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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목사 / 현 전주서문교회 담임목사, 예장합동총회 파송 독일주재선교사, KOSTE와 올바살 운동 설립 및 국제대표, 세계선교사회(WKMF) 공동회장
세상 사람들은 빈부귀천(貧富貴賤), 지위고하(地位高下), 유무식(有無識), 몸짱, 얼짱을 따집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가난하다 천대하고, 무식하다 무시하고, 못생겼다 왕따를 시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어제 오늘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옛날 양반들은 겨울이면 비단으로, 여름이면 한삼 모시로 만든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머리에는 갓을 쓰고, 입에는 담뱃대를 물고 거드름을 피우듯 갈지자를 걸으며 머슴들을 부렸습니다. 그러나 하인, 상놈들은 겨울이면 무명천으로, 여름이면 삼베로 만든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발에는 짚신을 신고 마당 쓰는 일, 나무하는 일, 논밭 가는 일, 돼지나 소 · 닭 잡는 일들을 서슴지 않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에게 노동 자체를 축복으로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창 2:5~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시 128:2).
솔로몬의 탈무드에 보면, 유대인에게 노동은 비록 그 일이 고통을 동반하는 일일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충성의 표시이며, 창조적 행위에 참가하는 고귀한 행위라고 강조합니다. 다시 말하면, 노동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명령한 행위이기에 그 누구도 노동을 업신여길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겐 노동이야말로 신성한 행위이며, 으뜸이요, 최고였습니다.
히브리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S. 후고 베르그만’은 “히브리어로 ‘아보트’는 노동을 의미하지만, 그 노동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까지도 포함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독일어에서는 예배를 ‘고테스딘스트(Gottesdienst)’라고 하는데, 하나님(Gott), 근무, 노동(dienst)이 합성되어 예배가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노동, 근무라는 것입니다. 주후 2세기의 유명한 랍비 ‘탈폰’은 “하나님의 위력은 노동하는 사람에게 머문다.”라고 해석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후로 교회가 부르죠아 계층에 합류하면서 귀족화 되었고, 수도원 제도로 발전되면서 노동개념이 바뀌었습니다. 즉, 수도원에서 기도와 명상에 몰두하는 수도사들은 세속의 서민들보다 더 존귀하다고 생각하여 세상일에 쫓겨 허둥대는 그들을 업신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사회가 오래 지속되면서 교회는 타락했고, 지도자들은 명예와 권위에 심취되어 교회와 성직자의 본질을 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잘못된 교리와 함께 당시 상류사회의 잘못된 노동관을 보고 분개하여 폭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직업을 갖고 노동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의무이며, 숭고한 사명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드디어 17세기 후반부터 유럽에서는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면서 차츰 긍정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탈무드에서는 “손을 놀려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은 종교가보다 더 훌륭하다.”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에서는 율법을 필수 전공과목으로 가르쳤지만, 부전공으로 노동과 기술을 가르치기까지 했습니다. 그 증거로는 사도 바울이 선교할 때 천막(장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자비량 선교를 했는데, 그 장막 만드는 기술이 바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회당에 다니며 배운 기술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제2의 기술을 배우도록 하여 장래에 경제적 위기를 당하더라도 최소한 먹고 사는 데는 어려움이 없도록 교육시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서문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충성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서의 예배와 봉사뿐 아니라, 세상 직업전선에서의 최선도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충성인 것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