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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혁명

하나님아들 2013. 1. 19. 16:36

하나님의 혁명


"(눅1:46)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눅1: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눅1:48)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눅1: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눅1: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눅1: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눅1: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눅1: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눅1: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궁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눅1: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눅1: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본문은 사가랴의 축가(Benedictus) 및 시므온의 고별송(Nunc Dimittis)과 더불어 초대 교회의 예배 때에 찬송시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 영국 국교회의 저녁 예배 시에 부르는 찬송의 일부로도 사용되는 유명한 마리아의 찬가(Magnificat)입니다.
이 마그니피카트(Magnificat)는 구약의 한나의 노래와 내용 면에서 아주 유사한 것입니다.

 "(삼상2:1)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삼상2: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삼상2: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삼상2: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삼상2:5)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삼상2: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삼상2: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삼상2: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삼상2:9)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삼상2: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스탠리 죤스(Stanley Jones)는 이 마그니피카트(Magnificat)를 가장 혁명적인 문서라고 말했다. 이 마그니피카트(Magnificat)는 하나님에 의한 세 가지 혁명을 말해 주고 있다.
첫째, 하나님은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신다. 이것은 도덕적 혁명이다. 기독교는 교만함을 죽이는 것이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생을 따라 살아 나아가고자 하면 그의 교만은 그 마지막 가면까지도 벗겨 버리기 때문이다. 때때로 사람들에게는 강렬한 빛에 비추여서 자기 스스로를 깊이 부끄럽게 여기게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오 헨리(O. Henry)의 단편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시골에서 자라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그는 언제나 어떤 소녀와 나란히 앉아 있게 되었는데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습니다. 후에 그는 도시로 나가 악한 길에 빠져갔습니다. 그는 소매치기와 좀 도둑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루는 어떤 늙은 부인의 지갑을 나꾸어챘는데 그것을 잘 해냈기 때문에 그는 혼자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그가 전에 좋아하던 여자가 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녀는 아직도 귀엽고 천진난만한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그는 자기 자신이 보잘것 없는 비열한 존재로 보였던 것입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온 몸에 화끈거려 가로등의 차디찬 쇠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하나님, 저는 죽고 싶습니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볼 수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은 교만에 대해서는 치명적인 타격입니다. 이리하여 도덕적인 혁명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4장 1절-26절에 보면,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수가성의 행실이 불량했던 한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대화를 주고 받는 중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으나 심각한 심령(心靈)의 갈증(渴症)을 겪고 있는 파괴된 인간성(人間性)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일시(一時)에 그 갈한 것을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참 사랑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참 만족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그 여인은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 여인에게 참 생명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그 여인은 목마른 인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 4:13-14)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한 7:37-39)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21:6-7)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는 곧 "성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믿는 자면 누구든지 값없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 인간은 도덕적 혁명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그것을 바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땅의 진정한 도덕적 혁명이 일어나기 위해 성령의 바람이 맹렬하게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이 나라의 정치, 경제계에 도덕적 혁명이 일어나야만 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靈)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예수 없는 인생은 사실 죽은 인생입니다. 성령은 죽은 자를 '살리는 영'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고 한 삭개오의 도덕적 혁명은 그의 구원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눅19: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눅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눅19: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눅19: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눅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눅19: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눅19: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눅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눅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눅19: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노태우씨 자신이 밝힌 부정축재한 5천억은 1만원짜리 지폐로 환산하면 잠실종합운동장 크기의 축구장을 123개나 덮을 수 있는 돈입니다. 이것을 길이로 늘어 놓으면 서울 부산간 경부고속도로를 9번이나 왕복하고도 남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이 돈을 차곡차곡 쌓으면 백두산(2,744m)보다 약 3배나 높고 63빌딩(249m)보다는 30배 높은 것입니다. 이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최소한 자신이 밝힌 토색한 돈의 4배인 2조원을 1만원권 지폐로 1톤 짜리 트럭57대에 싣고와 청산하고 예수 믿어야 합니다. 이 땅에 교만하고 거만한 자들이 청산되는 회개의 바람이 불어야 할 것입니다.
파스칼은 "왕자 앞에서는 머리를 숙여야 한다. 학자 앞에서는 무릎을 꿇어도 좋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앞에서는 가슴을 조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필리핀의 막사이사이(Romon Magsaysay)는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가난에 지지 않고, 역경에 꺾인 일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나의 직책은 대통령이다.그러나 나의 마음은 항상 이 나라의 한 병사다'라고 하면서 겸손하기만 했습니다. 실로 지도자는 겸손해야만 합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교만하여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 영광을 빼앗기고 인생 중에서 쫓겨나서 그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 나귀와 함께 거하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게 되었었습니다.'(단5:18-21)  '그의 아들 벨사살 왕은 부왕이 교만하여 한 때 짐승처럼 들에서 살았던 것을 알고도 거룩한 성전의 기물들을 가지고 술잔치를 벌이며 우상을 숭배하고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고로 ... 그 날 밤에 죽임을 당했습니다.'(단5:22-31)  
참으로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요(잠언15:33),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언16:18)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귀를 타시고 '평화의 도성'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은 겸손하신 왕의 모습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슥9:9)  

예수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도 천박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시더니 세상에 사시는 동안도 겸손의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죽으러 가시는 마당에까지 겸손의 상징인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삶의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쳐 주시고 몸소 실천해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참된 평화를 이룩하시는 방법은 바로 남을 섬기는 '겸손'인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겸손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비우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권세 있는 자들을 낮추시며 비천한 자를 높이신다. 이것은 사회적 혁명이다. 기독교는 이 세상의 간판과 지위에 대해 그 종언(終焉)을 고(告)한다.
뮤레테스(Muretes)는 중세의 방랑학자였습니다. 그는 가난하였습니다. 이탈리아 어느 마을에서 그는 병이 들어 무의탁자들과 방랑자들을 위한 병원에 수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의사들은 그가 알아들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라틴어로 그의 병세에 대해서 서로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같이 보잘것 없는 방랑자는 의학 실험에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고 있었습니다. 뮤레테스는 그들을 쳐다보며 그들과 같이 학자적인 라틴어로 "어떠한 인간이라고 쓸모 없다고 하지 말아라.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우리들이 깨닫게 될 때 더 이상 하찮은 사람이라고 하는 따위의 말은 불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17: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있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눅17:2)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

"(마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마18: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18:11) (없 음) (마18: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마18: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마18:14)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사회적인 계급과 지위는 사라졌다.
어느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했습니다. "한 부부가 있는데 남편은 매독에 걸려 있고 아내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 있다. 이 가정에 아이들 넷이 있는데 하나는 며칠 전에 병으로 죽었고 남은 세 아이들도 결핵으로 누워 살아날 것 같지 않다. 이 부인은 현재 임신중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러자 그 학급의 한 학생이 "낙태 수술을 해야 합니다!" 하고 대뜸 소리쳤습니다. 그 때 교수는 "자네는 지금 방금 베토벤을 죽였네."하고 말했습니다. 이 불행한 환경에서 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난 것이 베토벤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편리한대로 해석하고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뜻은 다른 길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땅에 지극히 작고 적은 무리일지라도 그들이 존중되는 사회적 혁명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주린 자들을 배불리시고, 부자를 빈 손으로 돌려 보내신다. 이것은 경제적인 혁명이다. 비 기독교적 사회란 각자가 이익을 취하면 취한 만큼 부(富)를 축적하는 탐욕 중심의 사회이다. 기독교적 사회란 다른 사람들이 조금 밖에 갖지 못하였을 때에는 자기도 많은 것을 가지려 하지 아니하는 사회이며 그것은 모든 사람이 단지 주기 위하여서만 소유하는 사회이다. 이것이 마그니피카트(Magnificat)에 있는 아름다운 면인데 이 아름다움에는 일종의 다이나마이트가 내포되어 있다.
기독교는 이처럼 각 사람 속에서 혁명이 일게 하며 따라서 그것은 세계에 혁명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트리지 윤리(Ethics of Trige)'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수 많은 부상자가 야전병원에 실려 들어왔는데 의약품이 부족해서 그 사람들을 다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게 내버려 둘 것인가? 그리하여 약간의 치료로써 살 만한 사람은 치료하여 주고 못 살 것같거나 애매한 사람은 아예 치료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움을 줄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선택을 '트리지'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윤리는 강자 생존의 '구명 보트 윤리'도 배격합니다. 또한 생명의 가능성을 선택하는 '트리지 윤리'도 배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굶주린 민중 5천 명이 앞에 있을 때 빵은 다섯 개뿐이니까 가장 강하고 우수하고 장래성이 있는 다섯 명만 골라서 그들만 먹이고 4,995명은 내버려두자는 방법을 쓰지 않았습니다. 똑똑한 사람이든 바보이든, 건강한 남자든 불구의 여성이든 굶고 있는 것은 똑같다고 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떡 다섯 덩어리라는 작은 희생과 사랑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즉 '사랑의 기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다 살릴 수 없다.'는 말은 인간의 계산이며 강자의 사고방식입니다. 예수님은 '다 살릴 수 있다.'는 사랑의 낙관주의를 가진 분이십니다. 문제는 작은 사랑이 가장 중요한 천국의 씨앗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정치, 경제, 사회에 하나님의 혁명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교만한 자가 사라지고 겸손한 자가 대접받는 도덕적 혁명, 누구나 평등하게 대접받는 사회적 혁명, 탐욕이 사라지고 다 함께 사는 경제적 혁명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혁명을 일으키는 예수와 성령의 바람을 일으키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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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둥근달
글쓴이 : 둥근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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