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갈증해소

하나님아들 2018. 7. 28. 00:02

갈증해소

4:3-26

 

호저라고 고슴도치처럼 생긴 동물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호저의 인생은 항상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호저는 혼자 사는 것이 외로워 다른 호저에게 다가가면 다른 호저의 가시털이 자구 자신을 찌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혼자 살게 되는데, 또 외로워서 다른 호저를 만나게 되면 또 서로 상대방의 가시에 찔리게 되어 혼자가 되고, 이런 일들을 평생 반복하며 살아가는 동물이 호저라고 합니다. 간혹 우리는 호저의 모습을 한 사람과 함께 때로는 내 자신이 호저가 되어 살아가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늘 탐욕적인 인간은 서로의 몸에 생채기를 내며 삽니다. 특별히 그것에 잇권이 개입되어 있을 때는 상당합니다. 그래서 인간 세상은 흉흉하고 늘 불안하며 결코 믿을만한 세상이 못된다고 늘 이야기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던 길 위에 있었다. 이유는 예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통해 바리새인들이 끊임없이 공격해 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논쟁하고 싸우는 것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쓸데없는 시비로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신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는 동안 상처가 없고, 더 높은 가치와 생각으로 사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복잡하고 공격적인 세상에서 상처받고, 흥분하고, 복수의 칼날을 갈며 그렇게 살지 마시고, 오늘 그 전투의 현장을 벗어나, 주님 앞에 나와 주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과 만족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압박해 오는 사람들을 잠시 떠나 갈릴리로 가시던 길에 사마리아 땅의 수가라 하는 동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음식을 구하러 가고, 거기 수가성의 우물가에서 쉬고 있을 때, 사마리아 여인이 마침 물을 길으러 그 우물에 왔습니다. 원래 이스라엘 나라는 매우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한 낮에 더위가 극심할 때는 우물에 물을 길으러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무슨 사연이 있어서인지 사람들이 활동하지 않는 뜸한 시간에 수가성 우물로 물을 뜨러 왔고, 거기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향해 물을 달라고 요구했고, 9절을 보면 이 여인은 그 예수님의 요구에 대한 자신의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여인의 대답 속에는 전통적인 생각과 의식이 들어 있는데,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심각하게 차별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여자는 남자의 소유이며, 재산 항목의 일부였기 때문에 존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물 좀 달라고 요구를 하셨고, 그 여인은 그런 사실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과 함께 의아함을 느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 그녀가 단순히 예수님께만 거부감을 느낀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전반에 걸쳐 세상에 좀 섞이고 싶지 않은 갈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물 좀 뜨러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 세상을 향한 불편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1. 죄의 문제

도대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삶의 이 거친 감정들을 갖게 한 것일까요? 16절 이하의 말씀을 추정해 볼 때, 이 여인은 이미 다섯 명의 남편과 살았었고, 지금은 또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데, 그는 남편이라고 할 수 없는 관계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이 여인의 삶의 문제는 자신의 이 부정함, 세상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도 없고, 말해도 이해받을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두려웠고, 사람들 속에서 소외되어 살아가야 할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의 문제로 인해 늘 불안했습니다. 인간의 두려움, 불안감, 불만족,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다 해결되지 못한 죄의 문제, 인간의 부정함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전도하다가 죄인이라고 하는 말에 흥분한 친구가 주먹을 날려서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죄 지은거 봤냐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말을 듣고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만은, 사람이 아무리 부정해도 성경은 인간이 다 죄인이고, 찾아볼래도 의인은 찾을 수가 없고, 그래서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영광에 결코 이를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유전된 그 죄의 부패함과 죄책감으로 살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마음속에 두 마음이 있어서 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가려고 하지만, 다른 한 마음이 자꾸 죄로 자기를 인도해 간다고 겁니다. ! 곤고한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 죄의 부패함과 죄책으로 인해 늘 두려워하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지를 지은 이후에 하나님이 자신을 찾는 음성을 듣고, 두려워서 숨었다고 말했습니다. 평상시에는 그렇게 감미롭던 하나님의 목소리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라는 유명한 다리가 있는데 샌프란시스코 관광객이라면 다 가보는 관광명소입니다. 하지만, 처음 이 다리를 건설할 때 잦은 폭풍과 안개, 빠른 유속으로 인해 1년 동안 무려 23명이 떨어져 숨졌다고 합니다이에 건설회사는 안전을 위해 거대한 그물망을 깔아 놓았고 그때부터 떨어져도 죽는 사람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공사진행이 그물망을 쳐놓기 전보다 약 20%나 빨리 진척된다는 것이었습니다떨어져도 죽지 않는다는 생각이 인부들의 작업 능률을 그만큼 올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평안하고 안정되면 그만큼 삶의 역량도 높아지지만, 반대로 두려움을 느낄 때면 사람의 마음을 위축시키고 일의 능률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안정에 대한 욕구는 의식주와 버금가는 인간의 욕구입니다. 하지만, 죄를 지은 사람이 평안하게 살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끝없이 이 죄의 굴레와 그 결과로 주어지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사람들은 이 인생의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방법들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수행도 하고, 고행도 하고... 갖은 철학으로 인생을 정의하고 삶을 논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얻은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고, 모두 다시 죽음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죄의 결과로 인해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인간적인 한계 앞에 놓여 있습니다.

 

2. 이 모든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인생의 갈증이란 범죄 함으로 인해 나타나는 인간의 한계를 이야기 하는데, 세상이 주는 물로는 결코 이 거듭되는 삶의 갈증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13-14절의 말씀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예수님만이 우리 삶의 궁극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인간의 이 거듭되는 갈증을 해갈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 오늘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실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의 오늘 생명 너머의 영원한 생명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가 친히 십자가에 달리시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다시는 우리에게 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중생하는 이 분명한 체험을 한 사람은 다시는 두려움에 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고,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안전장치가 있는 사람은 삶에 늘 탁월함과 위대한 성취를 나타내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예수님은 살아계시고,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라도 이 땅에 사는 동안 그 분의 능력과 은혜를 실제로 경험하며 살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분명하신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풍랑이 이는 배 위에 있던 제자들, 그 날 바다 위에 예수님과 그 제자들 밖에 없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풍랑 이는 바다 위에 많은 배가 있었겠지만, 그 배 안에는 예수님이 계셨다는 것이고, 다른 배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풍랑이 이는 세상에 우리도 함께 살고 있으나,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다름 아니라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이고,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이면 됩니다. 오늘 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전에 없었던 삶의 능력을 얻게 된 것처럼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놀라운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의 그 강력하심을 만나고 경험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7:37-3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없으시고, 그를 찾는 자를 만나주시고, 생명의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들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은혜를 얻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10:19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그 공로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셨고, 그 능력과 권세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통로, 은혜의 길이 바로 예배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여인이 갑자기 예수님께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하는 것을 묻지 않습니까? 원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 예루살렘 성소를 중심으로 예배하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포로기 이후에 예루살렘성의 재건 문제로 사마리아 사람들과 사이가 벌어지면서 더 이상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 자신들만의 성소를 지어놓고 거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인의 말은 어디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배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인의 질문에 대하여 진정한 예배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진심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예배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3.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23-24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거룩한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하나님이 와 계시고, 오늘 우리의 예배하는 모습을 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과 마음이 맞으면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십니다. ‘통해야 통한다고 하나님과 이 예배를 통해 마음이 통하기만 하면, 여러분의 인생은 만사가 형통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 때, 주의 성령께서 기름 부으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름 부으신다는 것은 우리가 예배할 때 우리의 삶에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0:1에도 나와 있지만, 구약 시대에 왕이나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부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의 신분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신다는 것은 우리의 신분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즉 왕의 자녀가 되는 것, 그래서 그의 권세를 갖는 것입니다. [경찰이 큰 차를 세우는 것.. 국가로부터 권세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탱크를 운전할 수 없지만 탱크를 부대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권세입니다. 대통령은 비행기를 조종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비행기를 띄울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언젠가 학교 가는 길에 광화문 쪽에서 너무 막혀서 봤더니 대통령이 어딜 가는지 그 대로를 다 비워놓기 위해 차를 다 막아놓았습니다. 이게 권세입니다.] 오늘 우리가 거룩한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은 이런 하늘의 권세를 주셔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다스리게도 하시고, 이기게도 하실 권세를 주십니다.

 

, 신약성경에서 약 5:14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질병을 치료하고, 귀신을 내어 쫓을 때 기름을 발랐습니다. 예배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십니다. 우리의 아픔을 치료하십니다. [제가 몸이 아프고 혈압이 떨어지지 않고, 심장에 통증이 있어서 점점 세지고 아파지고. 합병증이 있었고, 목사가 아프다고 말하기도 부끄럽고... 저보고 큰 병원으로 가라고, 그래서 세브란스 병원에 예약을 하고 진료를 했습니다. 기도원에서 예배하는 중에 목사님의 말씀에 제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정밀 검사를 했는데, 그 전에 있었던 심장의 합병증인 좌심실 비대증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못 고칠 질병이 없습니다. ]

육신의 질병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과 영혼의 병도 기꺼이 치료하십니다. [영락교회의 권사님 딸... 프리마돈나 하던... 남편의 외도로 충격을 받아 방문을 닫고 들어가서 십여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겨우 어머니에게 강제로 이끌려 나와서 예배 드리다가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그 사람의 마음에 부딪쳤는데, 그 때로부터 그 마음이 열려졌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오늘도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 우리를 괴롭히던 모든 영적인 올무, 사탄의 견고한 진이 깨어지는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예배할 때 성령의 기름부으시는 은혜를 주신다는 것은, 각양의 은사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세상을 능력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만남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좋은 친구를 만나면 삶의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이 생겨나고, 좋은 선생을 한 번 만나면 삶의 방향과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돈 많은 부모를 만나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고, 좋은 아내나 남편을 만나면 날마다 깨를 볶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국가의 정상이 만나면 전쟁도 막을 수 있고, 국가의 정상이 만나서 빈정 상하면 없는 전쟁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도 누군가 절대자를 만나서 그 마음에 맞기만 하면 자기 힘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별 볼 일없는 인생이라도 하나님을 만나면 놀라운 기저의 역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제 삶의 수단이 아닙니다. 교회가 부흥하게 되기 위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의 제가 예수님을 섬기듯이 섬겨야 할 진짜 중요한 인생의 목적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진심으로 만나서 중생의 체험을 하고 기복없이 신앙이 성장하고 삶이 정말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에 늘 주의 은혜가 넘치고, 여러분 하시는 일이 잘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때문에 먹고 사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예배 한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예배의 시간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마시고, 이 예배의 시간에 어떻게든지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오늘 평생의 부정하게 살며, 삶의 두려움과 갈증에 시달리던 사마리아의 이 가난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을 얻은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이 예배 시간에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기만 하면, 인생의 문제는 해결되고, 삶의 거룩한 능력들이 회복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예배에 성공자가 인생의 성공자가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인생이 이 거룩한 예배의 성공자들이 되셔서, 인생의 가장 강력하고 위대한 성공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별은 달이 꾸는 꿈
글쓴이 : 강북 멋쟁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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