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품성
1. 버려야 할 교만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마다 그 존재의 목적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에는 자신의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목적을 상실하면 인간은 타락하고 하나님의 관계에서 끊어진다. 인간이 자신의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것은 교만으로 인한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되여라 하는 것은 겸손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다. 성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의 첫째, 둘째, 셋째 중요한 것은 겸손이라고 하였다.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이처럼 사람이 교만하면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뜻만 이루려고 하기에 하나님과 대적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감동 되고 하나님의 명령이 드러나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속임을 당하지 않는다.
잠 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의 결과는 패망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한 면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이다. 우리는 이 재능을 가지고 교만해져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이 재능을 가지고 우리가 이웃을 섬기기를 원하신다.
2. 사람은 왜 교만하는가
사람은 분수를 모른다. 피조물이 창조자의 지위를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탄은 타락된 천사가 제 자리를 떠난 것이다. 천사의 멸망은 교만은 멸망을 이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한테 무시 당할가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람이라면 중심에 말씀과 성령이 있어야 한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에 대해 신심이 없고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게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다.
3. 어떻게 하면 교만에서 멀어지겠는가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죄인이고 괴수이며 모든 성도보다 지극히 낮은 자라고 하였다. 우리는 과거에 자신이 누구였는지 잊지 않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영성과 섬김의 훈련이 계속 되어야 한다. 시시각각 자신이 하는 일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을 물리쳐야 한다. 나 자신을 쳐서 하나님의 앞에 복종시켜야 한다.
버려야 할 분노
골로새서 3장 5~11절 말씀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 3:6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골 3: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골 3: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골 3: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골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 3:11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우리 민족은 성격이 급하다. 상대방의 생각보다 우리들의 마음이 먼저 이루어지길 원한다. 이러한 성급함과 분노는 매우 밀접하다.
성경에는 2가지 분노가 나온다.
하나는 거룩한 분노이다. 즉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분노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뜻이 담겨 있다. 이스라엘의 행악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볼 수 있다. 이 분노는 사랑의 채찍으로 옳은 길로 돌아가게 한다. 그러니 분노의 목적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분노는 능히 조절할 수 있고 원칙성이 있다.
두번째는 인간의 분노인데 이것은 방종이다.
우리는 분노의 대상자는 오직 죄뿐이여야 한다는 것을 알야야 한다.
이에 대비하여 인간의 분노는 상대방에 해로운 스트레스를 준다. 즉 인간의 이기적이로 저주로운 분노인 것이다.
마태복음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러한 분노는 뿌리를 마음속 깊이 파고 들어간 분노이며 언제나 잊어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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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의 6계명에도 살인하지 말라고 하였다. 인간의 분노는 죄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분노에 잡히면 이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상황에 대한 옳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 인간의 생각은 원래 악하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자기 만족을 최고로 한다. 자신의 악한 것도 합리화하려 하고 상대방을 극도로 낮춘다. 분노는 결국은 악을 행하며 삶의 정상적인 질서를 개변시키며 물질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킨다. 마음의 분노가 육체도 자연도 잘못 대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분노하는 사람들이 문을 소리 크게 닫거나 강아지를 차버리거나 등 행위를 볼 수 있다. 자신의 소유에 대한 파괴는 무서운 일이다.
분노를 해결하자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할 때 저주스런 분노를 쏟을 대신 기도하면서 순교하였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으로 하지 않고 오직 성령에 사로잡힌 행동인 것이다. 우리는 감격으로 삶을 대해야 하고 악으로 선을 갚아야 한다. 우리는 삶에 대한 지혜가 필요하다. 부부싸움에서도 지혜로운 사람들을 보면 한사람이 밖으로 나간다. 얼마간 지나면 분노가 사라지고 다시 화목하게 된다.
화가 났을 때:
나와 나머지 사람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식사할 때나 잠 잘 때나 그들의 사고방식으로 사고하여야 한다;
그들의 행동이 옳바르다면 자신이 고치고 만약 아니라면 기도해야 한다;
자신 역시 잘 못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정확히 판단하려면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몹시 화났을 때 자신에게만 말해라;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그들의 행동이 아니라 그것을 평가하는 우리의 생각이다;
자신에게 해로운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진실한 친절의 마음씨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해가 지도록 노를 품지 말고 지혜롭게 용서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야고보서 3장 3~18절
버려야 할 시기
우리 민족의 속담에 사촌이 밭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한다. 이것은 인간의 죄성이다.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고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고 유대 종교자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이세상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시기한다. 시기는 고조에 이르면 살인을 초래한다. 잠언에 마음의 화평을 깨뜨리는 것은 뼈를 썩인다고 하였다. 타인에게 자신이 없는 장끼가 있고 존경과 인정을 받을 때 우리는 그사람을 해칠 수 만 있다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시기는 부러워하는 마음과 다르다. 장끼를 자기도 가지고 싶어서 희망하고 노력하는 것이 부러워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시기가 악의 뿌리라면서 버리라고 하였다. 시기의 근원은 마음 깊속에 나를 높이고 남을 낮추자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예수님의 마음과 반대된다.
이러한 마음에는 자신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자녀라는 정체성이 없다. 구원의 자아의식을 가지면 이웃이 잘 될 때 좋아하여야 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친척들이 나보다 잘 되면 마음이 편한 것을 경험한다. 반대로 다 나보다 못살고 나더러 도와달라고 하면 우리가 매우 피곤하다. 남이 잘 되는 것이 곧 나를 돕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
시기는 하나님을 싫어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이러한 마음은 사탄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다.억지로 남의 흠을 잡고 편견하고 소문을 퍼뜨리고 공동체의 분위기를 흐트러놓는다. 때문에 시기는 무질서를 불러 일으킨다. 시기는 또한 상대방의 감정을 격화 시킨다. 서로 다투고 악한 행동을 불러 일으킨다.
가끔 뉴스에 보면 자기와 아무런 상관 없는 공동체의 생활을 파괴하는 보도가 나온다. 남의 자동차 바퀴를 구멍낸다던다 우물에 도약을 넣는다던다 이것들은 모두 시기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 억울한 일은 당한 사람은 같이 악을 행하여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시기하는 마음에 사로 잡히면 자기 마음도 평안이 없다.
마음이 산란하여 무엇을 해도 질서가 없다, 창조성이 없고 삶에 능률이 오르지 못한다. 또한 건강을 해치는 악순환이 이루어진다. 때문에 잠언에는 뼈가 썩는다고 하였다. 이것은 모든 것을 망치게 하는 무서운 것이다.
어떻게 하면 시기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는가
말씀을 통하여 시기가 해로운 것이라는 것을 깨닳고 시기의 독의 경각성을 가지고 경계하여야 한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변화 시키도록 기도하여야 한다.
철저히 회개하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달란트에 대한 비유는 많고 적음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즉 자족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최고의 열매를 맺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
때문에 우리는 자꾸 남과 비길 필요가 없다, 비기면 시기와 질투만 생긴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면 자기가 응당 받아야 할 행복을 버리고 궁핍하여도 시기할 줄 몰랐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교회 내부에서 시기를 버리라고 권하였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심리를 가지면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오는 절대적인 만족감으로 마음의 만족을 얻게 된다.
미국에 스펜서박사라는 목사가 있었다. 목사가 얼마나 설교를 잘하였던지 교회에 성도가 꼭 찼다. 그러나 년세가 많아지면서 성도들이 점차 교회를 떠나는 것을 보았다. 어느날 저녁 집회를 하는데 성도들이 몇이 안나왔다. 그래서 오늘 어찌된 일인가고 물어봤다. 그러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목사가 하도 물어보기에 한 사람이 길 건너편에 매력있는 젊은 목사가 와서 설교를 잘하여 모두들 그기로 갔다고 하였다.
목사님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미소를 짓는 것이다. 그리고는 우리도 그들을 따라 건너가야 마땅하다면서 성도들을 이끌고 건너갔단다.
젊은 목사님이 설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성공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면 어떤한 원한과 마음 상함도 없고 변화에 적응하게 된다. 진심으로 남을 축하하는 모습을 본받으며 묵상하여야 따라 배울 수 있다. 사람들은 본보기를 통하여 가장 빨리 변화된다. 소학생과 물어보면 90%는 장래 선생님이 되겠단다. 가까이 있는 선생이 가장 위대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따라 배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의 아름다운 헌신을 묵상하면 자기도 변한다.
시기가 아니라 자기를 나누어주는 삶의 결단으로 변하며 은혜로운 삶을 살게 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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