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상식 이야기!!

[스크랩] 성경해석에 있어서 문학적 특성과 장르의 중요성

하나님아들 2012. 7. 25. 18:01

 

 

 

  

       성경해석에 있어서 문학적 특성과 장르의 중요성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성경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이 주어졌을 때의 문학적 양식, 곧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성경본문이 보여주고 있는 문학적 특성과 장르에 대한 이해(理解)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의 역사적 배경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재구성하는 것도 어렵지만, 성경본문은 지금 우리가 여기서 얼마든지 정확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성경의 문학적 특성과 장르에 대한 이해가 깊으면 깊을수록 성경해석은 싶고, 객관적이고, 바르게 진행될 수 있다.

 

 반대로 성경에 대한 문학적 특성과 장르에 대한 이해가 빈약하면 빈약할수록 그 사람의 성경해석이 주관적이거나 독단적이 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해석의 대상인 성경의 특성에 따라 성경을 접근하고 해석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뜻한다. 사실상 성경의 역사적 정황에 대한 연구도 본문이 정해졌을 때 가능한 것인지 본문이 정해지지 않는다면 그 본문에 대한 역사적 정황에 대한 연구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그 사람에 대한 내 자신의 선입감이나 주관적인 판단을 보류하거나 배제하고, 우선적으로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이해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 사람을 나의 삶의 세계로 일방적으로 끌어 들여 그 사람을 평가하고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도 내가 그 사람의 삶의 세계로 들어가서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가지고  교육적 배경, 환경, 가정배경, 직장, 친구, 종교, 취미생활 등에 대한 선 이해가 필요할 것이고, 그 사람이 자신을 내개 알려주는데 귀를 기울여야 하고, 무엇보다도 그 사람을 나와 똑같은 인격을 가진 자로 알고 그 사람을 사랑하고 수용하려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할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성경의 문학적 특성과 장르이해는 바로 성경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열린 자세로 각 성경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문학적 특성에 따라 그 성경을 접근하고 이해하려는 것을 뜻한다.  

 

    성경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개신교는 구약 39권, 신약 27권 모두 66권으로 되어 있는 성경을 정경(正經)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염두에 두여야 할 것은 교회가 66권을 정경성경으로 받아들였다고해서 마치 교회가 정경을 결정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여서는 아니된다. 로마 캐토릭교회의 경우처럼, 그리고 오늘 날 여러 개신교교 교단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교회가 결코 항상 무오한 것은 아니다. 교회도 실 수 할 수 있고,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따라서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교회가 모오한 성경을 결정할 수 있는 권위나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각 성경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무오하고, 최고의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성경을 결정할 수 있는 권위는 성경외에 없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성경의 자증성 혹은 충족성이라고 부른다. 각 성경이 성경이 되는 것은 그것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인가에 있는 것이지 교회가 인정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캐토릭 교회가 정경구약성경의 부분으로 받아들인 여러 구약가경들을 정경성경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것은, 설사 그들이 말라기 이후 신약시대 이전 까지의 중요한 이스라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염감된 신적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이미 그 자체 영감된 신적권위를 지니고 있는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하여금 그들을 정경성경으로 받아들이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개신교회가 받아들인 정경성경인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을 그 내용과 문학적 특성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구약성경(39권)

         모세오경 5권(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 12권(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혜미야, 에스더)

         성문(혹은 시가)서 5권(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선지서 17권

             대선지서 5권(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소선지서 12권(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신약성경(27권) 

         복음서 4권(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역사서 1권(사도행전)

         서신서 22권

             바울서신 13권(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                        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일반(혹은 공동)서신 8권(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 1서, 요한 2서, 요한 3서, 유다서)

         예언서 1권(요한 계시록)

 

    이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한권의 책이지만 좀 더 내부적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66권이나 되는 많은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66권의 책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계시라는 측면에서 하나님께서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한권의 통일된 “성경책”(the Bible, or the Holy Scripture)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내용과 기록의 과정과 구체적인 독자 면에서 보면 성경은 적어도 40명 이상이나 되는 많은 저자들이, 여러 다른 시대에 걸쳐, 예를 들면 모세오경은 약 주전 1500년 전에, 요한 계시록은 약 주후 100년경에, 여러 다양한 문화와 환경에 살던 독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알고 있는 언어로, 즉 구약의 경우에는 히브리어와 아람어(다니엘서와 에스라서 일부)로, 신약은 코이네 헬라어로, 그들에게 익숙한 문학적 양식(장르와 구문)으로 기록하여 전수하였다.  

 

    이처럼 성경의 역사적인 형성과정 면에서 보면 성경은 하늘에서 직접 기록되어 땅에 떨어진 책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시대에 살았던 인간저자들과 다양한 시대와 문화에 살던 다양한 사람들(독자)에게 다양한 문학적 양식을 통하여 주어진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구약성경을 말하면서 종종 “모세가 말하기를”, “이사야가 말하기를”, “다윗이 가로되”라고 하면서(마 19: 8; 막 7:6, 10; 10:3; 눅 4:17; 24:27), 구약 성경의 인간 저자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신약의 경우 베드로는 바울의 서신들과 관련하여,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섰고”(벧후 3:15)라고 말하면서, 바울서신의 바울저작권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이 원저자(原著者)임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모세든, 이사야든, 마태든, 바울이든 얼마든지 인간저자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인간저자와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통하여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럼으로 하나님이 주신 방법대로 성경을 접근하고 해석한다는 것은 정당하고 필요하다. 만일 누가 하나님이 주신 이와 같은 방법을 도외시하거나 고려하지 않고, 성경을 통해서 오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직접 들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보면 그것이 가장 적절하고 신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방법을 무시하는 것이며,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성경에 가져가서 마치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처럼 착각하게 할 수 있는 위험스러운 것이다. 각 성경의 특성에 따라 각 성경의 본문을 접근하고 해석하려는 것은, 마치 시(詩)는 시가 가진 특성에 따라, 수필이나 소설은 수필의 특성에 따라, 한 인물을 생애를 보여주는 전기(傳記)나 다큐멘터리는 그 고유한 특성에 따라 접근하고 해석하려는 것처럼, 율법서는 율법서의 특성에 따라, 예언서는 예언서의 특성에 따라, 사가서는 시가서의 특성에 따라, 역사서는 역사서의 특성에 따라, 비유는 비유의 특성에 따라 접근하고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를 소설이나 다큐멘터리처럼 접근하고 해석해서는 아니 되는 것처럼, 예언서를 역사서처럼, 시가서를 율법서처럼, 서신서를 비유처럼 접근하고 해석하여서는 아니 된다.

 

    성경은 우선적으로 문학이라는 점에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의사전달의 수단인 언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성경은 여러 개의 단어로 구성된 문장, 여러 개의 문장으로 되어 있는 단락, 여러 개의 단락으로 구성된 문단, 여러 개의 문단으로 구성된 개별 성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어 없는 문장, 문장 없는 단락, 단락 없는 문단, 문단 없는 성경을 생각하기 어렵다.     이처럼 우리는 개별 성경이나 혹은 개별성경의 특정한 문장이나 문단을 해석할 때 우선적으로 그 성경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학적 양식이나 장르에 주목하여야 한다. 이것은 편지양식으로 쓰여진 성경본문을 역사적인 네러티브나 혹은 시가서나 예언서의 문장이나 혹은 비유처럼 접근하여 해석하려고 시도하지 않아야함을 뜻한다.

 

  오히려 시가서는 시의 특성을 따라, 편지는 편지의 특성에 따라, 예언서는 예언서의 특징을 따라 접근하거나 해석되어야 함을 뜻한다. 그 다음에 각 문장이나 문단에 나타나고 있는 흐름과 반복되거나 핵심적인 단어에 주목하여야 한다. 빌레몬서가 서두인사, 감사문단, 편지의 본론부분, 그리고 편지의 결언인사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대다수의 바울의 편지들이 이와 유사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각 문단을 형성하고 있는 내용들은 서로 동일하지 않다. 왜냐하면 편지를 받게 되는 수신자들의 상황이 동일하지 않고, 바울의 목적도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문단을 구성하고 있는 문장이나 각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절이나 구, 그리고 단어들이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예를 들면, 요한 1서 2:15-17의 경우, 사도 요한이 “세상”이란 말을 일곱 번 이상이나 부정적으로 사용하여 독자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세상을 사랑하거나 동화되지 않아야 할 것을 강조한다. 반면에 고린도후서 1:3-7의 경우에는 바울이 “위로”라는 말을 10번 이상이나 사용하여 바울과 고린도교인들이 그리스도가 주는 위로를 통하여 서로 일체가 되었음을 강조한다. 반면에 바울은 갈라디아서 5:19-23에서는 먼저 15가지의 육체의 일을 언급하고, 그 다음에 대조적으로 9가지의 성령의 열매를 언급하여 진정한 크리스천의 삶은 전자가 아닌 후자임을 강조한다. 육과 성령, 죄와 구원, 복음과 율법, 죽음과 생명, 빛과 어둠과 같은 대조법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성경 본문들을 살펴 일 반복되는 단어나 대조법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편 1편매를 언급복 언급사람과 악인의 비교, 잠언 15:15가⃀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내어 쫓으나, 거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의 경우처럼(역시 로마서 6:23; 요 3:1윶과 원인과 결과의 문장들, 고린도후서 5:175가⃀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를 으면(조건 “위굜언급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며, 새 것이 되었도다”(결과)의 경우처럼 조건과 결과를 강조하는 문장들(예를 들면 신 28:1)도 많이 나타난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 그성경 본문을 구성하는 단어나 구, 절과 문장의 배열 형식 등에를세심한 주의를 하면 할수록 그 성경본문을 정확하게 읽고 그 주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주님의 숲
글쓴이 : 은총가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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