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카페에서 한동안 활동하셨던 미국에 계신 어느 목사님께서 메일을 보내오셨습니다.
한국에 많은 목회자분들께 7년대환란은 허구라며 사명감을 가지고 전하신다고 하십니다.
7년대환란이 과연 허구일까요?
70이레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잘 알아 이런 미혹에 빠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올해4월에 한국에 나가 한달간 15,6 목회자 세미니와 교회에서 집회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했던 내용은 첫째 선악과의 비밀과 7년 대환란의 허구성을 전하고 돌아왔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선악과의 비밀을 듣고는 너무도 깊은 하나님의 섭리에 놀라고 7년 대환란의 허구성을 듣고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시한번 부탁드립니다.-중략-
수많은 목사들이 듣고 이해를 하고는 다시 나오기를 바란다는 연락을 얼마전에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한국에서 목회자를 상대로 세미나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부디 참고 하시고 바르게 수 많은 회원들을 인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ㅇㅇㅇ전목사가 LA에서
다니엘의 70 이레 설명 그래픽
아직 다니엘의 70 이레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서
척 미슬러 목사님 설명을 그래픽으로 구성했습니다. 특히, BC701년에 히스기야왕이
1년을 360일에서 365일로 바꾼 것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환란전 휴거-척 미슬러 목사님
다니엘 70이레 도표 입니다.<카일짹>
최근에도 보면 성경으로 계산은 하지 못한다 해도 나름 기도생활 많이하시고 주님에게 열심을 품고 교통하신다 하시는 분들도 특정년도를 제시하면서 휴거의 때를 말하다가 낙방을 하는 것도 보게 됩니다.
신명기 18:22절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찌니라"
그럼, 왜 그렇게 낙방들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기초가 되고 핵심이 되는 다니엘서의 칠십(70)이레를 사람의 지식과 견해를 갖고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칠십(70)이레가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 때의 휴거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개중에는 "그런 것은 알 필요 없어. 주님이 핵심이지, 그런 해석이 무슨 필요야?"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믿는 우리 자녀들은 내 구원과 내 소원성취에만 급급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하에 일어나는 주변 일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더더욱 깨어 있을 수 있고, 남들에게도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먼저는 우리가, 다니엘과 관련해서 성경이 얼마나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인지 예언성취를 통해서 살펴보고 본문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갈리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은 BC 721년에 앗수르에 의해 망하게 됩니다. 남유다도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망하게 됩니다. 남유다는 바벨론의 단번의 침공에 의해 망한 것이 아니라 총 세 차례의 침공으로 망했습니다.
첫번째 침공은 BC 606년 또는 BC 605년입니다. 성경의 년수를 계산하다보면 대략 1년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산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신년이 오늘날 달력으로 9월입니다. 그래서 어느 시점으로 잡으냐에 따라 1년정도의 차이는 있겠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간 지 70년이 다 되어갈 즈음에 예레미야서를 읽게 됩니다.
단 9:2절에 보시면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예레미야 25장 11절에도 보시면, 이스라엘이 70년만에 풀려날 것을 예언되어 있습니다.
통치시대가 바벨론에서 바사로 바뀌고나서, 바사왕 고레스 때에 이 말씀이 성취됩니다.
에스랴 1:1절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이에 이스라엘은 BC 536년에 1차 포로귀환을 하게 됩니다. 자 그럼 계산해 봅시다.
남유다가 포로로 잡혀간 때는 BC 606년(605년)입니다. 70년만에 귀환하게 된다 예언하였으니 606-70 = 536년이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도 정확하게 BC 536년에 남유다는 포로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게다가, 그 때로부터 약 200년 전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은 예언을 하였습니다.
44:28절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이방 왕, 고레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하셨고, 그 분의 뜻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당시로서는 너무나도 파격적인 오늘날의 마지막 때의 예언을 받게 됩니다. 그는 어째서 그러한 예언을 받는 큰 은혜를 누리게 되었을까요? 위의 포로귀환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서의 예언을 발견하고 나서 곧 1, 2년 후에 이루어질 예언인지라 하여 기뻐 날뛰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서 9장 3절~ 보시면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다니엘은 백성들의 중심이 아직 회개되지 않은 것을 알고서 백성을 대신하여 중심의 자복과 통회를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히게 된 것은 바로 그들의 죄 때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다니엘은 중심의 통회자복과 중보기도를 올림에,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뻐받으시고 다니엘에게 그 예언성취와 더불어 오늘날 일어날 마지막 때의 징조까지 보시게 하시고 예언케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칠십(70)이레 예언입니다(다니엘 9:24).
그럼 지금부터 칠십이레가 무엇인가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는 관련구절 다니엘서 9장 24~27절까지 적어보겠습니다.
24절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25절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찌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26절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27절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24절을 보시면, 허물이 마쳐지고 죄가 끝나고, 그 죄로 인한 심판은 영원히 받을 것이요, 의에 거한 자는 영원히 의가운데 거하게 되고 모든 예언과 이상이 성취된 시점입니다.
게다가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은 때 즉, 공중권세 잡은 어둠의 영들의 시대는 완전히 끝나고 인간섭리도 끝맺음을 맞고 예수님께서 평안과 사랑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때를 의미합니다.주님의 완전 통치시대인, 이 때가 바로 칠십이레가 지나고 나서야 이루어진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럼 칠십이레를 간단히 풀어보겠습니다.
한 이레는 7년을 말합니다. 고로 칠십이레란 70 X 7일 = 490년을 말합니다. 24절의 예언이 그럼 490년이 지난 뒤에 이루어졌나요? 다니엘이 이 예언를 받고나서 대략 490년지나고나서 세상이 끝났나요? 아닙니다! 세상은 지금도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럼 이 예언이 틀렸나요? 아닙니다!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490일은 490년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1일은 1년으로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40일 정탐하고나서 돌아와 불평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생활을 내리시는데 1일을 1년으로 계산하여 40일을 40년으로 계산하여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내리십니다(민수기 14:34절).
★기억합시다. 칠십이레는 490일(70 X 7일).
1일은 1년으로 해서 칠십이레는 결국 490년!★
그런데, 24절에서부터 27절까지 보시면,
칠십이레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칠십(70)이레 : 일곱 이레(7이레) + 육십 이 이레(62이레) + 한 이레(1이레)
↘반 이레 + 반 이레
다시 25절-26을 보시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고 하셨고, 그 이후로 일곱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나고나서 즉, 육십 구 이레가 지나고나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지고 다시 한 왕이 나오는데 그 왕은 바로 파멸하는 왕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그 기준이 바로 '예루살렘을 중건하라' 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중건은 언제 되었나요?
네. 맞습니다. BC 445년에 중건되었습니다. 바사왕 아닥사스다 20년에 이루어졌습니다.
즉, BC 445년 예루살렘 중건 이후 육십 구 이레(69이레)가 지나는데 이 69이레 안에 기름부음 받은 왕(예수)가 나타나고 69이레 이후 그 왕(예수)이 죽고나면 다시 새 왕이 나타나는데 그는 파멸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육십 구 이레(69이레)도 계산해 봅시다.
69 X 7일 = 483일. 1일을 1년으로 환산해서 483년입니다.
그럼 BC 445년(예루살렘 중건) + 483년(69이레) = AD39년이 나옵니다.
(AD 0년이라는 말은 없으므로)
다시 말해, 24절-25절 예언은 AD 39년에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새 왕이 나타나는데 이 파괴적인 왕은 로마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AD39년에 죽으셨다라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1년이 360일입니다. 이스라엘 달력은 태음력입니다. 우리는 태양력으로 1년이 365.25일입니다. 그래서 육십구 이레(69이레)라는 483년을 이스라엘 달력 기준으로 계산하면 476년이 나옵니다.
그래서 다시 계산해보면 BC445년 + 476년 = AD32년이 나옵니다. 대략 AD32년, 33년이 되겠지요.
1, 2년정도의 오차는 감안하셔야 합니다. 오늘날 쓰는 달력이 그레고리 달력 기준인지라 이 정도 오차는 감안해 주셔야 합니다.
즉, 예루살렘 중건 이후 69이레가 지난 AD32년이 주님께서 죽으신 때입니다.
(십자가 처형을 말합니다.)
그럼 이젠 70이레 중 69이레까지 다 눈에 보였습니다.
문제는 나머지 한 이레입니다!
위 24절의 70이레의 예언대로 한다면 69이레가 지나고 나머지 한 이레도 지나면 즉, AD32년으로부터 7년이 지나면 세상은 망하고 주님이 다시 오셔서 온전히 통치하시는 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니지요!
왜 그럴까요?
여기서 사람들이 해석을 잘못하기에 지금껏 휴거 시점을 잘못 맞추고 표방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7년환난 후 휴거라는 말들이 나오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70이레중 69이레까지는 성취하시고 나머지 한 이레는 남겨두셨습니다. 그런이 이 마지막 한 이레에 대해서 27절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27절을 다시 보시지요.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27절에는 마지막 한 이레의 시작점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가 그 이레의 절반(3년6개월)에는 제사와 예물을 금하는데 여기서 '그'란 적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69이레와 나머지 한 이레 사이의 운행은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그분의 주권하에 놓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도 마태복음 24장 36절에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27절을 보시면, 마태복음 24장 15절 이하의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이 말씀과 상통됩니다.
무슨말이냐, 마지막 한 이레의 시작점에서는 이스라엘과 적그리스도가 손잡고 성건건축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그토록 염원하던 성전건축인지라 적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알게 됩니다.
그러나 성전건축이 되고나서 그 안에 들어가 본 이스라엘은 그 안에 갖가지 우상이 있는 것을 보고서 그때야 깨닫습니다. 그러면서 도망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다니엘서에는 70이레가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70이레가 성취되면 모든 것을 거두시고 기름부은 받은 왕, 예수님이 영원히 통치하시는 때가 옵니다.
이에 69이레 까지는 예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나머지 한 이레입니다! 이 한 이레에 대해서는 27절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한 이레의 내용과 성경을 두루두루 보시면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에게 어떠한 짓을 할 지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11장 25~27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비밀이 나와있습니다.
25절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26절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절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여러분, 로마서는 사도바울의 단순한 자기 신앙고백이 아닙니다. 69이레와 나머지 한 이레 사이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정하신 이방인의 구원의 수를 만들어 가십니다. 그리하여 때가 되면 나머지 한 이레가 시작되기 이전에 휴거가 일어나구여, 이에 이 땅에서는 마지막 한 이레, 이스라엘과 적그리스도의 이 땅의 치리개념이 나오게 됩니다.
즉, 69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 사이는 어느 정도 기간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도 그 때와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 사이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구원의 수를 만들어 가시는 시간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수가 채워지면 마지막 한 이레의 시작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7년환난의 시작을 말합니다.
그러니, 휴거받을 주님의 자녀들은 나머지 한 이레하고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한 이레는 이스라엘과 적그리스도에게 남겨진 한 이레이며, 이 한 이레 안에서 이스라엘은 깨닫고 회개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에, 이 모든 70이레가 다 끝나고 나면 주님은 다시 구원받은 성도들과 이 땅에 오셔서 천년왕국으로 통치하시고 백보좌 심판으로 저마다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시며 천국에는 그에 따른 상급과 영광으로 처소를 인쳐주시고, 지옥에는 불못 또는 유황못으로 영원한 형벌에 가두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7년환난 후 휴거설을 주장하는데, 하나님의 이스라엘 구원의 섭리와 이방인의 구원의 섭리를 제대로 인식하신다면 그리고 칠십이레와 연결시켜 보신다면 7년환난 후 휴거설로는 설명이 안됩니다.
이상, 칠십이레에 대한 예언 설명과 이에 대한 휴거는 7년환난 전 휴거가 성경적임을 간단히나마 제시하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 드리는 70이레의 비밀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모든 종말론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면 종말에 대한 여러 주장에 대하여 흔들리지도 않고, 혼동되지도 않으며,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 하면 늘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혹자는 말하기를 [이 말씀은 종말론의 뼈대]라고까지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의 시간을 70이레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에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모든 일들은 유대인의 회복 뿐 아니라 인류의 구원까지도 다 이루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시간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린 때"부터 시작됩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단 9:24-25).
우리는 이미 지나온 말씀들을 통하여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린 때"에 대하여는 충분히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즉 이 역사적인 대 사건은 B. C. 539년 1월 29일에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중동의 패권을 잡은 메대와 파사의 왕 고레스가 내린 명령입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파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파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파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스 1:1-3).
일어날 사건들
70이레 동안에 일어날 기본적인 사건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영적인 문제로 인류 구원의 사건이고,
둘째는 유대민족이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과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사건이고,
셋째는 인류의 종말입니다.
첫째, 속죄 사역에서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24절을 조심 있게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단 9:24).
인류의 구원과 관계된 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는 허물이 마치며,
두 번째는 죄가 끝나며,
세 번째는 죄악이 영속되며,
네 번째는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다섯 번째로 이상과 예언이 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역은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헬라어로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지극히 거룩하신 자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그리스도가 되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둘째, 유대민족의 회복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단 9:25).
이 말씀에는 세 가지 사건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루살렘의 중건으로써 일곱이레 동안에 진행되는 사건입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가 오시는 사건으로써 육십이 이레가 지난 후의 일입니다.
세 번째는 예루살렘은 곤란한 중에 중건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내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합니다. 그리고 성전을 중건한 후 예루살렘 성을 중건합니다. 그러나 이 공사는 경제적인 여건이나, 인원동원 등의 문제뿐 아니라 이웃 민족의 방해 공작 때문에 아주 어렵게 공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는 주변 국가의 위협을 받고 한쪽 손에는 공사에 필요한 쟁기를, 또 한쪽 손에는 이방 민족의 침략을 저지할 무기를 들고 공사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이 때의 형편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 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느 4:17-18).
과연 바벨론에서 시작되는 세계의 역사와 유대인의 회복, 그리고 예루살렘의 중건이라는 역사적 사건들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하나님의 작정과 예언하신 대로 정확하게 엮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큰 교훈을 얻게 됩니다. 역사 진행이 하나님의 예정과 작정대로 움직이는 것은 앞으로 다가오는 인류의 종말도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우리 장로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오직 경외와 아멘과 할렐루야가 있을 뿐입니다.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의 끝
셋째,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는 언제 끝이 나며 또 끝이 나는 시점에는 어떤 사건이 발생합니까?
첫 번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지는 것입니다.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단 9:26).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진다"는 말의 원어의 본 뜻은 "자연히 소멸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작용을 통하여 없어지는 것"을 가르칩니다. 과연 기름부음을 받은 자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자연사를 한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운명하시게 됩니다.
두 번째는 예루살렘의 멸망입니다.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대로 예루살렘은 멸망을 당합니다.
한 왕의 백성은 로마의 티투스(Titus) 장군과 그가 이끄는 로마의 정예 부대를 지칭하는 것인데 그는 A. D. 70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무참히 살육을 합니다.
초대 기독교 사가인 요세브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 때 약 110만에 가까운 유대인들이 살해되고, 9만7천명이 노예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은 재건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파괴되고, 맛사다에서 끝까지 항전을 하던 유대의 민족주의자들은 전멸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은 본문 말씀대로 "홍수에 엄몰된 것처럼"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예수님은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였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리우리라"(마24:2)고 하심으로써 좀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역사의 증언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 가면 우리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장입니다. 이상과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작정하신 70이레 중 69이레는 흘러갔습니다.
남은 한 이레
이제 하나님의 의중에 있는 인류 역사의 시간은 한 이레가 남은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한 이레이기 때문에 이 한 이레의 의미는 더욱 심각하고 신중합니다. 이 한 이레의 문제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해석도 간단하지 아니합니다.
종말론에는 크게 두 가지 큰 흐름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 흐름은 한 이레를 보는 시각에도 두 가지 의견을 제시합니다. 두 가지 흐름의 첫째는 역사론적인 입장이고 둘째는 미래적인 입장인 세대주의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역사론적 입장입니다.
이들은 한 이레를 70이레의 계속적인 흐름으로 생각합니다.
그랬을 때 생기는 의문점은 70이레가 시작되어 69이레가 지나는 시간보다 남은 한 이레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 이들의 고민으로 남습니다.
즉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내린 때가 B. C. 586년이고 예루살렘이 멸망한 해는 A. D. 70년이니 불과 600여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고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부터 지금까지는 190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니 도식상으로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두 번째, 미래적인 학자들의 입장이 생깁니다.
이들은 이 한 이레를 인류 역사의 흐름에서 뚝 떼어내 별개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이 한 이레는 인류의 종말에 있을 한 이레이고 69이레 끝과 한 이레의 시작 사이에는 굉장히 긴 시간의 공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의 공백기가 지금까지 1900여년이나 흘렀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이 공백에 대하여 언급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괄호시대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괄호시대에는 하나님이 유대인을 상대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을 상대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옳은가를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에서 정답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페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단 9:27).
두 가지 견해
앞서 말씀드린 종말론의 두 가지 입장은 "그" 라고 하는 부분을 해석하는 견해에서 서로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즉 세대주의는 그를 적그리스도로 생각하고, 역사론적인 입장은 "그"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세대주의의 입장
세대주의의 입장에서는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들은 문장의 흐름으로 보아 "그"라는 대명사는 앞서 있은 [한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는 자연히 로마가 될 터인데 로마는 망하여 지상에 없으니 이들은 말하기를 인류 종말 로마 제국은 재생되어 적그리스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많은 사람과 언약을 맺는데 그것은 유대인과의 언약이고 이레의 절반까지 즉 전3년 반까지는 성전을 재건하고 제사를 드리게 하나 후3년 반에에는 신앙의 자유를 박탈하고 전권을 휘둘러 신자를 핍박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역사론적인 입장
첫째로 역사론적인 입장에서는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이레의 기간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는 것을 가르칩니다.
이 해석은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한 이레의 기간을 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신 데, 하나님이 작정하신 역사의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이 가능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주어진 시간 안에서 활동은 할 수 있어도 기간을 굳게 정할 권세는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즉 한 이레가 시작되어 전3년 반이 시작되면 예수님은 제사와 예물을 폐지하십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예루살렘에서 소나 양이나 염소로 제사 드리는 것은 무의미해졌습니다. 히브리서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히10:8-9).
칼뱅은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날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은 구약의 의식을 폐지한다는 것 뿐 아니라 하늘이 열려서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초청하여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제물이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미운 물건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1)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후에도 성전에서 소와 양으로 드리는 제사가 바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2)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마 24:15)이라고 하신 말씀에 이것은 이교의 신전 마호메트의 신전입니다.
3) 저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은 우상입니다. 그런데 그 미운 물건이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 자리에 세워졌고 그것은 수천 년 동안 끄덕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끄덕하지 않고 서 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 성전 자리,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려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던 그 자리에 이슬람교의 성전이 들어서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진노란 단어의 뜻은 완필(完畢) 곧 변동할 수 없이 완전히 끝이 났다는 뜻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러합니다. 지금이 하나님의 진노가 예루살렘에 쏟아지는 시절입니다.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고 하였는데, 지금 중동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전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을 정탐한 후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라고 보고하였지만 지금의 팔레스타인은 결코 젖과 꿀이 흐르는 고장이 아닙니다. 전쟁과 황폐함이 있을 뿐입니다.
맺는 말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시간으로는 한 이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주님의 재림과 인류의 종말이 가까웠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정확하게 응답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꼭 신앙생활을 정확하게 잘하여야 합니다. 올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경제활동이나 사회생활보다도 더 정확하고 진실하게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종말은 두 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행연습도 없고 또 다시 주어지는 기회도 없습니다. 한 번 실수하면 영원한 실수가 되고 마는 것이 종말에 대한 실수입니다.
그러니 꼭 신앙생활을 잘 하여 주님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글쓴이 :카일짹
참고자료 입니다.대환란의그림자 동영상과 7년대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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