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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가 갈망하는 회복/시편 80:1-19

하나님아들 2017. 8. 3. 22:49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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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갈망하는 회복

80:1-19 (:1-6, 14-19)

 

80:1 , 이스라엘의 목자이신 주님, 요셉을 양 떼처럼 인도하시는 주님,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그룹 위에 앉으신 주님, 빛으로 나타나 주십시오. 2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님의 능력을 떨쳐 주십시오. 우리를 도우러 와 주십시오.

3 하나님,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우리가 구원을 받도록, 님의 빛나는 얼굴을 나타내어 주십시오.

4 주 만군의 하나님, 얼마나 오랫동안 주님의 백성들이 올리는 기도를 노엽게 여기시렵니까? 5 주님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빵을 먹이시고, 눈물을 물리도록 마시게 하셨습니다. 6 우리를 우리의 이웃에게 시빗거리가 되게 하시니, 원수들이 우리를 비웃습니다.

7 만군의 하나님,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나타내어 주십시오.

8 주님께서는 이집트에서 포도나무 한 그루를 뽑아 오셔서, 뭇 나라를 몰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습니다. 9 땅을 가꾸시고 그 나무의 뿌리를 내리게 하시더니, 그 나무가 온 땅을 채웠습니다. 10 산들이 그 포도나무 그늘에 덮이고, 울창한 백향목도 그 가지로 뒤덮였습니다. 11 그 가지는 지중해에까지 뻗고, 새 순은 유프라테스 강에까지 뻗었습니다.

12 그런데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그 울타리를 부수시고 길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 열매를 따먹게 하십니까? 13 멧돼지들이 숲에서 나와서 마구 먹고, 들짐승들이 그것을 먹어 치우게 하십니까?

14 만군의 하나님, 우리에게 돌아오십시오.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보살펴 주십시오. 15 주님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이 줄기와 주님께서 몸소 굳세게 키우신 햇가지를 보살펴 주십시오.

16 주님의 포도나무는 불타고 꺾이고 있습니다. 주님의 분노로 그들은 멸망해 갑니다. 17 주님의 오른쪽에 있는 사람, 주님께서 몸소 굳게 잡아 주신 인자 위에, 주님의 손을 얹어 주십시오. 18 그리하면 우리가 주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니,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십시오.

19 만군의 하나님,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우리가 구원을 받도록,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나타내어 주십시오.

 

여러분은 어떤 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우리가 받을 가장 큰 복은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며 친밀히 교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대통령과 언제나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시장과 언제든지 밥 같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실세가 아닙니까?

하나님과 이처럼 친밀하다면 아쉬울 것이 무엇이며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80편은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하였을 때, 하나님께 올려드린 눈물의 기도입니다. 그가 얼마나 울었는지 :5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5 주님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빵을 먹이시고, 눈물을 물리도록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가 구하는 것은 3, 7, 19절에서 반복하여 드린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나타내어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3 하나님,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우리가 구원을 받도록, 님의 빛나는 얼굴을 나타내어 주십시오.

하나님의 빛나는 얼굴을 나타내 달라는 것은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보듯이 친밀하게 교제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가족도 집도 땅도 성도 나라도 다 잃어버리고 나니 정말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아진 것입니다. 하나님!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잃어 버렸던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지자를 죽이고 우상숭배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잃어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도 주님의 빛난 얼굴을 나타내 달라고 구했던 것입니다. 그 속에 모든 회복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백성들을 위하여 복을 빌 때 반드시 빌어 주어야할 복이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6: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모든 복은 한마디로 주님의 얼굴을 비추어주시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일천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말씀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어 징계를 당했을 때, 반드시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회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의 빛난 얼굴을 보면서 신앙생활하고 있는가?”

우리가 만약 무엇을 잃었다면 무엇을 회복해야 할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건강을 회복하는 것도 아니고 재정의 회복도 아니고 사업의 회복도 가정의 회복도 아닙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주님의 빛난 얼굴입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얼굴을 마주하듯이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 지금 필요한 부흥도 교인 수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빛난 얼굴을 나타내 달라고 기도하면서 계속하여 하나님께 돌아와 달라고 기도합니다.

:2 우리를 도우러 와 주십시오.

:14 만군의 하나님, 우리에게 돌아오십시오.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떠난 줄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여전히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얼굴만 가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을 믿지 못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우리도 누군가가 고통 받고 있을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길기도합니다.

이런 기도는 마치 하나님이 어디 다른 곳에 계시면서 그들에게 가 봐야 되는지 고민하시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다른 곳에 계셨다가 우리가 큰 소리로 찬양하거나 오래 기도하면 가끔씩 나타나는 줄로 여깁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가 강하게 느껴질 때, “하나님이 임하셨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늘 함께 하시던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인 것뿐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로부터 도망가다가 들판에서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는 깨어나 깜짝 놀랐습니다.

28:16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야곱이 놀랐던 것은 하나님을 만났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들판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이 놀라왔습니다.

여러분이 시장가다가 길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면 무엇이 충격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예배당에서 예배드릴 때나 기도원에서 기도하다가 만나는 것이라 여겼는데, 시장 보러 가는 길에서 만난 것이 놀랍게 여겨질 것입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 있는 한 떨기나무에서 불꽃으로 임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40년 동안 양 떼를 몰고 늘 다니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선 곳이 거룩한 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순간 모세는 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태어나서 40년 동안 보고 자란 것은 엄청난 신상과 무덤들이었습니다, 스핑크스, 피라미드들을 보면서 신은 그런 곳에서 만나는 것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광야에서, 떨기나무를 통하여 임하셨으며 그 땅이 거룩하다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40년 광야 길에서 늘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출근하던 지하철에서 하나님이 나타나 그곳이 거룩한 땅이라고 말하신다면 어떤 느낌이겠습니까?

 

시편 80편을 쓴 기자가 그토록 갈망했던 기도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가 사는 어디서나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음을 믿지 못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얼굴을 보는 정도가 아닙니다. 아예 주님이 우리 안에 임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한 몸이 되어 살게 된 것입니다.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1:27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고후 13:5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성경이 이렇게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보다 놀라운 일이 또 있겠습니까?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 놀라운 믿음을 교리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간음과 사기죄로 옥에 갔습니다. 한 목사님이 그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언제부터 예수님의 사랑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나요?”

그는 목사님을 주저함 없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사랑에서 멀어진 적이 없습니다.”상담하던 목사님이 당황했습니다. “그러면 간음과 사기행각은 어쩐 일인가요?"

나는 하나님을 단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상담하던 목사님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교리로만 예수님을 믿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모순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주님이 자기 안에 계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마음에 계심을 아는 것은 두렵기만 한 일이 아닙니다.

함부로 말하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산다!’ 이것이 우리의 찬양할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크신 것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임하셨다." 이 믿음, 이 고백이 진정 찬양할 일입니다.

 

홍정길 목사님께서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안타까워하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첫 번째 질문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이고, 그 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입니다. 목사님은 이 답을 우리가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고 보니 정확한 의미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멘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이기 보다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가장 즐겁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저를 보면 어려워하는 이도 있고, 친근감을 가지는 이도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저를 즐겁게 하겠습니다.

하루는 어린아이가 제게 말했습니다. “머리가 왜 그렇게 늙었어?”

하나님, 저도 이처럼 하나님과 친밀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부목사님들이 저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제 딸이 저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겠습니까? 제 딸은 저를 보기 위하여 화장하지 않습니다. 맨 얼굴로 아무 거리낌 없이 제 앞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만약 제 딸이 저를 만나기 위하여 화장을 한다면 저는 슬플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성일기를 써 보자는 것입니다. 영성일기의 초점은 일기가 아닙니다.

일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밑바탕이 되는 믿음입니다.

주 예수님이 나의 마음에 임하셨으니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살아보고 그것을 기록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답답한 분이 있을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어디나 계신가요?”

여러분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돌아갈 집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갈 집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밤이 늦고 배고파도 갈 집이 있다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러나 갈 집이 없는 사람은 어떤 심정이겠습니까? 자동입니다, “, 주여

그리고 그는 오늘 자신을 재워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돈, , 가족, 재산, 직장 등 의지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갈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갈 집이 없는 심정으로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다 잃고, 아내도 빼앗겼고, 가족들도 잃고, 고향 친척들이 위험해지고, 성전에 숨을 수도 없어 광야 굴속으로 도망갔을 때입니다.

동굴에 들어간 다윗은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너무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중, 갑자기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갑자기 깨달아졌습니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지! 다윗은 위기와 배신, 고통 속에서 한동안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정신없이 누가 나를 도와줄까? 어디가면 안전할까? 그 생각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갈 데 없는 상황에 다다르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이 생각이 드니까,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잠시 말을 잇지 못하였습니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다윗은 동굴로 내 몰렸지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아둘람 동굴에서 다윗 왕국의 기초가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한 남자 성도가 아내를 장례 치렀습니다. 거기다 딸까지 심한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처지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 말고는 가진 것이 없는 상태가 될 때까지 그 분이 삶의 전부라는 사실을 결코 깨닫지 못했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미국 유학을 마쳤으나 한국에서 목회할 교회가 생기지 않아서 고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평소에 존경하던 목사님께 상담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그 어느 것도 상관 없으실 것입니다. 오직 목사님 마음에 주님이 오셨음을 믿고 그 주님을 사랑하며 그 분께 순종하는지만 관심이 있으실 것입니다그렇게 기도하자 아무런 문제가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국으로 오셨습니다.

 

여러분 갈 집이 없는 심정으로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정말 갈 곳 없어야 주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심정으로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먹고 마시고 결혼하고 자녀들을 낳고 집 사고 땅 사고 인생을 즐기기 위하여 이 땅에 태어난 것처럼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값비싼 대가가 따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두렵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 마음에 임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절망 중에 있다 하더라도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모든 것을 회복한 사람입니다.

 

찬송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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