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암 1:2)
“저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음성을 발하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애통하며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아모스가 북 이스라엘에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한 때가 1절에 나오듯 "지진 전 이 년"입니다. 슥14:5에도 나오듯 아주 큰 지진이었습니다. 아모스가 때를 말하면서 지진을 언급한 것은 역사적 사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징성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엎으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꼭 그대로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예언한지 40년 만에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모스와 같이 깨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모스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느냐의 차이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음성이 여러 각도에서 임해오고 있는데도 깊이 듣지 않았습니다. 거짓평화를 말하는 자들의 말에만 기울였지 참 선지자의 경고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보았고 느꼈습니다. 본문을 연구하다 보니 2절 말씀의 배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 듣는 법을 알 수 있더군요.
이 말씀을 드리기 전에 아모스서에는 히브리 시의 대구법(parallelism)이 많은데, 대구법이란 비슷한 표현을 중복 배치하여 의미를 더 정확하게 하고 강조하는 걸 가리킵니다. 2절에도 "시온에서부터"와 "예루살렘에서부터"라는 말이 서로 대구를 이룹니다. 그리고 "부르짖으시며"와 "음성을 발하시리니"라는 말, 또 "목자의 초장"과 "갈멜 산 꼭대기", 그리고 "애통하며"는 "마르리로다"와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음성은 어떻게 듣나요?
1. 마음에서 들립니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어디에서 들려왔나요. 여기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예루살렘에서부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북 이스라엘로 분립했던 여로보암 1세가 정한 대로 단과 벧엘 두 곳에서 금송아지 세운 단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사람들은 그것이 정통신앙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이렇게 외칩니다. “하나님은 너희들의 생각처럼 단과 벧엘에 계신 것이 아니라 시온 즉 예루살렘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즉 너희가 단과 벧엘에서 아무리 여호와를 향한 종교 행위를 하고 많은 제물을 거기 드린다 할지라도 그건 소용없는 짓이라는 말씀입니다.
좁은 의미에서 북 이스라엘이 육이라면 유다는 영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원하지만 그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은 음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육으로만 들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직접 나타나시거나 육체의 귀로 눈으로만 들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 마음에서 들려옵니다. 그러므로 우러나는 마음의 생각을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에는 자기 혹은 타인 혹은 사단의 음성도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음성도 있다는 걸 알고 포착하셔야 합니다.
2. 느낌과 소원으로도 나타납니다.
아모스는 여호와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어떤 소리였나요? 본문을 보면 “부르짖으시며", "음성을 발하시리니” 그랬습니다. 여기 “부르짖으며”는 사자가 발하는 표호 하는 음성을 나타냅니다. 사자가 한 번 부르짖으면 산천초목이 떨고 산천의 동물들이 떱니다. 이처럼 아모스는 여호와의 음성이 마치 사자가 부르짖는 소리와 같다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을 멀리한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모스는 그 두려움을 자기 영혼으로 체험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느낌과 소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빌 2:13에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했습니다. 남을 위해 기도할 때도 하나님의 심정이 감지되기도 하고 기도 받는 자의 심정이 감지되기도 합니다. 바울은 예수의 마음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때론 하나님의 긍휼함을 느끼고 때론 슬퍼하심 때론 기뻐하심 때론 노여워하심을 느낍니다.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면 바로 예언처럼 됩니다. 그래서 영적 지각도 무척 중요하고 또한 그것을 언어로 표현해 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탄이 주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도 있어요. 사람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면 잡힌다고 말했지만 바울은 자기 영혼 속에서 잡히더라도 예루살렘에 가야 한다는 뜨거운 열망이 있었기에 아무도 그를 막지 못했습니다. 아모스의 마음에 느껴지는 하나님의 엄위하심 그렇게 하나님의 음성이 열망으로도 나타납니다.
3. 완성된 성경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여호와의 음성을 들은 아모스는 괴로웠습니다. 왜 괴롭고 답답했을까요? 여기 본문이 암시하는 사자의 부르짖음에 그 답이 있습니다. 사자가 언제 부르짖을까요? 사자가 먹이를 추적할 때는 자세를 낮추고 소리 없이 접근합니다. 그러나 일단 먹이를 발로 움키는 순간부터 으르렁거립니다. 먹이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심리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사31:4에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그 식물을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라 했습니다. 암3:4에도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고야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했습니다. 이처럼 이미 확정적인 내용의 음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패역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뭐 무슨 일 있겠느냐 하지만 이미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게 된바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완성 형태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일까요> 바로 신구약 66권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좋지만 가르쳐준 말씀을 의심하며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완성된 하나님의 음성이기에 그대로 믿고 받아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했듯 완성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그대로 믿고 영접해 드리면 나의 모든 것에서 모든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위한 모든 것이 이미 다 이루셨기에 우리는 그를 구주로 믿고 그 분을 믿음과 사랑으로 깊이 모셔 들이면 모셔들인만큼 그의 생명과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사자가 먹이를 움키고 표호하듯 진리를 알고 믿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힘차게 예배하는 것입니다.
4. 섭리적 환경으로 나타납니다.
선지자 아모스는 보았습니다. 장차 될 이스라엘 산하를 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사자 같이 그리고 뇌성 같이 음성을 발하신 결과가 보였습니다. "목자의 초장이 애통하며 갈멜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뇌성이 발하면 비가 와야 합니다. 큰 비가 와야 합니다. 그런데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가물어서 마릅니다. 초장이 애통한다는 것은 목자도 짐승도 풀도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입니다. 목자의 초장은 갈릴리 오른편 바산을 일컫는 말입니다. 아주 비옥한 지대입니다.
어느 정도 비가 오지 않나요? 갈멜산 꼭대기가 마르도록, 갈멜산은 이스라엘에서 강우량이 가장 많은 곳입니다. 년 평균 1200미리 정도니까 우리나라만큼 많은 특별한 곳입니다. 그러니까 갈멜산이 마를 정도라면 이스라엘 전역은 어떠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완전 사막이 따로 없게 되는 나타날 황패한 환경을 아모스는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냥 땅의 황패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은 섭리적 환경을 통해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만나든지 우연으로 돌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과학적으로만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생각해야 합니다. 더 큰 은혜를 주시려고 범사에 감사한 일일수도 있고, 회개하라는 사인일 수도 있고, 어떤 진리를 경험시키시기 위한 교육적 섭리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우연으로 돌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 듣는 다양함은 이 외에도 더 많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십니다. 미워하십니다. 공의로우시고 사랑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죄를 반드시 벌하셔야 하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예수 잘 믿고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며 아모스처럼 하나님 음성을 다양하게 듣고 경성할 줄 아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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