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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싸움이 무엇인가? 로마서 7장 14-25절 / 정진권 목사 1. 덴마아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골의 인간의 실존 세 단계설 제1단계는 심미적(審美的, estetic) 실존의 단계입니다. 실존의 2단계는 윤리적(倫理的) 실존단계입니다. 실존의 3단계는 종교적(宗敎的)실존의 단계인데, 타력 구원의 종교는 인간은 자기를 구원할 능력이 내재되어 있지 않다고 인식하고, 인간이 구원받으려면 절대자의 절대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따라서 키에르케고르는 온전한 타력구원의 종교는 그리스도교뿐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2. 탕자의 비유 보면 종교적 단계의 두 차원 큰 아들은 아버지의 집에서 근본적인 삶의 변화가 없이 아버지의 기득권을 누리는 자력구원 모델입니다.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와 항상 있으면서 부지런히 일하고, 가정을 지켜온 모범적인 효자의 모습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던 큰 아들은 자력구원의 단계(=종교적 실존의 A단계), 즉 일반적 종교인의 삶입니다. 성경은 큰 아들을 모델로 제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아버지의 재산을 자지고 먼 나라에 가서 탕진하고 돌아온 작은 아들을 그리스도인이 지향해 나갈 삶의 패턴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작은 아들은 자기 실존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짐승의 아들이 되어 돼지우리에서 사는 절망적인 자아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즉시 그 절망을 딛고 결단하고 일어셨습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여 갔습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종의 위치로 돌아가리라! 아버지는 거지가 되어서 돌아온 아들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저 멀리서 돌아오는 아들을 아들보다 먼저 발견하였습니다. 달려가서 아들을 안고 입 맞추고 집으로 들여 옷을 갈아입히고 신을 신기고 반지를 끼워주고, 죽었던 아들이 돌아왔다고 동네 사람을 불러 잔치를 배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사단에 사로잡혀 사는 인생이 죄를 극복하고 영생의 기쁨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지체 속에 있는 육신의 소욕을 사로잡고 인간을 지옥으로 끌고 가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죄를 도말하심으로 영생에 이르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작은 아들은 탕자가 되었다가 집에 돌아와 아버지의 은혜로 다시 아들의 자격을 회복하는 타력구원의 모델입니다. 3. 기독교는 자력구원(自力救援)의 종교가 아니다. 내 의지와 결단과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믿는 타력구원(他力救援)의 종교입니다. 바울은 자력구원의 한계점을 인식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실존 상황을 깊이 있게 통찰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육신의 지체 속에 숨어있는 원죄의 근원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육체 속에는 선을 행할 의지는 있으나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악을 지향해 가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본래적 존재가 있는가하면, 내 지체 속에 또 하나의 내가 있어서 악을 행하기를 소원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로마서 7장24절.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사단에게 사로잡힌 인간의 의지는 아무리 죄를 짓지 아니 하려고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법은 율법이 아닙니다. 양심의 법이 아닙니다. 도덕적인 윤리의 법이 아닙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로마서 8:5-6입니다. 타력 구원의 종교는 인간은 자기를 구원할 능력이 내재되어 있지 않다고 인식하고, 인간이 구원받으려면 절대자의 절대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따라서 키에르케고르는 온전한 타력구원의 종교는 그리스도교뿐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4. 탕자의 비유 보면 종교적 단계의 두 차원 큰 아들은 아버지의 집에서 근본적인 삶의 변화가 없이 구태의연하게 신앙의 길을 가는 자력구원모델이고, 작은 아들은 탕자가 되었다가 집에 돌아와 아버지의 은혜로 다시 아들의 자격을 회복하는 타력구원의 모델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던 큰 아들은 자력구원의 단계(=종교적 실존의 A단계), 즉 일반적 종교인의 삶입니다.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와 항상 있으면서 부지런히 일하고, 가정을 지켜온 모범적인 효자의 모습입니다. 유교적인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성인군자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큰 아들을 모델로 제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아버지의 재산을 자지고 먼 나라에 가서 탕진하고 돌아온 작은 아들을 그리스도인이 지향해 나갈 삶의 패턴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작은 아들은 자기 실존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짐승의 아들이 되어 돼지우리에서 사는 절망적인 자아를 보았습니다. 즉시 그 절망을 딛고 결단하고 일어셨습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여 갔습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종의 위치로 돌아가리라! 단호히 과거를 결단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전향해 가는 탕자가 성경이 제시하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입니다. 아버지는 거지가 되어서 돌아온 아들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집나간 아들은 죄는 찾기 쉽고 간단합니다. 그는 아버지를 욕보였고, 방탕한 죄인으로 살았습니다. 율법을 어겼지만 기다리시는 아버지입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들켜서 돌에 맞아 죽을 수 있으니 기다립니다. ➤신명기 21장18-21절 “18. 어떤 사람에게 고집이 세고 반항하는 아들이 있는데 그가 자기 아버지의 음성이나 자기 어머니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들이 징계해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거든 19.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를 붙잡아서 그를 데리고 자기 고장의 성문에 이르러 자기 도시의 장로들에게 나가 20. 자기 도시의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아들은 고집이 세고 반항하며 우리의 음성에 순종하려 하지 아니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요 술주정뱅이라, 하거든 21. 그의 도시의 모든 사람이 그를 돌로 쳐서 죽일지니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서 악을 제거할지니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저 멀리서 돌아오는 아들을 아들보다 먼저 발견하였습니다. 달려가서 아들을 안고 입 맞추고 집으로 들여 옷을 갈아입히고 신을 신기고 반지를 끼워주고 주인의 아들로 회복시키십니다. 죽었던 아들이 돌아왔다고 동네 사람을 불러 잔치를 배설하고 아들인 것을 선포합니다. 작은 아들이 바로 타력구원의 단계인 기독교적 실존에서 사는 삶입니다. ➤“19. 이제 우리가 알거니와 율법이 어떤 것들을 말하든지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나니 이것은 모든 입을 막아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서 유죄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되느니라.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 곧 율법과 대언자들이 증언한 의가 드러났느니라. 22.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인하여 모든 자에게 미치고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거기에는 차별이 없느니라.”(롬 3:19-22)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만 사단에 사로잡혀 사는 인생이 죄를 극복하고 영생의 기쁨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사단은 지체 속에 있는 육신의 소욕을 사로잡고 인간을 지옥으로 끌고 가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죄를 도말하심으로 영생에 이르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5. 기독교는 자력구원의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자력구원(自力救援)의 종교가 아니고, 내 의지와 결단과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믿는 타력구원(他力救援)의 종교입니다. 바울은 자력구원의 한계점을 인식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실존 상황을 깊이 있게 통찰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육신의 지체 속에 숨어있는 원죄의 근원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육체 속에는 선을 행할 의지는 있으나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악을 지향해 가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본래적 존재가 있는가하면, 내 지체 속에 또 하나의 내가 있어서 악을 행하기를 소원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로마서 7장 14-25절 “14. 우리가 알거니와 율법은 영적이나 나는 육신적이어서 죄 아래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인정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내가 원하는 것 즉 그것은 내가 행하지 아니하고 내가 미워하는 것 즉 그것을 내가 행하기 때문이라. 16. 그런즉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내가 행하면 율법이 선하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율법에 동의하노니 17. 그런즉 이제 그것을 행하는 자는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내가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그것을 어떻게 행할지는 내가 찾지 못하노라. 19. 이는 내가 원하는 선은 내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내가 원치 아니하는 악을 곧 그것을 내가 행하기 때문이라. 20. 이제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내가 행하면 그것을 행하는 자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런즉 내가 한 법을 발견하노니 곧 내가 선을 행하기 원할 때에 악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가 속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들 안에서 다른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내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내가 보도다. 24.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런즉 이와 같이 내 자신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되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바울은 육체 아레 있는 것을 탄식하며 영적전쟁의 곤고함을 고백하였습니다. 인간의 의지가 왜곡되어 아무리 율법을 행하려고 해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 속에 없습니다. 인간 속에는 죄악을 제어할 만한 기능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미 죄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 속에서도 성령과 악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였습니다. 인간의 지체 속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하는 신앙적 의지를 사로잡고 죄악의 길로 끌고 가는 세력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 세력이 사단입니다. 사단에게 사로잡힌 인간의 의지는 아무리 죄를 짓지 아니 하려고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법은 율법이 아닙니다. 양심의 법이 아닙니다. 윤리도덕이 아닙니다. 6. 죄인을 구원할 전적타자(全的他者)가 계시다 바울은 이런 작살 맞은 실존 인간을 구원할 전적타자(全的他者)가 계시니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전적인 전향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런즉 이와 같이 내 자신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되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 7장25절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는 것은 성령의 법입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하면 할수록 우리의 육체 속에 있는 죄악은 점점 줄어듭니다. 나중에는 성결의 단계에 올라가고, 그리스도인의 완전(完全)에 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영접하고 모시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이 누구입니까? 내 안에 영적인 자아가 세워진 사람입니다. 바로 성령이 임하심을 체험한 성도이며, 영적 전쟁을 하게 됩니다. 육신의 소욕을 따르는 것은 육신의 자아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영적인 자아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속에서 육신의 자아와 영적 자아가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이 다르지 않으면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영적 전쟁의 선포입니다. 영적전쟁을 한다는 것은 영적자아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거듭났다는 증거입니다. 영적인 자아가 형성이 된 사람, 즉 거듭난 사람은 영적인 눈이 열려 세상을 볼 때 하나님의 영과 마귀의 영의 싸움이 치열하게 느껴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것을 볼 뿐 아니라 악령이 역사하는 현장을 보는 사람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싸움에 대하여 “8.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10. 그러나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부르사 자신의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신 분께서 너희가 잠시 고난을 받은 뒤에 너희를 완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고 정착시키시리니 11. 그분께 영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벧전5:8-11) 7. 영적전쟁을 계속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과 싸우는 사람과 대대로 싸워주시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이는 그가 이르기를, {창조주}께서 아말렉과 대대로 싸우리라고 {창조주}께서 맹세하셨다. 하였기 때문이더라.” 출애굽기 17장16절입니다. 아말렉는 누구입니까? 밖에 있는 다른 민족이 아니라 아말렉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 에서의 자손입니다. ➤창세기 36장12절입니다.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가 엘리바스에게 아말렉을 낳으니라.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아들들이더라.” 밖에 있는 적이 아니라 안에 있는 적입니다. 아말렉은 육체입니다. 내 안에 있는 죄입니다. 내 육신 속에 숨어 있는 정욕과 탐심입니다. 거짓말 하는 영입니다. 영적 싸움은 자기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죄와 싸움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말렉과 영적 전쟁을 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아말렉과 싸우는 곳에 하나님이 싸워주십니다. 예컨대, 다윗은 아말렉을 끝까지 따라가서 진멸한 사람이고(삼상 30:18-20),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물질에 대한 탐심 때문에 아말렉 사람 아각을 살려준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15장 7-9절입니다. “7.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네가 이집트 맞은편에 있는 수르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족속을 치고 8. 아말렉 족속의 왕 아각을 산 채로 사로잡으며 칼날로 그 온 백성을 진멸 하니라. 9. 그러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또 양과 소와 살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그것들을 진멸하려 하지 아니하며 다만 나쁘고 가치 없는 것만 다 진멸 하니라.” 영적전쟁을 포기하는 순간부터 아무리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세상적인 가치관을 그대로 가지고 세상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밖에 있는 사단과의 싸움은 잘하면서 내 안에 있는 적을 보지 못하고 영적 싸움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6장 10-17절 “10. 끝으로 내 형제들아, [주] 안에서와 그분의 강력한 권능 안에서 강건한 자가 되라. 11. 너희가 마귀의 간계들을 능히 대적하며 서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지 아니하고 정사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과 맞붙어 싸우느니라. 13. 그러므로 너희가 악한 날에 능히 버티어 내고 모든 일을 행한 뒤에 서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를 동여매고 의의 흉갑을 입으며 15. 화평의 복음을 예비한 것으로 너희 발에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취하여 그것으로 너희가 능히 그 사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끄며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 우리 모두 성령님과 동행 하므로 영적으로 승리 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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