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성경은 내 발에 등, 내 길에 빛(시 119:101-120)

하나님아들 2025. 12. 18. 22:59

성경은 내 발에 등, 내 길에 빛(시 119:101-120)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시 119:105-106).
 
 시편 119편은 독일어역 성경에는 그리스도인의 황금 입문서라는 부제가 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잘 표출되어 있다. 그리고 히브리 민족을 향한 총체적 계시로서 요한복음 3:16을 ‘작은 복음’이라 하고 시편 119편을 ‘작은 성경’이라 부른다. 본 119편은 그 길이가 성경에서 가장 길며 신구약 성경의 전체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119편은 이 땅에서 인생의 축복과 영원한 생명에의 소망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을 둔 것임을 다중적으로 강조하는 점에서 성경 전체의 축약 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성경(성서)주일을 맞이하여 시편 119편과 작곡가이면서 작사가였던 '패니 크로스비'(1820.3.4-1915. 2.12)의 신앙고백을 알아보자.

 먼저 한국의 찬송가 중에  23곡을 작사한 '패니 크로스비'(Fanny Crosby)가 어떻게 성경으로 은혜를 받고 신앙인의 삶을 살았는지 살펴보자. 크로스비는 역사상 가장 많은 찬송가를 작사한 음악가중 한 명으로 8,000곡 이상의 찬송가와 복음 노래(복음성가)를 저술했으며, 출생 직후부터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역경을 이겨내고 그녀의 노력은 그녀의 작품이 1억 권 이상이 인쇄되는 결과를 낳았다. 
 
 패니 크로스비는 1820년 3월 24일 미국 뉴욕 주의 작은 마을 푸트남에서 태어났는데 생후 6주부터 맹인이 되었다. 돌팔이 의사의 잘못된 약물 치료로 패니 크로스비는 생후 6주부터 95세까지 맹인으로 평생을 살았다. 맹인이 된 어린아이 패니에게 가장 깊은 신앙적 감화를 끼친 사람은 패니의 할머니 유니스 크로스비였다. 패니의 어머니 머시 크로스비가 아기가 맹인이 되고 남편이 일찍 죽은 이중적인 슬픔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을 때 패니의 할머니는 패니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위로를 했다. “애야, 나도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하지만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란다. 그분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좋고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이 분명해. 그러니 그분께 더 가까이 가며 신뢰하자.”

 패니의 할머니는 무엇보다 성경의 사람이었고 기도의 사람이었다. 패니는 할머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지니고 할머니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다. "어머니는 성경을 매일 읽어주었지만 나를 성경으로 깊이 인도해 주신 분은 할머니였습니다. 성경 이야기는 할머니의 입술에서 나와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고 바로 그곳에 큰 뿌리를 내렸습니다." “할머니는 경건과 기도의 여인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자주 아주 오래된 흔들의자로 나를 오게 한 다음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곤 했습니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쏟아부은 사랑을 패니는 평생 가슴에 담고 기억하며 용기와 희망과 행복을 느끼곤 했다.

 패니의 할머니는 패니가 11살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났는데 세상을 떠나기 전 패니를 꼭 안고 이렇게 말을 했다. “패니야 내가 하늘나라에 가기 전에 너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구나?” 패니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할머니 뭔데요?” “저 높은 곳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할머니와 다시 꼭 만나겠다고 말해주겠니?” 패니는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꼭 그렇게 할게요.” 할머니는 “오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를 마친 후 하늘로 가셨다. 패니 크로스비는 이 할머니의 마지막 말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288장), 예수께로 가면(565장),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531장), 나의 갈길 다 가도록(384장).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391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435장), 후일에 생명 그칠 때(608장), 예수 나를 위하여(144장), 인애하신 구세주여(279장), 너의 죄 흉악하나(255장) 등, 패니 크로스비가 작사한 찬송가가 한국 찬송가 중 23개나 수록되어 있다.
 
오늘 성경(성서) 주일에 시편 119편 101절부터 120절의 말씀으로 구체적으로 은혜를 나누자.
 
1. 성경의 말씀은 진리이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시 119:105-106).
 
2. 성경의 말씀은 생명이시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시 119:107-110).
 
3. 성경의 말씀은 기업이시다.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시 119:111-112).
 
4. 성경의 말씀은 은신처요 방패이시다.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너희 행악자들이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리로다”(시 119:113-115).
 
5. 성경의 말씀은 소망이시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들에 항상 주의하리이다 주의 율례들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 서 다 멸시하셨으니 그들의 속임수는 허무함이니이다” (시 119:116-118).
 
6. 성경의 말씀은 심판이시다.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찌꺼기 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사랑하나이다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심판을 두려워하나이다”(시 119:119-120).
 
결론. 성경의 말씀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성도가 되자.
  오늘 소개한 '패니 크로스비' 같이 우리 모두가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라며 신앙고백을 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성도가 되자.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시 119:101-104)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54346

 

패니 크로스비의 생애(Fanny J. Crosby)
 
한평생 맹인으로 은혜로운 영혼의 찬송가 8,000여 편의 찬송 시를 쓴 세계 최고의 찬양 전도자이자 찬송가 시인 패니 재인 크로스비는 미국인이 뽑은 미국 대통령보다 더 존경하는 금세기 최고의 인물 한국인이 뽑은 가장 은혜로운 베스트 찬송가의 주인공이다.
 
우리가 아는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 "인애하신 구세주여, "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 "오 놀라운 구세주, " "나의 영원하신 기업, " "예수 나를 위하여, " "나의 생명 되신 주." "주가 맡긴 모든 역사."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찬송으로 보답할 수 없는" 등등 수많은 찬송가들은 한국 사람들에게 커다란 은혜를 안겨 주었다.
 
패니 크로스비는 1820년 3월 24일 미국 뉴욕 주의 작은 마을 푸트남에서 태어났는데 생후 6주부터 맹인이 되었다. 돌팔이 의사의 잘못된 약물 치료로 패니 크로스비는 생후 6주부터 95세까지 맹인으로 평생을 살았다.
 
그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불행했다. 패니의 엄마 머시 크로스비는 어린 딸이 맹인이 된 사실을 알고 통곡하며 울었다. 패니가 돌팔이 의사의 실수로 맹인이 된 사실을 알고 교회와 동네 사람들은 그 돌팔이 의사를 찾아가 그를 처벌하여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마을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패니 크로스비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눈이 멀게 된 이후 제대로 의사의 치료를 받아보지 못했다. 패니가 한 살 되었을 때 그를 극진히 사랑하던 아버지 존 크로스비까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패니의 엄마가 늘 생활고로 바빴기 때문에 패니는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으며 할머니는 패니의 어린 시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할머니는 패니의 좋은 친구이자 선생님이었으며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패니는 할머니에게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힘, 부드러움을 배웠다. 할머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패니가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상세하게 설명해 주면서 성경말씀과 접목시켰다. 패니의 할머니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을 가르치며 손으로 만져 보고 코에 대고 향긋한 향기를 맡도록 했다.그리고 그 꽃의 색깔과 향기, 생김새 등을 일러주었다.
 
패니가 그 이름을 잘 익힐 수 있도록 자세히 묘사했다. 할머니는 모든 자연을 성경 말씀과 연관 지어 설명해 주었으며 성경말씀을 암송하도록 지도하는 훌륭한 성경교사 역할을 했다. 패니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시편과 잠언, 룻기 등과 신약의 대부분을 암송할 수 있었다고 한다.
 
패니는 후에 성경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곤 했다. 할머니는 성경뿐 아니라 문학 작품도 많이 읽어주었는데 패니는 거의 외울 정도로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어느 날 문득 패니는 자신의 삶을 커다란 목적을 위해 바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앞을 볼 수 없었고 막막하고 답답했다. 이대로 앞을 전혀 보지 못한 채로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그때마나 그녀는 작은 오두막집에서 나와서 그녀가 기도하는 큰 바위로 가서 하나님께 위로를 구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패니에게 위로를 주었고 소망을 주었다. 그런데, 패니가 11살 되었을 때 패니를 누구보다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패니의 할머니 유니스 크로스비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패니는 가난과 슬픔에 버려진 불행한 아이였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향방이 또한 달라질 수 있음을 여기서 볼 수 있다. 패니 크로스비의 생애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개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가는 곳마다 준비된 사람들을 붙여 주셨다. 지식의 배고픔으로 늘 허기진 어린 영혼의 긴긴 기도를 외면하지 않고 곧 현실로 그 길을 열어 주었다. 그 안타까움이 배움의 기쁨으로 바뀌어 시간이 갈수록 더해가는 배움의 갈증은 그녀로 하여금 밤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그녀가 시를 지을 때면 골방에 가서 먼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습관은 이때부터 생겨난 것이었다.
 
1834년에 뉴욕 입법부와 맨해튼에 새로 생긴 맹인학교에 전액장학생으로 등록했다. 패니 크로스비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패니 크로스비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충만한 은혜를 경험했다. 패니는 각계각층에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시인, 소설가, 작가뿐 아니라 정치인, 경제인, 대통령,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 거리의 사람들 등 그들과 교류하면서 더욱 충만한 열정을 보였다.
 
특히 그녀의 찬양 시에 곡을 붙여 주었던 소중한 동역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직접적인 만남을 통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찬송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만들어준 미국음악의 개척자 ‘로웰 메이슨’, 패니의 서정시가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던 조지 루트,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에서의 진정한 동역자가 되어 준 윌리엄 브래드베리, 실베스터 메인, 로버트 로우리 박사, 윌리엄 하워드론, 무디와 생키 등 그녀에게는 소중한 동역자들이 있었다.
 
패니 크로스비는 성장해서 유명한 시인이 되었고 유명한 찬송가 작사자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던 맹인 교수 밴 앨스틴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패니 크로스비가 38세 되던 해인 1858년 3월 8일이었다. 서로에 대한 깊은 헌신과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은 두 사람에게 그윽한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두 사람은 도시를 떠나 시골에 와서 자연을 즐기며 조용히 살았는데 시골의 공기는 그녀의 영혼을 더욱 아름답게 소생시켰고 그윽한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패니 크로스비는 결혼 후 곧 아기를 잉태하게 되었고 귀여운 아기를 낳았다. 그러나 엄마는 곧 아기를 잃고 말았다. 패니 크로스비의 일생에서 가장 슬픈 일이 1859년에 일어났다. 패니 크로스비는 몇 달 동안을 아기를 잃은 슬픔에 잠겨 힘들게 보냈다. 이웃들로부터 받는 위로가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아기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내려와서 우리의 아기를 데리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기를 하나님과 그분의 왕좌에 맡겼습니다.”
 
패니와 밴 부부는 다시 뉴욕의 맨해튼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패니 크로스비는 다시 모든 열정을 다 쏟아 찬송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곳 저곳에서 패니에게 찬송시를 써 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패니는 일 주일에 6,7편의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음악가들이 자신들의 곡에 붙일 가사를 그녀에게 부탁했다.
 
패니와 밴은 부부이자 서로를 돕는 배필로 행복하게 살았다. 패니와 밴은 많은 일을 했지만 허름한 집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가난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불평하거나 서로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을 주신 것에 항상 감사를 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편도 아내를 떠나 먼저 하늘로 갔다. 패니 크로스비는 한평생 수많은 슬픔과 고통과 아픔을 거듭해서 경험한 참으로 불행한 여인이었지만 그녀에게 그 대신 끝 없는 에너지와 열정을 부어주셨다. 60세가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려고 했지만 패니 크로스비는 더 많은 찬송시를 썼고 새로운 일들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에너지와 열정이 그녀의 심장을 끊임없이 고동치게 만들었다.
 
패니 크로스비가 90세가 되었을 때 영적인 삶에 있어서 최고의 해였다. 기쁨과 즐거움의 포도주가 넘치는 풍부한 시간들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설교를 듣기 위해 수 많은 청중들이 교회당을 꽉 메웠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15년 2월 12일 금요일 아침에 금세기의 가장 뛰어난 찬송가 작사가인 패니 크로스비는 95세를 일기로 조용히 하늘나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