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2003. 1. 5 보람교회 유백선목사 주일낮예배 “마음이 새로워야 인생이 새롭다”

하나님아들 2016. 4. 27. 15:26
2003. 1. 5 보람교회 유백선목사 주일낮예배 “마음이 새로워야 인생이 새롭다”
로마서 12; 1-2
1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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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골프 선수 중에 아놀드 파머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놀드는 골프 시합에 나가면 수많은 팬들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는데 경기를 이길 뿐만 아니라 질 때도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친구이자 때로는 경쟁자인 잭 니클라우스는 오랜 시간 동안을 아놀드를 지켜보면서 늘 부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아놀드 이 친구는 어떻게 팬 관리를 하느거야?’ 생각하면서 아놀드의 인기 비결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아놀드의 인기 비결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서 그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잭은 깜짝 놀랐습니다. 잭이 놀란 이유는 자신의 거실과 너무나 대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거실에는 우승할 때마다 받았던 우승컵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는데 아놀드의 거실에는 낡고 아주 오래된 우승컵 하나만 쓸쓸하게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찌된 영문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이보게, 아놀드. 그 많은 우승 트로피들은 어디에 두고 이렇게 오래된 트로피 하나만 진열되어 있는가?” 그러자 아놀드가 대답합니다. “내가 가진 우승 트로피는 이게 전부라네.” 잭은 아놀드가 자신을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면서 천재적인 골퍼로 이름을 날린 아놀드 파머가 아닌가? 그런데 우승 트로피가 이게 전부라니...’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잭에게 아놀드가 이렇게 말했대요. “이 우승컵은 내가 프로 선수가 되어 처음으로 우승했던 트로피라네. 그 뒤에 받은 우승 트로피들은 내겐 큰 의미가 없다네. 그래서 진열해 놓지 않았지. 이 트로피는 내 인생에 아주 특별할 뿐 아니라 언제나 내 마음을 다스리게 해 주는 글귀가 적혀 있다네...” 아놀드는 낡은 우승 트로피를 잭에게 건네 주었는데 그 우승 트로피에 적혀있는 글을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패배한다고 생각한다면 패배한 것이다. 그러나 패배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패배하지 않는 것이다.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늘 승리할 수는 없다. 진정한 승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 글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듣고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새해가 되었습니다.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당장 달라진 것이 있나요? 지난 해에 떴던 해가 새해에도 어김없이 떴다가 지고 떴다가 지고 있습니다. 새해 들어 5일째가 되었지만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을 새해라고 말합니다. 해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어요. 어제도, 오늘도 똑같은 날이 반복되는데 왜 지금을 새해라고 말합니까? 해(태양)이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해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사람의 마음이 새롭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해를 바라보면서 소망을 갖는 거예요. 모든 일은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인생의 성공도 마음에 달려 있고, 실패는 마음에서 이미 결정됩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요, 마음의 눈이거든요. 인간은 자기 마음 생긴 대로 생각합니다. 마음 생긴 대로 보구요. 마음 생긴 대로 행동해요. 마음에 따라 자세(폼)도 다릅니다. 이 시간에 여러분이 하나님께 신년 감사예배를 드린다고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신명기의 쉐마(신 6:5)에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어때요? 지금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나)의 온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나요? 그렇다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 눈을 밝혀 주실 것입니다. 마음의 눈이 밝은 사람은 모든 것을 새롭게 봅니다. 마음 눈이 밝은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가능성을 보는 거예요. 자기(내) 자신이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자신(나)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의 기업을 일으키실 것이라고 확신하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올해 어떤 일이 있어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마음, 신뢰하는 마음, 새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훈련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새해 첫 날에 어느 기자가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 동해안 정동진에 온 사람들에게 “새해 소망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어요. 그 물음에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 소원을 이야기 합디다. 하나는 가족들이 건강하기를 기원한다고 그랬어요. 다른 하나는 하는 일이 잘되고, 돈도 잘 벌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하나님께 신년 감사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대체적으로 비슷할 것입니다. 건강하게 살면서 주신 사명을 다하는 것과 형통한 삶을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바라는 소망이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주신 이 말씀 속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첫 번째 소망, 건강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1절에 있어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올해 건강하게 살려면 몸(소마타 somata/ bodies)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젊음을 잘 지키는 사람이 중년을 행복하게 삽니다. 노년도 행복하게 지냅니다. 반면에 자신의 젊음을 믿고 자기 맘대로 몸을 굴리는 사람은 미래의 행복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건강을 타고났다고 하지만 쉽게 망가지고 맙니다. 인간의 모든 육체는 풀의 꽃과 같이 시들거든요. 특히 하나님의 은총을 거부하는 사람은 자기 멋대로 몸을 굴립니다. 죄인의 길에 자기 발을 들여 놓기도 합니다. 악한 자의 꾀임에 빠져서, 오만한 자의 자리에 몸을 밀어 넣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육체는 사소한 일에 의해 망가지고 작은 충격에도 깨지고 허물어지거든요. 흙으로 지음을 받은 토기와 같아요. 아무리 튼튼한 부분이 많아도 결국 약한 곳 한 부분 때문에 무너집니다. 어떤 사람은 육체가 아주 튼튼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고달픈 사람이 있어요. 마음이 고달프기 때문에 늘 짜증을 냅니다.

어떤 사람은 사는 것은 걱정이 없는데 정신적으로 우울합니다. 하찮은 일에도 스트레스 받고 만사가 다 귀찮다고 그래요. 이처럼 몸은 튼튼한데 정신이 허약하면 일에 대한 불만이 쌓입니다. 정신적으로 고달프고 허약한 사람은 자기 만족이 없어요. 자신감도 없고 사는 재미도 없어져요. 그래서 괴로움을 떨쳐 버리려고 술을 마시기도 합니다. 답답한 마음을 날려버리고 싶은 나머지 줄담배를 피우기도 합니다. 담배 연기가 사라지는 것처럼 고민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폐를 태우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어요. 어때요? 지금 여러분의 건강지수는 얼마나 되십니까? 지금의 건강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성공신화를 만들 수 있겠어요? 단순히 육체적인 건강 가지고는 행복을 만들지 못합니다. 건강 지수는 믿음의 지수와 비례합니다. 믿음의 지수가 높으면 건강의 지수도 높아요. 건강지수는 마음의 지수와 비례합니다. 마음에 기쁨이 있고 감사하는 마음이 풍성하면 건강합니다. 건강지수의 비밀은 창조주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했던 것입니다. 몸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릴 때 기쁨을 얻게 됩니다. 건강한 신앙인은 현재의 삶 자체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건강한 신앙이란 건강할 때는 건강한 대로 감사해요. 때로 몸이 병들어 약할 때에도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합니다.

미국에서 부흥하는 대표적인 교회 중에 새들백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2만명의 성도들이 모인다고 합니다. 이 교회의 담임 목사님은 릭 워렌 이라는 분입니다. 이분은 핸섬하게 생긴 것도 아니고, 아주 평범하게 생겼어요. 한 번은 자신의 약함을 솔직하게 인정하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주 희귀한 병을 가지고 있어서 자주 기절을 했다고 그래요. 갑자기 충격을 받거나 몸이 곤고해지면, 특히 설교할 때면 몸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가 되는데 그럴 때면 온 몸을 괴롭히고, 정신을 잃기도 한대요. 시력도 가물가물하면서 큰 고통이 따른다고 그럽니다. 그러니 이런 몸을 가지고 목회를 할 수 없는 분이예요. 자신의 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이런 표현을 썼어요. “내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끝에 손가락 하나를 걸고 매달려 있는 고통을 겪는다”고 했어요. 이런 몸을 가지고 설교를 한대요. 그런데 교회가 부흥해서 두 번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하나님께 기도했대요. “하나님, 저의 이 몸으로는 두 번 밖에 설교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강단에 세우셔서 세 번을 설교하게 하셨어요. 그러다가 지금을 네 번을 설교해야 할 정도로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연약한 몸을 가진 사람에게 은혜로 채우시고 그의 건강을 지켜주신다고 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건강하게 살고 싶으세요? 건강을 어디에 사용하시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여러분의 몸을 드리십시오.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구별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 도덕적 차원이 높아서 구별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윤리적인 차원이 높아서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릴 때,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몸을 통제하시고 구별시키신 것입니다. 여기서 “거룩한 산 제사(뒤시안 조산 하기안 thusian zosan hagian)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대체적으로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은 죽은 후에 드립니다. 이방인들 중에는 산채로 제물을 바치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은 산채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후에는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거룩한 산 제사”라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매일 일상생활을 구별되게 살라는 것입니다. 순간 순간을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처럼 살라는 뜻입니다. 교회 안에서만 거룩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세상에서도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마음으로 구별되게 살라는 거예요. 날마다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어요. 마음은 그렇게 살고 싶어요.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새해가 되면 새롭게 살아 보려고 얼마나 다짐합니까? 그런데 마음과 몸이 따로따로 노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직도 마음과 의지가 일치가 되지 않거든요. 머리로는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해야지. 용서해야지. 이해해야지.” 알고 있어요. 그런데 얼굴만 보면 사랑하고픈 마음이 싹 사라집니다. 용서 못하겠어요. 이해할 수 없거든요. 마음이 닫히고 돌아서게 돼요. 이성과 감성이 서로 따로 노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부부가 서로 다툴 때 누가 이깁니까? 이성적인 남자와 감성적인 여자가 싸우면 누가 이겨요? 외형적으로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 이긴 것 같아요. 그런데 내용면에 있어서는 감성적인 사람이 이기거든요. 왜 그런지 아세요? 이성보다 의지보다 감정이 더 원초적이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래서 한 번 속이 상하고, 뒤틀리면 안 풀지 않습니까? 속이 상하면 밥도 안해 줘요. 신경 꺼버리는 통에 쫄쫄 굶게 되거든요. 그러니 이기려고 하지 마세요. 그게 건강하게 사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새해가 되면 엄청 다짐을 합니다. ‘올해는 믿음생활을 좀 잘해야겠다.’ ‘기도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해야겠다.’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굳게 먹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순식간에 바뀌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해버립니다. 왜 하루를 넘기기 못하는 거예요? 우리 속사람이 변화되지 못했거든요. 속사람이 강건하지 못해서 그럽니다. 속사람이 강건하지 못하면 소원이 항구에 다다르기 전에 포기하고 맙니다.

그래서 소망, 그 뜻하는 바를 이루려면, 소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은 그 해답을 본문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라. 그리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 변화를 읽고 그 변화에 빨리 적응하라.”고 했습니다. 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합니까? 해 아래는 새 것이 없어요. 새 것이라고 좋아하는 순간부터 중고품이 됩니다. 이 세대를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그럽니다. 보십시오. 이 세대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강한 것을 추구합니다. 강한 것을 선으로 여기고 약한 것은 악입니다. 사람들은 보다 빠른 것을 추구합니다. 빠른 것이 선이고 느린 것이 악입니다. 보다 똑똑한 것을 추구해요. 똑똑한 것이 선이고 미련한 것이 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요. 세상 사람들은 이 세대의 모형에 더 빨리 적응하려고 애를 씁니다. 적응을 못하면 퇴출당한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요. 여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도 부지런히 따라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본받는다”는 말은 “쉬스케마티조(susxematizesthe)”입니다. “본받는다”는 말은 “비슷하게 꾸민다. 같은 모양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대를 따라 가려고 흉내내고 꾸미는데 비슷해지려고 하지 마라. 같은 모양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에프 B. 마이어는 말하기를 “우리는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 너무 강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계략이 너무 많고, 책략이 너무 많고, 방법이 너무 많아서 문제다”고 했습니다. 너무 똑똑해서 하나님께 맡기지 않습니다. 너무 자신을 믿는 나머지 하나님을 믿지 않아요. 그리고 모든 것을 자기 생각과 경험과 지식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게 하나님의 능력을 얻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새해 소망을 이루려면 어떻게 하라구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합니다. 이 말은 “아나카이노세이 투 누스(avanakainosei tou nous)”입니다. 다시 말하면 “네 이성을 갱신하라. 네 감성과 감각을 갱신하라. 네 의지를 갱신하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리모델링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낡은 집의 구조는 그대로 놔두고 나머지 것들은 다 뜯어서 새롭게 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마음을 리모델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능력있는 심리학자가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바꿀 수가 있나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인이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어요? 그것도 안됩니다. 강력한 권력을 가지면 가질수록 부패해 져버립니다. 도덕성이 높은 종교지도자가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요한 타울러 라는 사람이 쓴〈완덕에의 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내적 생명을 고갈시키는 요인이 있다고 했어요.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첫째는 세속적인 교만이다고 했어요. 세속적인 교만이 내적인 생명을 고갈시킨다고 했어요. 교만이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에 생명은 고갈된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 사울 왕을 보십시오. 그도 한 때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 선견자로서 활동하고 이스라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세속의 물질에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교만해져서 왕권에 집착하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둘째는 감각적인 만족이 내적인 생명을 고갈시킵니다. 감각적인 만족(쾌락)은 반드시 죄책감이 따라옵니다. 한자의 죄(罪)는 위에 ‘넉 사(四)’자가 있고 그 밑에 ‘아닐 비(非)’자로 만들어졌습니다. 죄는 동서남북 어디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육신의 욕망을 따라 가는 일에는 반드시 후회가 있게 마련입니다.

셋째는 분노와 의심과 성급함이 내적 생명을 고갈시킵니다. 가인처럼 마음에 분노가 있으면 살인하게 됩니다. 의심의 병은 사람과 관계를 파괴합니다. 인간성을 말살시킵니다. 성급함은 모든 사람을 그르치게 만듭니다. 완덕에 이르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는 새로워질 수 없어요.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으로 새롭게 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참아 기다릴 줄 압니다. 성령을 받고 마음이 새로워져야 눈이 새로워집니다. 눈이 새로워지면 보는 것이 달라요. 이 세대를 보는 눈이 바뀝니다. 성령을 받으면 이성이 새로워지고 이 시대를 보는 통찰력이 생겨요. 이 세상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알게 됩니다. 정확한 분별력을 가질 때에 소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전쟁 중에 있던 한 군인이 이런 글을 써놓았습니다. “무엇이나 얻을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약한 몸으로 태어나 겸손히 복종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번에는 큰 일을 해보려고 건강한 몸을 구했습니다. 기도와는 달리 육체에 병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질병 때문에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강영우 박사도 말하기를 육체의 장애가 나를 더 높은 곳에 오르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풍성한 재물을 얻어 행복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자로 살면서 지혜를 배웠습니다. 한 번만이라도 세도를 부리고 싶고 수많은 사람들의 호위와 찬사를 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권세가 없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인생을 즐기고 싶어서 온갖 좋은 것을 바랐습니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은총으로 새 생명을 주셔서 온갖 좋은 것을 즐기게 하셨습니다. 내가 바라고 원하던 것은 하나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은연 중에 내가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나는 부족한데 내가 간구하지 않은 기도까지 다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내가 받은 은혜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새해 여러분의 소원이 항구에 다다르기를 원하십니까? 몸을 하나님께 기쁘게 드리세요. 그러면 성령님께 몸을 건강하게 할 것입니다. 성령으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성령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지성과 감성이 변화됩니다. 변화된 지성으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변화된 감성으로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십시오. 그러면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길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으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출처 : 조세법,국제조세, 회계학, 가업승계, 비영리법인
글쓴이 : 배원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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