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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개념원리

하나님아들 2024. 4. 27. 14:31

복음의 개념원리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복음의 개념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성경의 문자에만 매여서 그것을 적용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복음의  개념 원리을 소개하자면,

 

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다.

-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모든 죄를 사함받고 의롭다하심을 얻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영생을 누린다.

만일 당신이 100% 죄사함의 확신이 없다면 아직 복음을 덜 이해한 것이거나,

그리스도를 믿는 진정한 믿음이 없는 것이다.

 

② 그리스도인들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법 아래 있다.

-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서 해방되었다.

율법에서의 자유를 마치 방종으로 가는 길인 것 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거듭남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이다.

거듭난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 속에 새로운 법이 새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음에 새겨진 새로운 법이란,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법이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받은자가 아닌가?(롬 10:11)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는 우리 마음에 주님이 되신다.(고전 12:3)

 

즉 그리스도의 법이란 문자로 새겨진 또 하나의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주님으로 모시고 인정하는 삶을 말한다.

 

율법과 복음의 지식을 얄팍하게 깨달았다고 그 지식으로 담배나 피우고 술이나 퍼먹는 자유를 누리면서 성경토론시간에는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기면서 정작 부패한 삶을 돌이킬 생각을 하지 않는 위인들이 어찌 진정으로 복음을 깨달았다고 하겠는가!

 

내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율법에서의 자유를 말할 자격이 없다. 과연 당신의 모든 삶의 영역속에서  그의 로드십(Lordship- 주님의 주님되심)을 인정하는가?  만일 인정한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율법이  주님을 섬기는데 단지 참고사항일 뿐이다.

 

사도 바울은 "너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않다"(갈 5:18)고 말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③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의미한가?

- 아니다!

율법은 여러 모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하다.

 

앞서 설명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법 아래 있다.

즉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데, 필요한 것이라면 우리는 율법에서 얼마든지 유익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을 섬기는데, 더 이상 불필요한 것이라면 아무리 율법이라고 해도 우리는 버린다.

 

그것이 복음의 원리다.

 

우리는 십계명에서 우상을 섬기지 말 것과 살인하지 말것과 도둑질하지 말것, 그리고 간음하지 말 것과 탐내지 말 것 등의 계명은 유익한 것으로 취한다.

 

그러나 안식일을 비롯한 여러 절기와 , 그외 많은 제사법, 음식법들은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여겨 폐한다.

 

율법 아래서는 아내가 60명이고 후궁이 80명인 솔로몬이 그것도 모자라서 또 새로운 여자에게 반해서 쫓아다니는 것(아 6:8) 을 "죄"로 정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자는 그런 일을 결코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자는 "죄냐 아니냐" 차원에서 행동의 기준을 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고전 10:23)라고 말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율법에서 유익한 것이 있다고 해서 율법 전체를 취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혹은 율법 전체는 아니지만,  율법을 그리스도인의 규례로 설정함으로, 십일조를 비롯한 안식일, 음식물법, 각종 그림자 규례까지 슬그머니 교회로 끌어들이고 있다. 율법이 그리스도인의 규례가 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④ 사도들의 서신서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권면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율법인가?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따랐던 가장 신뢰할 만한 제자들의 권면이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삶이 어떠해야 함을 설명한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전하는 주님을 믿는 자들이다. 마땅히 그들의 권면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주님을 섬기는 삶에서 형제 사랑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고기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것은 결코 율법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예가 어떠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봉급을 안 받은 것이나, 장막을 만들면서 번 돈으로 자기 전도팀의 경비를 댄 것이 모두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섬기는 예를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사도들의 모든 권면은 그것을 그리스도인의 율법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삶이 어떠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만일 당신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면, 그들의 권면이 즐겁고 기쁠 것이다.

 

사도행전이나 서신서들의 모든 권면들은 그리스도의 법을 어떻게 성취하는가에 대한 적용들이다.

 

우리가 만일 서신서의 권면을 문자적 율법서로 받아들인다면, 결국 앞서 말한 수학 못하는 학생처럼 될 것이다. 그 문자를 넘어서는 어떤 상황 앞에서도 꼼짝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의 원리를 깨닫고 주님을 섬기는 예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성경에만 국한되지 않고 형제의 간증 속에서도 주님을 섬기는 예를 발견하고 유익을 얻을 것이고, 심지어 우리 생활 속에 일어나는 많은 일 들 속에서도 주님을 섬기는 데 유익한 것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⑤ 구원은 믿음으로, 하늘의 상은 행위로 받는가?

아니다!

오늘날 이러한 잘못된 이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배도로 이끌었는가!

이 교리는 율법주의로 이끄는 관문이다.

 

이 주장의 치명적 오류는 마치 하늘의 상을 받는 행위를 믿음과는 관계가 없는 별도의 것으로 취급한 것이다.

믿음이 없는 행위는 존재할 수 있어도(바리새인들이 그러했다),

행위를 발생시킬 수 없는 믿음은 애초에 믿음이 아니다 

즉 믿음은 행위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심지어 주님과 같은 장소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던 강도는 그가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 23:42)라고 외침으로 그의 믿음의 행위를 드러내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

하늘의 상은  믿음과 분리된 어떤 행위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행위에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의 행위란 바로 "믿음"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우리는 하늘의 상을 받는 것이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하늘의 상은 행위로 받는다는

이 잘못된 교리 때문에 많은 사람이 구원받고 난 뒤에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와 더욱 깊은 교제 속에 있는 것보다는 

봉사나 뛰어난 업적 쌓는데 골몰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제법 종교적으로 성공하여서 큰 교회 지도자가 되고, 큰 단체의 회장도 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의 삶은 배도의 길을 가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더 이상 십자가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 행위, 자기 업적을 의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만해졌고, 그리스도의 자리에 자신이 앉아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내가 한 일을 보라. 내가 이 정도 위대한 일을 했는데, 주님이 나를 모른다고 하지 않으시겠지!"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율법주의의 위험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더 이상 그리스도의 은총을 의지하지 않고 십자가가 아닌 자기 공로를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 5:4) - 이 말씀은 공로주의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이 새겨야 할 말씀이다.

 

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난다-By faith from first to last(NIV)"(롬1:16)이다.

 

이 말씀의 의미는  언제나 봉사나 교회 일보다는 주님과의 관계가 우선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교회봉사보다 주님과의 교제가 우선이며 , 종교사업보다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 우선이다.

 

교회 봉사가 바로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지 모른다.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많은 사람들의 봉사가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공로주의나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허영에서 나온 것임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목격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항상 아래 질문을 해야 하며, 정직하게 "예"라고 대답하기위해

항상 내 모든 믿음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당신의 주님이 맞는가?

당신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는가?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신뢰하고 믿는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하는 봉사, 당신이 가지고 있는 성경지식, 당신이 주장하는 모든 말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출처:숭사리 교회개혁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