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12. 29 보람교회 유백선목사 주일낮예배 “나의 기쁨이 네 안에 있다”
이사야 61:10-62:4
10: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11: 땅이 쌀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1 :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2 :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3 :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4 :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쀼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
********
일본인 사업가 중에 이와사키 야토로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사와키는 미쓰비시 라는 기업을 일으켜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어느 여름날이었어요. 여든을 넘긴 노모(老母)가 성공한 아들에게 큰 보따리를 하나 풀어 놓더랍니다. “어머니, 아니 이건 옛날에 쓰던 모기장이 아닙니까?” “그래, 네가 어렸을 때 치고 자던 모기장이다.” “아이 참, 어머니도. 이 낡은 모기장을 여태껏 보관하셨어요? 요즘 좋은 것들이 많은데요.” 그 말을 들은 노모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오늘처럼 무더운 여름날 밤이면 다 쓰러져 가는 고향 오두막집에서 너와 내가 이 모기장을 치고 달빛을 쳐다보며 벌레소리를 자장가 삼아 편안하게 잠을 자곤 했었지. 너도 기억하겠느냐?...” 여러분! 왜 이 노모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아들에게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겠습니까? 이와사키의 어머니는 20대 초반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온갖 고생을 무릅쓰면서 아들을 키웠습니다. 그런 가운데 아들이 사업가로서 성공했으니 얼마나 대견스러웠겠어요? 생각만 해도 흐뭇하고 기뻤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어머니는 성공한 아들이 걱정스러웠던 거예요. 노모는 고민하다가 아들에게 낡은 모기장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얘야, 이제 내가 세상을 떠나야 할 날이 가까워진 것 같다. 성공한 너의 모습이 기쁘기도 하지만 에미는 네 앞날이 걱정되는구나. 그래서 죽기 전에 너에게 이것을 주는 것이다.” 그러자 아들이 어머니에게 “어머니, 무엇이 그리 걱정이 되세요?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아들을 쭉 지켜본 어머니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너는 지금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집을 화려하게 꾸미고 겉으로 치장하는 것 밖에 모르고 있다. 하지만 네가 아무리 크게 성공했더라도 옛날 이 낡은 모기장 속에서 잠자던 기억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돈이란 그 운이 다하면 너를 떠날 수도 있는 거란다. 그러니 항상 이 모기장을 보며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고 앞날을 준비하며 살도록 해라.” 그랬어요. 20대에 청상과부로 온갖 고생을 했던 이 어머니의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들 안에 있었습니다. 아들은 성공해서 늙은 노모의 마음을 기쁘게 했어요. 하지만 노모는 아들의 성공을 끝까지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늘 걱정되었던 거예요. 아들의 앞날이 걱정이 되었던 노모는 아들에게 미래를 준비하라고 충고하였던 겁니다. 이와사키는 어머니의 사랑에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맙니다. 그리고 낡은 모기장을 가슴에 품고 성공의 정점에 있을 때에 미래의 어려운 때를 준비하는 사업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십니까? 자기 안에 있는 기쁨을 통해 남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자기의 삶 속에 다른 사람도 살게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예요. 좋은 사람은 충고를 받았을 때 깨달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의 마음은 거울과 같다고 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말하기를 “눈물을 모르는 눈으로는 진리를 보지 못하며 아픔을 겪지 아니한 마음으로는 사람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왜 눈물을 모르는 눈으로는 진리를 보지 못합니까? 눈물은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눈물은 어두운 눈을 치료하는 안약입니다. 은혜받고 눈물이 심령에 흐릴 때에 비로소 진리가 보입니다. 진리를 보는 사람은 진리 안에 있습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은혜를 망각하지 않아요. 진리를 아는 사람은 자유를 얻었습니다. 진리를 통해 자유를 얻을 때 기쁨이 내 안에 있습니다. 진리를 통해 생명을 얻을 때 즐겁게 삽니다. 진리를 통해 영생을 얻을 때 비로소 영생의 기쁨을 주는 거예요. 내 안에 있는 영원한 기쁨이 소망을 줍니다.
우리 나라 역사 중에서 일제시대를 암흑의 시대라고 합니다. 진리도 없고 자유도 없고 소망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내 생명을 내놓음으로써 후손들이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에 하나님의 진리를 붙들고 믿음의 등불을 밝혔던 주 기철 목사님이 쓴 “영문 밖의 길”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분이 순교한지 60년이 되었어요. 하지만 지금도 이 노래는 부르는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영생의 은총을 받은 사람에게 즐거운 일이 무엇인지, 무엇이 진정으로 기쁘고 복된 삶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서쪽하늘 붉은 노을 영문 밖에 비치누나 연약하온 두 어깨에 십자가를 생각하니
머리에는 가시관 몸에는 붉은 옷 힘없이 걸어가신 영문 밖의 길이라네
한발자국 두발자국 걸어가신 자국마다 뜨거운 눈물 붉은 피 가득하게 고였구나
아픈 다리 싸매주고 저는 다리 고쳐 주사 보지 못한 눈을 열어 영생 길을 보여주니
칠전팔기 할지라도 제 십자가 바로 지고 골고다의 높은 고개 나도 가게 하옵소서...”
여러분은 어디서 삶의 기쁨을 찾고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기쁘게 하던가요? “내 기쁨이 네 안에 있다. 내 기쁨이 당신 안에 있소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내 안에 있는 기쁨이 당신 안에 있다.” 이런 감동을 얼마나 느껴보셨습니까? 내 기쁨이 당신 안에 있다는 말은 나 혼자만 기뻐하고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있는 기쁨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기쁨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기쁨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목회자에게 있는 기쁨은 성도들에게 있어요. 남편에게 있는 기쁨이 아내 안에 있어요. 아내에게 있는 기쁨이 남편 안에 있어요. 부모에게 있는 기쁨이 자녀들 안에 있어요. 자녀의 기쁨이 부모의 기쁨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이렇듯이 주 안에 있는 기쁨은 영적인 교제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옆에 있는 분에게 해보세요. “나의 기쁨이 당신 안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셨던 복음입니다. 기쁜 소식이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기쁜 소식은 구원을 주신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구원의 옷으로 입히셨고 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분이 좋을 때 최상급의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히브리 말에는 비교급이나 최상급이 없어요. 기분이 좋고 행복하면 그 말은 계속해서 반복하면 됩니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다”는 말은 “쇼스 아쉬스 빠이바(여호와/shosh ashish baiwa)”입니다. ‘쇼스 아쉬스는 기뻐하고 또 기뻐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이 기쁘고 기쁩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복되다고 여기십니까?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이 행복하세요? 내 영혼이 주 안에서, 믿음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 너무나 즐겁습니까? “예, 나는 하나님으로(안에서) 인하여 너무나 흥겹게 삽니다.” 이 말이 “나프쉬 뻬로하이(napshi bealohai)”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그럽니다. 예수 믿어도 별로 흥겹지 않다고 그래요. 하나님의 자녀된 것이 후회된다는 사람도 있어요. 왜 그럽니까?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기쁨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요. 아직도 죄의 옷을 벗지 못해서 그럽니다. 아직도 세상적인 욕망의 옷을 벗지 못했거든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직도 자신의 힘으로 살려고 발버둥칩니다. 세상 물욕에 붙잡혀 있으니까 피곤한 거예요. 세상의 이권(利權)에 집착합니다. 세상 쾌락을 꽉 붙잡고 이중생활을 하니까 신앙이 거추장스러울 때도 있는 거예요. 그러나 이제는 세상 쾌락을 놓아보세요. 그러면 기쁜 소식이 들립니다. 믿음 안에 사는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느끼게 될 겁니다.
아벨네티라는 의사에게 한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진찰한 후에 “당신은 신경쇠약증상이 있으니 정신적인 휴양을 하시라”고 했습니다. 정신적인 휴식을 갖고 나서 그래도 안되면 약물요법으로 치료하자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환자에게 “당신은 런던 극장에 가서 그리말디 공연을 관람하고 실컷 웃으면서 마음을 좀 즐겁게 하라”고 주문했어요. 당시에 희극배우였던 그리말디는 특유의 몸짓과 개그로 관객들을 웃기는 재주꾼이었거든요. 그런데 환자는 그 말을 듣고 나서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약부터 달라고 고집합니다. 의사는 “희극 공연을 먼저 보고 오라”고 하고, 환자는 “약을 먼저 달라”고 작은 실랑이를 벌였어요. 그러다가 환자가 고개를 숙이면서 “선생님, 실은 제가 그리말디입니다.” 그러는거예요. 환자 자신이 희극배우다는 말을 들은 의사가 깜짝 놀라면서 말합니다. “수 천 수만의 관객들에게 웃음을 준 희극배우인 당신이 우울증에 걸렸단 말이요?” 그랬어요.
여러분! 이 희극배우는 남을 웃기는 재주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 속에는 기쁨이 고갈되었던 거예요. 자신은 기쁘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남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다윗은 이와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권고합니다. “주께서 내게 생명의 길을 보이시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고 했습니다. 나의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의 앞에 있습니다. 주의 우편에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시간이 즐겁습니까?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이 기쁩니까? 말씀을 읽을 때 사랑의 감동이 와요? 나의 영혼이 즐거워야 인생이 즐거운 거예요. 내 영혼이 즐겁다는 것은 죄의 속옷을 벗었다는 것입니다. 죄의 속옷을 벗고 구원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상쾌함을 느끼는 거예요. 세상적인 욕망의 옷을 벗고 의의 겉옷으로 갈아입을 때 멋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통해서 모든 나라에, 모든 사람 앞에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시려고 합니까? 본문 11절을 보면,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을 알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시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 안에서 즐거움을 얻은 사람은 중보적 기도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이 한반도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한반도가 평화의 땅이 되도록, 삼천리 반도가 은혜의 금수강산이 되도록 중보기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가정이 기쁨이 넘치고 사랑이 풍성하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62장 1절은 예언자 이사야가 예루살렘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않을 것이다.” 무슨 뜻입니까? 은혜받고 기쁨이 있는 사람은 그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기쁨이 곧 당신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우리 교회는 신자들만을 위한 교회가 아닙니다.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기쁜 소식과 사랑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미래의 교회는 단순히 예배를 위한 센터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보러오고, 예수님을 믿고 기쁘게 사는 우리를, 복되게 사는 우리들을 사람들이 보러 오는 쇼팽센터가 되어야 합니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실력있는 공인회계사로, 교회에서는 장로로 섬기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지금 50대 중반인데, 은퇴를 하면 연변과학기술대학에 가서 경제학과 회계학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을 전도하고 싶어했습니다. 남은 인생을 중국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꿈꾸며 기도했어요. 그런 가운데 갑자기 몸에 이상 증세가 와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했더니 폐암이라고 했습니다. 암세포가 너무 많이 전이되어서 병원에서도 더 이상 대안이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겨우 방사선 치료만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온 몸에 통증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진통제를 맞아야 할 정도로 통증이 심한데, 이런 환자의 얼굴이 어떻겠어요? 웃음이 있겠습니까? 기쁨이 있겠어요? 그런데 이분이 있는 병실을 다녀온 사람들은 저마다 깊은 감동을 받고 병실은 나옵니다. 그의 얼굴에는 어린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가 가득 피어 있습니다. 장로 체면 때문에 그런 거라면 금방 탄로가 날 겁니다. 하지만 그는 수 개월 동안 변함없이 기쁨을 잃지 않고 삽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혜가 있어서 그렇답니다. 한 번은 그 교회 부목사님이 병문안을 했는데, “목사님,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너무 너무 기쁜 날이예요.” 그래서 생각하기를 “병이 좀 호전되어서 그런가?” 했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교회에서 대각성 전도집회가 있었는데, 자신은 못갔지만 태신자만 등록시켰다고 했어요. 이 장로님이 태신자 부부를 놓고 계속해서 기도를 했는데, 그 부부가 예수님을 믿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들 부부가 복음을 받고 얼마나 기쁘던지 병문안을 와서 “장로님, 그동안 저희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랬대요. 그 부부가 누구였냐구요? 회계사 장로님의 자가용을 운전하던 기사 부부였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침묵해야 할 때가 있고 말해야 할 때가 있어요. 잠잠해야 할 때가 있고 외치며 간구해야 할 때가 있어요. 쉬어야 할 때가 있고 일해야 할 때가 있다구요. 기다려야 할 때가 있고 이제 나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내가 받은 은혜의 씨앗을 뿌려야 할 때입니다. 믿음의 씨앗을 고르고 기도하면서 그 씨앗을 뿌려야 할 때입니다. 내 안에 있는 기쁨이 당신의 것이다고 전해야 합니다. 기쁨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왕관이 된다고 했습니다. 본문 3절과 4절을 보세요.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이이요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말하지 않을 것이며, 네 땅을 황무지라 말하지 않을 것이다.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라.” 보십시오. 능력이 없다고 버림받고, 장애를 가졌다고 천대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쓸모없는 사람, 땅이 버림을 받듯이 말입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시각장애자 박사가 되었고 지금은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인 강영우(59세) 박사가 쓴 책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 책의 부제에 “내 안의 성공을 찾아라.(생명의 말씀사)” 라는 내용을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경험을 토대로 이 글을 썼는데, “사람은 누구나 성공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 다만 그 잠재력을 찾아내고 개발하지 않는 것 뿐이다. 자기 창조에 대한 노력을 통해서 성공에 이르게 되는데 그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첫째, 사람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지은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긍심을 가지라는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존귀한 존재이며,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자긍심과 자부심을 가질 때에 생각이 바뀌고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째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불가능에 도전하라고 말합니다. 믿음이 크면 모험심이 생깁니다. 오늘의 비젼과 꿈이 있어야 내일에 성취하게 됩니다. 그 예로 링컨을 보십시오. 그는 빈곤과 실패의 연속으로 미래가 불투명한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믿음으로 인생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서 노예해방이라는 평등의 가치를 실현했습니다. 셋째는 긍정적인 사고로 새 세상을 보라고 합니다. 강 영우 박사 자신도 실명한 후에 절망하자 앞길이 막막했다고 고백합니다. 거기서 자포자기 했다면 시각장애 안마사나, 침술사로 살아가야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울도 평생 고통을 받았지만 고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약함이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도구가 되었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넷째는 사람마다 개성과 성격이 다르고 능력도 다릅니다. 그러니 3000개의 일 속에서 자신이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능력을 개발하십시오. 그런데 이때 비교 경쟁은 하지 마십시오. 다섯째는 사랑과 봉사로 리더십을 기르라고 합니다. 미국에 9.11 테러가 있은지 1달 후에 부시 대통령이 TV에서 어린이들에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1달러를 백악관으로 보내면 아프가니스탄 고아들이 겨울나기에 쓸 것”이라고 호소했더니 어린이들이 동참하더랍니다. 이처럼 리더십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 동참하는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참된 지도자는 섬기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전체를 보는 눈으로 실력과 인격을 갖추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실력이고 그 다음은 인격과 도덕성이며 마지막은 최고의 전문성이라고 했어요. 사람은 남에게 기쁨을 주고 도움을 주면서 폭 넓은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자산이 되는 것입니다. 일곱째는 자신의 약점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소아마비 장애를 가졌던 루스벨트는 말하기를 “마음 속의 공포 외에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 확신을 갖고 미래를 향해 정진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디서 기쁨을 얻으려고 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버림을 받아도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의해 왕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전능자의 능력으로 기쁨을 얻고 내 안에 있는 능력을 발견합니다. “너는 헵시바라. - 내 기쁨이 네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 기쁘고 복된 소식이 당신 안에 있기를 바라며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앞에서 아름다운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나(여러분)에게 “너는 헵시바라” 하십니다. “내 안에 있는 이 기쁨을 전하여 아름다운 왕관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사야 61:10-62:4
10: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11: 땅이 쌀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1 :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2 :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3 :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4 :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쀼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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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사업가 중에 이와사키 야토로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사와키는 미쓰비시 라는 기업을 일으켜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어느 여름날이었어요. 여든을 넘긴 노모(老母)가 성공한 아들에게 큰 보따리를 하나 풀어 놓더랍니다. “어머니, 아니 이건 옛날에 쓰던 모기장이 아닙니까?” “그래, 네가 어렸을 때 치고 자던 모기장이다.” “아이 참, 어머니도. 이 낡은 모기장을 여태껏 보관하셨어요? 요즘 좋은 것들이 많은데요.” 그 말을 들은 노모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오늘처럼 무더운 여름날 밤이면 다 쓰러져 가는 고향 오두막집에서 너와 내가 이 모기장을 치고 달빛을 쳐다보며 벌레소리를 자장가 삼아 편안하게 잠을 자곤 했었지. 너도 기억하겠느냐?...” 여러분! 왜 이 노모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아들에게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겠습니까? 이와사키의 어머니는 20대 초반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온갖 고생을 무릅쓰면서 아들을 키웠습니다. 그런 가운데 아들이 사업가로서 성공했으니 얼마나 대견스러웠겠어요? 생각만 해도 흐뭇하고 기뻤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어머니는 성공한 아들이 걱정스러웠던 거예요. 노모는 고민하다가 아들에게 낡은 모기장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얘야, 이제 내가 세상을 떠나야 할 날이 가까워진 것 같다. 성공한 너의 모습이 기쁘기도 하지만 에미는 네 앞날이 걱정되는구나. 그래서 죽기 전에 너에게 이것을 주는 것이다.” 그러자 아들이 어머니에게 “어머니, 무엇이 그리 걱정이 되세요? 이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아들을 쭉 지켜본 어머니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너는 지금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집을 화려하게 꾸미고 겉으로 치장하는 것 밖에 모르고 있다. 하지만 네가 아무리 크게 성공했더라도 옛날 이 낡은 모기장 속에서 잠자던 기억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돈이란 그 운이 다하면 너를 떠날 수도 있는 거란다. 그러니 항상 이 모기장을 보며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고 앞날을 준비하며 살도록 해라.” 그랬어요. 20대에 청상과부로 온갖 고생을 했던 이 어머니의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들 안에 있었습니다. 아들은 성공해서 늙은 노모의 마음을 기쁘게 했어요. 하지만 노모는 아들의 성공을 끝까지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늘 걱정되었던 거예요. 아들의 앞날이 걱정이 되었던 노모는 아들에게 미래를 준비하라고 충고하였던 겁니다. 이와사키는 어머니의 사랑에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맙니다. 그리고 낡은 모기장을 가슴에 품고 성공의 정점에 있을 때에 미래의 어려운 때를 준비하는 사업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십니까? 자기 안에 있는 기쁨을 통해 남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자기의 삶 속에 다른 사람도 살게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예요. 좋은 사람은 충고를 받았을 때 깨달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의 마음은 거울과 같다고 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말하기를 “눈물을 모르는 눈으로는 진리를 보지 못하며 아픔을 겪지 아니한 마음으로는 사람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왜 눈물을 모르는 눈으로는 진리를 보지 못합니까? 눈물은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눈물은 어두운 눈을 치료하는 안약입니다. 은혜받고 눈물이 심령에 흐릴 때에 비로소 진리가 보입니다. 진리를 보는 사람은 진리 안에 있습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은혜를 망각하지 않아요. 진리를 아는 사람은 자유를 얻었습니다. 진리를 통해 자유를 얻을 때 기쁨이 내 안에 있습니다. 진리를 통해 생명을 얻을 때 즐겁게 삽니다. 진리를 통해 영생을 얻을 때 비로소 영생의 기쁨을 주는 거예요. 내 안에 있는 영원한 기쁨이 소망을 줍니다.
우리 나라 역사 중에서 일제시대를 암흑의 시대라고 합니다. 진리도 없고 자유도 없고 소망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내 생명을 내놓음으로써 후손들이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에 하나님의 진리를 붙들고 믿음의 등불을 밝혔던 주 기철 목사님이 쓴 “영문 밖의 길”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분이 순교한지 60년이 되었어요. 하지만 지금도 이 노래는 부르는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영생의 은총을 받은 사람에게 즐거운 일이 무엇인지, 무엇이 진정으로 기쁘고 복된 삶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서쪽하늘 붉은 노을 영문 밖에 비치누나 연약하온 두 어깨에 십자가를 생각하니
머리에는 가시관 몸에는 붉은 옷 힘없이 걸어가신 영문 밖의 길이라네
한발자국 두발자국 걸어가신 자국마다 뜨거운 눈물 붉은 피 가득하게 고였구나
아픈 다리 싸매주고 저는 다리 고쳐 주사 보지 못한 눈을 열어 영생 길을 보여주니
칠전팔기 할지라도 제 십자가 바로 지고 골고다의 높은 고개 나도 가게 하옵소서...”
여러분은 어디서 삶의 기쁨을 찾고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기쁘게 하던가요? “내 기쁨이 네 안에 있다. 내 기쁨이 당신 안에 있소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내 안에 있는 기쁨이 당신 안에 있다.” 이런 감동을 얼마나 느껴보셨습니까? 내 기쁨이 당신 안에 있다는 말은 나 혼자만 기뻐하고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있는 기쁨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기쁨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기쁨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있습니다. 목회자에게 있는 기쁨은 성도들에게 있어요. 남편에게 있는 기쁨이 아내 안에 있어요. 아내에게 있는 기쁨이 남편 안에 있어요. 부모에게 있는 기쁨이 자녀들 안에 있어요. 자녀의 기쁨이 부모의 기쁨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이렇듯이 주 안에 있는 기쁨은 영적인 교제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옆에 있는 분에게 해보세요. “나의 기쁨이 당신 안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셨던 복음입니다. 기쁜 소식이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기쁜 소식은 구원을 주신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구원의 옷으로 입히셨고 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분이 좋을 때 최상급의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히브리 말에는 비교급이나 최상급이 없어요. 기분이 좋고 행복하면 그 말은 계속해서 반복하면 됩니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다”는 말은 “쇼스 아쉬스 빠이바(여호와/shosh ashish baiwa)”입니다. ‘쇼스 아쉬스는 기뻐하고 또 기뻐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이 기쁘고 기쁩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복되다고 여기십니까?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이 행복하세요? 내 영혼이 주 안에서, 믿음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 너무나 즐겁습니까? “예, 나는 하나님으로(안에서) 인하여 너무나 흥겹게 삽니다.” 이 말이 “나프쉬 뻬로하이(napshi bealohai)”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이 힘들다고 그럽니다. 예수 믿어도 별로 흥겹지 않다고 그래요. 하나님의 자녀된 것이 후회된다는 사람도 있어요. 왜 그럽니까?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기쁨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요. 아직도 죄의 옷을 벗지 못해서 그럽니다. 아직도 세상적인 욕망의 옷을 벗지 못했거든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직도 자신의 힘으로 살려고 발버둥칩니다. 세상 물욕에 붙잡혀 있으니까 피곤한 거예요. 세상의 이권(利權)에 집착합니다. 세상 쾌락을 꽉 붙잡고 이중생활을 하니까 신앙이 거추장스러울 때도 있는 거예요. 그러나 이제는 세상 쾌락을 놓아보세요. 그러면 기쁜 소식이 들립니다. 믿음 안에 사는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느끼게 될 겁니다.
아벨네티라는 의사에게 한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진찰한 후에 “당신은 신경쇠약증상이 있으니 정신적인 휴양을 하시라”고 했습니다. 정신적인 휴식을 갖고 나서 그래도 안되면 약물요법으로 치료하자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환자에게 “당신은 런던 극장에 가서 그리말디 공연을 관람하고 실컷 웃으면서 마음을 좀 즐겁게 하라”고 주문했어요. 당시에 희극배우였던 그리말디는 특유의 몸짓과 개그로 관객들을 웃기는 재주꾼이었거든요. 그런데 환자는 그 말을 듣고 나서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약부터 달라고 고집합니다. 의사는 “희극 공연을 먼저 보고 오라”고 하고, 환자는 “약을 먼저 달라”고 작은 실랑이를 벌였어요. 그러다가 환자가 고개를 숙이면서 “선생님, 실은 제가 그리말디입니다.” 그러는거예요. 환자 자신이 희극배우다는 말을 들은 의사가 깜짝 놀라면서 말합니다. “수 천 수만의 관객들에게 웃음을 준 희극배우인 당신이 우울증에 걸렸단 말이요?” 그랬어요.
여러분! 이 희극배우는 남을 웃기는 재주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 속에는 기쁨이 고갈되었던 거예요. 자신은 기쁘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남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다윗은 이와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권고합니다. “주께서 내게 생명의 길을 보이시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고 했습니다. 나의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주의 앞에 있습니다. 주의 우편에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시간이 즐겁습니까?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이 기쁩니까? 말씀을 읽을 때 사랑의 감동이 와요? 나의 영혼이 즐거워야 인생이 즐거운 거예요. 내 영혼이 즐겁다는 것은 죄의 속옷을 벗었다는 것입니다. 죄의 속옷을 벗고 구원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상쾌함을 느끼는 거예요. 세상적인 욕망의 옷을 벗고 의의 겉옷으로 갈아입을 때 멋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통해서 모든 나라에, 모든 사람 앞에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시려고 합니까? 본문 11절을 보면,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을 알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시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 안에서 즐거움을 얻은 사람은 중보적 기도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이 한반도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한반도가 평화의 땅이 되도록, 삼천리 반도가 은혜의 금수강산이 되도록 중보기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가정이 기쁨이 넘치고 사랑이 풍성하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62장 1절은 예언자 이사야가 예루살렘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않을 것이다.” 무슨 뜻입니까? 은혜받고 기쁨이 있는 사람은 그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기쁨이 곧 당신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우리 교회는 신자들만을 위한 교회가 아닙니다.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기쁜 소식과 사랑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미래의 교회는 단순히 예배를 위한 센터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보러오고, 예수님을 믿고 기쁘게 사는 우리를, 복되게 사는 우리들을 사람들이 보러 오는 쇼팽센터가 되어야 합니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실력있는 공인회계사로, 교회에서는 장로로 섬기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지금 50대 중반인데, 은퇴를 하면 연변과학기술대학에 가서 경제학과 회계학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을 전도하고 싶어했습니다. 남은 인생을 중국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꿈꾸며 기도했어요. 그런 가운데 갑자기 몸에 이상 증세가 와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했더니 폐암이라고 했습니다. 암세포가 너무 많이 전이되어서 병원에서도 더 이상 대안이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겨우 방사선 치료만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온 몸에 통증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진통제를 맞아야 할 정도로 통증이 심한데, 이런 환자의 얼굴이 어떻겠어요? 웃음이 있겠습니까? 기쁨이 있겠어요? 그런데 이분이 있는 병실을 다녀온 사람들은 저마다 깊은 감동을 받고 병실은 나옵니다. 그의 얼굴에는 어린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가 가득 피어 있습니다. 장로 체면 때문에 그런 거라면 금방 탄로가 날 겁니다. 하지만 그는 수 개월 동안 변함없이 기쁨을 잃지 않고 삽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혜가 있어서 그렇답니다. 한 번은 그 교회 부목사님이 병문안을 했는데, “목사님,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너무 너무 기쁜 날이예요.” 그래서 생각하기를 “병이 좀 호전되어서 그런가?” 했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교회에서 대각성 전도집회가 있었는데, 자신은 못갔지만 태신자만 등록시켰다고 했어요. 이 장로님이 태신자 부부를 놓고 계속해서 기도를 했는데, 그 부부가 예수님을 믿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들 부부가 복음을 받고 얼마나 기쁘던지 병문안을 와서 “장로님, 그동안 저희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랬대요. 그 부부가 누구였냐구요? 회계사 장로님의 자가용을 운전하던 기사 부부였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침묵해야 할 때가 있고 말해야 할 때가 있어요. 잠잠해야 할 때가 있고 외치며 간구해야 할 때가 있어요. 쉬어야 할 때가 있고 일해야 할 때가 있다구요. 기다려야 할 때가 있고 이제 나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내가 받은 은혜의 씨앗을 뿌려야 할 때입니다. 믿음의 씨앗을 고르고 기도하면서 그 씨앗을 뿌려야 할 때입니다. 내 안에 있는 기쁨이 당신의 것이다고 전해야 합니다. 기쁨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왕관이 된다고 했습니다. 본문 3절과 4절을 보세요.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이이요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말하지 않을 것이며, 네 땅을 황무지라 말하지 않을 것이다.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라.” 보십시오. 능력이 없다고 버림받고, 장애를 가졌다고 천대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쓸모없는 사람, 땅이 버림을 받듯이 말입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시각장애자 박사가 되었고 지금은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인 강영우(59세) 박사가 쓴 책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 책의 부제에 “내 안의 성공을 찾아라.(생명의 말씀사)” 라는 내용을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경험을 토대로 이 글을 썼는데, “사람은 누구나 성공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 다만 그 잠재력을 찾아내고 개발하지 않는 것 뿐이다. 자기 창조에 대한 노력을 통해서 성공에 이르게 되는데 그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첫째, 사람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지은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긍심을 가지라는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존귀한 존재이며,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자긍심과 자부심을 가질 때에 생각이 바뀌고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째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불가능에 도전하라고 말합니다. 믿음이 크면 모험심이 생깁니다. 오늘의 비젼과 꿈이 있어야 내일에 성취하게 됩니다. 그 예로 링컨을 보십시오. 그는 빈곤과 실패의 연속으로 미래가 불투명한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믿음으로 인생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서 노예해방이라는 평등의 가치를 실현했습니다. 셋째는 긍정적인 사고로 새 세상을 보라고 합니다. 강 영우 박사 자신도 실명한 후에 절망하자 앞길이 막막했다고 고백합니다. 거기서 자포자기 했다면 시각장애 안마사나, 침술사로 살아가야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울도 평생 고통을 받았지만 고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약함이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도구가 되었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넷째는 사람마다 개성과 성격이 다르고 능력도 다릅니다. 그러니 3000개의 일 속에서 자신이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능력을 개발하십시오. 그런데 이때 비교 경쟁은 하지 마십시오. 다섯째는 사랑과 봉사로 리더십을 기르라고 합니다. 미국에 9.11 테러가 있은지 1달 후에 부시 대통령이 TV에서 어린이들에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1달러를 백악관으로 보내면 아프가니스탄 고아들이 겨울나기에 쓸 것”이라고 호소했더니 어린이들이 동참하더랍니다. 이처럼 리더십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 동참하는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참된 지도자는 섬기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전체를 보는 눈으로 실력과 인격을 갖추라고 합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실력이고 그 다음은 인격과 도덕성이며 마지막은 최고의 전문성이라고 했어요. 사람은 남에게 기쁨을 주고 도움을 주면서 폭 넓은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자산이 되는 것입니다. 일곱째는 자신의 약점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소아마비 장애를 가졌던 루스벨트는 말하기를 “마음 속의 공포 외에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 확신을 갖고 미래를 향해 정진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디서 기쁨을 얻으려고 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버림을 받아도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버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의해 왕관을 쓰게 될 것입니다. 전능자의 능력으로 기쁨을 얻고 내 안에 있는 능력을 발견합니다. “너는 헵시바라. - 내 기쁨이 네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 기쁘고 복된 소식이 당신 안에 있기를 바라며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앞에서 아름다운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나(여러분)에게 “너는 헵시바라” 하십니다. “내 안에 있는 이 기쁨을 전하여 아름다운 왕관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출처 : 조세법,국제조세, 회계학, 가업승계, 비영리법인
글쓴이 : 배원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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