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문 소논문

중보기도와 영혼구원

하나님아들 2024. 5. 24. 14:18

중보기도와 영혼구원
유재구목사

Ⅰ. 서론

하나님의 뜻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고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더욱이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중보기도자로 부르셨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5만번 응답받은 기도의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조지 뮬러 목사님은 자신과 매우 친한 친구 5명을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지 5년만에 그중 한명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0년 후 두 명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남은 두 친구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25년이 지난 후 네 번째 친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마지막 남은 그 친구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가 죽은지 몇 달 안되어 이 친구도 마침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참된 중보자는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중보기도는 전도할 대상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며 그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야말로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진정한 방법이며 전도하는 노고는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것에 불과합니다. 초대 교회가 전도에 성공한 비결이 중보기도에 있었음을 사도행전 4:29절-31절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4:29-31)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하게 되었을 때 아브라함을 중보기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의 기도를 통하여 롯의 가정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로 멸망의 선고를 받았을 때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하여 멸망의 위기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 22장에서는 무너지는 담을 막아서는 중보기도자 한 사람이 없어서 이스라엘이 멸망케 된다고 했습니다. 예언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멸망의 위기 가운데 서 있는 도시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한 사람의 중보기도자를 찾으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중보기도를 통한 영혼구원의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함께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Ⅱ. 본론

1. 중보기도
1) 중보기도란 무엇입니까?
중보기도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어떤 사람을 대신해 내가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라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중보기도는 주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계신 사역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다리가 되어주셨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다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둘 사이에 다리가 되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기도가 중보기도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딤전2:5-6)
하나님께 나아가는 중보자는 유일하신 예수님 뿐입니다. 그는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신 후 지금 하나님 우편에서 중보기도 사역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기도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따라서 남을 위한 기도자로서 중보기도를 우리들도 하게 되었습니다. 중보기도라는 것은 유일한 중보자의 차원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차원에서 말합니다.

중보기도는 모든 사역의 우선성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딤전2:1) 라고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무엇보다도 중보기도의 사명자가 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여기서 첫째라는 것은 두 번째를 전제한 순서상 첫째가 아닙니다. 우선적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사역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위한 사역을 감당하는데 중보기도가 우선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중보기도는 가장 고상한 형태의 기도 유형임을 깨닫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도의 모든 형태 가운데 가장 비이기적인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기도는 자신과 가정에 관련된 기도일 뿐입니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중보기도입니다. 서로의 짐을 짊어지는 기도입니다. 중보기도는 가장 구체적인 이웃사랑의 실천의 장이요 하나님 나라 사역의 가장 권세있는 방편이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사역입니다. 이 사역은 주님께서 보이신 가장 값진 사역의 본을 따르는 방법이기에 중보기도의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2) 중보기도자란 누구입니까?
중보기도자란 하나님과 멀어진 사람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과 가까이 있으면서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자는 다른 사람들의 죄 사함을 얻게 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중보자는 권리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입니다. 이 권리는 죄사함과 하나님의 자녀됨에 있습니다.

용서를 받아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살 수 있고, 은혜를 베풀 수 있습니다. 조건없는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조건없는 사랑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중보자는 다른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보자가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어떤 조건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조건없이 사랑을 받았기에 조건없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중보기도자입니다.

3) 영혼구원을 위하여 중보기도는 왜 중요합니까?
전도를 위하여 말씀이 영적 싸움을 위한 폭탄이라면 기도는 뇌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터지고 폭발하려면 기도라는 뇌관이 먼저 터져야 합니다. 기도의 불꽃이 터져야 다이나마이트는 터집니다. 폭탄을 터뜨리기 위하여 뇌관을 먼저 터트려야 하듯이 전도의 말씀이 터지려면 먼저 기도에 불이 붙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위하여 말씀도 암송하고 전도 전략도 연구하여 완벽하게 준비하지만 막상 전도에 불이 붙지 않습니다. 전도의 중요성도 잘 압니다. 전도의 방법도 잘 압니다. 전도할 때 해야 할 말씀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기도의 열심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도를 위하여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을 잊고 시작합니다. 먼저 기도로 불을 붙여야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권능을 입어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히게 된 이유는 마귀의 일을 멸하고 영혼구원의 일을 위하여 귀신들린 여종의 병을 고쳐주었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옥에 갇혀 귀중한 영혼구원의 사명을 방해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찬양과 기도로 영적으로 묶인 사단의 권세와 싸웠을 때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간수장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중보기도 사역의 중요한 목적은 마귀의 일을 멸하고(요일3:8), 잃어버린 자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중요한 사역임을 깨달아야 합니다(눅19:10, 요10:11-12). 이를 위하여 전략적으로 중보기도의 사역을 교회 안에 바로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2. 중보기도의 효과

1) 중보기도는 전도자를 준비시킵니다.

(1) 예수님은 기도로 전도를 준비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사역을 두고 공통적으로 그가 보여준 모범은 무엇입니까? 그가 병고치고 가르치고 전도하기 위해 바쁜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한적한 곳에 가서 새벽기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가복음 1:35-39절을 보면 예수님은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신 후에 전도를 나가셨습니다. 누가복음 4:42-44절에도 보면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신 후에 전도를 나가셨습니다. 전도의 일군을 택할 때도 밤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직접 중보기도의 참 모델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삶의 목적인 영혼 구원을 위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었습니다.

(2) 기도는 인간적인 방법보다 하나님의 방법을 신뢰하게 합니다.
전도는 영적 전투입니다. 불신의 권세를 물리쳐야 하는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이에 무엇보다도 중보기도가 중요합니다. 구약에서 승리한 전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한 하나님의 전쟁이었습니다. 300명의 기드온 군사가 수십만의 미디안족을 물리칠 수 있었던 비결도 하나님의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던 비결도 하나님의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기 때문에 승리하였습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일도, 연합군에 맞서 찬양단을 앞세워 승리했던 여호사밧의 승리 역시 하나님의 승리였던 것을 깨닫습니다. 산 위에서 아론과 훌의 부축을 받으며 두 손을 들며 기도했던 모세의 아멜렉 전쟁도 하나님의 전쟁이었습니다. 불신의 권세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방법인 전투적인 중보기도가 필요합니다.

(3) 기도는 성령 충만으로 전도하게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위하여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이 없이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처음 두 장은 기도와 권능받는 일에 대한 사례를 제공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것은 증거자가 되기 이전에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권능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순종했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1:14). 이들이 한 곳에 모여 기도할 때 어떤 능력이 나타났습니까? 이 약속의 응답은 그들이 다락방에서 한 곳에 모였을 때 하늘에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이 임하였습니다(행2:1-4). 그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을 때 베드로와 제자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하루에 삼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송하시기 전에 먼저 기도하기를 원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먼저 체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애굽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기 전에 먼저 가시떨기에 붙는 불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먼저 체험했습니다. 이사야를 보십시오. 그도 역시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누가 나를 위해 갈꼬"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 때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하고 결단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파송은 하나님의 임재를 먼저 경험하고 나서 주어집니다. 누구든지 전도자가 되기 전에 먼저 기도자로서 하나님의 임재,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해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할 때 전도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4) 기도는 부정적인 환경에서도 용기있게 전도하게 합니다.
전도를 하려고 할 때 여러가지 부적합하다고 생각되는 환경이 주어질 때가 많습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에서든지 핑계 댈 만한 이유들이 많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마음을 준비시켜 줍니다. 초대교회 당시 핍박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며 성령을 받았을 때 그들에게 담대함이 주어졌습니다(행4장). 반대가 올 때 주저앉으면 그 사람은 패배자가 됩니다. 자신을 잃지 않고 증거의 삶을 용기있게 살아 나갈 때에 그는 어느 사이에 전도를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를 즐기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1:7) 라고 했습니다. 버스나 전철에서 외판원들이 장사할 때 부끄러움도 모른 채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판매하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세상적인 것에도 이처럼 열심인데 영생을 전하는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5) 기도는 전도대상자의 필요를 알게 합니다.
사람의 필요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면 약방에서든, 빵집에서든, 문방구에 가든, 어디를 가든지 전도를 할 수 있습니다. 행3:1-10을 보면 정한 시간에 기도하려고 성전에 들어가던 제자들은 미문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거지를 만납니다. 그 거지의 당장의 필요는 먹는 빵이었습니다. 이것을 얻기 위하여 그는 자신의 지혜를 총동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명당자리를 택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근면했습니다. 날마다 미문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의 지혜와 근면도 그의 삶, 거지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거지를 그곳에 데려다 준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훌륭한 자선사업가들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근본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성전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돈을 던져주며 구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었던 자들은 누구입니까? 요한과 베드로입니다. 이들은 이 거지의 진정한 필요는 돈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금과 돈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진정한 필요를 채워주는 일군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를 안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상담도, 돈도, 격려도 필요하나 근본적으로 복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이 시대에 지치고 혼미한 영혼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구체적으로 내가 전도할 대상의 긴급한 문제가 무엇이며 그들의 부족함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지혜로운 복음전도자로 준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중보기도는 전도할 대상을 변화시킵니다.
(1) 중보기도가 살인마들을 전도자로 변화시켰습니다.
지존파의 구원사건을 통하여 지속적이고 간절한 기도야말로 역사하는 힘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존파를 구원한 이재명집사님 간증하실 때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회에서 지탄받는 대상인 지존파들을 구원시키기 위하여 사전에 많은 기도를 하였습니다. 악독했던 지존파, 독일에서는 광주사태보다 더 충격적으로 대서특필되었던 사건이라고 했던 주인공들을 한 집사님이 전도했다는 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온 국민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공뉴스 시간에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하여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찔려 죽이지 못하고 잡힌 것이 한이 된다"고 했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인육을 먹었던 그들은 스스로 사람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그토록 잔인했던 그들이 마지막 사형장에서 사형당할 당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당시 두목이던 김기환은 목에 밧줄이 걸려지고 마지막 몸이 공중으로 떨어지는 순간 그가 마지막 외친 소리는 "할렐루야"였다고 합니다. 김현양을 잘 알 것입니다. 여자의 유방을 칼로 잘라내어 질겅질겅 씹었다던 그였습니다. 그러한 그가 감옥 안에서 30명의 영혼을 전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가 신고 다니던 운동화를 벗어 놓았는데 운동화 신발 양쪽에는 성구가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14:1-2).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그도 역시 마지막 죽는 순간 "할렐루야"하고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백병옥이라는 또 한 사람은 원래 말이 어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행 당시 방언을 받아 방방 뛰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집행관이 있을 수도 없던 형집행을 잠시 연장했답니다. 이 때 그는 그곳에서 "소장님, 저는 천국에 올라갑니다. 소장님. 스님, 의사님, 보안과장님 예수 믿으십시오. 하면서 10분동안 복음을 전하고, 마지막 찬송을 부르다가 마지막 "할렐루야"하면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전도의 대상을 두고 중보기도 하는 능력은 지존파와 같은 악한 사람들에게까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전도 대상자를 두고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능력있는 기도임을 깨닫습니다.

2) 중보기도는 전도할 지역을 변화시킵니다.
(1) 복음 전도의 비전은 도시에 있습니다.
중보기도와 복음 전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입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은 개인적 단계에서 시작하여 어려움이 커 가는 단계로 상승합니다. 개인과 가족, 교회, 더 나아가 교단과 도시, 국가, 세계로까지 이릅니다. 특별히 전세계 인구의 반 이상이 살고 있는 도시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영적 전쟁의 대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도시 거주자가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한국 역시 도시집중화 현상에 따른 과도기적인 아픔과 문제들을 겪고 있습니다. 2002년대에 들어선 지금 인구의 사분의 삼이 도시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도시야말로 중보기도의 대상이요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선교 중심지역이 되었습니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렘29:7)

우리 크리스천 선교의 새 비전은 도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열방에 전하고자 한다면 도시의 복음화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도시들은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그 나라의 신화를 대부분 보관하고 있는 곳입니다. 성경에서 시작되는 인간의 이야기도 동산에서 시작해서 도시에서 끝납니다.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도시가 우는 사자와 같은 사탄에게 속임을 당하여 묶여있는지 모릅니다. 도시야말로 하나님의 축복된 동산으로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우리의 소망입니다.

(2) 전도할 대상인 도시의 성문을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할 대상인 도시를 위해 중보기도할 때 도시의 성문을 분별해야 합니다. 전쟁터로 달려 나가기 전에 전체적인 상황판단을 한 다음 임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침노자요 강탈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땅을 다스릴 권한을 부여하셨지 귀신들에게 우리의 도시를 다스릴 권위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치 바로왕이 노예도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처럼 부렸듯이 사단은 지금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습니다. 사단이 가지고 있는 모든 권세는 도적질한 것 뿐입니다. 많은 도시와 사람들이 사탄의 거짓에 속아 흑암 속에 갇혀 있고 이러한 거짓들이 어떤 특정한 문화형태의 받침돌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도시가 다시금 수축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중보기도자들을 사용하시기를 원합니다. 병들어 있는 도시와 지역을 구원하기 위해 도시를 연구하고 지역의 악한 영을 알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과 사탄의 것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으며 오히려 악한 영의 가장 견고한 진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감싸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이것을 영적 도해라고도 합니다. 영적 도해라는 것은 신앙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도시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모세도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점탐꾼을 통해 그 지역을 탐지하도록 하였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그들을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남방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그 땅의 어떠함을 탐지하라 곧 그 땅 거민의 강약과 다소와 그들의 거하는 땅의 호 불로와 거하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토지의 후박과 수목의 유무니라 담대하라 또 그 땅 실과를 가져 오라 하니 그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민13:17-20).

존 도우슨은 하나님의 중보의 일을 해야 할 사람이 알아야 할 필수적인 다섯가지 요소를 말하였습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모든 것을 균형있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1)당신의 나라의 교회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2)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교회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3)당신이 목표로 사는 전도대상을 위해 과거에 어떤 사역이 행해졌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4)당신이 참여하고 있는 사역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5)당신이 참여하고 있는 신앙운동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이상 다섯 가지를 종합할 수 있는 질문으로 "우리 도시의 성벽은 어디가 무너져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도시나 교회 내에 어떤 실패의 패턴이 반복되고 있지는 않는지?를 물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영적전쟁은 진공상태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복음 전도와 중보기도 역시 가능한 모든 정보를 이용하여 조심스럽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먼저, 도시의 지도를 준비하여 연구해야 합니다. 노인들, 집없는 사람들, 학생, 어린 아이들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이 어디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도해를 위해서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여리고성처럼 강력한 적들의 진영가운데서도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장래에 대한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과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3) 도시의 강력한 진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중보기도자가 먼저 준비되어야 합니다.
먼저 영적 전쟁을 알리는 찬양과 경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부분 사단은 원망과 불평하는 죄 가운데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다른 사람의 믿음을 빼앗고 분위기를 해치며 죽음과 실패를 가져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환경문제, 교통문제 등 사소한 문제까지 불평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선 갖춰야할 자세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경배하는 태도입니다.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10)

둘째로,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요8:47)."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시40:1)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말씀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10:27절에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될 때 마귀의 전략을 알게되고 그들을 패배시킬 수 있는 전략도 알게 됩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세 번째로, 적들이 침투할 수 있는 도시와 나의 약점인 죄를 막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한 사람을 중보기도자로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66:18)고 말씀합니다. 먼저 깨끗해야 능력이 따릅니다.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수3:5).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신뢰하실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시139:23-24).

우리가 갖는 가장 큰 적은 귀신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악한 마음을 씻어 주셔야만 구원을 이루는 중보기도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도시의 벌어진 틈을 보수하기 위해 중보기도를 하려면 성령님께서 진리의 빛을 심령 깊은 곳까지 비추시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나의 죄와 이기주의적인 정체를 파악하고 남보다 나를 낫게 여기는 교만의 유혹에서 벗어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육적인 음란과 영적 음란을 포함한 우상숭배하는 죄를 극복해야 합니다. 고질적으로 버리지 못하는 악한 습관들도 있습니다. 분노하는 죄가 있습니다. 자만하는 죄가 있고 이기심도 있습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도록 해야 합니다. 내 안에 성령님께서 나의 약함을 고쳐주시고 깨끗게 하시도록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전도할 지역을 위하여 여리고 기도작전으로 기도행진을 실행합니다.
중보기도 사역은 전도하려는 대상과 지역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전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악한 영들에 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수동적으로 우리의 이웃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교회적 복음화 사역을 준비하며 기도경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중보기도자의 한 가지 임무이지만, 때로는 우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기도를 통하여 적진으로 들어가서 침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중보기도의 능력을 교회 건물의 벽안에 제한하지 않고, 밖으로(세상 속으로) 끌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리고 기도 작전'이 의도하는 바입니다.

이 기도행진은 영적 전투를 선포하고 영적 군사들을 모집하여 항오로 진군합니다. 여리고 기도 작전은 어떤 지역을 그냥 걸어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행진에 대한 훈련을 시킨 후에 기도행진을 통하여 적의 땅, 사단이 역사하고 있는 곳을 되찾는 거룩한 전쟁임을 깨닫게 합니다. 걸으면서 지리적이고 물리적인 이 땅, 이 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에 속했음을 선포하는 시간입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수1:3).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수6:3). 위와 같은 말씀을 근거로 저희 교회에서는 봄가을 일년에 두 번씩 여리고전도대회를 엽니다. 16주간 전도대회를 여는데 이 때 전도대회를 하기전 먼저 땅밟기부터 합니다. 여리고기도작전이라고 해서 땅밟기를 합니다. 이 지역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중보기도학교를 진행하면서 기도행진을 훈련시키며, 여리고전도대회를 통하여 전도자의 발걸음마다 여리고기도작전을 수행하도록 지시합니다. 지역과 교회의 영적변화를 위한 비전을 품고 여리고기도작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영적 운동이 각 교회마다 동일하게 전개되어 도시와 교회의 강력한 진을 파할 수 있는 영적 무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영혼구원을 위한 중보기도 사역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전도자와 대상자들을 위한 중보기도 모임이야말로 영적으로 최전선에서 전투하는 특공대들입니다. 이들의 영적인 승리가 전도인의 마음을 불일듯하게 만들 것이며, 전도 대상 지역과 불신자들의 마음을 옥토로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따라서 영혼구원을 위한 중보기도 사역은 전략적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현재 십정교회에서는 중보기도 사역을 보다 전략적으로 운영하고자 노력합니다. 보통 교회마다 기도팀을 운영한다고 하지만 일시적이거나 부정기적이고, 비체계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마다 기도에 대한 운동이 보다 체계적으로 세워지지 않고 훈련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교회마다 기도팀들에 의한 영적인 위험과 교회의 여러 문제들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기도도 사역이라는 차원에서 훈련된 중보기도 사역자들을 세워서 교회 내에 영적 분위기를 최대화시킬 수 있도록 중보기도사역을 전략적으로 운영하고자 합니다. 다음은 십정교회 중보기도 사역의 목회철학과 운영전략에 대해서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