 엎드려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의 시온이라하리라” 교회가 성도가 이 땅에서 잠시 핍박과 환란을 당하나 결국에는 모든 핍박 자들을 그 발아래 두는 영광과 존귀에 처한 다는 것입니다.
2). 10절“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빌라델비아 교회가 핍박 중에서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듯이 그리스도께서도 빌라델비아 교회를 시험(시련)의 와중에서도 지켜 보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17:15) 여기서 인내의 말씀이란 인내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요, 이 땅에서 친히 십자가의 수난을 인내로서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결국 빌라델비아 교회는 인내로서 말씀을 지켰기에 장차 닥칠 큰 시험과 시련을 주님의 돌보심으로 무사히 통과하고 승리할 확실한 보장과 은혜를 받았던 것입니다. 비록 내 능력이 적고 미약하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그 이름을 위하여 신앙의 절개를 지킴으로서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처럼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2. 권면의 말씀입니다. 11절“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지켜온 신앙의 정절을 끝까지 지킴으로 최종 면류관을 얻으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굳게 잡아는 명령문은 계속해서 단단히 붙잡고 있으라는 의미입니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단은 기회만 닿으면 성도의 잡은바 된 신앙을 낚아채려고 하기에 굳게 잡지 않으면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런즉 성도는 승리의 면류관을 바라고 푯대를 향하여 달리는 선수처럼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승리자에게 영원히 썩지 않을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베푸실 것입니다. (딤후4: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3. 약속의 말씀입니다. 12절“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성전은 천상의 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하나님께 택함 받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기둥이란 어떤 건물이나 단체를 떠받치고 있는 중추적 요소로서 필수불가결한 중요성, 흔들리지 않는 부동성, 견고성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승리자에게 주어진 주님의 약속은 천국에서 승리자의 의치가 기둥처럼 귀하고 보배로우며 영원토록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가 결코 다시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밀려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천국에서 승리자의 지위와 신분을 영원토록 보장해 주는 참으로 귀한 약속입니다. 주님께서는 승리자를 하나님 성전의 기둥으로 삼을 뿐 아니라 기둥 같은 승리자의 이마 위에 영광스러운 이름을 기록할 것이라고 약속 합니다. 이것은 당시 큰 건축물의 기둥에다 여러 가지 기록을 새겨 넣던 사실을 연상케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기둥 같은 승리자에게 새겨 넣는 기록은 무엇일까요?
1). 12절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떤 곳에 이름을 새겨 넣는 것은 자신의 소유라는 것을 공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승리자의 이마위에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하겠다함은 그가 하나님의 소유된 자임을 공식 입증하는 행위라고 볼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원리로 마지막 때에 멸망할 짐승은 자신을 좇는 추종자들의 이마에 표를 새길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계13:16~7)“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적그리스도를 뜻함,
2). 하나님의 성 곧 새 예루살렘의 이름입니다. 이성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성으로서, [계 21: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이곳은 하나님의 의의 통치와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사랑의 교제, 그리고 성령님의 평강과 희락이 충만한 곳으로서 모든 인생이 바라고 소망하는 패러다이스(낙원, 천국)입니다. 이곳 시민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새 이름입니다. 이것 역시 승리자는 그리스도의 소유로서 보증 받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새 이름입니다. (계2:17)“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19:22)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의 새 이름은 최후의 그날까지도 결코 알려지지 않을 이름으로 그 때까지는 그리스도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그 이름을 모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약속은 승리자를 천국의 기둥처럼 보배롭게 삼으사 그 위에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기록함으로서 삼중으로 그의 신분과 지위와 소속을 보장하고 보증할 것이라는 귀한 약속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25장에서 달란트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자의 충성됨에 대하여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찌어다. 라고 칭찬 하셨습니다.
주님의 평가 기준은 외적인 규모나 크기나 양이 결코 아니라, 내적인 질과 실속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두렙돈을 정성것 받친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셨으며,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신앙을 견실히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신 것입니다.
(8절)“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는 데에 반드시 큰 능력이나 재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받은 능력이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따르느냐의 문제입니다. 충성스럽게 행하고 주님이 주시는 사명을 귀하고 아름답게 삼을 때 주님은 그들을 하나님 성전의 기둥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낙망하거나 쓰러지지 아니하고 인내로서 충성을 다하면 주님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귀하고 보배롭게 여기셔서 하나님의 기둥으로 세우실 것이며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할 것입니다.
(딤후4:7~8)“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나라”
지금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살고 계신가요? 선한 싸움으로 믿음을 지키려고 몸부림치고 계신가요? 면류관은 승리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승리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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