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왕이 되려면 먼저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아들 2025. 12. 21. 20:41

왕이 되려면 먼저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

 

라이언 와이어트 집회 

2009 11 04

 

 

 

먼저 이 시간에 여러분이 심으신 씨앗을 축복하길 원합니다. 아버지, 오병이어를 든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 앞에 자신들의 오병이어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주님, 이 씨앗들이 증대되기를 원합니다. 이 씨앗들로 말미암아 기적들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씨앗으로 말미암아 축복의 강물들이 열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 집회 기간 동안에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씨앗을 심는 자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위해 하늘의 창이 열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집회를 통하여 주님의 영광이 이들에게 쏟아 부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이번 집회를 통하여서 여러분과 함께 10번의 시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10번입니다. 굉장히 많은 시간입니다. 여러분이 저의 얘기를 아주 많이 듣게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집회기간동안 우리는 성령님께서 오시기를 구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이곳에 오셔야만 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이 시간 오시도록 그 분을 환영하는 기도를 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성령님을 경배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제게 있는 그 무엇이라도 여러분에게 전해지기 위해서는 성령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 우리가 성령님을 사랑합니다. 성령님을 사모합니다. 성령님을 경배합니다. 성령님께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립니다. 성령님 이곳에 침노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의 영광으로 우리를 덮으시옵소서.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느끼길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느끼기 원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계시를 우리에게 보여주시옵소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예수님과 사랑에 빠지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가 다시 한 번 예수님과 함께 사랑에 빠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 우리에게 계시의 영역들을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역을 우리에게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늘이 이 땅 가운데 임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야곱이 한밤에 잠을 자기 위해서 그의 머리를 돌 위에 놓았을 때 그는 사다리가 땅에서부터 하늘로 연결된 것을 보았습니다. 천사들이 그 위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야곱이 고백하기를 사다리 위에 서 계신 이가 그를 향하여서 예언하고 그를 축복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 하나님의 열린 문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주님 이 시간 우리가 선포합니다. 바로 이곳이 하나님의 열린 문이 있는 곳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을 경험하는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곳에 하늘로 연결되는 사다리가 있음을 선포합니다. 이곳에 하늘이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하나님께서 하시기에 너무 큰일이란 없습니다. 어떤 질병도 하나님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바로 이 영역은 아무것에도 제한을 받지 않고 모든 것이 가능한 곳입니다. 주님의 영광 가운데 가능합니다. 주님은 살아 계신 모든 가능성이십니다. 이 시간에 성령님을 함께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 우리가 성령님을 경배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사모합니다. 이 시간이 하늘이 침노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영광이 이 가운데 침노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 우린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성령님, 사랑합니다. 주님, 우릴 만져주시옵소서. 우릴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우리는 결코 이전과 같은 삶을 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경배하길 원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이곳에 있습니다. 주님의 임재가 이곳에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무거움과 짐들이 벗어질 것입니다. 지금 이것들이 여러분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짐들이 덜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권능이 이곳에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이곳에 있습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의 영으로, 방언으로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천상의 언어로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립시다! 성령님 계속해서 임하시옵소서!

성령님께 여러분이 얼마나 그분을 사랑하는지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가운데 돌파를 선포합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의 영역 가운데 돌파가 생기기를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자유가 있습니다. 주님께 외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소리 높여 외치시기 바랍니다. 이곳에 자유가 있습니다.

성령님, 감사합니다. 성령님을 경배합니다. 주님을 사모합니다. 성령님, 우릴 만져주시옵소서. 우릴 채워주시옵소서. 주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혜가 이곳에 넘쳐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의 만지심과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집회를 통해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실 것입니다. 많은 것들에 대해 저의 가르침을 듣게 되실 것입니다. 많은 메시지를 듣게 되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 집회를 통해 얻기를 원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님의 신선한 만지심입니다. 그 분은 너무나 존귀한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저에게 넘치도록 소중한 분이십니다. 성령님, 당신은 저에게 너무나 소중한 분이십니다. 성령님, 계속 임하시옵소서. 성령님의 영광스러운 임재하심이 이 자리에 충만하게 임하시길 원합니다. 그 분이 이곳에 계십니다. 바로 이 시간 그 분이 이곳에 계십니다. 성령님, 당신은 놀라운 분이십니다. 당신은 경이로운 분이십니다. 성령님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성령님의 불이 우리 가운데 타오르게 하소서. 주님의 영광이 우리 위에 머물러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이 집회를 통해 주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마치 모세처럼 그가 진중에서 나가서 진 밖에서 회막을 만들었습니다. 그 회막 문에 주님의 영광의 구름 기둥이 임했습니다. 주님께서 구름 가운데 계셨습니다. 마치 사람이 그의 친구와 이야기 하듯이 모세가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이야기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과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의 구름을 경험하길 원합니다. 오직 주님의 영광 안에서만 우리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당신을 보길 원합니다. 주님을 느끼기 원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지기 원합니다. 주님, 우리의 생각의 영역을 넘어서기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심령 가운데 임하시옵소서. 우리의 자연적인 생각을 넘어서서 우리의 심령 가운데 임하소서. 이 집회를 통해 저를 사로잡아 주시옵소서. 예수님과 다시 사랑에 빠지기 원합니다. 주님을 다시 한 번 경험하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만지시도록 마음을 열어 드리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채우도록 하십시오. 성령님을 들이마시십시오. 그러면 모든 무거움과 짐들 그리고 여러분을 대적해오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다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멍에는 지기 쉽고 그의 짐은 가볍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함께 천상의 자리에 앉은 자들입니다. 다시 한 번 주님을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다시 한 번 찬양을 풀어놓길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찬양받기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경배를 드리기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너무나 놀라우십니다. 주님은 너무나 합당한 분이십니다. 주님은 왕의 왕이십니다. 주의 주이십니다. 당신은 왕의 왕이십니다! 여러분, 이것을 이 시간 주님께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왕의 왕이십니다! 주님은 주의 주이십니다! 주님을 경배하십시오!

성령께서 이 집회 기간을 통하여서 새로운 영역과 새로운 만남들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새로운 영역 가운데 새로운 수준으로 주님을 만나기 원하십니까?

 

 

이 집회 기간 동안 제가 운영하는 초자연적인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들을 가지고 여러분과 나눌 것입니다. 제가 주님께 이번 집회를 통해 무엇을 하시길 원하시는지 계속해서 구해왔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자비는 아침마다 새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작년 집회에 제가 했던 일들을 또 다시 반복하길 원치 않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기이고 새로운 날인데 주님께서 이번에는 저를 통해 어떤 일을 하시기 원하시는지 여쭈었습니다. 앞으로 5일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할 것입니다. 그 중의 한 가지가 제가 운영하는 ‘초자연적인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을 나누는 것입니다. 또 어떤 시간에는 계시적인 가르침이 임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의 오중 사역을 주님께서 교회에 선물로 주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 목적은 성도들로 하여금 사역하기에 합당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제가 전 세계를 돌면서 사역을 할 때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기적의 영역들에 들어가는 것을 저는 참 즐깁니다. 그러나 제게 더욱 마음이 가는 부분은 바로 여러분이 그러한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의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저 혼자 기적을 행하거나 저 혼자 주님의 영광 가운데 행한다면 제게 주어진 일을 온전히 수행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전 세계를 걸쳐서 하고자 원하시는 것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권능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이것이 일상적인 기독교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매일의 삶 가운데 주님과 친밀하고 초자연적인 만남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자연적인 하나님 나라를 걷고 그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들에 대해 ‘초자연적인 학교’의 가르침을 가지고 여러분과 나눌 것입니다.

 

 

오늘 첫 시간에는 여러분에게 진정한 기독교가 무엇인가에 대해 가르치길 원합니다. 진정한 기독교가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뜻합니까? 한국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인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잊어버렸습니다. 단지 믿음의 신념 체계에 대해서 여러분이 동의한다고 해서 기독교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계속 나눌 이야기이지만, 초자연적인 영역에서 지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와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만 하고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영역은 그냥 좀 내버려둘 수는 없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입니다. 믿는 자들은 이 세상의 문제들을 놓고서 주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바로 우리가 그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난 부흥 중에 최고의 부흥 그 자체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소망되신 예수님, 바로 그분이 여러분 각 사람의 심령 가운데 거하고 계십니다. 제가 조금 문제적인 발언을 해도 되겠습니까? 사탄은 전형적인 미지근하고 종교적인 기독교인(sunday christian)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일요일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요일에 우리가 모여서 주님을 경배하는 일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일주일에 한번 만남을 갖는 것 정도로 변해버렸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진정 기독교인이라면 여러분은 세상을 바꾸는 자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그곳의 영적 분위기를 바꾸도록 부름 받은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임하게 하는 것이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단지 일요일에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십일조를 내는 것만이 아닙니다. 단지 좋은 제자가 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중요한 것이지만 하나님은 이 땅 가운데 그 분의 군대를 일으키고 계십니다. 그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휴거에 대한 다양한 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 이 시간에 제가 휴거에 관한 신학을 나누지는 않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마지막 때에 7년 대 환란이 있을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이러한 고난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가 하늘로 들림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환란 동안에 들림 받을 것이라고 믿고 또 어떤 이들은 환란의 끝 부분에 휴거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오늘, 어느 것이 바른 신학인지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교회에 몰래 잠복해 들어온 마음들이 있는데 그것은 도피주의적인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견뎌보자는 마음자세입니다. 그들의 태도는 이렇습니다. “이 세계는 점점 더 어두워질 것이고 그것에 대해 교회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할 때까지 우리는 좋은 크리스천으로 계속 버티기나 하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마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마음 자세가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사단이 모든 크리스천들이 갖기를 원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우리가 단지 좋은 크리스천들이 되어서 교회에 가기만 한다면 대적에게 우리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탄이 여러분이 구원받는 것을 막지 못했다면 그 다음 사탄이 하려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을 막는 일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이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목적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에 전력투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얻어맞고 멍투성이가 되어 다 망가진 신부를 얻기 위해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의 신부가 환란 가운데에서 겨우 겨우 살아남는 것을 보길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천국에 갈 것이라는 그런 마음가짐은 이 땅에서는 아무것도 행할 수 없는 무능력한 자들을 만들어 냅니다. 저는 휴거에 대해서 어떤 신학이 바른 것인지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때를 예비하여서 오늘날의 교회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나누길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이 땅에 오시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통해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시길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모든 것, 주님의 임재와 권능과 인격, 이 모든 것은 이 땅 가운데 거하셨을 때 그 분, 단 한 사람의 몸을 통하여서 전부 행하신 일들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 가운데 있는 전체 교회와 협력하여 일하신다면 그 분 홀로 행하셨던 일보다 더 적은 일을 하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책에도 이것을 다 기록할 수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합친다 해도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전부 다 기록할 수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하지만 또한 성경이 증거 하는 것은 우리는 이보다 더 큰일을 행할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서 단지 하나의 육체로서 어떤 영역 가운데 들어가셨을 때 그 지역을 다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간 서울 시내 한복판에 나타나신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어떤 사람은 이단 교주라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미친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수많은 군중들은 예수님께 몰려 올 것입니다. 그가 아픈 자들을 치유할 것이고 귀신을 내어 쫓을 것이고 문둥이를 깨끗케 할 것이고 죽은 자들을 일으킬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과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가 세상에 전하고 있는 예수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임하셨을 때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한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이런 권세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하며 놀라워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23절에 보면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 것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계시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들었을 때 그들이 심령 가운데 계시가 임하는 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들의 몸 가운데 기적이 일어났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 가운데 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지역을 다 뒤엎을 정도로 큰일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께서 이제는 전 세계의 수많은 믿는 자들 안에 살고 계십니다. 만약에 우리가 일어나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된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가 예수님이 행하신 그 일들을 행하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진정한 기독교는 단지 우리의 머리로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기독교는 단지 주일날 교회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물론 좋은 것입니다. 진정한 기독교란 하나님과 친밀하고 초자연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매일의 삶 가운데 하늘의 초자연적이 영역을 끌어 당겨서 이 땅 가운데 있는 사단의 영역을 쳐부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의 일들은 단지 시간에 따라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시간을 정하셨고 그 때가 되면 이 모든 일들이 자동적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가운데 어떤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또한 어떤 특정한 사건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머리로 계시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 땅 가운데서 그 분의 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머리로 계시면서 이 땅 가운데 다시 오실 때 아기의 몸에 임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머리로서 이 땅 가운데 임하실 때 십대의 몸에 임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뭔가 왜곡된 것이고 바른 형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셨을 때는 전체 교회가 주님을 맞이하기에 성숙하였을 그 때에 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그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수년전에 저는 주님과 직접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떤 집회를 준비하기 위해서 호텔방에 있었습니다. 저는 주님께 이 집회 가운데 제가 무엇을 하길 원하시는지 여쭙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주님의 임재가 제 방 가운데 임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방의 온도가 갑자기 급격히 바뀌었습니다. 일상적인 온도에서 아주 따뜻한 온도로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너무 확연히 온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제가 온도계를 확인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온도계는 켜져 있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그 방안을 가득 채운 주님의 임재로 느끼며 의자에 앉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예수님께서 한쪽 구석으로부터 방안으로 걸어 들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름이 뚝 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예수님과의 대면이 우리를 놀라게 해서는 안됩니다. 집회 기간 동안 영적인 눈이 열리는 방법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을 가르칠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들을 우리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인 영역을 경험할 것인가에 대해 가르칠 것입니다. 우리가 초자연적인 영역 안으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나누고 배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기름을 뚝뚝 흘리시면서 방 안에 들어오셔서 “라이언, 이것은 내가 전 세계의 이기는 자들에게 부어주는 기름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1절에 너희가 이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울고 계셨습니다. 또한 무겁게 숨을 들이쉬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라이언, 나는 나에게 있는 것들을 받기 위해서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들을 너무나 갈망하고 있다”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믿는 자로서 받게 될 유산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여 천국에 가는 것은 우리에게 주님께서 주시고자하는 유산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크리스천들 중에서 천국에 가기 충분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천국에서 우리에게 마련된 아주 작은 부분만을 이 땅에서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준비된 하나님의 영광의 풍성함이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여러분의 삶 가운데 그것을 경험하길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모든 유산들을 누리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에게 또 다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라이언, 내가 갈망하는 것은 나의 백성들을 통해서 나의 모든 유산들을 완벽하게 받는 것이다,” 그 말씀을 듣고 저는 말씀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예수님은 실제로 어떤 유산을 받기로 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분이 받을 유산을 위해서 대가를 지불하셨지만 아직 그 유산을 다 받지 못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서 예수님의 유산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셨지만 아직 그 유산은 다 받지 못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게 “나의 백성들 가운데서 모든 유산을 완벽하게 받기를 너무나 갈망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께 “주님, 그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저를 에베소서 3장 말씀으로 데려가셨습니다. 에베소서 3장에서 바울은 위대한 비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앞서간 모든 세대에게 감추어졌던 비밀은 그들이 알려고 했지만 그들에게 열리지 않았던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바울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 비밀을 보여주셨고 이제 너희들에게 또한 그 비밀을 보이길 원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계속해서 얘기하길 교회를 통하여서, 교회라는 것은 어떤 조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교단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건물도 아닙니다. 교회는 바로 살아있는 돌, 산돌인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새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가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의 정사와 권세 가운데 드러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지혜라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하나님의 권능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지혜가 무엇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께서는 이 땅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사용하셔서 주님의 지혜를 이 땅의 정사와 권세들에게 나타내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세가 산 위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무엇을 구했는지 기억하십니까? 그가 이야기하기를 “주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제적인 주님의 임재하심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신다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그들과 무엇이 다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영광 가운데 살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 안의 무엇인가를 깨우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들이 초자연적인 삶을 살길 원하십니다. 고린도 후서 3장을 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초자연적인 삶을 살도록 우리에게 권리가 주어졌다는 것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 어떤 교단과 교회들은 만일 사도와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거나 혹은 초자연적인 기적들을 믿는다면 이단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에겐 익숙한 얘기지요? 성경은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영역에서 살 권세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점진적인 계시라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임할 때마다, 주님의 부흥이 쏟아 부어 질 때마다, 주님께서는 교회에 진리를 회복시키십니다. 그런 일이 벌어질 때 사람들은 그 진리 주변에 머물며 진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 가운데 그들은 교단을 세웁니다. 그리고는 주님이 더 주시기 원하시는 더 깊은 계시를 받길 원치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사도행전처럼 살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행전에 있는 기적들과 계시들을 원합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이 끝난 이후에 우리는 중세 암흑시대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암흑시대로 들어간 이후 교회 안에서는 신약 시대에 기록된 모든 계시들을 잃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많은 계시들을 잃어버리다보니 사람들은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일들이나 성령 세례, 하나님의 영광 뿐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다는 기본적인 사실마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틴 루터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카톨릭 교회 문에다 못·박아 놓았습니다. 그가 하나님 말씀 가운데 계시로 끌어 낸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것은 단순한 계시입니다. 아주 기초적인 계시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 계시로 인해 마틴 루터가 순교할 수도 있었고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아야만 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종교 개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해 루터교가 생겨났습니다.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진리들을 회복하시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키고자하는 모든 진리들은 성경 안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 밖에 있는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다른 어떤 진리를 더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미 성경 안에 존재하는 계시와 진리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따라 살고 있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신다면 주님의 영광의 구름이 임하고 부흥이 임할 때마다 하나님은 어떤 남자나 여자를 만지셔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계시를 그들에게 전해주십니다. 그러면 그로부터 부흥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고 그 진리를 통하여서 감리교가 탄생하였습니다. 그 후에 거룩함의 부흥이 일어났고 오순절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말씀 운동이 일어났고 치유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장로교 운동이 생겨났고 침례교 운동이 생겨났습니다. 이 모든 운동들이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주님의 구름이 이동하여서 새로운 계시를 탄생시키려 하실 때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 말씀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더 이상 구름을 따라 운행하는 것을 원치 않고 그 언저리에 진을 치고 여기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라고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진 치고 있는 곳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간 모든 사람들을 그들은 이단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머리 안에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정된 그림을 그려 놓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 당시에도 동일하게 행하여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것은 세상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죽인 것은 종교의 영이었습니다. 종교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고 만 것입니다. 그 당시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이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오셨을 때 그 분은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메시아가 오셔서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그 분은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마음과 생각들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서 그들을 시험하셨습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기도해왔던 메시아가 그들 가운데 있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를 죽였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40절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은 바로 나에 대해서 증거하는 것이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들이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종교의 영은 우리가 머리로만 하나님을 경배하게 합니다. 종교의 영은 신학을 숭배합니다. 신학은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가운데 뿌리를 두고 있는 신학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뿌리를 두고는 있지만 성경을 기록하신 저자이신 초자연적인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이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도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후서 3장 4절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으로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않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이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말씀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도전을 주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주님의 영광을 너무나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이 영광으로 빛났다고 구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얼굴에서 빛이 나왔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바로 옛 언약 가운데 경험한 것이라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새로운 언약 가운데서는 얼마나 더 많은 영광을 경험해야하겠는가 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는 새로운 언약 아래서 말입니다. 모세가 산 위에서 경험했던 그 영광이 그의 얼굴을 빛나게 하였습니다. 모세가 경험했던 바로 그 구름, 이스라엘이 광야 가운데 경험했던 그 불기둥, 그 주님의 영광을 우리 또한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의 이 말씀이 우리에게 그 영광을 경험하도록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에게 옛 영광과 새로운 영광을 비교할 수 있게 해줍니다. 만약 모세가 경험한 옛 영광이 그렇게도 영광스러운 것이었다면 새 언약 가운데 있는 우리는 얼마나 더 큰 영광을 경험해야만 합니까?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30대입니다. 결혼했고 세 명의 남자 아이들이 있습니다. 지금 30대이지만 전 세계를 다니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수십 개의 나라에서 계속해서 저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라이언 당신은 이제 30대밖에 안됬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강력한 주님의 영광 가운데 사역할 수 있습니까?” 물론 저는 성경을 연구했고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래서 머릿속에 그 분을 아는 지식 면에서도 잘 갖추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저의 저 된 것은 주님의 영광 가운데 그 분과 대면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영광의 임재 가운데 30초만 있게 된다면 당신은 영원히 변화될 것입니다. 5분 동안의 주님의 영광의 임재는 여러분을 영원히 바꿔놓을 것입니다. 제게 있는 은사나 달란트들은 훈련에 의해 얻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저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의 영광을 더욱 갈망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도 마치 모세가 영광의 구름을 경험했던 것처럼 그렇게 읽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가 더 많은 것을 구하길 원하십니다. 이것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어떤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 가운데 예수님께서 제 앞에 서 계셨습니다. 한 손에는 홀을 들고 계셨고 다른 한 손에는 아주 따뜻하고 신선한 빵 한 덩이를 들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 홀이 권세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홀은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왕의 기름부음을 의미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초신자였기 때문에 왕의 홀 쪽으로 달려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홀을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홀을 뒤로 감추시고 대신 빵을 내미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게 “라이언, 나는 너에게 성별된 제사장의 기름 부으심을 주기 전에 왕의 기름 부으심을 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먼저 성별된 제사장의 기름 부으심을 주기 전에는 모든 것들을 이길 수 있는 왕의 기름 부으심을 너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권능 안으로 들어가길 원하십니까? 기적을 행하기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삶 가운데 승리하길 원하십니까? 꼬리가 아니라 머리가 되길 원하십니까? 이 모든 것은 먼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장이 됨을 통해서 오는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 제사장과 왕으로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하늘나라의 영역 안에서 행하길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장해야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상속자이면 이 모든 것들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 어린 아이라면 마치 노예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만일 제가 왕이고 저에게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왕국의 모든 것들을 유산으로 받게 되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아직도 아들이 어린 아이의 상태라면 저는 아들에게 왕의 모든 권세를 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아무도 아이에게 권총을 쥐어주진 않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아이가 자라나고 때가 되어 성숙하게 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우는 것을 뜻합니다. 제사장이란 자신의 삶 전부를 하나님께 드린 사람들을 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예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덮어씌웁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예수님을 맞춰 넣습니다.교회에 가고 이런 저런 집회에 가면서 예수님을 자신의 일정표에 맞춰 넣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제사장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뒤덮길 원합니다. 진정한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제가 어떻게 살길 원하십니까? 라고 구하는 자입니다. 제 가정 안에서 제가 어떻게 행하길 원하십니까? 제가 어디서 일하기를 원하십니까? 제가 어디에서 살길 원하십니까? 제가 얼마의 돈을 드리길 원하십니까? 돈은 항상 사람들의 마음을 시험합니다. 돈, 돈, 돈! 돈은 늘 사람들의 마음을 도전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 얼마나 드려졌는지 알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어떻게 베푸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실 때 얼마나 자유롭게 드릴 수 있습니까? 구약의 제사장들은 그들의 삶 전체를 희생 제물로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제게 기적을 행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어떻게 초자연적인 영역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거기엔 대가 지불이 있습니다. 치루어야 할 대가가 있습니다. 그럼 사람들은 말합니다. “아니, 모든 것이 공짜잖아요? 예수님께서 이미 값을 치루셨어요! 모든 것이 다 은혜로 주어지지 않나요? 다 공짜잖아요!” 맞습니다. 다 공짜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아버지가 하늘로부터 이런 만나를 주신 것이 아니다. 너희의 조상들이 너희들에게 초자연적인 떡을 준 것이 아니다. 내가 하늘로부터 오는 떡이라고 하시고 내 떡을 먹으면 네가 영원히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썩어질 것을 위하여 힘쓰지 말고 너희를 영생으로 인도하는 이 떡을 위해서 힘써야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내가 하늘로부터 온 떡이며 나를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시면서 하지만 너희가 그 하늘의 떡을 먹기 위해서는 힘써야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사단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날마다 여러분을 대적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틈만 나면 사단은 여러분을 대적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단지 거듭났고 천국에 갈 것이기 때문에 이미 승리했다고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으로 인해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것은 우리가 유업 중에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땅에서의 현재의 삶 동안에 우리가 왕처럼 살 길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 뿐 아니라 이 땅에서 영광 가운데 살 길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바로 지금 왕이 되길 원하고 바로 지금 승리하는 자가 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단은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여러분을 대적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단은 여러분들이 누구인가를 스스로 깨닫고 우리에게 가능한 권세를 우리가 사용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목사든지 회계사든지 변호사든지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이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직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살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이 지불해야할 댓가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정직하게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제가 여러분의 귀를 즐겁게 할 이야기들만을 전해준다면 저는 이곳에서 성취하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주님의 영광 가운데 살 것인가에 대한 놀라운 말씀 듣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맥도날드 드라이브-인에서 빠르게 통과하여 얻는 것과 같은 그런 삶을 살길 원합니다. 빨리 빨리 얻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삶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과 권능 가운데서 행하길 원한다면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우리의 삶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늘이 우리를 위해 열려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고 하늘의 제단에 자신의 피를 뿌리셨을 때부터 하늘은 우리에게 열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노래합니다. 주님, 하늘 문을 여시옵소서! 그런데 하늘은 이미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 있습니다. 사탄이 여러분 가운데 무언가 누르는 듯한 분위기를 풀어 놓길 원합니다. 사탄은 교회와 도시와 전 세계 위에도 이러한 억압적인 문화를 풀어 놓기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삶 가운데에서 힘써야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떡을 먹을 수 있는 자리로 여러분의 삶과 여러분 자신을 정확하게 위치시켜야 합니다. 구약에 있는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가장 놀라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특권이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의 문, 중재자의 역할이 그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과 대면하길 원한다면 그들은 먼저 제사장에게 다가왔어야 했습니다. 제사장이 그들의 희생을 취하여서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그런 후에 불이 임하여서 그 제물을 태웁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우리 모두가 제사장들입니다. 여러분이 거듭난 신자라면 모두가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의 제사장의 삶을 살펴보면 무엇인가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그들의 부르심은 다른 모든 사람과 차별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에 관련된 그 모든 것은 주님께 드려지는 것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일도 주님께 드려졌습니다. 그의 가정도 주님께 드려졌습니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그들 이마에는 주님께 성결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의 손은 항상 희생 제물, 그들의 일과 그들이 힘쓴 것, 주님을 섬기기 위한 것으로부터 나온 피로 덮여져 있었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성별되어 헌신된 제사장들이 나오기까지는 승리하는 기름부음을 풀어 놓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제사장의 삶의 방식에 대해 한 가지 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어깨 위에 한 마리의 비둘기가 내려와 앉았습니다. 그 비둘기는 여러분의 삶을 만졌던 모든 것들 중 가장 존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 비둘기가 여러분 삶에서 떠나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습니다. 제사장이란, 이 비둘기가 자신의 삶에 계속 머물게 하기 위해서 삶의 모든 것을 바꾸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걷는 법을 바꿀 것입니다. 이야기하는 방식도 바꿀 것입니다. 당신이 사는 방식을 바꿀 것입니다. 이제 다른 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다른 것을 듣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단지 한 가지의 목적을 위해 살 것입니다. 그 목적이란 그 비둘기를 당신의 어깨에 계속해서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제사장의 삶의 방식입니다. 삶이 성령님께 드려진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에 갈만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삶을 주님께 드려서 실제로 주님께 속한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밥 존스와 함께 지낼 때의 일입니다. 밥이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라이언,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갈 만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사람들은 극히 드뭅니다. 라이언, 당신이 당신의 귀를 문지방에 대고 뚫도록 주님께 허락해 드렸다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삼는 것은 우리에게 공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할 것은 단지 그 분이 나의 주인이시라는 고백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일 뿐입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삼는 것과 소유주로 삼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아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주인으로 아는 것과 예수님을 친구로 아는 것도 별개의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역을 시작했을 때 사도 바울의 서신서가 씌여진 순서대로 보면 그가 사도인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합니다. 나도 다른 모든 사도들처럼 사도로 여김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예수님께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이상 사도로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종으로서 알려지길 원했습니다. 그의 삶이 끝나게 되었을 때 자신을 예수님의 종 바울이라고 소개합니다.

 

 

제가 십대 때의 일입니다. 거의 죽게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근처의 큰 산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저는 길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구출하러 왔습니다. 그들은 제가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죽을 것이기 때문에 내일 와서 저의 시체를 찾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몇 시간 동안 길을 잃은 상태였고 어떤 강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체온은 점점 낮아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곧 죽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주님, 저를 구원해주시옵소서! 저의 삶을 전임 사역에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바로 그 밤에 제가 제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듣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산들 가운데 제게 말씀하신 것은 “알았다 o.k.”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람들이 저를 초자연적으로 찾아내었습니다. 그 후로 수년에 걸친 훈련을 받았습니다. 저는 16살의 나이에 전 세계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사역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 저를 그 사역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옮기셨습니다. 저는 더 많은 훈련 과정을 거쳤습니다. 광야의 시간들을 거쳤고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의 시간들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한 1년 동안 주님을 추구하기를 원하시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곧 열방 가운데 풀어놓으실 것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제게 오셔서 질문하셨습니다.

 

“라이언, 네가 이제 더 이상 사역을 한 차례도 할 수 없게 된다면, 네가 더 이상 한 사람의 병자도 고칠 수 없게 된다면, 더 이상 설교를 한 편도 할 수 없게 된다면, 네가 다시는 열방으로 여행하며 사역할 수 없게 된다면, 라이언, 그래도 내가 너에게 충분하느냐?”

 

저는 저의 꿈이었던 이 사역을 다시는 행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그 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주님께서 제게 물으시는 것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향하여서 죽을 수 있는지를 물으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위해서 살아오고 추구해왔던 모든 것을 말입니다. 그것이 다시는 내 삶 가운데에서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한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나 하나로 네게 충분하느냐?”

 

바로 그 날 저는 죽었습니다. 바로 그 날 제가 단지 거듭난 한 사람의 기독교인에서 실제로 모든 삶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예수님, 제가 내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사람이 될지라도 혹은 단 돈 1원에 저를 파시더라도 저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저희가 이 집회를 시작하면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초자연적인 삶을 사는 것들에 대해 말씀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전해 드리고 싶은 첫 번째 메시지는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하는 왕이 되길 원하신다면 하나님은 먼저 우리에게서 성별된 제사장을 보길 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살던 죽던 내겐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일으킬 군대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죽은 자가 살아나 걷게 되는 군대(Dead Man Walking)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 걷는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하고 제가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내 아들 예수가 이 땅 가운데 몸을 가지고 걸었을 때 그가 그렇게 강력한 권능 가운데 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이미 죽은 자였기 때문이란 것을 너는 아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에 그 분은 이미 죽은 자였습니다. 무엇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입니까?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어떤 것에라도 그에 대해 죽으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땅에 온 목적이 있다. 나의 목적은 아버지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 계실 때에도 그 분은 자신의 삶을 드리지 않는 편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은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 예수님께는 또 다른 죽음의 순간이었습니다. 그 분은 땀을 흥건하게 흘리셨고 성경에 의하면 그의 땀이 피가 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바울이 이 땅에서 권능 가운데서 행하였는데 그것은 그가 순교하기 전에 이미 죽은 자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계시를 받은 자입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그 분을 알고 부활의 권능을 알기 원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부활의 권능 가운데 있는 주님을 알기 원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바울이 뭔가 흥미로운 것을 말합니다.

 

“주님과의 교제 가운데 주님의 고통을 알기를 원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고통의 교제라니요? 저는 지금 제 삶 가운데에서 예수님과 가장 친밀했던 순간에 대해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그 순간들에는 예수님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이었습니다. 마치 제 주변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제 삶의 모든 것이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던 순간들이었습니다. 마치 제가 갖은 모든 꿈들이 다시는 성취되지 않을 것 같은 순간들이었고 고통당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순간들을 통해 죽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들을 통하여서 내 삶 가운데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주님께 내 삶을 드리길 원한다고 주님께 고백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바로 그 계곡에서 제가 죽고 있던 그 순간들을 통하여 저는 주님에 대해서 더 깊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산 정상에서 알았던 예수님보다 더욱 더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제사장이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산 정상에 있든지 계곡 가운데 있든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제사장이라면 여러분은 주님께 속한 자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 걷는 사람(Dead man walking)의 권능은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죽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개의치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묶여져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특정한 형태로 행하기 원합니다. 그들의 부모나 배우자의 인정을 받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향한 두려움에 대해 죽은 자들은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에 대해서는 온전히 살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멈출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길 원하시는 것을 행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들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만약에 하나님을 너무나도 사랑하여서 그 분을 너무나 신뢰하기 때문에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들은 대적이 더 이상 발목을 잡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대적이 그들을 끌어내기 위해서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철저하게 죽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들에 대해 산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들을 지니고 다니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떡을 많이 먹음으로 인해 열방에게 제가 산 떡이 되길 원합니다.

 

 

성령님 오시옵소서. 성령님 우리를 거룩케 하는 성결의 영으로 오시옵소서. 헌신의 영으로 오시옵소서. 성령님, 오셔서 우리를 인을 쳐주시옵소서. 우리에게 표식을 남겨 주시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를 변형시켜 주소서.

여러분 중의 어떤 분은 성령님께 부르짖으셔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이런 형태로는 자신의 삶을 한 번도 하나님께 드린 적이 없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곳에 계신 여러분이 이미 구원받고 거듭난 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 여러분께 더 많은 것을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있는 더 많은 것들을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더 많은 혼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십니다. 성령님 이 곳에 오시옵소서.

성령님 저를 만져 주시옵소서. 주님, 제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주님, 소경 바디매오와 같이! 사람들은 바디매오에게 입을 다물라고 하며 예수님을 더 이상 방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디매오는 더욱 크게 외쳤습니다. 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는 더욱 더 크게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다윗의 자손이여! 여깁니다! 바로 여기입니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