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인생
성경: 약4:13-17절
모세는 인생을 잠간 자는 것 같고, 아침에 돋는 풀 같다고 했습니다.(시90:5) 다윗은 그림자와 같다고 하였습니다.(시39:6) 욥은 베틀의 북, 사라지는 구름에 비유했습니다.(욥7:6,욥9:25-26) 이사야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에 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사40:6-7절) 솔로몬은 인생은 모든 것으로 채울 수 없는 바다라고 했으며,(전1:7절) 오늘 야고보는 인생을 안개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약4:13-14)
1. 인생을 돈으로 마치지 말라.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13-14절)
의사들은 마음이나, 영혼에 대한 관심은 없습니다. 몸을 유지하는 것이나, 육체를 복구하는데 집중합니다. 사람들은 삶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을 의사들에게 다 맡겨 버립니다. 죽음이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인간다운 죽음, 신앙인다운 죽음이 있습니다. 의술의 발전으로 사람의 수명이 많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 시간문제입니다. 다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죽음이 모든 것을 다 이긴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죽을 때까지 계속 장사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죽음이 점점 닥아 올 때 우리는 무엇을 하다가 가야 할 것인가는 아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몇 주 전에 인생여행이라는 설교를 통해서 암 선고를 받은 노마 할머니가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아들과 며느리 와 손자를 데리고 1년 동안 여행을 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보면서 야 멋지다. 그렇게 말하지만 자신은 여전히 장사를 하고 있거나, 농사를 짓거나, 아니면 병원 침대에서 온갖 약과 주사를 맞으면서 죽어 가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오늘 일 년을 계획하고 다른 도시에 가서 장사하여 돈을 벌어보겠다는 사람에게 성경은 너의 생명이 안개인 것을 기억하라는 말로 자신의 실상을 바로 알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돈을 번다든지, 장사를 해서 이익을 남기고, 부자가 되겠다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인생의 목적으로 변질이 되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이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질을 위해서 어떤 나라라도 갈 수 있고, 집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계획을 위해서 하나님도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 판 금송아지 우상입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강의 할 때 여러분들은 355장을 부르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왜냐면 그 가사가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지금의 신학생들은 시골이나 섬에는 교회가 비어 있어도 안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돈만 많이 준다면 갑니다. 남극도 북극에도 가고, 울릉도, 독도에도 농촌 어촌 시골 돈만 많이 주면 갑니다. 이것은 사명보다, 하나님 보다, 돈을 더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물질과 돈이 하나님이 되었고, 인간은 그것에 몰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벽기도 나오기 몇 시간 전에 길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미화원들이 있습니다. 왜 잠도 못자고 그렇게 수고하고 애를 씁니까, 이것은 그들이 춘천을 사랑해서도 아니고, 부지런해서도 아니고, 더러운 것을 못 보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서가 아닙니다. 딱 하나 춘천시에서 돈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돈의 힘이 대단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면 안 오는 사람도, 돈이 부르면 옵니다. 움직이고 달립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첫째는 그런 자신을 알아라, 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생각과 생활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이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면” 이 말은 자신의 욕심을 주님으로 포장을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인도와 복을 구하면서도 예배나, 기도나, 사람을 인도하는 것에는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많은 돈을 학원에 갔다, 주고, 육을 위해서 쓰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신앙을 위해서 하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데는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잠을 자지 않고 일하고, 몸에 병이 날만큼 분주합니다. 무엇이 목적입니까. 무엇을 하다가 하나님을 만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인생을 마칠까 하는 중요한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보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15-16절)
여러분 귀가 가려울 때 볼펜이나, 손가락으로도 해결이 안 됩니다. 면봉하나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면봉은 귀를 청소하려고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물건 하나도 자기 자리가 있고, 써야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천하보다 귀한 생명인 당신을 하나님이 무슨 뜻이나 계획이 없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했겠습니까. 사람이 잘산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서 그것을 따르는 삶입니다.
1205년 브리엔 백작의 군대에 입대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돌아온 그는 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환상을 보았는데, 수많은 갑옷과 무기가 있는 방 안에 있던 중에 “주인을 섬기겠느냐, 아니면 종을 섬기겠느냐”는 목소리를 듣고 “주인을 섬기겠습니다.”라고 응답하고 고향으로 온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좋아하던 운동은 물론, 연회나 파티의 참석도 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결혼에 대하여 물었을 때, “나는 가난이라는 여인과 결혼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나환자들을 돌보고 사람을 섬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후 성지 순례를 하고 돌아오던 길에 기도하던 중에 “다 허물어져 가는 내 집을 수리하여라.”는 말씀을 듣고 아버지 가계의 옷감들을 가져다가 시장에 내다 팔아서 헌금을 하였는데 교회 측에서 헌금한 돈이 너무 많으므로 아버지에게 알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재판자리에 세웠습니다. 그는 재판정에서 모든 돈을 아버지에게 다 돌려주고, 옷까지 다 벗어 주면서 이제부터 나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시다고 하였는데 이때부터 그는 기도하는 삶을 살았으며 거리에 나와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허물어져 가는 교회들을 보수하면서 살았습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의 이야기입니다.
또 한사람 소개합니다. 이 사람은 스무 살이 됐을 때 자기 인생의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계속해서 대학교수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처럼 목사가 될 것인가. 그러다가 그는 버림받고 비참한 사람들이 많은데 이렇게 혼자서만 행복해도 되는 것일까. 과연 나는 이런 축복을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때부터 고통 받는 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남을 도우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서른 살까지는 음악과 학문에 전념해 실력을 쌓고, 그 후부터는 자신의 삶을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합니다. 말년에 그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 내 식구들에게 바치는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축복 속에 살고 있다. 나는 자비를 베푸는 일에 몸 바칠 수 있었다. 나는 많은 사랑과 친절을 경험했다. 자기 일처럼 나를 도와주는 분들도 많이 만났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기꺼이 나를 바치고자 했다. 이 모든 것들이야말로 나에게 주어진 끝없는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사람은 밀림의 성자 슈바이처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사농동의 문정섭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은 몇 년 후 은퇴를 하면 자동차를 한 대 살 것이다. 그리고 학교 앞에서 근처의 교회 전도지가 있으면 대신 나누어 주면서 전도 할 것이고, 없으면 전도지를 만들어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중고등 학교나 대학 앞에서 전도를 하면서 노년을 보낼 계획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지난번 c. c. f 연합 집회 때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광염교회에 교장을 하다가 은퇴를 한 유용민 장로님과, 사무관 은퇴를 한 민관식 장로 이 두 분이 강동진 목사님의 공동체인 보니콤에 양계학교에서 1주간 교육을 받고 인도 비하르에 가서 1년 동안 닭장을 짓고 양계 사역을 하도록 정착 해놓고 오겠다고 하는 결심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 프란시스나 슈바이처처럼 살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우리 자신의 힘으로 선교사를 도와 드릴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해 줄 수도 있습니다. 시장을 봐주고, 사택에서 사모님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선교사님이 한국으로 나오거나 자리를 비우면 강단을 지켜 줄 수도 있습니다.
한 장로님은 비하르 수도 파트나 이영길 선교사님 사역지에 10억을 투자해서 사두라는 미숫가루 공장을 세웠습니다. 영양식을 생산 하는 것입니다. 1봉지 1불입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선교지에 가서 회사를 세우고, 공장을 지어서 현지인들에게 일자리를 주면서, 전도도하고 현지 선교사를 도울 수 있습니다. 미싱을 배워서 옷을 만들어 줍니다. 여자들 머리를 해줍니다. 침을 놓습니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칩니다. 시범 농장을 해서, 배추와 무를 생산합니다. 할 일은 차고 넘칩니다. 단지 헌신하는 사람이 부족할 뿐입니다. 만약 우리 교회에서도 강동진 목사의 보은 양계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고 네팔에 들어가서 양계장을 짓고 닭을 키워서 계란과 고기를 먹고, 팔아서 살도록 할 사람이 있으면 교회에서 지원을 해서 닭장도 지어주고, 병아리도 사주겠습니다.
이정열 권사님은 오래 동안 강단을 책임 졌습니다. 청소도 하고 방석이나 슬리퍼를 항상 준비했습니다. 또 몇몇 권사님들은 조금 일찍 와서 11시 주일 예배를 위해서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매주 안내를 하거나, 주일 마다 교회 차량을 운전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찬양으로 섬기거나 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를 돕거나, 새로 오는 신자들을 돌보는 사역을 할 수 가 있습니다. 문제는 돈도, 시간도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이 있으면 시간이 납니다. 은사가 나타납니다. 마음을 먹어 보세요, 돈이 없어서 못하겠습니까. 주님 앞에 설 때 주님 나는 이렇게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것저것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은 가장 쉬운 것을 알려드립니다. 그것은 헌금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만 먹으면 가장하기 쉽습니다. 여러분 나는 못한다, 나는 없다, 말하지 마세요. 믿는다는 것은 섬기고, 섬기는 것을 통해서 확인되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기대하는 기대치가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순종하는 것이 나중에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길입니다. 아 그때 나도 그렇게 좀 할 것을 하고 말해도 그때는 소용이 없습니다. 때는 늦습니다.
3.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죄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17절)
우리가 죄라고 하면 무슨 엄청난 것을 생각하지만 오늘 성경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말씀을 드리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기도는 다할 수 있는 것인데 하지 않고 교회에 다니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다. 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실재로 사무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삼상12:23절)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왜 죄라는 것입니까.
첫째, 하나님과 교제를 거부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교제입니다. 구원받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전에는 자신과 아무 관계가 없었던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새로운 교제가 시작되고 이 교제의 가장 중요한 수단은 기도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모든 삶의 문제들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병들고 비뚤어진 심령을 건강하고 바르게 치료를 받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름답고 완전한 성품을 배우고 닮아가게 됩니다. 기도가 없이는 이런 일들이 전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리, 기도의 자리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신자가 기도를 소홀히 하고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거절하는 행위이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을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죄라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내려옵니다. 기도는 하늘의 문을 여는 열쇠요, 축복의 수도꼭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니라.”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셀 수도 없을 만큼 계속 “기도하라, 구하라”라는 말씀들로 가득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는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며, 받지 못하면 우리는 초라하게 살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인 의욕이 없어지고, 또 무능력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불신자처럼 되고 맙니다. 그리고 마침내 무능력한 신자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기 때문이고 이것은 곧 불신앙이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행위입니다.
기도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좋겠다.”가 아니라 “기도하라”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기도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에게 있어서 기도하지 않는 죄는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명령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또 기도하라는 말씀은 단순한 하나님의 명령이라기보다는 어쩌면 간절한 소원이요. 부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명령보다 더 간절한 말씀은 성경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에서 악한 재판관도 가난한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었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왜 밤낮 부르짖는 자녀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 마지막에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말씀하심으로 아예 간구하는 것과 믿음을 동일시하셨던 것입니다. 믿는 자는 기도하고, 믿지 않는 자는 기도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행위이며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을 거절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어떤 분들은 “기도를 해봤지만 기도가 잘 안 돼요.” “5분만 기도하면 할 것이 없어요.”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꼭 기억할 것은 기도는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기도는 한두 번 해서는 안 됩니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처럼 꾸준히 자꾸 기도를 해야만 기도가 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기도에 투자하는 것처럼 확실하고 높은 결과를 얻는 투자는 없습니다.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기도이며, 그 하나님과 대화하고 친밀해지며 그 하나님을 배우고 닮고 사랑하게 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리고 자신과 온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힘입는 것이 기도입니다. 여러분 모두 기도를 다시 시작하고 또 꾸준히 기도하여 진정 기도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 바랍니다. 기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한 것이며,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라는 말씀입니다.
결론
독일의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태인을 대량 학살한 가스 기관차를 만든 사람입니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그는 유태인 학살자로 기소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았으나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습니다. “저는 살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라에서 시킨 일을 제대로 완수했을 뿐입니다. 나라한테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닙니까?”
8개월 동안 이어진 재판을 보며 아이히만의 정신 상태를 분석한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은 그가 지극히 정상이며 심지어 준법정신이 매우 투철한 사람이라고 평가를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아이히만의 처지를 이해해 동정론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재판을 끝까지 지켜 본 작가 ‘한나아렌트’는 그가 유죄인 이유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의 투철한 준법정신과 근면은 유죄가 아닙니다. 그가 유죄인 이유는 자신이 하는 일이 초래할 결과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무능함이 가져온 근면과 성실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모두 한 번 보십시오.” “난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야” 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유와 변명은 내 삶을 정당화 시켜주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지 않는 죄 내가 이렇게 살다가 죽는다면 정말 괜찮은 것인가. 후회가 없는 것인가. 우리의 삶이 끝나고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정말 일대일로 하나님을 대면해야 합니다. 그때는 여러분 곁에 아무도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자리에는 남편도 아내도 없고, 부모와 자식도 없고, 친구도 없고 친척도 없고 변호사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홀로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바로 심판의 날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일대일로 서서 하나님을 대면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이 인생의 마지막 시간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에 우리는 반드시 믿음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하나님이 가장 먼저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세상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믿음 없는 모든 것이 전부다 무의미하고 무가치합니다.
믿음 없는 봉사, 믿음 없는 구제, 믿음 없는 헌신, 믿음 없는 사랑, 다 무의미합니다. 이런 건 다 하나님 앞에서 더럽고 가증스러운 것들일 뿐입니다. 믿음은 왕의 잔치에 입는 예복과 같습니다. 왕의 혼인잔치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전부다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난 것처럼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고 영광의 잔치에 참예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믿음을 준비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사람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언제나 믿음을 찾으셨고, 믿음을 보셨을 때는 기뻐하셨습니다. 믿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그 피로 죄 씻음을 받았습니까? 이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나 말하리라.-
봄이 오면 내 기다림을 말하리라.
빛 앞에 설 때 내 부끄러움을 말하리라.
날마다 깨워 주신 그 은혜를 말하리라.
말로 전하지 못한 내 어리석음을 말하리라.
기도로 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말하리라.
몸으로 출 수 없었던 내 몸짓을 말하리라.
어둠속에 빛나는 당신 때문이라 말하리라.
당신이 먼저 부르신 노래 때문이라 말하리라.
영혼에 심어주신 겨자씨 하나 때문이라 말하리라.
나는 숨을 곳 없는 한 마리 새되어
긴 입을 닫고 당신의 눈을 기다립니다.
죽었으나 사신 분이여,
나는 오늘 여기 있습니다.
나는 오늘 세상으로 던져진 당신의 화살입니다. 조영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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