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2002. 12. 22 보람교회 유 백선 목사 주일 낮 예배 “복음의 비밀을 나타내라”

하나님아들 2016. 4. 27. 15:25
2002. 12. 22 보람교회 유 백선 목사 주일 낮 예배 “복음의 비밀을 나타내라”
로마서 16:25-27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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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에서〈장희빈〉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조선 시대의 19대 왕이었던 숙종(1661-1720)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숙종은 대동법과 호패법을 실시한 왕이었습니다. 당시에 조정(朝廷)은 서인과 남인으로 갈라져 당쟁이 그칠 날이 없었는데, 그는 대신들을 포용하려고 애를 썼다고 합니다. 숙종이 야밤에 암행을 나갔던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남산골에 사는 이서우 생원이 밤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고 있었답니다. 헌데 먹을 것이 없어서 어찌나 배가 고프던지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대요. 그때 갑자기 창 너머 방바닥으로 보자기에 싼 물건이 ‘투~욱’ 하고 떨어졌습니다. 보자기를 열어보니 그릇에 약밥이 가득 담겨 있더래요. 이 생원은 약밥을 보고 ‘이 밤에 웬 약밥일까? 어느 분이 보내주셨는지 모르지만 참 고마운 분이구나.’ 하며 감사하면서 그 약밥을 먹고 힘을 내서 밤새워 공부를 했대요. 이듬해 이 생원은 문과에 급제해서 숙종 왕을 가까이서 모시게 되었답니다. 몇 해가 지난 어느 보름날 밤이었습니다. 숙종은 신하들과 더불어 술잔을 기울이며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보름달이 비추자 몇 해 전 암행을 나갔을 때 있었던 일을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하더래요. “몇 해 전 어느 보름날 밤이었을게요. 신하 몇 사람과 함께 짐이 암행을 나갔다오. 남산골에 이르렀을 때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 힘없이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오. 글 읽는 선비가 너무 기운이 없는 듯 해서 별감에게 시켜 약밥 한 그릇을 넣어 주었는데, 지금 그 선비는 어찌 되었을꼬?” 그때 숙종 곁에 있던 이서우가 들으니 자기 이야기를 하더래요. 그래서 그는 숙종 임금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엎드렸습니다. “전하, 이 은혜를 어이 갚아야 할른지요. 전하께서 말씀하신 그 선비가 바로 소신이옵니다. 그 약밥 속에는 은으로 만든 말굽(마제은)이 들어 있었는데 소신은 그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간직해 오고 있사옵니다.” 참으로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이서우는 눈물을 흘리며 품 안에서 마제은을 꺼내 왕에게 바쳤습니다. 그것을 본 숙종이 크게 놀라면서 기뻐합니다. “그런 가난과 시련 속에서도 굿굿하게 일어서서 과거에 합격한 그대가 대견하오.” 하면서 이서우를 칭찬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왕에게 약밥 한 그릇은 별거 아닙니다. 하지만 굶주린 선비에게 약밥 한 그릇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은혜를 간직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볼 때, 생각만해도 마음이 기쁘고, 마음을 흐뭇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습니까? 사람은 좋은 일을 행할 때 마음이 흐뭇합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러 갈 때 마음이 기쁘고 발걸음이 가벼운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듭니까? 아닙니다. 마음에 고민이 있고 마음에 기쁨이 없기 때문에 하루 하루 하는 일이 힘들고 어려운 겁니다.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건빵을 보면 구멍이 두 개가 뚫려 있습니다. 왜 두 개의 구멍을 뚫어 놓은지 아세요? 건빵을 굽는 동안에 속에 수증기가 생기는데 수증기 압력이 높아지면 건빵이 터져 버립니다. 압력에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미리 구멍을 뚫어 수증기를 빼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많은 구멍을 뚫어 놓을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구멍이 많으면 비스킷처럼 납작하게 되고 하나만 뚫어 놓으면 부풀어 터지거나 너무 볼록해져서 볼품이 없어집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도,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다 원리가 있어요. 비밀을 푸는 열쇠가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믿음의 세계에도 원리가 있습니다. 복음에도 비밀이 있어요.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받은 성도들에게 주는 마지막 교훈입니다. 이 마지막 교훈은 두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단락은 17절부터 21절까지인데, 첫 번째 단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신앙을 삶의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을 생계의 수단의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세상 지위를 얻기 위해서 교회에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 지위를 교회에서도 누리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민 교회에서는 교회가 사교장이 되어 버리기도 했어요. 이처럼 신앙을 삶의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는 신앙이 순수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사소한 일에도 감정 대립이 생깁니다. 자기 주장을 강하게 피력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불평과 불만을 토로합니다. 본문 17절과 18절에 보면, 믿음을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며, 자기의 배만(이익을 따라) 섬길 뿐 아니라 아주 부드러운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사람을 유혹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수단화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격하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순종하지 않아요. 복음의 원리를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비밀을 모르고 일할 때 문제가 더 커지거든요. 기독교 역사를 보면, 핍박이 올 때 교인수는 적어지지만 믿음이 순수해집니다. 숫자는 적어도 교회를 사랑하는 열정이 더 뜨거워졌어요. 그 열정이 교회를 부흥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반면에 믿음을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아지면 부피는 큰 것 같은데 믿음의 본질이 약화됩니다. 믿음이 병들어서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렸어요. 믿음이 병들 때 교회가 시끄럽고 가정이 화목하지 못한 것입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고 하듯이 믿음의 날개가 부러지면 그리스도인은 추락하고 마는 거예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낭패를 보았습니까? 지식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까? 아닙니다.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그것도 아닙니다. 육체를 따라, 세상 이익을 따라 추종하는 세력을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권력과 재물에 미혹된 사람들이 현혹한 소리를 가려내지 못한 것입니다. 믿음없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자기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어요. 결정적인 순간에 통찰력이 흐려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의 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복음의 원리는 아는 사람은 십자가의 사랑을 압니다. 예수 안에 있는 능력을 사용할 줄 알아요. 복음의 비밀 코드를 아는 사람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복음의 비밀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자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복음입니다. 기쁜 소식이예요. 누가복음 2장 10절에 보면, 예수님이 태어날 때 천사가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어떻습니까? 기쁜 소식을 들을 때에 무섭습니까? 두려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쁜 소식을 들을 때 마음이 기쁘고 설레입니다. 좋은 소식을 들을 때 기분이 좋아요. 기대와 감격으로 충만해있어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이런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이 선포될 때 가슴 벅찬 감동이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열리고 기쁨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전한 두 번째 단락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믿음의 동역자들에게 인사하라고 권면합니다.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경쟁자가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동역자요 협력자입니다. 믿음의 동역자는 낙심하는 심령에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좋은 소식을 전해주어 힘을 얻게 해주거든요. 지치고 힘들 때에, 어려울 때에 돕는 자입니다. 고난 가운데서 좌절하고 있을 때에 복음을 통해 소망을 갖게 해주거든요. 여러분은 저의 믿음의 동역자요, 협력자입니다.

경상북도에 있는 어느 교회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그는 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습니다. 두 다리를 잃고 나니 할 것이 없어지더래요. 그는 인생무상을 느끼면서, ‘내가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하며 낙심하고 있었답니다. 그때 어떤 분이 찾아와서 “그렇게 낙심하고 있지 말고 예수님을 믿어보라”고 했답니다. 그 말을 듣고서 마음 한 구석에서 ’두 다리도 없는데 예수는 믿어 뭐할끼고‘ 하는 생각이 들더래요. 그러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기쁘고 감동이 오는데 ’나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없으니 걸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드렸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만나고 나서 제 마음이 이렇게 기쁩니다. 이 기쁜 소식을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전하고 싶은데 주님이 아시는 대로 다리가 없잖습니까?...” 한참을 기도하는 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더래요. “네가 다리를 만들면 될 거 아니냐?” 그 음성을 듣고, “무엇으로 어떻게 다리를 만든단 말입니까?” 하고 물었어요. 그때 “나무로 만들면 될거 아니냐?” ! 그는 음성을 듣고서 큰 나무 두 개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하면서 생각나는 대로 다리를 만듭니다. 나무에 홈을 파서 다리를 묶은 다음에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다른 동네를 가려면 큰 하천을 건너야 하는데 그는 하천(河川)을 건널 때마다 감사를 했답니다. 초겨울이 되면 사람들은 하천을 건너기 위해서 맨발로 건너야 했는데, 얼마나 발이 시렸겠어요? 그런데 자신은 나무다리이다 보니 발시려운 줄 모르고 하천을 건너면서 “하나님, 제 다리가 나무다리인 것을 감사합니다.” 감사하면서 복음을 전했어요. 얼음이 꽁꽁 언 겨울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 열 일곱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목발 인생을 통해서 복음의 비밀을 나타낸 거예요.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사도 바울은 복음의 비밀을 전하는 자의 발걸음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본문 25절에 보면,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었다가 이제는 다시 나타내신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영어 성경(NLT)에 보면, “좋은 소식을 전할 때(Good News says)에, 하나님은 너를 강하게 만드실 것이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쁜 소식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강하게 만드십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복음을 ‘나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그 자체를 기쁜 소식이다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복음을 들었습니다. 복음을 듣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사랑을 알고 나니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보였던 거예요. 그래서 그는 이제까지 자신이 알고 소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다 버리기로 한 겁니다. 가문과 혈통의 영예도 버렸습니다. 최고의 율법학자로서의 유명세도 버렸어요. 가브리엘의 문하생이었다는 학벌, 학맥도 버렸어요.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자신의 삶이요, 삶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본문 26절에 보면, 자신에게 예수! 를 알게 하신 것은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려는 것이었다”고 했어요. 이 말씀은 아주 중요한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주신 것은 나를 통해서 모든 민족이 예수를 믿어 순종케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어때요? 여러분도 이런 믿음의 고백이 있나요? 예수님을 믿는 나를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거예요.

뉴저지주에 있는 드류대학에 필리핀 학생이 유학을 왔었습니다. 필리핀 학생이 기숙사에서 짐을 풀고 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밖에는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중년 신사가 우산 두 개를 들고 서 있었어요. “학생, 나는 이 대학의 ○○○교수라오. 이 마을에 좋은 교회가 있는데 나랑 같이 가보지 않겠나? 혼자 있지 말고 나와 같이 교회에 가자.” 하면서 우산을 내밀었습니다. 유학생은 대학에 처음 입학해서 있는데, 그 대학의 교수가 교회에 같이 가자면서 우산까지 내미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교회가 뭣하는 곳인지 몰랐지만, “예, 교수님. 오늘은 가보겠습니다.” 우산을 받아 들고 교회에 따라갔어요. ‘교수의 체면을 봐서 오늘 하루만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마음이 편안하더래요. 그래서 4년 동안 줄곧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은혜를 받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해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필리핀으로 돌아가서 큰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필리핀 전국교회 대표회장이 되어 취임식을 할 때 그는 “우산 두 개” 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내가 유학을 갔을 때 첫 번 만났던 그 교수님이 우산 두 개를 갖고 와서 하나를 내밀 때, 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복음의 비밀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전하고 있나요? 불순종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영광을 회복하고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전하고 있습니까? 이 복음을 듣고 믿고 순종하며 살고 있나요?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 불신자의 가정에 보냈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 직장에 보냈다고 생각하세요? 돈 벌어서 성공하라고 보내신 건가요? ‘은혜가 무엇인지, 무엇이 복된 인생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려고 나를 이곳에 보내셨구나. 연약한 사람들을 섬기면서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하는구나.’ 이렇게 복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이요, 철학자요, 신학자였던 슈바이처 박사가 자신의 사명을 깨달았습니다. ‘백인의 학대로 인해 가난하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에 복음을 전해야겠구나.’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의술이다는 것을 깨닫고 의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의학 공부를 마치고 1913년에 아프리카에 정착하여 1965년 가봉의 랑바레네에서 인생을 마칠 때까지 아프리카를 떠나지 않고 의술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침내 그의 헌신적인 사랑에 세계가 감동을 합니다. 그래서 1952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노벨상위원회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인생을 아낌없이 바친 슈바이처에게 찬사를 보내면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고 알리면서 시상식에 꼭 참석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슈바이처의 영예로운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세상 사람들은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아낌없이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가 시상식에 참석해서 아프리카에서 행했던 수많은 사랑과 봉사에 대해 연설을 들려 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노벨상위원회로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노벨상위원회에서는 간곡하게 다시 참석해 주기를 기대하며 편지를 보냈습니다. “선생님,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뵙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왜 거절하십니까?” 그러면서 슈바이처를 잘 아는 지인들과 노벨상위원회가 간곡하게 설득을 하지만 끝내 거절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런 과분한 상을 준 것은 고맙지만 저는 갈 수 없습니다. 제가 상을 받는다고 며칠이라도 진료실을 비운다면 저를 기다리는 많은 환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에게는 상을 받는 것보다 이곳에서 환자 한 사람이라도 더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합니다.” 그는 아름다운 사랑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비밀을 사랑과 헌신으로 나타냈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는 고난과 질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육체의 안락함은 있지만 심령이 공허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아요.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겠어요? 기쁜 소식을 듣겠습니까? 복음을 먼저 듣고 은혜받고 복음에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사랑을 알게 됩니다. 복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의 수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견고케 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조세법,국제조세, 회계학, 가업승계, 비영리법인
글쓴이 : 배원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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