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믿음시리즈(11) / 무엇이 큰 믿음인가 / 마태복음 16장 21-28절

하나님아들 2016. 6. 15. 15:56

무엇이 큰 믿음인가(마 15:21-28)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예수님께서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배척과 박해가 날로 고조되고 있는 가버나움을 떠나 이스라엘 영역 밖의 이방 지역인 두로와 시돈으로 가셨습니다.
  두로는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의 고향이고, 지중에 연안에서 시돈과 함께 가장 큰 항구 도시였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40킬로미터 떨어져있고, 본토 이스라엘과는 약 24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레바논 지역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뜻밖의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 사람은 가나안의 여인이었습니다. 저는 이 시간 가나안 여인을 살펴봄으로써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을 요약해 하면, 가나안 여인에게 딸이 있었는데 그만 흉악한 귀신에 들리고 말았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딸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나갔고, 예수님께서는 딸을 고쳐주셨다는 내용입니다.
 
  가나안여인은 보통 사람과 다른 3가지 남다른 면이 이었습니다.

 첫째, 가나안 여인은 고정관념을 버렸습니다. 남들과 다르게 행동했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똑같이 행동하는데, 나만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없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22절 말씀을 보면,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   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가나안 여인이 다른 사람과 다르게 행동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는 것입니다. “소리를 질러 가로되” NIV 영어 성경을 보니가 crying으로 번역 되었습니다. 이 뜻은 “외치는, 울부지는, 긴급한, 좌시활 수 없는, 심한, 지독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나안의 여인의 소리지름은 절규라 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살려야 겠다는 애절함입니다.
  소르를 지르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확신이 설 때, 자신을 포기할 때 바로 그때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소리 내어서 기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때로는 침묵기도로 좋아합니다. 소리를 낸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엄마에게 중요한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 어떻게 합니까? 조용히 말하지 않고, 소리를 내어서 말하는 것처럼, 주님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외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2장 13절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
역대하 32장 20절 입니다.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로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는 조용하게 기도하는 것도 좋아하시지만, 외치는 기도도 좋아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외치는 엘림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요”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했다는 것은 로마정부에 대한 도전이었고, 유대인에 대한 반란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여인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만왕의 왕으로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 많은 크리스챤들이 있지만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인정하며, 모시고 사는 사람은 적은 것 같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성인 정도로 취급하고, 좋은 악세사리를 찬것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산다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때문입니다. 이런 믿은 진짜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여인은 회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딸의 고침 때문에 왔는데, 먼저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남의 티보다는 자신의 들보를 볼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의 성도의 신앙생활을 보면 회개가 없다고 합니다. 회개가 없는 신앙은 진짜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두 번재로, 가나안 여인은 모욕과 고통을 참았다.
  2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와 귀신들린 딸을 고쳐 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하였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아니 더 나아가 매정하고도 모욕적으로 그 간청을 묵살하셨습니다.
  24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연인의 대답입니다. 25절입니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의 냉정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저를 도와달라고 외쳤습니다.”
  저라면 매우 실망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왜 저러시지, 슈퍼스타가 되니까 변화셨나봐! 별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26절입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   하니라”
  예수님께서는 한술 더 떠서 가나안 여인으르 개라고 하셨습니다. 이 당시 유대인 사회속에서 쓰는 속어가 있었는데, 자녀는 유대인을 가리키고, 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던 인방인들을 멸시하며 부르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보다도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말합니다. 27절입니다. “맞습니다. 나는 개와 같은 이방인입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음식을 먹지 않습니까? 그러니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소옵소서”라며 매달렸습니다.
  이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거지가 되어야 합니다. 개가 되어야 합니다. 자꾸 높아지려고 하니까 은혜를 못 받고,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하면 예수님은 왕처럼 높여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서 잘난척하고 높아지면 예수님은 거지처럼 낮추십니다. 이것이 기독교 진리입니다.
   
  마지막으로 가나안 여인은 목표를 향해 집요하게 매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28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인에게 지셨습니다. 그의 열심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칭찬하시고 즉시 그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딸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우리에게 무슨 의미로 주셨습니까?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인들에게는 은혜가 임하지 않았고, 비록 개 취급을 받던 이방인이라 할찌라도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저를 도우소서.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런 고백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이 큰 믿음입니까?
  주님께 부스러기의 은혜라도 구하는 모습이 큰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처럼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서 자녀의 문제를 해결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출처 : 브솔영성아카데미
글쓴이 : 생각하는어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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