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죄와 은혜

하나님아들 2016. 6. 4. 11:49

죄와 은혜

 

본문: 롬 5:20- 21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20)

 

성폭행 당하고 임신한 소녀 리이젤. 그녀는 신앙 양심상 낙태할 수 없어 딸을 낳아 입양시켰습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됩니다. 26년이 지난 어느 날, 여러 경로를 통해 생모 소재를 파악한 딸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딸은 자신이 성폭행 당한 불행한 아이로 태어난 것을 양부모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훌륭한 양부모를 만났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 딸도 낳았어요.” 그

그러나 리이젤 목사는 딸의 소식이 전혀 기쁘지 않았습니다. 26년 전, 자신을 성폭행한 그 남자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딸이 울면서 말했습니다.

“어머니,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낙태시키지 않은 것을 감사해요. 내가 믿는 예수님을 어머니도 꼭 영접해서 구원받으시라고 전화를 드렸어요.”

딸은 친모가 목사인 줄도 모르고 예수를 소개했습니다. 그제서야 리이젤 목사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증오가 녹아내렸습니다.

 죄 많은 곳에 은혜도 많습니다. 나에게 만원 빚진 사람과 일억 원 빚진 자에게 둘 다 빗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을 때 누가 더 기뻐하겠습니까? 즉 자신은 죄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나는 죄가 아주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때, 똑같이 죄를 사해준다고 하면 누가 더 감사하겠습니까?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죄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며 그 댓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6:1, 2)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 제정된 법률들은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존재했었습니다. 현재 미국에 있는 모든 주의 법률을 합하면 2백만 조항이 넘습니다. 하루에 열 가지씩 법률을 배운다고 하더라도 천 년이 넘게 걸리는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고대의 강대국이던 로마의 법률은 2천 권의 분량이었는데, 6세기를 거쳐 수많은 학자들이 머리를 짜내어 만들었다고 합니다. 중세 프랑스에는 민법만 2281가지가 존재했다고 합니다. 이 법은 법령과 조항, 그리고 그 법률에 해당하는 주석과 수정 및 예외 조항으로 다시 세부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법임에도 불구하고 이 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몇몇 없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이 법을 제정하는데 큰 기여를 한 페르디낭 플로콩 조차도 법률을 잘못 해석해 국가에서 추방당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역사상 존재했던 법률은 당대의 최강대국의 최고의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었던 지혜의 집합체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수많은 법이 존재했음에도 죄를 막지 못했고,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평생 공부해도 다 알 수도 없을 정도의 법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인간이 그만큼 연약한 존재이며 스스로 설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인간의 죄성과 불완전함을 올바로 깨닫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자유를 맛보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 103:2)

 

로마 황제가 한 원로의 집에 만찬을 위한 초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종들은 조금도 쉴틈 없이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늙은 종이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응접실에 놓여있는 값비싼 자기하나를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주인은 그 종을 끌어내어 연못 속에 집어넣으라고 명하였습니다. 그 연못에는 악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종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용서를 구했으나 주인은 완강했습니다. 그 집에 가보를 깨뜨리는 사람은 악어의 밥이 되는 것이 그 집에 정해놓은 규례 였기 때문입니다. 황제가 종을 용서해 주라고 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원로는 자기집의 가율 이라는 핑계로 거절을 했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또 다른 가보인 자기하나를 일부러 깨뜨렸습니다. 그러고는 주인에게 "나도 이 집의 가보를 깨뜨렸으니 저 종과 함께 연못 속에 던져넣어 나를 죽이라" 그러나 아무리 그 집의 가보를 깨뜨렸다고는 해도 황제를 죽일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원로는 그 종을 용서해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구약의 법대로 따져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같이 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일에 있어서 바울은 로마서 5:12절부터 계속해서 독특한 방법으로 논증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와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한 행동은 현격한 대립 점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극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같은 사실을 논리적으로 전개해 나가면서 결과적으로 의와 은혜의 승리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대조는 바울이 증거 하려는 하나님의 의와 은혜의 다시없는 설명이 되기 때문에 비슷한 이론을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론적으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5:21)

 

1. 율법이 필요한 이유

바울의 율법론은 많은 유대인들에게 반론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유대인들 중 많은 그리스도인들까지 바울이 말하는 율법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는 의문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의의 논리에 있어서 바울의 주장은 율법무용론이 아닌가하는 이론이 제기된 것입니다. 그 이유로 바울은 율법이 사람에게 의를 줄 수 없다고 말할 뿐 아니라 그 율법이 사람을 (그리스도인) 정죄 할 수도 없다고 하니 그러면 율법은 무용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율법이 필요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언뜻 이 말씀이 가리키는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것처럼 생각됩니다. 가입했다는 말은 들어왔다는 뜻입니다. 이 가입은 뒤따라 들어온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율법은 무엇을 따라 들어온 것인가? 율법이 필요했다는 것은 율법이 죄를 따라 들어왔다는 말입니다. 율법은 죄나 은혜처럼 그 자체가 어떤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따라 들어 온 존재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그 자체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죄와 관련된 존재로, 죄 때문에 죄에 따라 필요한 존재가 바로 율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율법이 필요했다는 말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뜻입니다.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롬5:13)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율법과 죄와의 관계에 있어서 두 가지 엄연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란 존재는 율법이 있기 때문에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율법이 있기 전에도 이미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의 “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고 한 말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가 넘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더 하다는 말은 ‘플레오나조’로 풍성하다란 의미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는 죄를 죄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죄가 있었으면서도 죄가 없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율법이 들어오자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던 죄가 일시에 터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숨겨졌던 죄가 폭로되었습니다. 이 같은 죄는 인간사회에 풍성할 정도로 넘치게 된 것입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고, 이 세상이 죄악 세상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죄가 인간세상에서 왕 노릇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율법으로 의를 얻거나 죄를 감소하거나 죄에서 떠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왕 노릇하고 있으므로 더욱 깊은 죄악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의롭고 선하고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정죄의 기준이며 심판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사정없이 인간의 죄악을 들추어내고 그 죄악을 정죄 합니다. 율법의 기능은 사람을 의롭게 하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요 바로 인간의 죄를 들추어내어 그 죄를 정죄 하려는데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에게는 율법에서 정죄하고 있는 바와 같은 죄인이 아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말하고 있는 사람들의 선행과 의로운 행실은 그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에 두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자신의 영광에 두고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정죄 받기에 합당한 죄악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이 필요치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 영접치도 아니 하는 것입니다. 죄인을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과 공로를 인정치 않는 일은 그 무슨 죄보다도 더 정죄 받아 마땅한 죄악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들에게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3:18).

 

2. 넘치는 은혜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다”고 했습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는 범법함이 없었기 때문에, 죄는 있었지만 그 죄가 죄로 인정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율법이 개입하므로 율법에 의하여 죄가 그대로 드러나게 되자 인간의 죄가 이 세상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핑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인임을 알게 되었고 의인이 하나도 없음이 드러났습니다. 이것이 율법을 개입시키신 하나님의 의도십니다. 이 일에 대하여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갈3:22).

그러나 하나님은 그 율법과 함께 은혜를 개입시키신 것입니다. 율법을 개입시키신 일은 오직 은혜를 개입시키시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요 방편에 불과하셨습니다. 율법은 인간에게 의를 주실 목적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율법으로 인간의 죄를 정죄하심으로 죄의 모습과 그 정죄의 두려움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의와 영생에 이르게 하시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는 죄보다 더욱 넘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넘쳤다는 말은 죄를 삼켰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죄를 덮어 그 위에 넘친 상태를 의미해 주기도 합니다. 그 이유와 증거는 죄는 아담으로부터 온 것이지만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그리스도의 비교는 흥미로운 비교이기는 하지만 사실인즉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상대인 것입니다. 아담은 땅의 생명을 가진 자요, 그리스도는 하늘의 생명을 가진 자이시며, 아담은 피조물이요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시며, 아담은 범죄자요 그리스도는 속죄 자이시며, 아담은 산영이요 그리스도는 살려 주는 영이라고 하신 것입니다(고전15:45).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에게는 모든 죄를 이기고 소멸할 수 있는 충만한 은혜를 소유하고 계십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요1:14, 엡2:7). 주님의 그 풍성하고 넘치는 은혜는 죄인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셨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율법은 죄를 행하면서도 죄로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정죄의 사슬에 메이게 했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죄 값인 사망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절망 속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율법과 함께 은혜의 선물을 내려주셨습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순종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불순종에서 나온 죄의 권세를 능히 이기고 정복할 수 있으므로 죄의 세력보다 더욱 넘쳤습니다. 이것은 마치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처럼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게 된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죄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인간을 정죄하면서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하므로 인간의 생명을 정복해온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의를 주시기 때문에 이 의(義)로 말미암아 인간을 지배하는 왕의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은혜가 주시는 하나님의 의는 율법의 정죄를 이깁니다. 사망의 권세도 이깁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우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116:12)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삶은 죽은 삶입니다. 마치 암흑 속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분의 은혜만이 우리를 소생시키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 존 웨슬리는 이렇게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무한한 은혜로 싸여 있음을 기억하라. 이것이 겸손과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는 길이다."

오늘도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 받고, 주님의 은혜를 뜨겁게 경험할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 영원히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그 크신 은혜를 잊지 말고 살게 하옵소서. 구원의 기쁨은 오로지 주님의 은혜임을 만민이 알게 하소서. 이 세상의 유혹이 나를 현혹시키며 달콤하게 다가올지라도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과 말씀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먼저 나 자신이 주님 앞에서 온전하고 깨끗게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하시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범이 되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나의 마음을 다스려 주옵소서. 항상 회개함으로 영혼과 생활을 맑게 하여 빛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주관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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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십자가의 보혈을 값없이 주신 주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십시오.

출처 : 한태완 목사님 설교자료
글쓴이 : 빛의 사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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