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 11:15)
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 시간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주님의 화법 가운데 독특한 것 중의 하나는 말씀하신 후에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듣는 자로 하여금 하신 말씀에 주위를 기울이게 하고 들은 말씀을 더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가장 큰 불행은 보지 못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신앙 안에서 보면 듣지 못한 것도 큰 불행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는데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많이 불쌍히 여기셔서 많은 농아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청각장애를 고쳐주신 것은 이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영혼의 귀를 열라는 메시지입니다.
시편 기자는 우주에 여호와의 말씀으로 꽉차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들을 귀가 열리지 않으면 그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음성과 아울러 우리가 들어야 할 소리로 가득합니다.
성경을 통하여 들려지는 소리는 어떤 것일까요?
1. 구원 받은 영혼의 기쁨의 소리입니다.
습3:14-17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세 전에 택하사 불러 주심으로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입니다. 그러므로 그 때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하셨는데 이것은 성령 안에서 지금도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살전5:16-18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했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육신의 생각에 붙잡혀 구원의 즐거움을 모른다면 가장 어리석은 것입니다. 815 해방의 감격을 누리는 것처럼 예수 안에서 주신 구원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 성경을 보면 음부에서 부르짖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눅16:25에 보면 음부에서 고통 중에 있던 부자가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부르짖었습니다.
이 얼마나 처절한 소리입니까? 그러나 그의 요청은 일언지하에 거절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지옥은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기 들어가는 자는 다시 나오지 못할 뿐 아니라 모든 소망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비극은 죄인이라는 것이고 또 지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람들이 많이 살지만 천국 가는 사람보다 지옥 가는 사람이 더 많다고 여겨지기에 더 슬픕니다.
미얀마에서 한 불교 승려가 3일 동안 죽었다가 천국과 지옥을 보고 화장하기 직전 살아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데트 피얀 신토 파울루’(Athet Pyan Shinthaw Paulu)라는 사람인데 그는 황열병과 말라리아에 걸려 숨을 거둔 후 그 영혼이 지옥을 보게 되었습니다.
미얀마의 불교에는 지옥 사상이 없기 때문에 그 곳이 지옥인줄 몰랐다고 합니다. 그는 거기서 사람들이 불못에 빠져 고통 당하는 것을 보았는데 거기에는 자기가 존경했던 불교의 지도자나 정치 지도자들도 보았습니다.
그는 거기서 예수 믿어야 천국 온다는 것을 본 후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는데 살아나서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나는 방금 지옥 불이 실재하는 것을 보고 왔는데 우리나라는 수천 년 동안 잘못된 종교에 속아왔다. 기독교만이 참된 종교다. 예수를 믿어야 한다.”
메어리 캐더린 백스터가 쓴 “정말 지옥은 있습니다.”라는 책에서 그녀는 지옥을 구경했고 지옥에서 끝없는 슬픈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나고 지옥 안은 온통 불과 연기로 가득하더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도 지옥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다면 성경을 보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소리를 듣고 경성하여 신앙생활하고 멸망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기 바랍니다.
3. 우리에게 들려지는 소리는 우리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행16:9에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아시아 지역을 돌아서 안디옥 교회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성령께서 그 계획을 막으시고 보여주신 것이 마게도냐에서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지금 우리도 이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전도해 주시오. 우리를 살려주시오. 우리에게 선교사를 보내주시오.’ 하는 소리입니다. 절망 속에 사라아가는 불신자들 영혼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나만 예수 믿고 천국 가겠다. 그것만큼 악한 것은 없습니다. 그 사람은 아마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없기 대문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우리 믿음도 죽고 다 죽습니다. 모르드게가 에스더에게 한 유명한 말이 있지요.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에4:13-14)
그러자 에스더는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16절) 하나님의 일하다 정말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전주안디옥교회는 선교에 가장 모범적인 교회입니다. 지금은 원로목사이지만 이동휘 목사는 1983년 3월 27일 교회재정의 60% 이상을 선교사역에 쓰기로 결정하고 전주안디옥교회를 개척하고 바울선교회를 만들어 1986년 첫 번째 선교사를 필리핀에 파송했습니다. 시작할 때는 미약했지만 좋은 목적을 갖고 일하니 하나님께 일군을 붙여 주셔서 현재 92개국에 424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불편하게 살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그들의 필요를 위해서 쓰지 않고, 둥근 양철집 예배당을 짓고, 모든 교회 기관을 선교 체제로 운영하고, 각 기관이 지원 받지 않고 자립하며, 모든 봉사직은 자발적인 희생 봉사를 원칙으로 하여 이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복음의 불모지에서 우리를 도우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4. 성경을 통하여 들려오는 소리는 양심의 소리입니다.
마3:1-2 “그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세례 요한의 이 외침이 얼마나 힘이 있었던지 많은 사람들이 나아와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리는 지금도 우리에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바로 양심의 소리입니다. 양심이라고 같은 양심은 아십니다. 성경을 읽는 자만이 갖는 신앙 양심이 있습니다. 이 소리를 클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명료할수록 좋습니다. 사람들이 타락의 길로 가는 것은 이 소리가 작기 때문입니다. 이 소리는 성경을 보는 자에게 더 똑똑히 들려옵니다.
그래서 잠1:20-22에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훤화하는 길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가로되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시대를 가리켜 귀신 들린 세대라고 하셨고, 피리를 불어도 감동이 없는 세대하고 하셨는데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떠합니까? 이 시대도 당시 못지 않는 귀신 들린 세대입니다. 죄가 죄인 줄 모르고 죄가 홍보되고 장려되고 있습니다. 방송언론이 앞장서서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이 화인을 맞아 죄를 죄로 보지 못하고 또 노아의 때와 소돔의 때처럼 부끄러운 줄 모르는 멸망 직전입니다. 그 이유는 영의 귀가 막혀 양심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기 동화되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기도해야 합니다.
5.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 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6:8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 이사야는 그 음성에 감동되어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 외쳤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냥 음성도 좋지만 하나님의 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그 자녀는 성숙한 자녀이듯 하나님의 중심을 읽고 들을 수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최고 기쁨의 대상입니다. 그 음성은 성경을 읽는 자에게, 그리고 성령을 받은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16) 했고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사모한다고 했습니다(빌1:8).
며칠 전 어느 老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젊었을 때 갑자기 눈이 아파서 빛을 보지 못하고 눈을 뜨지 못해서 강단에 올라가지 못할 상황이 되어 교회 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랬더니 “사과즙을 내어 눈에 넣어라.”는 음성을 듣고 그대로 했더니 자고 일어나니 치료되어 있더라. 과연 그런가 하고 검색해 보니 시력에 사과만한 것도 없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좋으시면 늘 드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분별해서 들어야 하지만 하나님께 여쭈어서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듣는 자는 들어서 복이 있고 보는 자는 보아서 복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듣지 않아야 할 소리를 듣고 있다면 회개하고 신령한 귀를 여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성경을 통해서 구원의 기쁨의 소리, 지옥에서 들리는 소리, 사명의 소리, 양심의 소리 그리고 이사야처럼 하나님의 중심의 소리를 듣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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