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하나님은 사랑

하나님아들 2016. 6. 15. 16:46

하나님은 사랑

13:13 ~ 24

2015, 1, 11

 

지난 한 주일을 표현하면 그야말로 비극의 주일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의 관심과 뉴스가 이 프랑스로 향했던 주일이었습니다.

지난 수요일 아침 프랑스 파리에 주간만평신문 샤를리 렙도 사무실에 이슬람 무장단 2명이 총을 들고 난입하여 아침회의를 하는 편집장을 비롯하여 만평만화가들 11명을 사망케하고 지역을 순회하던 같은 이슬람경관을 확인 사망케 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음날 역시 파리외곽 이스라엘 상점에 알카에다 소속의 무장한 자가 인질극을 벌여 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결국 무장한 자들은 전부 사살되어 사건은 종료 되었지만, 17명의 사망과 다수의 사상자를 낸 이번 사건은 2015년 올해 연초에 벌어진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건이 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도 자신의 평가에 긴장을 한다는 샤를리 렙도의 만평주간지 사는 정치를 비롯하여 전세계의 종교를 막론하며 풍자 비판하는 데에 잘 알려진 만평지 이기도 합니다. 열광적 이슬람사람들은 반복된 마호멧에 대한 이슬람의 풍자 비판에 과격한 시위와 방화로 위협하고 최근에는 계속 메일로 협박하여 경계를 강화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든지 인명을 무참히 살상한다는 것은 그것은 건전한 종교일 수가 없습니다. 이슬람의 지도자들도 말하기를 이것은 샬롬 평화가 그 정신인 이슬람이라기 보다는 과격단체라고 말하면서 이 사건을 통해 프랑스의 아랍인 혐오주의를 비롯하여 이방인 혐오주의가 상승되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논평하기도 합니다.

종교가 극단적이 되어 질 때 그것은 타인을 악으로 규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타인을 죽어야 하는 악인으로 규정을 하는 것은 이미 종교인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글이나 그림, 만화로 타 문화나 종교를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그 문화나 종교에 속한 사람들에게 분노를 자아내는 일이 사실이지만, 생명으로 그 조롱을 갚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평화를 말하는 이슬람종교의 여성에 대한 인권문제나 정치에 대한 국민의 참여문제는 정치와 종교가 하나인 이슬람종교의 영원한 숙제 이기도 한 것입니다.

서구를 대표하는 카톨릭이나 기독교 역시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인 희생과 사랑과 나눔의 정신이 적극적이 되어지지 못하고 종교적 제의로 만 상승될 때 종교 간의 갈등과 비극은 지속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21세기 현대의 갈등과 폭력과 전쟁은 종교로 위장된 상대적 빈곤으로 인한 적개심과 증오, 그것이 자라나 폭력과 비극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2014년에 일어난 우리나라의 각종 사고를 보더라도 자연재해보다는 부패와 탐욕으로 사고가 유발된 여러 사고가 있었고, 순간적인 분노와 상대적 빈곤감으로 자신 혹은 타인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을 보면,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3절에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절에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입으로 예수.. 예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721절에 말씀하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삶의 아름다운 하늘의 성품의 열매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향해서 처음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로 고백하는 마태공동체는 마태복음을 통해서 유대인들의 지나친 종교적 행위를 충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15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라고 당시의 지나친 유대교를 책망하며 그리스도의 정신인 참된 사랑의 열매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는 무엇입니까?

궁극적으로 삶의 진리와 정의 그리고 사랑과 평화 인 것입니다.

삶에서 사랑과 평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죽음이후에도 평안의 나라로 안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또 다른 종교를 만들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갈등과 분노와 증오의 세상에 사랑으로 시작하여 회개를 이루며 하나님의 나라인 평화의 나라를 이루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 진리를 외면할 때에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며, 어둠속에 있는 것이며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빛이 온 것입니다.

갈등과 장벽이 높은 이 땅에 사랑으로 오신 것입니다.

사람보다 높은 종교는 없고, 사람보다 높은 권세는 없고 서로 하나님 아래서 사랑할 사람들만 있는 것을 주님은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사랑이 만민에게 펼쳐지기를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나친 종교적인 강요나 종교적인 억압이나 종교적인 위협이 있어서는 그것은 참된 사랑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사랑은 강요가 아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요즘 한국에는 일배니, 종북이니 양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미움을 키워가고 있고 증오가 우려되는 상황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말장난에 불과 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신념이나 교리가 아닌 것입니다. 어떠한 이념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삶에서의 실천이요, 그 사랑을 함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함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기독교의 핵심의 말씀은

그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서로를 위해서 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식을 잔인하게 꼭 죽여야 구원을 이룬다는 과거 중세의 안셀름의 인간 범죄에 대한 심판의 십자가인 하나님 만족설이 아니라 이 온 땅과 세계 속에는 하나님의 희생의 사랑이 먼저 녹아 있다는 것을 증언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교리는 사랑의 교리의 말씀으로 이해되어야지 타종교에게 강요하는 교리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타종교인 4대 종교의 내용도 사랑과 평화가 그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증언하는 십자가의 증언이 가장 극적인 우리를 위한 죽음이라는 초대 증인들의 구약에 대한, 율법에 대한 신학적 이해의 증언이기 때문에 가장 직접적이고 감동을 자아내는 말씀이며 우리를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불러 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교리는 타인에 대한 사랑을 불러내지 못하고 신념화 하는 강요하는 교리가 된다면 그것은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 교리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한 1서에서 요한은 적극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17절을 봅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그랬습니다. 우리가 외면하는 것은 마음을 닫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는가?

하나님의 사랑은 궁극적으로 형제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것인 것입니다. 그럴 때에 내게 허락한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라고 1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2015년에는 우리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한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신다20절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2015년 새해의 시작부터 테러와 증오의 비참의 현실을 참담하게 느끼고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사랑의 깊고 깊은 그 사랑의 깊이 속에 묵상하며 잠겨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요한1418절에 요한을 통해 주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프랑스 비극적 테러 현장에 막 순회하던 자전거를 탄 경찰이 범인들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돌아가며 쏜 총에 맞고 쓰러저 신음할 때 그 범인은 다시 그에게 다가오며 소리쳤다고 합니다.

우리를 다 죽이고 싶으냐라고 악을 쓰며 다시 총구를 겨눌 때에

그 쓰러져 있는 경찰은 아니, 됐어,, 형제여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다시 총소리가 나고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전역에 수많은 사람들이 'JE SUIS SCHARLIE' ‘나도 만평 작가 샤를리다라는 글을 들고 침묵시위로 물결치지만

아니 됐네... 형제여라고 부르다 죽어간 경관을 추모하며

JE SUIS AHMED '나도 아흐메드다라는 물결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자기를 쏘고 다시 총구를 겨냥하며 달려오는 범인들에게 보인 그의 형제애가 조롱만 당할 수 없는 무슬렘의 진실과 형제애를 보여 주었다고 많은 종교인들은 그를 추모하고 있습니다.

그는 북 아프리카계의 무슬림 이민자의 아들이었고 어려운 경찰의 시험을 통과하고 프랑스 경찰동료들에게도 우애가 깊은 두 자녀를 둔 42세의 과묵한 경찰관 이었으며 또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고 두려움을 이기게 합니다.

사랑은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보여주신 것입니다.

종교나 이념이 타인을 증오의 대상, 혹은 미달된 사람으로 평가하고 규정한다면,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2015년을 맞이하면서 미움이 없고 고통이 없고, 아픔이 없는 세상, 하나님의 세상이 오도록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의 삶에 더욱 동참하는 성도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나무지팡이
글쓴이 : 폴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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