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학

역사신학 총론

하나님아들 2024. 4. 29. 22:47

역사신학 총론

 

 

 

 

1. 서론(序論)

 

    기독교의 신앙과 역사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그 순간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그 역사는 누가 기록을 하든지 하지 않든간에 지금까지 기록되어 왔고 앞으로도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계속 기록되어 질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예정된 구속의 역사는 그누구도 잡아 놓거나 중단시킬수 없으며 또한 뒤로 물러가게 할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예정된 구속의 역사는 이 땅의 피조물들에 의하여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이루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태어난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역사를 부인할수도 없으며 부인해서도 안된다.

다만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속에 들어가 그의 살아 계심을 인정하고 그와함께 할때만이 참된세상, 참된인생, 참된길을 걸어 갈수가 있다.

 

기독교는 신적 기원을 가진 역사적 종교이다1). 그리고 역사란 그 시대에 일어났던 사건들의 사실이며 그 사실을 증명하는것이다. 바꾸어 말해본다면 하나님께서 이땅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실 때 죄지은 인간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시어 죄인들을 구원하신 구원사 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또한 그를 통하여 구원받은 믿음의 선진들이 그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기 위하여 핖밖속에서도 담대히 순교의 피를 흘리고 이 땅의 미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한시대를 믿음으로 살다간 거룩한 사람들의 순교사이기 때문에 교회사는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순교사적 역사의 기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2000년이란 긴 세월을 지내는 동안 수 많은 역사가 기록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그 구원의 역사는 너무 광범위하여 인간의 짧은 지식으로는 그 역사의 기록을 처음부터 일목요연하게 연구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교회사를 연구하는 역사 신학자들도 많이 있고 연구 발표한 저서들도 수없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학자들마다 연구한 방법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한눈에 이해할수 있도록 쉽게 정리 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다.

왜냐하면 어느 한나라에 국한된 민족사가 아니라 온 인류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 남긴 세계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 학자들이 객관적입장에서 보다는 주관적인 입장에서 기록되어진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는 그 시대마다 그 장점이 있고 공헌이 있으며 잃어버린 것이 있는가 하면 잊혀진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의 역사를 연구해야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어진 성경의 사건을 이해하고 또한 성경속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간사속에 능력으로 나타나 쉼없이 일해오신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베프신 은혜를 현실속에서 깊이있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21세기를 바라보며 사는 우리들의 삶도 그 의미를 부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서양문명의 원천이라고 말할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가장 큰 저력(底力)이 된다. 그리고 기독교 교회사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중심해서 그리스도의 이전의 역사와 그리스도 이후의 역사로서 나누어 연구 할수 있는데 그리스도 이전의 역사를 총칭하여 구역의 역사라고 하며 그리스도 이전의 역사를 교회사라고 한다. 이러한 기독교의 역사는 세계사의 구심점이 되고 있

다. 

 

2. 敎會史 硏究의 必要成

 

알렉산더 밀러(Alxander Miller)는 기독교 역사 연구의 필요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역사의 연구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과 연대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자신에 대하여 배우는 것이다 즉 우리는 역사를 통하지 않고는 자신을 설명할수 없다”는것이다. 이 말의 뜻은 나 자신에 대한 삶의 설명은 지나간 나의 삶에 역사를 알아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역사를 연구하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역사해오신 일들을 알수가 없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를 연구해야될 또 하나의 필요성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자 하나님과 그의 피조물인 그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바로 이해하기 위한 지성인들의 간절한 학분적인 열망과 참 진리의 척도가 무었인가에 대한 탐구로 우리를 초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1900년대를 지나 2000년대의 또 다른 강을 건너왔고 하나님은 21세기에도 변함없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에 역사는 진행되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주인공은 누가될수 있을것인가 바로 우리가 하나님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야한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사의 한 페이지를 남기기 위해서 오늘의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되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할것이다.

둘째는 인생의 바른 가치관의 실천적 요청 때문에 역사연구가 필요하다.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 역사를 보면서 사람이 어디서와서 어떤존재로 무었을 추구하며 살아야하며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가를 바로 알기 위해서이다.

그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알 듯이 그 시대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수 있기 때문이다.

참된 인생관의 형성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객관적인 진리를 주관적으로 체험하는데서 비롯되듯이 그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여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한걸은 앞당겨 나갈수가 있는 것이다.

 

 

셋째로  교회사는 하나님의 구원에 역사이기에 중요하다.  죄로 타락한 인류를 하나님께서 지난 시대마다 어떠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알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통하여 미래를 조명하여 볼 수 있는 기회가 될수있기 때문이다2).

  화란의 역사학자 레너(G.I. Renier)는 역사를 마치 어망(魚網)처럼 모든시대에 걸처 개인이나 단체에서 얼어난 얽히고 설킨 복잡한 사건들과 함께 묶어놓은 지나날의 인간들에 체험이다 라고 정의 한다. 이것은 역사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전기를 결합한 이야기의 정수라는 의미이다. 즉 사람들이 살다가간 체험이기 때문에 연구의 필요성을 느낀다. 따라서 로마의 역사가 키케로(Cicero)는 역사를 참된시대의 증인이며 진리의 빛이라고 했다. 이 말은 역사를 통하여 지난날 인류와 우주의 흔적을 되돌아 볼수 있기 때문이라는것이다.

결국 역사는 오늘의 시점에서 과거에 관한 지식을 탐구,정돈, 해석하여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학문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역사는 어제를 살다간 인간들의 체험을 통하여 내일에 대한 소망과 꿈을 키워갈수있는 학문적 가치가 될수 있기 때문에 연구하지 않으면 않될 학문중의 학문이다.

1920년대 독일의 신학자 칼바르트(Karl Barth, 1886-1965) 는 교회사를 신학의 한 보조학문으로 취급하였다. 그는 역사신학을 통하여 역사주의를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그는 루터나 칼빈을 자주 인용하였다. 신학이 하나님으로부터 사유한다고 하면 역사는 인간으로부터 사유하기 때문이라는것이다. 그는 신학과 역사를 이원화하고 신학적 계시는 그것이 인간에게 전달될 때 역사로 매게된다고 주장하였다. 그결과 그는 계시중심에 무게를 두어 역사의 객관성을 약화 시켰다. 그러나 1933년-1945년 독일 히틀어의 나치하에서 교회의 투쟁은 그의 교회사 연구를 새롭게 하는 전기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이후 교회의 역사는 더 이상 보조학문이 아닌 교회사 연구의 신학적 의의를 더욱 부각시켰다.3)

이탈리아의 역사학자 크로체(Beneditto Croce. 1866-1952) 는 “모든역사는 현대사”라고한다. 이말은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제의 눈을 통하여 과거를 봄으로부터 성립이 되고 따라서 역사가의 중요한 일은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만일 역사학자가 과거를 평가하지 않는다면 무었이 기록될만한 것 인지 알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시대 평가?받고 기록된 역사는 연구해야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가 에이취카 (E,H Carr)4)는 “역사란 무었인가”에서 역사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역사란 현제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연구란 과거와의 대화이기 때문에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