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최상, 최대, 최고의 형이상학적 특혜를 하사하신 반면에 인간에게 두 가지를 금지하셨다. 그것은 욕심과 불순종이다. 성경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6-17>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지위를 욕심내어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을 절대 금지하셨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명령은 이미 천사들이 하나님의 지위를 욕심내어 하나님께 도전하였던 전례를 근거로 한 것이지만 인간이 곧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저항할 것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심에 의하여 인간이 곧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저항할 것을 이미 아시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문과 불만을 갖는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심에 의하여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을 것이며 뿐만 아니라 이미 천사들이 하나님의 지위를 욕심내어 하나님께 도전하였던 전례가 있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왜? 그와 같은 조치를 내리셨는가?>
이와 같은 의문과 불만에 의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에덴동산에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고의적인 조치라는 의견이 주장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통하여 인간이 범죄하게 하시어 인간이 하나님께 영원히 굴복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학을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되어진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이 거부된다.
(1) 하나님의 주권적 차원에서.
하나님께서는 절대적 주권주로서 그러한 조치 없이도 인간을 임의로 통치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명령 불 복종자를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적 주권으로 다스리실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실 필요가 없다.
(2) 하나님의 속성적 차원에서.
그러한 방법은 매우 치사하고 졸렬한 것으로서 인간들이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속성은 인간과 달라서 그러한 방법으로 인간을 굴복시키지 아니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명령 불복종자들을 공의로 다스리시며 또한 자비와 인격으로 다스리신다. 이와 같은 진리는 지금 우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와 인격을 통하여 증명된다.
(3)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불완전한 방법으로 섭리하시어 피조들로부터의 혹과 불만과 항의를 받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의 섭리는 완전무결하여 어떠한 경우에도 인정하고 굴복할 수밖에 없도록 섭리 역사를 진행하신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에덴동산에 세우신 것에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특별 섭리 때문이었다.
(1) 하나님의 주권적 차원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관계론적 차원에서 어떤 구별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만약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어떤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영역을 틀림없이 침노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의 경우와 같은 공의적 조치를 내리셔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선악과라는 법과 질서를 세우시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역을 욕심내지 않게 하셨다.
(2) 하나님의 속성적 차원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영역을 욕심내지 않는 존재로 창조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상태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전혀 무관한자로 창조될 수밖에 없다. 즉, <영혼, 인격, 자유의지>가 전혀 없는 기계적 존재로 창조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유의지 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다만 절대 복종하는 기계적 존재는 영적, 인격적 존재일 수 없으며 지혜, 지능, 재능, 사고, 취미, 취향, 적성, 기호, 등등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한 존재에게는 다만 명령에 따른 복종만 있을 뿐이며 따라서 창의, 개발, 발전, 등등도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존재는 하나님의 섭리적 동반자,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 등등의 예우를 받을 수 없다.
반면에 하나님의 속성은 섭리적 동반자,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을 인격적으로 예우하시면서 그들과 사랑의 교제를 이루시는 것을 기뻐하신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기계적 존재로 창조하시지 아니하시고 <영혼, 인격, 자유의지>를 소유한 고등적 존재로 창조하셨다. 한편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부여된 이상 인간은 그 자유의지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지위를 욕심내게 된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선악과라는 법과 질서를 세우시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역을 욕심내지 않게 하셨다. 어떤 자들은 이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자유의지를 소유하면서도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창조는 두 가지를 전제해야 한다. 하나는 결국 하나님을 창조하는 것이다. 완전한 자유의지와 완전한 순종적 존재는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하나님은 창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창조된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은 무로부터 자존하셨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자유의지 없는 인간에게는 영혼과 인격이 부여될 수 없다. <영혼, 인격, 자유의지>는 상호 밀접한 관계 하에 서로가 서로를 절대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영혼, 인격, 자유의지>가 없는 인간에게는 지혜, 지능, 재능, 사고, 취미, 취향, 적성, 기호, 창의, 개발, 발전, 등등이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존재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 의>를 세울 수 없으며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없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영혼, 인격, 자유의지>를 부여하셨다. 반면에 인간은 <영혼, 인격, 자유의지>로 인하여 사단이 이미 범하였던 차원의 범죄를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미 알고 계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세우시고 그것을 통하여 인간이 최소한 의죄를 범하게 하는 은혜를 베푸셨다. 선악과는 인간의 편에서는 그것을 먹을 때에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을 취득한다는 의미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선악과 먹는 것을 엄금하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범한다는 의미였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사단과 같이 하나님의 지위와 권위를 욕심내는 중대한 범죄를 범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게 하셨던 것이다. 법적 차원에서 정립할 때에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죄는 결코 가벼운 것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에 피조가 불순종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죄는 하나님의 권위와 지위를 욕심내는 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죄이다. 그러나 가엾은 사단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의도를 모르고 인간이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은 능력을 갖게 된다고 유혹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게 함으로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대로 진행되게 하셨다. 아담이 죄를 범했다는 것만 문제 삼으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는 죄를 조성하는 고의적 섭리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아담이 범할 수 있는 더욱 큰 죄를 작은 죄로 낮추어 주셨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적 섭리를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의 고의적 섭리를 주장한다면 그는 바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은혜를 하사하시지 아니하시고 다만 인간의 범죄를 법대로 처리하시는 섭리를 진행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행사 하실 수 있는 몇 가지 조치들을 정리한다.
① 하나님께서는 범죄자들을 공의로 다스리시어 멸절하시고 다시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계속적으로 반복된다. 인간은 같은 상황 하에서 같은 죄를 범하기 때문이다.
② 하나님께서는 범죄자들을 공의<사망>로 다스리시면서 순종하는 자들을 통하여 섭리를 진행하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인간이 같은 상황 하에서 같은 죄를 범하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반복될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하나님의 절대적 징계<사망>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므로 하나님께서는 <진정과 신령의 순종> <진정과 신령의 감사> <진정과 신령의 예배> <진정과 신령의 영광>을 받으실 수 없다.
③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역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 선악과를 세우실수 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인간이 다양한 상황 하에 서다양한 죄를 범하게 됨으로 <원죄>의 유형이 매우 다양하게 되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징계도 일률적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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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선악과는 인간의 죄를 가장 작은 것으로 낮추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적 섭리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섭리에 당연히 감사 감읍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결국 인간에 의해 거부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최초로 거부한 것은 하와였고 아담의 거부는 그 다음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 거부의 주체는 하와가 아니라 아담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인 아담을 최초로 창조하사 인류의 대표자로 세우셨고<창2:7> 아담에게 피조세계를 통치하고 다스리는 전권을 위임하셨으며<창2:19-20> 선악과에 대한 금지 명령도 아담에게 주셨기 때문이다<창2:16-17>. 따라서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서 그리고 은혜 거부의 주체로서 모든 책임을 지게 되었다.
(1) 의심과 불만.
하와의 은혜 거부는 비록 사단의 유혹에 의한 것이었지만 고의적인 것이었다. 하와는 이미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금지한 것에 대한 의혹과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창2:3>
(2) 욕심.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직접적인 원인은 욕심이었다. 하와는 사단이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된다고 유혹했을 때 하나님과 같은 지위, 권세, 권위, 영광, 등등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명령에 불순종했던 것이다.
(3) 방심.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배경은 두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하나는 아담이 하와가 건네주는 선악과를 분별없이 무의식적으로 받아먹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아담은 마땅히 하와가 건네주는 선악과를 살펴보고 분별한 후에 먹었어야 한다.
다른 또 하나의 추정은 아담이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알고도 하와의 권유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먹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아담은 마땅히 하와가 건네주는 선악과를 먹지 않음은 물론이요 하와의 행위를 책망하고 하나님께 보고하며 회개함으로서 그 사건을 지혜롭게 해결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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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받아먹은 사건은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특별한 교훈을 준다. 아담은 인류의 시조이며 또한 모든 기독교 지도자들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크고 작은 대소사에 관계없이 매사에 주의하고 조심해야 한다. 지도자는 특히 지위, 권세, 권위, 영광, 등등에 대한 욕심과 유혹을 초월해야 하며 동역자들이 그와 같은 일들로 범법행위를 했을 때에 그들을 책망하는 한편 지도자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하나님께 보고하며 회개함으로서 그 사건을 지혜롭게 해결해야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불순종함에 따라 하나님과 인간에게 각각 문제가 발생하였다.
(1)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 손상.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선악과를 금지하시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하면 죽음으로 다스리신다고 선포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포는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에 의한 선포로서 그것을 위반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인간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되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권위를 훼손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손상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와 권위가 실제로 훼손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실제로 손상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권위와 영광은 완전무결한 것으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피조들에 의하여 훼손되거나 손상될 수 없다. 하나님의 공의와 권위와 영광이 훼손되고 손상되었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이 인간에 의하여 거부되었다는 것에 대한 신학적 표현이다.
(2) 하나님 섭리의 차질.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차질이 발생하였다. 하나님 섭리의 차질 발생은 두 가지로서 법적 행정적인 것과 상태적인 것이었다.
① 법적 행정적 차질.
인간은 자신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징계받음으로 하나님께 부여받은 각종 특권과 사명을 몰수당하였다. 따라서 이제 그는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 대한 통치권을 비롯한 모든 것을 완전히 잃었다.
② 상태적 차질.
죄로 오염된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된 영적 기능을 완전히 몰수당하였고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도 완전히 단절되었다. 이러한 상태하의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고 하나님을 볼 수 없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고 하나님의 명령을 받을 수 없었고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1) 인간의 죄 발생.
① 원죄<原罪>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인간에게 죄가 도입되었다. 인간에게 도입된 최초의 죄를 신학적으로 정립하여 원죄<原罪>라고 한다. 따라서 원죄는 인류에게 존재하는 죄의 근원과 기본이다. 인류는 아담의 원죄에 오염되어 영원히 죄 가운데 거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 불순종한 것에 크게 진노하시어 그들의 범죄를 인류에게 영원히 대물림시켰다고 불만 불평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범죄를 인류에게 영원히 대물림시킨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섭리에 의하여 인류 전체가 조상의 죄에 오염된 것이다. 즉 인류는 오직 아담으로부터 유래된 <단일성>을 갖기 때문에 아담의 죄 성이 모든 인류에게 그대로 전가<오염>된 것이다.
② 일상죄<日常罪>
일상죄<日常罪>는 인간들의 일상생활에 수시로 발생하는 모든 죄들을 말한다. 일상죄는 원죄로 인하여 자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아담의 죄성을 그대로 전가 받고 오염되어 현세를 사는 동안 각종 범죄와 불법을 행하게 된다. 죄에 대한 개념은 기독교와 비기독교 사이에 크게 다르다. 비 기독교인들은 범죄가 실행된 것만을 죄로 인정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마음속에 스쳐가는 죄악적 의식 자체를 죄로 인정한다.<마5:28>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금지하실 때에 그것을 먹게 되면 죽게 된다고 경고하셨다<창2:16-17>. 하나님은 공의<公義>의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곧 법으로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필연성을 갖는다. 때문에 하나님은 경고하신대로 법을 집행하셔야 했다. 하나님의 징계는 피조세계 전체에 집행되었다. 그것은 아담이 인류의 대표일 뿐만 아니라 피조세계 전체의 대표자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 했으므로 그들만 죄인이 되게 하고 그리하여 그들만 징계하지 어찌하여 모든 피조세계를 정죄하고 징계하는가? 라고 불만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곧 하나님의 자비이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했기 때문에 그들만 징계한다면 그 후의 인간들은 과연 범죄 하지 않겠는가? 이미 앞장에서 정리한 바 있듯이 인간들은 계속하여 범죄 할 것이고 하나님은 그들을 계속하여 징계해야 할 것이다. 이때에 인간의 범죄는 구구각색일 것이며 그에 대한 징계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죄를 모든 인간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시어 인간들의 보다 큰 범죄를 막아주셨고 그에 대한 일률적인 징계를 통하여 공평한 공의를 집행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일차적으로 자연계에 대하여 징계하셨는데 특히 인간의 삶의 터전인 지구 전체에 대한 징계를 하셨다. 그리하여 지구는 본래 창조되었을 때보다 약간 나빠진 상태가 되었으며 지구에 존재하는 각종 동식물들도 약간 나쁜 상태가 되었다.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최소한의 징계이다. 그것은 다만 <가시덤불과 엉겅퀴-창3:18> 정도의 가벼운 징계였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지구가 매우 황폐해졌고 동물들도 인간을 적대하고 공격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와 같은 증거가 없으며 하나님의 속성상 그러한 징계가 내려질 수도 없다. 자연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하나님의 피조 세계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에 대한 보복으로 그것들을 황폐케 하시거나 그들에게 악함과 사나움의 징계를 하실 이유가 없다. 하나님께서 자연에게 내리신 징계인 <가시덤불과 엉겅퀴-창3:18>는 사실상 자연에 대한 징계라기보다는 아담이 땀 흘리고 수고하여 의식주를 해결하게 하신 것으로서 곧 아담에 대한 징계였다. 자연이 황폐해지고 동물들이 사나와진 것은 하나님의 징계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인간들의 자연 관리 부족에서 비롯되어진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징계는 비록 <가시덤불과 엉겅퀴-창3:18> 정도의 가벼운 징계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징계 받기 이전의 자연은 본래 참으로 아름답고 순전했었기 때문이다.
(1) 인간의 육적인 면에 대한 징계.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인간의 육체는 본래의 아름다움으로부터 크게 격하되었으며 육체적인 기능도 전체적으로 크게 저하되어 늙고 병들며 종래에는 죽어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비극적 운명이 되었다.
(2) 인간의 삶적인 면에 대한 징계.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인간의 삶은 매우 고단하게 되었다. 남자는 직업을 가지고 일해야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게 된 반면에 자연<세상>은 인간의 노력에 저항하여 인간의 삶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단하게 하였다. 특히 여자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아야 했고 해산의 질고를 겪게 되었다.
(3) 인간의 영적인 면에 대한 징계.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인간의 영적인 면이 크게 손상을 입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 형이상학적이었던 지혜, 지식, 지능, 사고, 인격 등등이 크게 손상을 입어 현저하게 저하된 반면에 시기, 질투, 중상, 모략, 욕심, 분쟁, 등등의 비 진리적인 것들이 인간의 심령에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특히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물이었던 인격과 자유의지가 크게 손상되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4)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징계.
인간이 하나님께 받은 징계 중 가장 크고 중대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영역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하사하셨던 <영>의 영역중 하나님과 관계된 부분을 몰수하셨고 사명과 지위를 몰수하셨으며 인간을 교회<에덴동산>으로부터 축출하셨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완벽하게 단절하시어 격리하셨다<창3:24>.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영적으로 무능한 상태가 되었으며 그리하여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볼 수 없고 알 수 없고 깨달을 수 없고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인간에게는 현세적 삶을 사는 동안에 필요한 정도의 영적 기능과 인격과 자유의지만 남았을 뿐 하나님과 관계된 영적 기능은 완전히 몰수되었다.
(5) 하나님의 자비.
아담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징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사단과 같은 반역죄를 범하지 않게 하시고 다만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도록 조처하셨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죄는 창조주 하나님<절대주 하나님>과 피조의 관계에서 정립하면 피조가 감히 창조주의 명령을 거부하고 불순종한 것으로서 최고, 최상, 최대의 큰 죄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대 죄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아담의 범죄를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 공의로 다스리시는 한편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통하여 구제하시는 섭리를 세우셨다.
http://www.제자훈련교회.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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