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반석 위에 집을 세우라

하나님아들 2016. 7. 7. 16:54
반석 위에 집을 세우라

본문: 마 7: 15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24절)

* 기도: 오늘 주의 거룩한 날을 맞이하여 주의 전에 나왔사오니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여 주셔서 말씀에는 은혜를 찬양에는 기쁨을 그리고 기도의 축복을 응답을 내려주옵소서 우리 모든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곡식단처럼 하나님께 바쳐지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계적인 미국 시인 롱펠로는 그가 지은 "건축가"라는 시에서 ‘세상 모든 사람은 운명과 시간 안에서 집을 짓는 건축가’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본문에서 세상 모든 사람이 집을 짓되 지혜로운 자들은 반석 위에 짓고 어리석은 자들은 모래 위에 짓는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편 127편 1절에 보면 솔로몬도 사람들이 인생의 집을 짓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지어주시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째, 지혜로운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습니다. 여기서 반석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5∼7장에서 선포하신 내용이 반석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은 인생의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인생의 집을 반석 위에 세우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폭풍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데 그 이유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비와 창수 바람은 영적 의미로 인생살이에 닥쳐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환란과 시험 등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말씀이 능력이 되어 이 모든 것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으므로 인생의 집이 넘어지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취사선택할 권한이 없고 절대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어리석은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습니다. 여기서 모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이유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면 부담이 되고 힘이 들고 손해를 본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당장은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편할 지 모르겠지만 인생살이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환란과 시험거리를 만나면 인생의 집이 무너지게 집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말씀의 능력을 소유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런 것을 이길 수 없어 인생의 집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4)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이 인생의 집을 반석 위에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유명한 산상설교의 결론을 읽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옳게 생각하여 주여 주여 하면서도 그 말씀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생활을 한다면 아무런 의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 말씀을 읽을 때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주의 이름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사람 중에 구원을 못 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지라도 그리스도만 계시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입니다. 전에 시카고에 화재가 나서 무디(D.L.M oody)선생의 가산이 전부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어떤 사람이 무디(Moody)선생을 찾아와서 위로하는 말로 선생님, 아니 이번 화재에 모두 잃어 버렸었다면서요? 하니까 그때 무디(Moody)선생이 기쁜 낯으로 대답하는 말이 아니요, 그리스도는 내게 남아 있어요 하였다고 합니다. 세상에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소유한 것이 가장 귀중한 것을 의미하는 말인 줄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의 결론에서 반석 위에 세운 집과 모래 위에 세운 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반석은 자연석과 같은 느낌을 주지마는 누가복음 6장 48절에 보면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는 인간의 노력 면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여간 집을 건축함에 있어서 기초공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집을 성경에서 보면 여러 가지 의미로 말씀하였습니다. 가령 에베소서 2장 1절, 22절에는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지어져 가느니라 하였는데 여기의 집은 우리 개인을 뜻하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 보면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곧 여기의 집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가령 요한복음 14장 2절에 보면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하였는데 내 아버지 집은 하늘나라를 가리킵니다. 개인의 신앙을 완성함에 있어서나 교회를 건설함에 있어서나 나아가서 천국을 확보함에 있어서 그 기초적 요소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분명히 우리 인생의 집을 짓는데 있어서 기초공사를 하는 것입니다. 기초공사는 먼저 하여야 되고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기초공사는 땅을 파고 돌을 묻는 공사입니다. 좋은 기둥을 세우고 아름 다운 창문을 달고 페인트로 칠해서 아름답게 꾸미는 지상의 공사는 투자하는 것만큼 노력하는 것만큼 사람의 눈에 보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하는 일들이 보기에 화려하고 명예스럽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보이지 않는 일에 노력을 경주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물질을 쏟는 것입니다. 얼른 볼 때 공연한 시간과 물질의 낭비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약삭빠른 사람들 생각에는 어리석은 일로 보여집니다. 어떤 악덕 건축업자들은 보이지 않는 부분인 기초공사는 아주 허술하게 하고 보이는 부분만을 아름답게 꾸며 팔아 버립니다. 얼른 보아서는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지나 보면 알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집을 짓는데 기초공사는 결코 낭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소중하고 가치있 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진가가 나타날 때는 평시가 아니라 위에서는 비가 내리고 아래서는 창수가 나고 옆에서는 바람이 부딪치는 말하자면 역경이 다가 올 때 기초가 튼튼한 집과 약한 집의 판가름이 납니다. 우리 인간이란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른 보아서는 어떤 사람이 바른 인격의 소유자인지 그렇지 못한지 자세히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면으로 접해 보고 시간이 흐르노라면 자연히 그 사람의 본성이 나타나는 법입니다. 집을 짓는데 기초는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질적인 것은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육적인 것은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과학적인 것은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덕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사람들이 물질적인 것, 육적인 것, 과학적인 것, 외부적인 것, 보이는 것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기 때문에 큰 발전을 가져 왔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과학시대라고 말합니다. 더구나 이 과학이 얼마나 빠른 발전을 가져왔는지 모릅니다. 가령 교통을 보세요. 과학이 발전되지 못했을 때는 어디에 가려면 걸어 갔습니다. 좀 여유있는 사람은 말을 타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자동차가 얼마나 빠릅니까? 기차도 있고 기선도 있고 비행기도 있습니다. 그 동안은 제트기하면 굉장히 빠 른 비행기로 알았는데 작년부터는 영불합작으로 초음속 비행기 콩코드라는 여객기가 나와서 전 의 제트여객기보다 갑절 빠르게 되었습니다. 오래지 않아서 보통 사람도 우주선을 타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통신은 어떻습니까? 옛날에는 누구에게 편지를 전하려고 하면 다른 길이 없었어요. 그저 편지를 써서 사람을 시켜 보내곤 했어요. 그러니까 좀 먼데는 한달도 걸리고 두 달도 걸렸습니다. 물론 바다 건너는 생각도 못하구요. 그런데 지금이야 얼마나 빠릅니까? 편지를 보내면 비행기로 나르고 그뿐입니까? 전보가 있고, 이메일이 있고, 전화가 있어서 세계 어디에도 서울 안에서 하는 것처럼 가까이 들립니다. 이제는 인공위성으로 중계하니까 얼마나 더 편리하게 되었는지 몰라요.요사이를 소위 매스컴뮤니테이션의 시대라 하지 않습니까? 전에 19세기에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찰스 스펄젼(Charles Spurgeon)목사는 약 6천 명 교인을 한 예배당에 모아 놓고 설교를 하곤 했는데 그때 이런 확성기가 있은 줄 압니까? 그저 육성으로 했어요. 본래 그는 음성이 아주 좋았습니다. 보통 사람의 경우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처럼 좋은 시설이 있어서 작게 말해도 저 뒤에까지 다 들리고 뿐만 아니라 다른 방에 계신 분들까지도 다 들으시고 텔레비젼을 통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젼을 이용 하면 세계각국에서 수천만 수억만의 사람이 함께 듣고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과학으로 인해서 우리 인간 생활에 큰 변혁을 가져 왔습니다. 자, 그런데 이렇게 과학이 우리 생활에 큰 영향을 주게 되니까 오해를 가지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아 지금은 과학시대야 과학만능시대야, 과학 이면 못할 것이 없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과학만 발전시키면 모든 사람이 잘 살게 된다고 하는 사상은 요사이 뿐 아니라 19세기 말엽에 소위 유토피아사상(Utopia)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과학만 잘 발전하게 되면 세상이 변하게 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고 유토피아(Utopia) 소위 이상향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공상적 사회주의가 나중에는 공산주의를 낳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과학은 만능이 아닙니다. 제한이 있습니다. 과학이란 우주의 물질을 연구해서 그 성품을 알아내고 그것이 운영되는 법칙을 발견해서 인간생활에 필요한 새 것을 만들어 우리 일상생활에 편의와 혜택을 주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과학이 우주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습니까? 물질의 뜻을 말해 줄 수 있습니까? 이 우주가 어떻게 생겼으며 무슨 목적으로 존재하며 우주의 궁극적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과학이 대답할 수 있습니까? 과학의 영역은 물질 자체에 제한되어 있습니다. 우주뿐만 아닙니다. 우리 인간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과학이 우리 인간에 대한 많은 지식을 보여 줍니다. 생리학적으로 우리 인간을 연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전부입니까? 인간이 어디서 왔으며 무엇하러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여기에 대해서 과학이 말할 수 있습니까? 인간이 이렇게 단순히 육신뿐인지 이 속에 영원불멸의 영혼이 있는지 과학이 설명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닙니다. 신앙의 영역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배워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이와 같은 자연을 초월하는 초자연적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도 여러분! 과학이 이렇게 인간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외부생활에 변화는 가져오지만 인간의 내부생활의 변화는 과학자체가 가져오지는 못합니다. 곧 사람이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 산다고 다 그 사람이 마음이 변해서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집에서 가난하게 살던 가정이 큰 집 짓고 살게 되었다고 그 집이 꼭 행복합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만히 보면 외국이나 한국이나 큰 집 짓고 사는 사람들 가운데 더 불행한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과학은 사람의 겉모양은 바꿔 놓을 수 있어요.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신앙의 영역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새 사람을 만들려고 마음이 변하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우리가 과학만 배우고 과학만 발전한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경제 발전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경제발전에 많이 힘쓰지요. 또 사실 이것이 필요합니. 우리는 그 동안 다른 나라에 비해서 너무 가난하게 지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도 경제성장을 해서 넉넉하게 살면 얼마나 좋겠어요? 사실 최근에 우리나라가 이 방면에 주력해서 자세한 내용은 모릅니다마는 눈에 보이는 면에 서 많이 달라지고 발전한 것이 사실입니다. 전에 비해서 외부 환경이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고 국민의 소득도 훨씬 높아져서 생활수준의 향상을 가져온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동남아에서는 그렇게 생활 면에 뒤지는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나라가 경제 성장만 해서 바로 사는 줄 압니까? 기억하십시오. 경제성장은 말하자면 눈에 보이는 집과 같습니다. 경제성장을 하면 할수록 집을 높이 짓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눈에 보이는 집이 높이 올라가면 높이 올라 갈수록 보이지 아니하는 집의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기초가 약한데 밖에 세워지는 집이 높이 올라가면 높이 올라 갈수록 사실 위험한 것입니다. 신앙적, 정신적 기초의 준비없이 과학적 경제적 성장을 가져오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고민입니다.

우리 모두는 집을 짓고 삽니다. 육신을 위해 집을 짓고 살면서 동시에 영혼을 위한 집도 짓습니다.
‘영혼을 위한 집을 짓는다’라는 것은 ‘인격’이 집을 짓는 것이며 ‘성품’이 집을 짓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어떤 인격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성품을 가지고 있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인격과 성품이 바로 그 사람 전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재료를 똑같이 주셨습니다. 집을 짓는 데 필요한 철근, 목재, 시멘트, 타일, 유리 등 모든 것을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두 사람이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1년 후에 큰 차이가 났습니다. 한 사람은 그 재료를 잘 이용해서 쓸모 있고 아름답게 집을 지었으나, 다른 한 사람은 집을 짓지 못하고 재료를 그대로 방치한 것입니다. 세월이 지났지만 그 사람은 지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나이를 먹어도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예전과 똑같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한 건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설계도입니다. 집을 지을 때 절대로 설계비를 깎으면 안됩니다. 또한 설계도를 무시하고 시공하면 안됩니다. 설계도대로 해야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복된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영국의 석학이었던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현대인은 자연과 물질을 다루는데는 능숙하고 지혜롭지마는 자기자신을 다루는데는 어리석기 한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과학의 문명은 토끼걸음처럼 빠른데 도덕문명, 정신문명은 거북이처럼 기어가기 때문에 여기에서 생기는 격차로 인해서 현대인은 몸부림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이제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갔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보이는 집들은 더 높게, 크게, 아름답게 지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집을 어떤 기초 위에 세우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집은 반석 위에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부딪쳐도 무너지지 아니합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보기에는 좋을는지 몰라도 무너질 때가 옵니다. 일본 동경 대지진 때에 무너지지 않았던 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집은 미국사람 라이트(Light)란 사람이 설계한 것으 로 지진도(地震 )에 맞게 기초공사를 했으므로 건축 당시에는 과대한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무서운 대지진 속에서도 완전히 보전이 되어 그 건축가의 이름이 더욱 높아졌다고 합니다. 신앙이란 기초공사가 튼튼히 되어 있는 사람은 큰 역경이 위에서 옆에서 아래서 몰아와도 신앙의 빛을 더욱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다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나 반석 위에 세 우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십시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배우고 그 말씀 가운데 확고히 서십시다. 그리스도는 반석이십니다. 그리스도 위에 우리의 집을 지웁시다. 반석 위에 집을 세우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46:1)

성도 여러분, 어리석은 자처럼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모래 위에 집을 건축하는 자가 되지 마시고 주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반석 위에 집을 건축하여, 어떤 시험과 환란, 어려움에 부닥쳐도 견고히 버티는 승리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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