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믿음시리즈(14) / 믿음은 능력입니다 / 마태복음 6장 25-34절

하나님아들 2016. 6. 15. 15:57

믿음은 능력입니다 / 마태복음 6장 25-34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 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아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 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지금 우리나라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1996년 IMF가 일어날 때보다도 이구동성으로 어렵다고들 합니다.  외부로는 고유가로 인하여 공장과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시장경제의 악화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어려움을 타는 데가 안산과 시화라고 합니다.  공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사역을 하다보니까 식당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지금의 경제를 알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밥을 먹고 일을 해야 하니까 가장 민감한 곳이 식당입니다.  식당이 잘 되면 공장들이 잘 돌아가는 것이고, 식당이 잘 안되면 공장이 잘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요즘 식당이 많이 어렵습니다.  엘림교회를 돕는 식당들이 있습니다.  태진, 맛나, 대영식당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어려움이란 이 세상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운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걱정과 근심 이것은 하고 싶지 않아도 하게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인데요 “하나님은 절대로 염려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이슈를(이 과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시간 이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25절을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염려하지 말라고 했나요.  “먹을 것을 위해, 입을 것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의.식.주 문제를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의.식.주 문제입니다.  먹는거, 입는거, 자는거 정말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우리회사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10여명 있습니다.  왜 그들이 자신의 고향을 등지고, 이국만리 타향살이를 하고 있습니까?  자존심 상해가면서,  육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을 참아가면서 일하고 있습니까?  좀더 풍요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좀더 가치있게 살기 위해서 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런 기회에 저들에게 복음을 소개하고 따뜻하게 위로하고 배려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안에 있으면 더 풍요롭고, 가치있는 삶을 살 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믿습니까?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이지”  저도 이 말에 동의 합니다.  하지만 동의 할 수 없는 것은 사람은 이것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염려하고, 슬퍼하고 죄악을 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람이라는 존재는 먹기 위해서, 입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 6장 33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찾으면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26절 말씀을 보시면 더욱 구체적입니다.


  2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예수님께서는 정말 하찮은 미물인 새의 예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새가 뭐 그리 소중합니까?  소중하시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새도 기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른다는 표현은 “직접 챙기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보기에도 아주 하찮은 미물도 챙기시는 분입니다.  기르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형상을 지닌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식.주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단호하셨습니다.  염려하지 말라.  예수님은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우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 58절을 시며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정말 초라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초연하셨습니다.  염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염려가 계속해서 된다는 것이죠.  염려와 근심을 하지 않으려 해도 계속해서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생각해보세요.  염려가 된다는 것은 아직도 내가 믿음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염려는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염려를 극복하지 못하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 염려하면 믿음이 없는 것일까요?  믿으면 염려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으면 능력을 주십니다.  능력이 없다는 것은 아직 믿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25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7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7번이나 반복하셨겠습니까?  “염려를 하지 않는 삶” 그것이 곧 “믿음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염려하지 말아야 할까요?  염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염려하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당장 생활이 어려운데 어떻게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자꾸 억누 르면 오히려 정신적으로 병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염려하고 싶은대로 실컷 하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거듭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몇 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를 먹이고 입 히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입히시고 먹이십니다.  이 세상의 기업과 공장들이 먹여주고 입혀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먹여주시고 입여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이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무족건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우리나라 경제가 너무나 안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근심하고 있습니다.  생활고에 지쳐있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장 직장을 잃어버리고, 내일을 어떻게 살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속에서 염려를 안할 수 없는 것이 인간적인 심정 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주님의 교훈을 떠올려야 합니다.  “염려하지 말자” “주님께 도움을 청하자”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을 주셨습니다.
  약 200만명 정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시내산 광야”  이곳은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먹을 것도 구할 수 없는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사냥도 할 것도,  마실 물도 없습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동안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믿습니까?  신명기 29장 5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사십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 하였으며”
  할렐루야!
  사랑하시는 여러분 의.식.주 문제 때문에 걱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한 이런 문제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3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 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 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나님께서 들풀도 입히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으면 들풀도 자잘 수 없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믿음이 적은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큰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는, 우리의 염려가 쓸데없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2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10분 염려하면 1밀리미터가 자라고,  1시간 염려하면 1센티미터가 자란다고 한다면 걱정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염려한다고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실 때 염려와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염려는 주제 파악을 못한 데서 오기 때문입니다.
  3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사람은 내일의 꿈을 위해서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미래를 예측하고, 설계하고, 도전하며 삽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과학이 문화가 발전하였습니다.  긍정적인 측면입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미리 앞당겨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입니다.  내년에 어떻게 살까?  내 일은 어떻게 돈을 쓸까?  20년 후에 노년이 되면 어떻게 살까?  별의별 걱정을  당겨 놓고 하는 것이 염려인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일을 모르는 것이 사람입니다.  아니 1초 앞을 못보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이 1초 앞을 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교통하고로 죽이 않을 것입니다. 
  내일은 우리의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내일이란 없습니다.
  염려란 이처럼 자기의 주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33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것을 제일 먼저 생각하시나요.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구원시킬 수 있을까.  마음의 생각하는 바가 이 땅이 아닌 하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출처 : 브솔영성아카데미
글쓴이 : 생각하는어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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