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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 영과 혼의 분석

하나님아들 2024. 2. 26. 23:53

영혼 - 영과 혼의 분석 

 

 

○ 영혼의 존재

 

영혼은 영이면서 정신활동이 아니므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영혼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영혼은 분명히 존재하며 이 영혼을 구원키 위하여 말씀을 전하시는 것이라 하신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영혼이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하나는 ‘영적존재로의 혼’이라는 것이다.

즉 혼이 영적 존재이므로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영을 붙여 靈魂이라 하는 것이다.

 

◉ 영과 혼의 의미

영과 혼은 모두 非物質이어서

영과 혼의 구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영과 혼은 동일한 것이라 말할 수 있고 다르다 할 수도 있다.

영과 혼은 둘 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식하지도 못하면서 그 존재가 동일하다 또는 다르다 하는 것이므로

성서를 통해서 알아보는 수 밖에 없다.

 

- 영과 혼의 개념을 알아보자

영은 하나님, 천사, 사단, 귀신 등과 같이 물질에 포함되거나 물질로 인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을 말한다.

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이러한 영은 물질에 구애받지 않고 이동할 수 있으며 영은 물질이나 생물을 지배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나타난다.

이와 달리 혼은 물질 즉 육체에 의하여 존재하게 된다.

혼을 생명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는 혼이 생명과 더불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혼이 무생물에도 있다고 믿기도 했으며 생물 특히 동물들에게 혼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경우 혼이 영적인 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나 정신을 말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서에서 혼은 생명과 동등한 개념으로도 말해진다.

그래서 혼이 떠나면 죽고 혼이 몸에 들어와 있어야 사는 것으로 보았다.

전도서 3:21

인생의 혼[루아흐]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오늘날의 영혼개념은 나면서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생명과 더불어 육체 안에 있다가 죽으면 육체와 분리되어 ‘나’라는 영적 존재가 되는데

이를 영혼이라 하며 성서에서는 이 영혼이 사후에 귀신이 된다는 것으로 보기도 하였지만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귀신은 사단의 일종이고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잠자듯이 있다가 종말 때에 부활되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영이나 혼의 개념을 더 자세하고 정확히 알기 위하여 원어적 개념을 살펴보아야 한다.

 

◘ 루아흐, 네페쉬[프뉴마, 프쉬케]

사람이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다는 주장으로 이분론이라 한다.

또 사람이 육체와 영과 혼으로 되었다는 삼분론이 있다.

이분론, 삼분론의 주장은 성서와의 관계라기보다는 번역으로 인하여 발생한 이론인 것 같다. 왜냐하면 성서에 원어는 헬라어 프뉴마와 프쉬케 두 단어인데 그 두 단어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spritm과 soul 로 하였으므로 이를 토대로 한글번역이 이루어진 것 같다.

히브리서 4장12절을 보자

히4;12 NIV

For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active. Sharper than any double-edged sword, it penetrates even to dividing soul and spirit, joints and marrow; it judges the thoughts and attitudes of the heart.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사람에게 영과 혼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영어 성경에 의한 번역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원어로 본다면 프뉴마와 프쉬케인데 이를 한국 고유의 영혼관념에 맞추어 본다면 프뉴마는 영혼이 될 것이고 프쉬케는 아마도 생명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프쉬케’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동양에는 본래의 영혼관념이 있었는데 이분론자의 주장은 본래 영혼관념과 일치하나 삼분론자의 주장은 본래적 영혼관념과 달라서 혼란스럽다.

특히 삼분론자들은 혼은 땅으로 가고 영이 하늘로 간다고 하여 동양고유의 영혼관념을 무시하고 있으며 성서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관계로 영혼에 관해서 이분론이 옳다,

올바른 영혼관을 가져야 말씀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것이다.

따라서 성서에 기록된 영혼관을 더 살펴보기로 한다.

구약은 히브리어로 쓰여졌으며 영혼으로 번역되는 단어는 루아흐와 네페쉬이다.

두 단어가 모두 영혼으로도 번역되는 것 자체가 당시의 영혼관이 생성초기였음을 알 수있다.

또 신약시대에는 말은 아람어로 하였지만 기록은 헬라어로 되어 있으며 영혼의 헬라어는 프뉴마와 프쉬케이다.

원어로 이해하기 위해서 히브리어나 헬라어 모두를 잘 알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

영혼과 관련된 단어만을 살펴보면 영혼개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히브리어 루아흐, 네페쉬 두 단어가 둘다 영혼으로 번역함은 물론 다른 의미로도 번역되었는데 오늘날로 보면 그렇게 함축적이고 의미가 다양한 말은 없을 것이다.

헬라어 프뉴마, 프쉬케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들 두 단어를 표로 만들었다.


원어 한글로 번역된 예 [장절은 기재치 않음]
구약 루아흐 신, 서늘할 때, 기식있는, 바람, 마음, 기운, 생명의
성품, 정신, 영감, 방향[방,편], 허망한, 중심에, 심령, 생기,호흡, 영혼

네페쉬 생물, 생명, 생령, 사람[자, 명, 인 ]내마음 껏, 누구든지, 정신, , 살, 몸, 자기, 짐승으로, 주검, 시체
스스로, 정력, 성품, 심정,

신약 프뉴마 영, 성령, 영혼, 귀신, 심령, 마음, 중심, 생기, 기,
신령한 것, 심

프쉬케 영혼, 생명, 마음, 목숨, 뜻, 삼천, 명, 심


위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성서시대[구약과 신약이 쓰여지던 시대]에 히브리어 루아흐나 네페쉬, 헬라어 프뉴마나 프쉬케가 오늘날 많은 말들로 번역되었는데 그 번역된 말들은

오늘날에는 개념이 달라서 서로 혼동해서 사용하는 말들이 아닌 것이다.

가령 마음과 생명이란 단어는 혼동될 성질이 아님에도 당시에는 루아흐라는 말로 표현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에는 세분된 언어가 없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한글로 번역하면서 잘못 번역한 것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음 번역은 잘못되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위 구절에서 생령이라고 한 말은 잘못 번역된 것이다.

생령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네페쉬이다. 네페쉬의 정확한 의미는 생물체라고 한다. 생명있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번역하기를 ‘생령’ 즉 ‘살아있는 혼’이라 하였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네페쉬의 번역으로나 우리나라 관념으로나 성서적 관점에서 보거나 생령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영어번역에 ‘living soul.’이라 되어 있다. 이를 번역하면 ‘살아있는 혼’이고 한문으로는 ‘생령’이다

창2;7[KJV]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생령이라 번역해 놓은 것은 한국식 관념에 따른 것도 아니고 당시의 유대관념에 따른 것도 아니다. 네페쉬를 생령으로 번역한 것은 영어를 참고하여 번역한 탓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라는 말은 단순히 ‘사람이 살게[생명체가] 된지라’ 정도로 해야 원어에 충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사후관념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는 혼이나 영을 구별하기 어렵다

영과 혼은 인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존재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 영과 혼의 역할을 말하는데서 확연히 구별되므로

사람이 죽으면 어찌되는가를 즉 사후관을 살펴야 한다.

 

- 구약시대 사후관

구약시대에는 영혼이 영생한다고 보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님에 의해서 영생함을 믿는 신약시대와 다른 사후관이라 하겠다.

그 이유는 창세기 3장에서 알 수 있다.

창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구약시대는 여호와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는 창3장에서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 하신 이후 사후세계에 대한 언급이 없으셨다. 그들은 영생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영원이란 말도 대부분 죽기까지를 말한 것인지 다음세대가 되면 영원은 사라져 버린다.

구약시대에는 죽으면 음부[스올]에 간다고 하였다.

창세기 37:35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구약시대에는 영혼관이 확실치 않아서 루아흐나 네페쉬를 영혼이라는 말로 사용하였다.

그렇다명 음부[스올]이라는 것도 여호와께서 만드시고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라

이방종교의 영혼관이거나 타 민족의 사후세계관을 빌어서 말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당시 유대교 사후세계관이 페르시아 시대의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주장하기도 한다.

구약시대 여호와신앙에는 사후세계에 대한 언급이 없음으로 유대교 신앙은 사후세계에 대한 신앙이 아니었다. 사후세계에 대한 어떤 것이 있어서 그에 따라야 하는 것이라면 모세 율법에 기록되었을 것이며 따라서 서로 있다 없다 논쟁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 이 점은 신약시대의 영생관과 대조적인 것이다.

[마가 복음 12:18] [마태 복음 22;23] [행23;8]에 의하면“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와 같이 사두개인은 영혼이나 부활이 없다하였고 바리새인들은 있다 하였는데 이로 본다면 구약시대의 야훼신앙에서 영혼에 관한 이야기 즉 사후에 관한 말씀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욥기에서도 보면 그 고통 중에 영혼 구원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태어나지 않았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구약시대의 사후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방종교나 철학에서 들어온 사상으로 보여진다. 이는 사울에게서도 볼 수 있다.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죽은 선지자 사무엘을 불러올리도록 한다.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 모양이 어떠하냐 그가 가로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줄 알고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로 분요케 하느냐 “[삼상28;14~15]

이는 당시 죽은 자가 음부에 내려가 있다고 생각한 것[창37;35]과 일치하는 사례이다.

신접자에 의해 보여진 사무엘은 어떤 신에 의해서 나타난 것인가?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신접자를 죽이라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접자가 믿는 신은 여호와는 아닌 것이다.

또 예수님 당시에는 귀신이 등장하는데 이 귀신이 죽은자의 영혼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귀신론 카페 ‘신앙과 신학’의 예수은혜님의 글을 보자

 

- 귀신이 사람의 혼이라 주장 -[예수은혜님의 글에서 -신앙과 신학 카페]

벙어리 귀신은 죽기 전에 벙어리였던 사람의 영으로 귀신은 죽은 사람의 영이다.
daimoni,on [, kai. auvto, h=n] kwfo,n(눅 11:14)
NKJV(신 킹제임스판) a demon, and it was mute
ASV(미국 표준역), a demon that was dumb
NIV(새국제판) a demon that was mute


직역 : 귀신[, 그리고 과거에 였던] 벙어리(과거에 벙어리였던 귀신, 귀신되기 이전에 벙어리)


이런 주장에 반론이 있는데

유대인들이 귀신의 왕 ‘바알세블‘의 힘을 받았다고 하자 예수님은 귀신이라 하지 않고 사단이라 하신다.

마태복음 12:26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의 영혼관을 알 수 있는 구절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종말이 있으며 심판과 부활이 있음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죽은 영혼은 종말의 때에 부활하게 된다 하셨다.

이러므로 구약시대에 영혼이 땅으로 간다거나 귀신이 된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귀신의 왕이라 하기도 하고 거듭나야 된다는 것을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오느냐 하는 등

예수님의 능력 있고 권세 있는 새로운 말씀을 충분히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 말씀은 죽은 자의 영혼이 잠자듯이 있다가 심판 날에 부활한다는 것이다.

물론 바리새파는 부활을 믿었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가는 의심하였다.

때문에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끌려가서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으니 그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생각된다.

마27;22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우리가 성서에서 영혼에 대해 잘못 알게된 이유는 번역상의 문제 외에도 당시의 사상을 무시하거나 모르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혼이라 말하였다면 그 혼은 영생하는 것이 아니라 음부에 내려간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예수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믿지 않았던 것도 사후세계에 대한 말씀이 생소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영생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는 음부라 번역된 스올이 있었는데 이는 죽은 뒤에 영혼이 가는 곳으로 야곱시대부터 계속해서 있어온 사후관이다.

스올을 무덤이라 하기도 하는데 무덤보다는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이 더 적합하다.

무덤도 죽으면 가는 곳이라서 스올이라 볼수도 있지만 스올에서 야곱이 요셉을 만난다 하므로 스올이란 말은 무덤에 한정해서는 뜻이 통하지 않는다.

야곱의 예를 들면 야곱의 아들 요셉이 죽어 입었던 옷만 가지고 왔는데 그런 요셉을 무덤에서 만난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인 스올에서 만난다 한 것이므로 무덤이라는 것은 옳지 않다. 창37장

 

- 신약시대 사후관

신약시대는 전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의거해야 한다.

오늘날 예수님의 말씀과 다르게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후관은 이단이 되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대강 말한 바이지만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잠들어 있다가 종말 때에 심판이 있으며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들을 부활시키신다 하신다.

요한복음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종말상황은 다음과 같으니 이단들의 주장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마24;29~31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사후관이 혼동되기 쉬운 점은 구약시대의 사후관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믿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는 영혼이 스올로 간다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영혼을 종말의 때에 부활시키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육체적 생명은 없어지고 영적 생명을 다시 준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생명의 떡이라 하신 것이 바로 새생명을 의미하신 것이다.

 

◘ 성서구절들의 재해석

 

-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이 구절에서 ‘혼과 영’이라는 단어를 헬라어 프뉴마와 프쉬케를 사용하였다.

프쉬케는 네페쉬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 말이며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생명이라는 의미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영어성경 KJV에서는 ‘soul and spirit,’로 되어 있어 개역한글의 번역과 같다.

따라서 오늘날의 사람구조로 보면 ‘영혼과 마음’이 적합할 것이다.

 

◘ 사람의 구조

영과 혼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구조를 알아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정신이나 영혼의 구조는 신체적 구조처럼 밝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아래 표를 기준하여 영, 혼, 마음, 정신, 생명, 육체와 몸을 설명하기로 한다.

한국어 ①영 ②혼 ③마음 ④정신 ⑤생명 ⑥육체 ⑦몸
영어 sprit soul mind

flesh body
히브리어 루아흐

루아흐
네페쉬
루아흐
네페쉬
루아흐
네페쉬
루아흐
네페쉬
바사르
헬라[그리스] 프뉴마

프뉴마
프쉬케
프뉴마
프쉬케
프뉴마
프쉬케
프뉴마
프쉬케
소마,사릌스


①-② 영과 혼

영은 非物質의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하늘에 있는 천사, 사단, 귀신 등도 영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면서도 영을 발출하신다. 예수님도 영을 발출하시어 치료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단도 영을 발출하는 것 같다.

非物質이면서도 물질에 붙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을 靈이라 한다.

물질에 포함되거나 물질을 통하여 인식되는 非物質의 것이 있다.

이를테면 힘이다. 힘은 물질에 가해서 물질을 이동시키고 변화시키지만 물질자체는 아니다.

또 소리도 공기의 진동을 통해서 인식되지만 작용일뿐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공간도 물질을 통해서 인식되지만 물질이 아닌 것이다.

혼이란 것도 육체에 있는 것이지만 육체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즉 非物質이다.

예수께서 영을 살리신다 했는데 그 영이 곧 혼이다.

구약시대에는 혼이 생명과 결합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생명작용과 혼은 별개인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적 생명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영은 예수께서 주시는 생명을 받아 살게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에게 영과 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이 곧 혼인 것이다.

구약시대에 잘 모르던 시대에 여호와께서 가르쳐주지 않으신 이방사상에 의한 말을 금지옥엽처럼 믿을 필요는 없다.

정리하면 영은 하나님, 천사, 사단 등과 같이 물질에 붙어서 나타나거나 존재치 않는 것을 말하며 혼은 육체에 붙어 있다가 사람이 죽으면 육체를 벗어나 영혼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몸에도 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으니

우리가 성령을 받는다거나 귀신에 씌움을 당했다거나 하면 우리는 성령을 몸 안에 모시거나 또는 귀신의 영이 들어와 있게 된다.

영은 물질이나 생물들 몸에 입출이 자유롭다.

이후부터는 영혼이라 하기로 한다.

영혼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존재하면서 사람의 생각이나 잘잘못을 모두 간직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이 영혼이 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자아가 영혼이 되는 것이라 할 수도 있으나 영혼은 이들과 구분되어 존재한다.

그러다가 죽으면 영혼이 심판을 받는 것이다.

 

영혼은 자아와 구별된다.

자아란 자기가 인식하고 있는 자기인 것이다. 그러나 혼은 내가 모르고 있거나 모르고 한 것, 죄가 되는 것, 선이 되는 것, 기억한 것과 기억치 못한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 잘못알고 있는 것이라도 옳게 바로잡아서 혼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할 때에 잘못한 것이나 죄에 대하여 묻고 벌을 주지 않겠는가

아마도 온전케 되라는 의미가 영혼과 일치되라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영혼과 정신은 구분된다.

정신은 의식이 있고 인식되는 한 정신이지 의식이 없고 인식되지 않으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또 정신은 감각에도 반응하여 아프면 아픈 것을 느끼고 맛 있으면 맛을 느낀다.

이런 것이 다 영혼에 소용되는 것은 아니다. 영혼은 후에 육체를 벗어나므로 육체에 딸린 무의미한 것들은 영혼에 있지 않을 것이다.

영혼이 육체에 딸린 것을 지닌다면 천국에서 행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심판과 부활의 대상인 영혼

영혼이 심판을 받으려면 그가 생전에 지은 죄가 다 기억속에 있어야 그 죄를 인정할 것이다.

죽은 뒤 영혼이 아무 것도 기억치 못하고 고통이나 희락을 모른다면

영원한 불꽃이 무슨 벌이며 하나님 나라에서 희락이 무슨 복이되는가

또 부활을 생각하건대

죽으면 육체적 생명은 땅으로 가서 사라지고 부활시에 새로운 생명 즉 창세기 3;22에서 여호와께서 걱정하시던 생명나무의 생명을 주실 것이며 이는 예수께서도 언약하신 것이다.

이런 모든 일들이 다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니

우리가 믿으면 반드시 이루실 것이므로 진리인 것이다.

 

영혼의 소멸에 대해서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이 말씀을 다르게 해석하면 영혼은 아버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멸하지 못한다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롭게 살면서 믿음을 가진 자는 영생에 들 것이나

그렇지 못한 자는 멸하신다고 하신다.

그러나 영혼을 소멸하신다는 말씀은 영벌을 주신다는 말과 상반된다.

하지만 영원이라는 의미를 달리 본다면 영벌이 있으며 소멸된다는 말이 다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③-④ 정신과 마음

영혼과 자아를 구별하였듯이 영혼과 정신은 다른 것이다.

또한 정신은 마음과도 다른 개념이다.

마음이란 것은 정신활동을 통해서 의지적으로 또는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의 정신이다. 정신이 활동하는데 있어서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정신이라 할 특징적인 정신활동을 하는데 그렇게 특징지어주는 것이 마음이다.

‘그 사람이 말했지’라고 짐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 일정하게 나타남을 의미하는데

그렇게 나타나게 하는 것이 마음이다.

정리하면 마음은 자기 주장이나 감정 등을 표현하는 정신의 패턴이라 하겠다.

예를 들면 꽃을 바라보는데 감각을 통하여 꽃을 식별하고 기억하는 것은 정신활동이다.

그런데 그 꽃이 마음에 든다고 하거나 예쁘다 하는 것은 마음이 표현된 정신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정신 속에 마음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신이란 동적인 것이어서 정신활동이라고 해야 개념에 어울린다.

즉 유성하면 명사이지만 그 유성은 쉴새없이 허공을 달리는 물체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신 하면 정적인 명사로 보이지만 쉴새 없이 감각을 인식하고 사유하고 대상을 판단하는 일을 한다.

정신에는 마음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 오성, 양심, 감성, 기억 등 정신을 이루는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잠자는 시간대에는 활동을 멈추는데 간혹 꿈을 꾸면 잠자는 동안에도 정신활동은 계속된다.

정신이나 마음은 뇌의 활동을 통한다.

정신은 소리나 힘과 같이 작용성으로 나타나는 非物質에 속한다.

 

⑤-생명

생명이란 것은 자율적인 운동과 번식과 음식물의 섭취와 배설작용 등을 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살아있다고 한다. 즉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무생물은 자율적 동작이 전혀 없는 것과 대조된다.

모든 생물들은 섭취와 배설작용과 호흡작용을 한다. 인간 창조과정에서도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시므로 살게 되었는데 바로 호흡작용이라 생각된다.

목숨은 생명과 동의어로도 된다. 동의어로는 피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피에서 찾으신다 하였다.

생명에 반대되는 죽음이란 것은 성서에서는 본래대로 돌아가는 것이라 한다.

창3;13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으로 인하여 구약시대에는 영생사상이 없었다. 또 이 말씀으로 인하여 육체가 받은 생명은 흙으로 돌아가고 생명나무에서 얻지 못한 영생을 예수님께서 주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생명 역시 동적인 개념이다. 숨을 쉬고 있다거나 피가 돈다거나, 움직임이 있다거나 하는 것이 생명의 표현이다. 그리고 또 물질에 붙어서 작용하지만 물질은 아니다.

생명이 사라진다 하여 물질적인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생명은 물질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니라 본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면서 생명을 주신 것이다

 

⑥-⑦ 육체와 몸

肉體라는 말은 肉 과 體의 합해진 말이다. 육은 영어로 flash이고. 體는 body이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여기서 영이라는 말은 하나님 나라에 가서 살아갈 영을 말한다. 즉 혼이다.

육은 살의 개념이다.

몸이란 것은 좁게 말하면 머리, 몸통, 다리 라고 할 때 몸통을 말한다.

그러나 신체 전부를 몸이라고도 한다.

몸은 살을 가진 것을 표현한 말이 아니라

어떤 재료이든 그 형상에서 주요부분을 몸이라 표현하고 있다.

연필에도 몸이 있고 자전거에도 몸체가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영적인 것에도 몸이라 말한다.

가령 천사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경우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간략하나마 인간의 영육간 구조를 살펴보았다.

히브리어도, 헬라어도 모르고 영어도 모르는 데

설명상 필요한 부분에서 부득이 원어 몇 단어를 사용하였다.

영혼이란 것을 충분히 이해하였기를 바라며 성서를 볼 때에 이러한 구조를 참조하여 이해한다면 크게 틀리지 않고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 나라

 

-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자와 작은 자가 있다.

마태복음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작다 크다가 어떤 권세로 주어진다면 큰 자는 높은[많은] 권세가 작은 자는 낮은[적은] 권세가 주어진다 생각된다.

 

- 하나님 나라는 순종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였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째서 순종인가 하면 언약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언약은 쌍방의 이행에 의해서 성립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약에 대해서 자발적 이행 즉 순종을 해야한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성경도 알지 못하고 언약 내용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 즉 구원복음을 믿는 것이 곧 언약에 참여함이다.

언약에 참여한 자는 그 모든 언약내용을 숙지하고 이행하여야 한다.

 

-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살펴야 한다.

씨 뿌리는 비유 [마13;18 이하] 를 보면 하나님 나라[천국]에 갈 사람들은 지상에서 좋은 씨를 받아서 잘 자라서 결실을 맺으면 종말에 추수 때에 거두어 들이신다는 것이다.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 또는 하나님의 백성,

친구, 또는 예수님과 하나된 자들이라 표현한다.

 

- 하나님 나라에서는 천사들과 같다.

마태복음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천사들은 말도하고 또 하나님의 명을 받아 시행하는 자로 마치 사람과 같은 언행을 한다.

이를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본시 하나님의 ‘우리형상’을 따라 지어졌고 또 선악과를 먹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므로 [창3;22]

우리가 영생을 받으면 능력주시는 만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 하나님 나라의 행복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의와 평강, 喜樂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이 말의 개념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