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의 7대 원리 2 (출 20:22-26)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23.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25.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26.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이 시간에도 “경건의 7대 원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금이 보배인 것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타락해도 경건한 노아와 같이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리는 항상 이렇게 자신에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첫째, 너는 항상 기도하는가? 둘째, 너는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가? 셋째, 너는 모든 경우에 감사하는가? 넷째, 너는 욕심내는 것이 없는가? 다섯째, 너는 두려워하는 일이 없는가? 여섯째, 너는 네 중심에 연속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가? 일곱째,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가?
지난 시간에 경건이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산다는 신전의식 가운데 죄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갖고,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높여드리고,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계속하여 경건이란 어떤 것일까요?
4. 예배생활이 경건생활입니다.
24절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이처럼 우리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예배생활이 경건입니다. 어떤 예배가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일까요? 그것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는 명령에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번제처럼 드려야 합니다. 번제는 가죽과 내장만 빼고 제물 전체를 불살라 바치는 제사로 온전한 헌신을 뜻하는 제사입니다. 이처럼 마음과 뜻과 정성과 성품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시간에는 다른데 마음 쓰면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법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따르지 않는 것은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다음 화목제인데 화목제가 주는 교훈은 화목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화목입니다. 보혈의 공로로 양심의 평안을 갖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화목제물을 드릴 때 제물의 일부를 제사장과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성전에서 함께 먹으면서 화목했습니다. 이것은 사람과도 화목하라는 교훈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아주십니다.
그래서 마5:23-24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셨습니다.
교회 예배도 잘 드려야 하지만 삶속에서 하나님께 늘 예배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즘 텔레비전이 큰 문제입니다. 텔레비전에서 정보를 얻고 세상을 보는 창이 되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우리 삶의 중심이 된다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절대 지나치지는 말고 지장이 된다면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5. 소박한 삶도 유익합니다.
25절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하나님은 단을 흙으로 쌓게 했지만 가끔 돌로 쌓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조건이 있는데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듬은 돌은 애굽의 종살이를 연상시킵니다. 애굽에서 히브리 노예들은 대규모의 신전과 피라미드와 성을 만드는 일에 끊임없이 동원되어 돌을 다듬으며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애굽의 화려한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삶이 너무 복잡하고 화려하면 하나님 섬기는데 지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딤전6:6-8에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한 것과 같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처럼 삼시 세끼에 대학 나오고 자동차까지 있는 수준이면 전 세계인구의 10%만 누리는 최고의 수준입니다. 잘 사는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눅 10장을 보면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봉사하는 일에 분주했지만, 동생 마리아는 그보다 주님의 발 아래서 말씀 듣는데 치중했습니다. 못마땅한 마르다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40-42절)
주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우리들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삶이 너무 복잡하고 화려하면 하나님께 마음을 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도원 같은 데는 의복도 단순하고 음식도 단순합니다. 그런데 마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자랑하려고 해도 자랑할 것이 없으면 더 좋습니다. 단순해야 인간관계에서도 불평불만이 줄어듭니다.
6.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25절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정으로 다듬은 돌로 제단을 쌓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정은 파괴적인 행위에 쓰이는 모든 예리한 도구 등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평화의 정신, 사랑의 정신을 발견합니다. 경건은 이웃 사랑에 있습니다. 이웃을 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만 천국갈 수 없지 않습니까? 나만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경건의 기본입니다. 마치 요셉과 같이 그는 의로운 사람이라 마리아가 잉태된 것을 알고 고발하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만 했습니다. 이웃 사랑이 경건의 기초입니다.
그래서 약1:26-27에 야고보도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높은 보좌에 계셨셨지만 아버지 말씀대로 죄인을 사랑하사 낮고 천한 이 땅에 내려오셔서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번에 좋은 소식은 노벨평화상 후보로 소록도의 두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분이 우리 정부의 추천으로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 분들이 20대에 소록도에 들어와서 40년이 넘도록 보수 한 푼 받지 않고 고름을 빨며 환자들과 동고동락했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다 그래야만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내가 있는 것, 그것이 예수님 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가 있기를 원하는 곳에 내가 있어야 합니다. 현재의 위치에서 충성을 다하되 아골 골짝 빈들에도 하나님께서 가라시면 사랑 안고 기쁨으로 가야 합니다.
모세 율법에는 248개의 “하라!”는 율법과 365개의 “하지 말라!”는 율법이 있습니다. 그 율법을 하나로 압축한 율법이 마7:12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즉 “남을 대접하라!” 즉 사랑하라는 한 가지 율법만이라도 철저히 지켜도 율법을 다 지키는 것이 됩니다. 율법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롬13:8-10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했습니다.
7. 그리고 자신을 성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26절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제단을 계단이 필요할 정도로 높은 곳에 세우지 않게 했습니다. 그것은 제단에 오르내릴 때 인간의 하체가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베로 속바지를 만들어 허리부터 두 넓적다리까지 하체를 가리게 했습니다(출28:42). 이방종교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당시 이방 종교에서 수시로 행해지던 나체 종교의식을 배격하고 정결한 삶을 강조한 계명들입니다. 이런 것을 보여줌으로 아이를 더 생산하여 부강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신자가 할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경건의 요소는 바로 성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빌4:8에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잘못된 경건도 있습니다. 경건이 아니고 경건의 모양만 내는 것입니다. 옛날에 경건한 사람들은 길을 가면서도 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다가 나무에 이마를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건한 사람 말을 듣고 싶어 바리새인들이 아예 집에서 나올 때부터 자신의 이마를 벽에 찧어 피를 흘리며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금식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일부러 얼굴을 초췌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사이비한 경건도 있습니다. 경건훈련한다고 이방종교 기웃거려선 안 됩니다. 이방종교의 비움이란 우리로 말하면 죄를 버리는 것인데 죄는 예수 십자가 공로로만 해결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이루신 성화 영화까지도 믿음으로 받는 그 은혜를 체험 못했나 봅니다. 그렇지 않고 이신득의를 대신하는 교묘한 묵상으로 대체하려고 하는 것은 사탄에게 붙잡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숭배의 대상만 하나님일 뿐 구원의 교리는 이방종교라는 웃지 못할 사실입니다.
해리 에머슨 포스딕(Herry Emerson Fosdick)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채찍질을 하지 않고 말을 원하는 곳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압력을 가하지 않고 수증기나 기체를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갈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인생도 어떤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헌신하고 훈련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이처럼 구원은 예수 공로로 받지만 우리 믿음의 삶은 늘 훈련해야 합니다(딤전4:7-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죄악 많은 세상에 노아와 같이 믿음 지키며 사명 감당하면서 의롭게 사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노아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늘 은혜를 받으십시다. 늘 말슴 안에서 각성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 기쁘신 일만 하신 예수님처럼 항상 하나님 기쁘신 일만 하는 가장 가장 경건하고 위대한 우리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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