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하늘의 지혜와 땅의 지혜

하나님아들 2018. 8. 3. 16:39

 

 

 

 

 

 

하늘의 지혜와 땅의 지혜

야고보서 3:13-18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는 언어와 생각입니다. 야고보서 3장에서는 말과 생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교훈합니다. 오늘 본문은 지혜로운 생각으로 행동하는 문제를 다룹니다. 우리의 생각은 마음의 동기에 따라 형성되어 집니다. 그런데 이 마음의 동기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가 “지혜”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느 민족들보다 이 지혜를 중요시 하였습니다. 지식과 지혜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지식은 있으되 삶의 지혜가 부족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컴퓨터는 움직일 수 있지만, 자신의 삶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지혜롭게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잠언에는 지혜의 중요성을 매우 많이 강조하고 있는데, 잠언 4:7에서는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라고 하며, 지혜의 소중함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 지혜는 그 분석한 것을 다시 종합해서 우리의 실생활에 적용시키는 능력입니다. 지혜는 삶의 적용이란 과제를 떠나서는 이해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지혜 없는 지식은 우리의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지혜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증명되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여기서 선행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착한 행실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과 태도 전체를 의미합니다. 지혜는 우리 생활을 통하여 나타내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성경학자가 성경에 나오는 지혜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지혜라는 것은 지식을 바르게 사용하는 인격과 기술의 총체이다.” 이렇게 지혜로운 사람은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지능(IQ)도 높고 공부도 많이 하였는데, 전혀 지혜가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혜와 지식의 차이를 보여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감옥에 죄수가 있었는데, 간수가 보니 글을 읽지 못합니다. 그 간수는 이 죄수에게 글을 가르쳐주면 이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정성으로 글을 가르쳤습니다. 이 죄수는 형을 마치며 간수에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새사람이 되어 살겠노라고 인사를 한 뒤 떠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또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간수가 의아해서 물어보았더니 이번에는 문서위조죄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식을 습득하는 것으로는 인생의 삶이 진정 풍요로워지거나 슬기롭게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지식이나 정보의 획득이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우리와 다른 사람 사이의 관계, 즉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차원에서 지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삶 속에서 어떻게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적용하는가와, 어떻게 바른 인격을 형성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이처럼 지혜란 참으로 위대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야고보는 이 지혜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별합니다. 참 지혜와 거짓 지혜, 하늘의 지혜와 땅의 지혜, 즉 하나님께 속한 지혜와 사단에게 속한 지혜로 구분합니다.

 

먼저, 땅의 지혜입니다.

 

이는 거짓 지혜, 바람직하지 못한 지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 13~16절입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5절에 기록된 ‘땅 위’(세상), ‘정욕’, ‘마귀’(귀신) 이 세 가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협하는 3대 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에서 얻어진 지혜는 하나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귀에 정체에 대해 이렇게 규명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12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 우리는 밖으로는 세상의 지배를 받고, 안으로는 마음의 부패와 함께 육체의 욕심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단의 포로였었습니다. 마귀의 노예였던 우리는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마귀적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세상적인 지혜에 대해 고린도전서 1:18~19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여기서 바울이 말한 지혜는 세상의 지혜로서,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우리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어 전혀 무력함을 설명합니다. 세상적인 지혜는 육신적인 지혜로서, 이는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간 내면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타락한 인간의 본질로서 하나님의 성품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는 성령의 통제가 없을 때, 작용하며 활동합니다. 이는 마귀적인 지혜입니다. 여러분, 마귀는 처음부터 얼마나 지혜로웠습니까? 창세기 3장에서 마귀는 처음 사람을 찾아와서 유혹하는 지혜를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 하시더냐?”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속삭였습니다. 이런 사단의 지혜는 오늘 날도 우리의 마음과 생활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와 수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결국 땅에 속한 모든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 속에 있는 모든 부패한 지혜는 사단에게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단으로부터 온 거짓 지혜, 땅의 지혜의 특성은 어떻습니까?  본문은 네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시기입니다.

시기의 뿌리는 이기적인 욕망과 열심입니다. 자기가 중심이 될 때, 그 결과로 초래되는 것이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불신자의 마음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신자들에게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늘나라를 자리에 놓고 다툰 것도 시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신앙의 동기는 시기심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시기 때문에 요셉을 팔았고, 사울 왕은 시기로 인하여 다윗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성경은 땅의 지혜는 시기를 초래하고 있음을 가르칩니다. 잠언 14:30입니다.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우리 마음에 참 평화를 간직할 때는, 평화는 육신의 생명처럼 유익하지만 시기는 자신을 파멸하는 고통을 가져옵니다.

 

영국의 챨스 스펄죤목사님이 런던 해브라피 침례교회에서 사역할 때, 그의 설교에 대한 명성은 전 세계를 뒤흔들었습니다. 당시 런던에는 스펼죤 목사님의 침례교회와 함께 유명한 세 교회가 있었는데, 켐벨 몰간 목사님이 시무하는 웨스터민스터 교회와 또 마이어 목사님의 그리스도 교회입니다. 이 세분 목사님은 모두 기독교 교회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스펄죤 목사님과 켐벨 몰간 목사님의 교회가 큰 부흥을 이룰 때 마이어 목사님의 교회는 별로 부흥되지 않았습니다. 후에 마이어 목사님은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기도를 드리는데 그 자신이 스펄죤 목사님과 켐벨 몰간 목사님을 시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며 시기심을 없애려고 아무리 노력하여도 그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질투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마이어 목사님은 “시기의 영 대신 평화의 영을 갖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드렸지만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 시기심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기도의 방법을 이렇게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켐벨 몰간 목사님의 교회와 스펄죤 목사님의 교회를 더욱 부흥시켜 주시고 축복을 내려주십시오.” 그 목사님은 그렇게 기도를 드리고 난 후에 비로소 참 평화를 경험했다고 술회하였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시기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축복하며 기도하십시오. 그 사람의 성공을 위하여 빌어 주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의 마음에 있던 시기심이 변하여 평화가 되고 하나님을 향한 감격스러운 영광과 찬미로 채워질 것입니다. 세상적인 지혜는 항상 시기심을 가져옵니다.

 

둘째, 다툼입니다.

14절입니다.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다툼은 분리적인 영성입니다. 땅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 있는 곳에는 파멸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가정, 직장, 교회 그리고 사회 각 분야에서 당파를 만들어 분열을 초래합니다. 이 다툼의 영성은 땅에 속한 지혜로서 가정의 화목을, 직장의 행복을, 그리고 교회의 축복과, 사회의 아름다움을 빼앗아 갑니다.

 

셋째, 자랑하는 것입니다.

땅의 지혜는 자기를 자랑하는 교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로 자신을 알 수 없도록 하시고, 세상에서 미련해 보이는 사람들로 사역자를 삼으셨는데, 그 이유를 고린도전서 1:28~29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스스로는 자신을 구원할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감사할 뿐입니다. 이 구원의 감격이 없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는 사람일수록 오만하여 자기 자랑을 많이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0:12이하를 통해 자랑하는 사람의 특성을 ‘비교’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비교하다보면 자연히 질투하게 되고, 다툼을 일으키는데 여기에 인간적 자랑의 정체가 나타납니다.

 

넷째, 땅의 지혜의 특징은 거짓입니다.

자기를 자랑하다 보면 때때로 과장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거짓이 동반됩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고 애쓰다보면 거짓이 생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5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주께서 모든 것을 드러내실테니, 그때까지는 너무 지나친 칭찬도 판단도 말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모든 어두움을 드러내시는 날에는 거짓된 것들의 정체가 나타나고야 말 것입니다. 이처럼 땅의 지혜는 전혀 우리를 유익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땅에 속한 지혜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본문 16절입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먼저. 혼란이라는 단어는 불안정하며 무질서하다는 뜻입니다. 야고보서 1:8은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사람들에 관하여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갈팡질팡하여 안정이 없는 마음들이 모이면 자연히 무질서가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처한 환경은 혼란스럽습니다. 그 다음, 이런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악한 일이 생깁니다. 악하다라는 말의 어원은 ‘가치가 없는 일이다’라는 뜻입니다. 이들이 도모하는 것은 아무 가치 없는 것들입니다. 말하고, 계획하며 생각하는 모든 것이 무가치한 것으로 주께서 불로 심판하실 때는 마치 풀이나 지푸라기처럼 타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로 인생을 살지 못하고 세상적이며, 육신적이요, 마귀적인 지혜에 얽매여 인생을 사는 모습이며, 삶의 결과입니다.

 

 

둘째로 참 지혜인 하늘의 지혜입니다.

 

하늘의 지혜는 땅의 지혜와 비교되는 지혜입니다. 땅에 속한 지혜는 세상이나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곧 은사입니다. 본문 17절입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우주와 역사를 통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을 “위에 있는 것”에 대한 열망이라고 생각하며,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위로부터 지혜와 능력을 구하였는데, 이 지혜가 바로 위에서 오는 하늘의 지혜입니다. 온전한 선물과 각양 좋은 운사가 다 위로부터 주어지는데, 그 중에 하나가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땅에 속한 지혜와 달리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지혜로서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 지혜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째, 온유입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하늘에 속한 지혜는 온유합니다. 온유하다는 단어는 얼른 듣기에 아주 연약하며 부드러운 유약함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이 온유는 유약하거나 위축되어서 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온유는 항상 통제되고, 절제되어 잘 다스려진 훈련된 인격을 뜻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천성이 온유하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천성적인 온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훈련된 온유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온유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라디아서 5:22~23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온유함은 나를 다스리고 지배하시는 성령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인격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온유하여질 수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인격에 나타나야 할 모습입니다. 하늘의 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온유함이 있습니다. 성령님으로 훈련받은 인격에는 온유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격을 완벽하게 갖추고 계셨습니다. 그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자신의 인품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인격, 즉 그리스도의 인격을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산출하려는 것입니다.

 

둘째, 성결입니다.

17절입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위로부터 난 또 하나의 지혜는 성결입니다. 하나님은 성결하신 분입니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은 사람들의 삶도 성결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거룩하게 하는 것으로써, 부패되거나 오염된 지혜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참 지혜롭게도 하고 똑똑하기는 하지만 순결하지 못합니다. 동기는 좋지 못하면서 꾀만 많습니다. 때로는 그 약싹 빠른 지혜로 묘한 아이디어를 산출해 내는데 그것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불결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이는 하늘에 속한 지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께 속한 지혜는 성결하며 순결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지혜는 온유하고 성결합니다. 이렇게 주께서 주신 지혜로 성결해지면 그 결과는 화평이 옵니다.

 

셋째 화평입니다.

깨끗함을 입은 심령에는 화평이 주어집니다. 우리가 구주의 보혈로 죄사함을 얻었을 때 하나님과 평화하게 되었고, 하나님과 평화한 사람만이 사람과도 평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이웃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습니다. 로마서 12:18은 이렇게 말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땅에 속한 지혜가 역사하는 곳에는 다툼과 시기뿐이나, 하늘의 지혜가 역사하는 곳에는 아름다운 화평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팔복을 가르치실 때,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마 5:9)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잊지 마십시오.

 

넷째, 관용입니다.

괸용이란 사람의 잘못이나 죄를 정당화시키는 것이 아니면서도 그 사람을 용납하며 불쌍히 여기고 품어 주는 덕입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잘못하였을 때, 그 잘못 자체는 합리화되거나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용납하고 풀어주는 덕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관용이란 말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그 사람의 오류를 잘 한 것으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의 인격만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하늘에 속한 지혜는 “관용하다”고 말씀합니다.

 

다섯째, 양순입니다.

17절입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양순하다’라는 말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잘 들어주고 동의하는 긍정적인 기질입니다. 이 말은 반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또 다른 사람의 뜻을 같이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인격이 양순입니다. 성경은 양순할 것에 대하여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야고보서 1:19에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양순한 사람의 기질에 관하여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긍휼입니다.

긍휼이라는 말과 짝이 되는 단어는 은혜입니다. ‘은혜’란 전혀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호의입니다. ‘긍휼’은 마땅히 저주해야 할 사람을 불쌍히 여겨 저주를 중단하고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동정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긍휼은 은혜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저주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긍휼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하나님을 묘사할 때마다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은 그들도 지혜를 베풀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하늘에 속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긍휼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일곱째, 선한 열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지속적인 관계를 통하여 우리의 삶 속에 맺어야만 하는 열매는 선한 열매입니다.

 

여덟째, 편견이 없음입니다.

편견이 한 쪽으로 치우친 공평하지 못한 생각이나 견해를 말합니다.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며 다른 사람을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묶어둡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범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땅의 지혜입니다. 자신의 시각으로 매사를 바라봅니다. 자신의 생각에 맞는 설교를 하면 그것을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설득시키려고 합니다. 신앙과 윤리의 절대 표준을 자기에게 둡니다.

 

아홉째, 거짓이 없음입니다.

거짓이 없다는 말은 마스크가 없다는 말입니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아무 것도 숨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마스크가 있습니다. 마치 연극배우가 무대에서 연극을 하기 위하여 상황에 따른 여러 가지 마스크를 준비하듯, 세상의 지혜로 사는 사람들은 삶을 편리하고 이롭게 하기 위하여 많은 마스크를 준비합니다. 시시각각 변합니다. 아침저녁으로 변덕을 부립니다. 잘 했다 잘 안했다 그럽니다. 하늘의 지혜로 사는 사람들은 이런 마스크가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본래의 모습대로 살아가며 주안에서 만들어지는 자기의 삶을 그대로 노출시키며 삽니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긍정할 줄 압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화평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늘의 지혜의 결과는 화평과 의입니다.

 

본문 18절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여기서 화평과 의가 강조되었습니다. 평화가 없는 의는 왠지 싸늘합니다. 만일 화평만 있고 의가 없다면 그 화평은 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화평과 의를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속한 지혜는 우리를 화평하게 하며, 의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지혜를 얻는데 두 가지 중요한 원천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위대한 지혜를 제공합니다. 디모데후서 3:15입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의 지혜를 가져다주며 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지혜를 제공합니다. 하늘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말씀을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암송하여 우리의 심령을 말씀으로 채울 때, 하늘의 지혜가 우리의 삶과 인격을 채울 것입니다.

 

둘째, 기도입니다.

야고보서 1:5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지혜를 얻는 두 가지 원천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합니다. 그 교제 속에서 지혜를 소유하며, 주님을 닮는 인격으로 성숙해 갑니다. 예수님은 지혜의 근본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제할 때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닮은 지혜로운 인격의 소유자가 됩니다.

 

잠언 8:35입니다. “대저 지혜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여기서 지혜는 예수님이십니다. 지혜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를 적용시켜 봅시다. 그리스도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은 것입니다. 반대로 그리스도를 잃은 자는 자신의 영혼을 해하는 자며 하나님의 은총 밖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혜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가까이 할수록 그 주님을 닮게 됩니다. 잠언 3:15입니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말씀과 기도로 그 분과 교제하심으로 하늘의 지혜로 풍성하게 채움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안지현 CCM 피아노 - 거룩하신 하나님
 
출처 : 아침이 있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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