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으로 심는 자
"(고후8: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고후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고후8: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고후8: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고후8:5)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고후8:6) 이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라 하였노라 (고후8: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고후8: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8:10)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고후8:11)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고후8: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고후8: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고후8:14)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고후8:15) 기록한 것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고후8:16)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후8:17) 저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고후8:18) 또 저와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서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고후8:19) 이뿐 아니라 저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입어 우리의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고후8: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고후8:21)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고후8:22) 또 저희와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가 여러 가지 일에 그 간절한 것을 여러 번 시험하였거니와 이제 저가 너희를 크게 믿은 고로 더욱 간절하니라 (고후8: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고후8:24)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를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저희에게 보이라."
존 웨슬리 목사님이 어느 날 설교하는데 그 마을에 유명한 구두쇠 부자가 참석을 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여러분, 돈을 벌 수 있는대로 많이 버십시오." 하니까, 그 부자는 좋아서 "야, 그 사람 설교 참 잘 한다." 라고 하며 기뻐했습니다. 그 다음 "저축할 수 있는대로 많이 저축하십시오."했더니 이번에는 손을 싹싹 비비면서 "이렇게 설교 잘 하는 사람 처음 보았다."고 하며 좋아했습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최대한 쓰십시오." 하니까, 그 구두쇠는 "아이구, 좋은 설교 다 잡쳤다."고 하면서 일어나 나가더랍니다. 재물은 열심히 모으고 열심히 저축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인류 구원을 위해서 써야 할 때는 아낌없이 써야 합니다. 최대한 벌어서 최대한 선한 일을 위해 써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 전도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 이상 선한 것이 없습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해서 세워진 것은 교회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이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끝날까지 전파는 지상 유일한 구원선입니다. 때문에 복음 전파를 통한 인류 구원의 사명을 가진 교회는 막대한 선교 헌금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받은 성도들은 다른 어떤 일에 보다도 선교를 위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기쁨으로" 헌금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인들(그리스 북쪽 곧 현재의 발칸 반도에 위치해 있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 등의 교인들)은 로마의 정복자들에게 많은 천연자원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심한 학정(虐政)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환란의 많은 시련 가운데"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극한 가난"가운데 처해있었다고 했습니다. "극한 가난"은 "밑창까지 내려간 빈핍(貧乏)"을 말하는 것으로 그릇에 담긴 물건이 소진되어 그릇의 밑바닥이 드러난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인들은 이렇게 극빈 상태에서도 헌금열(熱)은 오히려 부자들보다 뜨거웠습니다. 이와같은 그들의 뜨거운 선교 헌금열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 신본주의(神本主義), 즉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적지근한 교인들의 생활원리와 참된 교인들의 생활원리는 각기 그들의 헌금열에서도 다른 것입니다. 미온적(微溫的)인 신자들(계 3:15-19)은 언제나 헌금을 등한이 여기면서 부요할 때에는 인색해서, 그리고 가난한 때에는 걱정이 많아서 "기쁨으로, 자원해서, 풍성하게" 헌금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교인은 환란의 시기를 도리어 기쁨과 축복의 기회로 알고 빈곤의 시기를 헌금의 호시절(好時節)로 알아 더욱 뜨겁게 헌금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것은 믿음의 힘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마게도냐 교인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풍성한 선교 헌금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먼저 주님께" 바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도가 자기 자신을 주님께 바치고 나면 다른 모든 것들도 아낌없이 주님께 바칠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주님께 바치지 않는 자는 자기의 소유도 자기와 함께 안 바친 대로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주님께 바치기 전에는 물질 문제에 대하여 바치는 원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그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면, 물질 문제에 관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잠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잠15: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행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희망하던 헌금의 분량은 그렇게 거액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처럼 거액을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고, 하나님의 뜻이면 무엇이든 행하려고 하는 성도는 교회를 봉사하는 일이나 선교를 헌금하는 일에 있어서 어떤 일정한 제한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질을 요구하지 않고 먼저 우리 자신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거액의 재산을 가져 선교 헌금하면서도 그 마음과 몸을 바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열납되는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삼상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또한 그들이 많은 헌금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헌금할 때는 아무런 복잡한 마음이 없이 단순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목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헌금의 표준은 그 드리는 물질의 다소에 있다기 보다는 그 헌금자의 품은 목적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려는 단순성을 가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게도냐 성도들은 박해와 극한 가난 중에서도 단순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자신들의 '기쁨'과 '관용'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줄 알 때 구원의 은총이 임하는 것입니다. 열명의 문둥병자가 모두 예수님을 통해 병고침을 받았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주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사를 드린 그 사람만이 구원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눅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눅17:12)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눅17: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눅17: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눅17: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눅17:16)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눅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17: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눅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에드워드 스펜서는 미국 교과서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1860년 9월 8일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게렛 신학교 학생으로 있었던 스펜서 군은 밤중에 친구의 고함소리를 듣고 눈을 떴습니다. 가까운 미시간 호수에서 큰 연락선이 조난되었다는 것입니다. 스펜서는 더 생각할 것 없이 미시간 호수까지 달려갔습니다. 385명을 태운 여객선이 암초에 부딪쳐 침몰한 것입니다. 그 중 287명이 익사하는 큰 사고였습니다. 스펜서는 고등학교 시절 수영 선수였으므로 수영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심한 바람과 높은 물결을 뚫고 호수로 뛰어들어가 한 사람씩 구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열여섯 명을 쉬지 않고 육지로 끌어냈습니다. 아무리 수영 선수라도 그것은 무리였습니다. 그는 너무 지쳐 육지에 쓰러졌으며 최후의 힘까지도 다 소비한 상태였습니다. 그 때 곁에서 한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파도 속에 허우적거리는 또 한 명의 조난자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스펜서는 정신없이 일어나 다시 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날의 무리가 화근이 되어 그는 병상에 눕게 되었고 7년 후 3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신문 기자의 방문을 받고 그 날의 소감을 질문받았을 때 그는 힘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날 밤 내가 물에서 건져내어 생명을 되찾아 준 사람은 17명인데 나에게 감사를 표시한 사람은 그중 한 소녀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 소녀는 지금까지 7년 동안 크리스마스마다 감사의 카드를 보내왔습니다. 나는 감사할 줄 모르는 16명보다도 이 한 명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위로를 받습니다."
본문의 '하나님의 은혜'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선물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 내지는 그 관대하신 사랑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영원하고 충만한 것입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받은 것을 항상 감사하시므로 은혜가 더욱 더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사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화(成肉化) 사건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으로서 부요하셨지만, 그의 희생을 통하여 세상을 부요케 하시려고 그 모든 것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시104:24)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계실 때에는 부요하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육신을 입으시고 낮은 인간 상태에 들어오심으로써 가난하게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는 부(富)를 소유해 보신 적이 없습니다. 그는 머리 둘 곳도 없으셨습니다. 그가 이렇게 가난해졌으므로 그를 믿는 자들은 영적으로 부하여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신 은혜는 곧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인들은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감사하여 극한 가난 중에서도 힘에 지나도록 넉넉한 마음으로 넘치는 감사의 헌금을 드렸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비천한 말 구유에서 육신을 입으시고 태어나셨지만 그 무한하신 사랑으로 완악한 우리를 변화시켜서 "넉넉한 마음"을 가지게 하셨음을 감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게도냐 교인들이 심한 가난 중에서도 풍성한 헌금을 드린 것은 바로 이 "넉넉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넉넉한 마음이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며 바울은 이를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비록 물질적으로 빈곤했다 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풍요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전재산을 하나님께 바친 가난한 과부도 마찬가지로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로 비록 가난하였지만 풍요한 삶을 누린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눅21: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눅21:2)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눅21:3)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눅21: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마게도냐 교회 교인들은 어느 누구도 강요에 의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능력 이상으로 자원하여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선교 구제 헌금을 드렸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필요보다 타인의 필요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 같은 마음에서만이 참다운 선교 구제가 이루어지며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고후8:3)...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헌금했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 전체를 헌신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바치는 헌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준 것과 같은 헌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회 교인들의 이같은 정신은 우리의 모든 소유는 물론 우리 자신마저도 하나님의 소유라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인색함은 자신이 어떤 것에 대한 절대 소유자라는 교만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마게도냐 교인들에 비하면 아주 탁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나 언변에 있어서 또 지식과 진지함과 간절함에 있어서 고린도 교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탁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게도냐 교인들에 비해 그들은 아주 인색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마게도냐 교인들보다 훨씬 풍부한 삶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풍성한 선교 구제 헌금을 바칠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은사면에서도 여러 가지 많은 은사를 누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보다 훨씬 가난한 마게도냐 교인들에 비하면 인색하기 그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게도냐 교인들은 "(고후8:3)...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거액의 헌금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막14: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막14:4)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막14: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막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막14: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막14:8)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막1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막14:10)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막14:11) 저희가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여기 마리아는 자기 오빠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다가 예수님이 살려 주신 것과 자신이 죄사함받고 구원받은 것이 너무나 감사해서, 보통 사람이 일년 이상 품팔이 해야 벌 수 있는 돈 값에 해당되는 진귀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몽땅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 드렸습니다. 이 엄청난 마리아의 감사행위에 대해 놀란 제자들은, 그 가운데서도 특히 가롯 유다는 마리아를 비판하면서,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막14: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마리아를 책망하기 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먹을 배신자 유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 엄청난 물질이 허비되는 것으로만 보였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중직(重職)을 맡았다고 해서 다 올바른 믿음과 판단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오히려 교회에 오래 다닌 중직들이 잘 믿으려고 열심히 봉사하고 충성하며 헌금도 풍성히 하는 초신자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값비싼 옥합을 아낌없이 깨트려, "자기 힘을 다하여" 주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처럼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삼상2: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잠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8:18)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혹자가 말하길, 하나님께 어떤 헌금할 일을 놓고 기도할 때, 제일 큰 금액은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요, 중간 금액은 인간의 생각이요, 제일 작은 금액은 마귀가 주는 생각이라고 합니다. 작고 큰 금액을 놓고 마음에 싸움이 있을 때에는 언제나 큰 편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마리아는 가장 값비싼 것을 주님께 아낌없이 "힘을 다하여" 드렸습니다. 무엇이든 주님께 드리는 것은 제일 좋은 것, 제일 귀한 것, 최고의 정성이 담긴 것들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worship, worth+ascribe)는 최상의 것을 주님께 돌려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간도 물질도 봉사도 헌금도 너무 귀해서 드리기 어려울 때 그것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귀한 것으로 기뻐 열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말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말1: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못 팔아 먹을 것, 상품 가치가 없는 것, 눈 먼 것, 다리 저는 것, 병들어 죽어가는 것들을 드리는 것을 보시고 진노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에게 갖다줘도 불쾌해서 안 받을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복을 받겠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또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말1: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1:14)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돈이 만능인 것 같아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서양의 어느 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는 있으나 잠을 살 수 없고,
돈으로 책은 살 수는 있지만 두뇌를 살 수 없고,
돈으로 음식은 살 수 있으나 입맛을 살 수 없고,
돈으로 집은 살 수는 있지만 가정을 살 수 없고,
돈으로 약은 살 수는 있으나 건강을 살 수 없고,
돈으로 사치품은 살 수는 있지만 교양을 살 수 없고,
돈으로 오락은 살 수는 있으나 기쁨을 살 수 없고,
돈으로 멋진 옷은 살 수 있지만 미를 살 수 없고,
돈으로 향락은 살 수 있으나 행복을 살 수 없고,
돈으로 십자가는 살 수 있지만 구세주를 살 수 없고,
돈으로 교회는 살 수 있으나 천국을 살 수 없다.
마음의 평화, 구원, 천국은 돈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돈이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노이로제 걸리고 자살하는 사람들은 돈 많은 사람 중에 더 많습니다.
이렇게 제한된 물질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하늘 나라에 저축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의 조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므로 돈이 필요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정성이 얼마나 하나님께 있는가를 보시기 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눈여겨 보시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 나라 은행의 이자가 가장 높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투자할 줄 모르는 사람은 생전 예수를 믿어도 믿음이 안자라고 체험도 생기지 않습니다.
클론다이크 광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탐사단이 그 광산을 탐사했더니 어느 오두막 집에 두 사람의 해골이 누워 있고 그 해골들 사이에 많은 황금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칠은 탁자 위에는 편지가 놓여 있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금을 발견하려고 북쪽 땅에 찾아가서 많은 황금을 발견했으나 그 곳에는 추운 겨울이 빨리 온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눈이 쌓이고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얼마간의 양식도 다 떨어졌습니다. 결국 많은 금 덩어리 사이에서 굶어 죽고 얼어 죽었습니다."
그들은 금을 찾는 일에는 성공했으나 조만간에 닥쳐올 겨울은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앞에도 죽음의 겨울이 닥쳐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최선을 다하여 하늘 나라에 보화를 쌓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눅12: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눅12: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눅12: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눅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벌써 속회가 돌아왔나, 벌써 주일이야, 벌써 추수감사절이야 하며 귀찮아하는 마음으로 무성의하게 드리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않으십니다.
"(출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힘대로 할 뿐만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기쁨으로 복을 심어 풍성한 하늘의 복을 거두시는 지혜로운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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