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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건의 7대 원리 1 (출 20:18-26)

하나님아들 2017. 9. 23. 15:07

경건의 7대 원리 1 (출 20:18-26)


18.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21. 백성은 멀리 서 있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가니라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23.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25.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26.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이 시간에 “경건의 7대 원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딤전4:7-8에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진실로 경건하려면 경건이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중세기의 사람 성 안토니오(Anthony, 1195-1231년)의 경건한 삶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래되고 있습니다. 안토니오는 자기의 가산을 다 나눠 가난한 사람을 주고 굴속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며 경건하게 살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가 "안토니오야, 네가 아무리 경건하게 살고자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헌 신을 고치는 노인만 못하구나." 하는 말이 들렸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안토니오는 곧 알렉산드리아로 달려가서 신발을 고치는 노인을 찾아갔습니다. "노인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십니까?" 그 질문을 받은 노인은 "글쎄요. 별 특별한 것은 없답니다. 우리는 생활이 가난하므로 매일 구두수선하는 걸로 사는데, 저녁에는 가정예배를 드리고, 아이들에게 하나님 공경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하였습니다. 삶을 떠난 경건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는 사1:16-17에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약1:26-27에 야고보도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경건한 생활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등지는 것이 경건이라고 생각해 세상과 결별하여 산으로 가는데 경건이란 내용적인 것이지 별난 생활방식이나 모양에 있지 않습니다.

 

경건이란 한 마디로 하나님을 크게 의식하며 사는 생활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의식하여 늘 성경을 읽고 찬송과 기도로 예배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소원에 따라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며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 경건의 원리들이 나타납니다.

 

참된 경건이란 어떤 것일까요?

 

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18-20절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전할 때 뭇 백성은 우레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피어오르는 거대한 연기를 보았습니다. 그 웅장하고 장엄하고 두려운 모습에 백성들이 떨며 가까이 가지 못하고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모세에게 말씀 중개자의 역할을 부탁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을 직접 대면하면 죽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출33:20).

 

그렇게 두려워 떠는 백성들에게 모세가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20절) 이처럼 하나님께서 두렵게 임하심은 우리로 하여금 범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니까 범죄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을 보세요. 다윗 그리고 아브라함을 보세요. 순간의 달콤함에 넘어가 자자손손까지 고통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생사화복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손에 달렸음을 알고 하나님 두려운 줄 아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답게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22-2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이 말씀은 2계명인데 하나님은 다른 신의 우상도 금했지만 자기를 형상화한 우상도 금했습니다.

 

하나님을 어떤 모습으로 정형화하면 아무리 잘 정형화해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신적 속성이 인간의 시각에 의해 제한됩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어야 합니다.

 

예배를 Worship이라고 하는데 어떤 존재나 대상에게 그에 합당한 가치를 돌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존재 그대로 위대한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같은 줄 알고 함부로 어떻다고 제단하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각에 갇힐 만큼 유한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11:33-36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끝없이 감탄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속성과 공유적 속성을 그대로 인정해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거룩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 하신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진실하신 하나님, 자비하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등입니다.

 

하나님의 크시고 위대하시고 온전하시고 영원하시고 측량할 수 없음에 우리는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저 엎드려 우러러 높이 높이 경배하고 영원히 찬양하는 것, 그것이 경건입니다. 그러므로 늘 예배하는 삶이 경건한 모습입니다.

 

3. 창조하신 의도대로 사는 것입니다.

 

24절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여기 토단이 나오는데 흙으로 쌓은 제단입니다. 제단에 대해 최초의 율법에 하신 말씀은 제단을 흙으로 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동 중인 그들의 상황에 맞추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동시에 돌이나 금속을 사용한 인위적인 이방신의 제단과 구별 짓고 제단의 외형에 치중하다 예배의 참된 의미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보이는 유형건물도 필요하다면 지어야 합니다. 수효가 많다면 더 크게 지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부정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고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인간의 제일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 본질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살전5:10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문제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수억을 호가하는 외제차 문제로 사기꾼 때문에 고통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섬기는데 도움이 된다면 몰라도, 지장 된다면 국산 중고 자동차면 어떻고 트럭이면 어떻습니까? 좀 부딪히고 깨져도 맘 상할 일 없습니다. 우리 삶이 간편해야 합니다. 직업도 하나님 섬기는데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일 때문에 하나님 섬기는 일에 지장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굴은 잠30:7-10절에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기도했습니다.

 

19세기 말 미국 복음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저희 기독교 선교연맹의 창시자요 탁월한 설교가인 앨버트 심슨 목사가 미국 켄터키 주 루이빌에 있는 체스트넛 스트릿(Chestnut Street) 교회에 담임하여 대 부흥이 일어나 건축이 불가피했습니다.

 

그때 심슨 목사는 3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첫째, 단순하게 짓고, 둘째, 최저 비용으로 짓고, 셋째, 9개월 내의 단기간에 짓자고 제의했습니다. 그 제안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교인들은 미국 최대교회의 꿈을 품고 많은 비용을 들여 2년 이상 걸리는 화려한 교회건축을 결의했습니다.

 

어쩌면 교인들의 믿음이 큰 것처럼 보이지만 과욕임을 파악한 심슨 목사는 오래 고민하다가 결국 사임서를 냈습니다. 그것은 이 건축이 하나님의 비전이라기보다 사람들의 야망의 표출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건물이 세계 최대일 필요는 없습니다. 거기에 휘말려 들면 교회가 얼마나 시험 들고 또 자신이 얼마나 망가질 건지 그리고 본질에 소홀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본질에 충실하면 외형은 하나님께서 자동으로 도와주십니다. 여러분의 육신의 삶도 크게 복 주십니다. 탕자가 아버지 품을 떠나 본질이 아닌 일에 붙잡혀 죽도록 고생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중에 썩어지고 말 일에 투신하지 말고 본질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사울이 입힌 갑옷을 벗어던졌던 것처럼 하나님 섬기기에 불편한 것은 다 걷어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섬기는데 지장이 되는 것은 다 정리하세요. 우리가 일하기 위해서만 세상에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 그대로 사는 것이 경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늘 의식하며 살면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그 사람에게 자기를 나타내십니다. 금생과 내생에 유익을 주는 경건이란 특별한 방법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항상 하나님을 크게 의식하면서 죄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제한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하나님 답게 인정하고 높여드리고, 인간을 창조하신 본질에 힘써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가장 아름답고 경건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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