復活하신 예수님이 주시는 祝福 (요20장19-23)
남자가 50대가 되면 필요한 것이 네 가지가 있습니다.
①부인. ②마누라. ③처. ④wife.
반대로 여자가 50대가 되면 필요한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①돈. ②현금. ③배춧잎.
남자는 나이가 들면, 점점 더 아내 곁에 있으려 하고, 반대로 아내는 이제 돈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그러니 둘 사이가 핀트가 맞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 평안한 것 같지만, 평안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문제가 숨겨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평안하십니까? 부활의 아침에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라고 인사는 했지만, 정말 평안하십니까?
주님이 주신 가장 중요한 선물이 바로 평안입니다.
1. 부활하신 예수님은 샬롬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지도자들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겹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안에서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있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이 이른 아침부터 들려오고 있었지만, 그들의 두려움을 없애주지는 못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제자들은 여전히 의심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1)막달라 마리아가 이른 아침에 보았던 일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설마” 하고 있습니다.
2)거기에다가 베드로도 빈 무덤을 보았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은 강력한 증거이긴 하지만, “혹시 다른 사람이 가져갔다면” 이라는 가정법을 갖게 합니다.
3)그런데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걷다가 같이 식사를 할 때, 눈이 열려서 보니, 예수님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정말이라고요. 정말이라니까. 얼마나 마음이 뜨거웠는지. 세상에서 그런 경험을 처음 했어요.” 그 중에 ‘글로바’라는 제자가 입에 침을 튀기며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믿지 않기로 작정하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두려움 가운데 머물러 있는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문이 겹겹이 잠겨 있는데도 그들 가운데 서 계셨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두려워합니다. 온통 두려움 투성 입니다.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손과 발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까지 해야 했습니까?
만지기 전에는 믿지 않으려 합니다. 오늘 사건에 있지 않았던 도마는 자기가 직접 예수님의 손을 만져보고,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야 믿겠다고 했습니다.“회의주의자”입니다. 우리 고백합시다. 제 마음도 이렇게 둔하고 굳어있습니다. 주님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시오. 부활의 주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그러면 열어 주실 줄 믿습니다.
비록 꾸짖으셨지만,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무덤을 뚫고 나오신 예수님의 축복의 말씀입니다.
세 가지 축복이 나옵니다.
첫째는 샬롬입니다. 생생한 현장에서 막 튀어나온 분의 첫 번째 축복입니다. 주님이 주신 “평강이 있을지어다.” 는 말로만 하는 인사가 아닙니다. 주님은 온 몸을 바쳐서 십자가에서 대가를 지불하였습니다. 무엇을 위한 대가였습니까? 바로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 위해서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심으로 죄로 인한 갈등, 염려, 시기, 고통, 헤어짐, 등등, 평안을 깨는 모든 것에 대하여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더 이상 내가 노예처럼 질질 끌려 살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하신 일곱 마디 중에 “다 이루었다.”무엇을 이루셨습니까? 죄의 대가를 다 지불하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명을 완수했다는 의미입니다. 희생제물이 되어, 대신 죽으셨다는 뜻이 있습니다. 모든 율법의 요구를 완성했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다 완성하신 분입니다. 진짜 평화를 가져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단순히 말로만 주는 평화가 아닙니다. 온 몸으로 주시는 평화입니다. 진짜 ‘샬롬’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 보아라. 이 못자국을 보아라. 이 창자국을 보아라. 내가 다 이루지 않았느냐? 너희는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다. 평안이 너희 것이다. 너희는 이제 모든 축복을 받는다. 내가 어둠을 뚫고 부활했기 때문이다. 너희도 나와 같이 부활의 샬롬을 경험할 것이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샬롬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근심, 걱정,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적극적으로 누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샬롬 공동체로 샬롬을 세상에 주어야 합니다. 부활은 샬롬이 진짜임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이론적인 샬롬이 아닙니다. 변화시키는 샬롬입니다. 능력 있는 샬롬입니다. 환경을 뛰어넘는 기쁨이 샬롬 입니다. 조건을 넘어설 수 있는 기쁨이 샬롬입니다. 부하면 부한대로 일 많이 하십시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부지런히 주님을 위해서 일하십시오. 비교하지 마십시오. 주눅 들지 마십시오. 주님이 계신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세상은 평화를 원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진정한 평화입니다. 개인적으로 평안이든지, 사회나 나라의 평화이든지 평화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평화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한 나라가 십자가 앞에 나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한 민복이 그 뜻을 알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 제목입니다. 불가능한 것 같은 일이라도 기도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특별히, 이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전쟁을 통해서 통일이 된다면, 우리나라는 잿더미 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평화로운 통일이 있으려면, 평화의 주인공이신 주님이 남한과 북한 사이에 계셔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평화는 깊은 무덤을 뚫고 나온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형화를 전하려면,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2. 부활하신 예수님은 교회(성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먼저 예수님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모든 일을 시작하시고 계획하시고 이루어가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따라서 선교의 시작은 아버지입니다. 선교의 내용은 평화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한 평화입니다.
다른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이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이제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십니다. “나도”라는 말에 집중하여 주십시오. 주님이 직접 주신 명령입니다. “나”라는 말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우리를 잇는 선교 라인이 형성됩니다. 선교 커넥션입니다.
그러므로 이일은 우리의 일이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의 일입니다. 예수님의 일입니다.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전에 하늘의 관심사요 일입니다. 우리가 왜 선교하자고 그렇게 열심히 말합니까? 우리 모두는 선교사로 보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끼리 모여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남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앉아서 재미있게 떠들고 떠날 때, “유익한 시간이었어. 다음 주에 또 봐!” 그리고는 세상에 묻혀 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공동체입니다. 주님이 보내셨다는 사명을 갖고 사는 선교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권세에 의지해서 능력의 복음을 나눠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명을 가지고 행복하게 삽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내셨다는 것은 목적 있는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목적 있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여행하는 사람 중에 제일 불쌍한 사람은 목적지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보냄 받았으니, 언젠가 소환 명령이 있겠지요. 사명대로 잘 살았으면, 임기를 마치고 갈 것입니다. 사명을 망각하고 살면, 소환될 것입니다. 중간에 소환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목사로서 교회도 개척해보았습니다. 평생에 한 번 짓을 수 있을까 말까 하는 교회 건축도 했습니다. 좋은 아내와 사랑하는 딸들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저는 행복합니다. 그런데 더 행복한 것은 이 땅에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사명대로 살고 있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저는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합니다. 사명대로 살려고 합니다. 사명을 발견하고 그대로 살면 행복합니다.
복음이 강력하게 선포되는 곳에서는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살리는 복음과 죽이는 복음입니다. 복음을 계속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심판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반대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이 같이 따라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샬롬’이 내 삶을 지배합니다.
제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은 이 샬롬’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이들이여, 큰 자신감을 가집시다. 내가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위대합니다. 복음 안에 전파되시는 예수님이 위대하십니다. 그 분이 전파되면, 살리는 복음이 되든지. 죽이는 복음이 되든지 합니다.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들은 죽음의 삶을 계속 살다가 심판에 도달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여, 환경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복음을 전하십시오. 우리는 세상에 평화의 복음 전하는 사명을 가지고 삽니다.
3.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해석하게 만듭니다. 이제 새로운 세계가 막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은 그 새로운 세계의 테이프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어리버리’한 제자들이 어떻게 새로 열린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열어놓으신 새로운 세계는 땅의 세계이면서 하늘의 세계입니다. 땅의 세계라면 내 힘으로 들어가면 되지만, 하늘의 세계는 내 힘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늘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힘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힘을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을 경험합니다. 치유와 소망을 경험합니다. 환영과 웃음을 경험합니다. 사랑과 정의를 경험합니다. 나에게서 멈추지 않고, 목숨을 걸고 새로운 생명을 나누어줍니다. 심지어 목숨을 잃으면서도 일했습니다. 어둠에 잠겨 있던 이 조선 땅에 복음이 주는 빛을 전하기 위해서 이곳에 기꺼이 와 주었습니다. 성령께서 주셨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자원은 바로 성령님입니다. 바람 같은 성령님을 늘 따라 다니십시오. 바람 같은 성령님의 세 가지 특징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①바람은 늘 움직입니다. 임의로 왔다가 임의로 사라집니다. 방향을 내가 정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움직임도 그러합니다. 성령은 본인의 의도대로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바람의 흐름을 따라 살려면, 민감해야 합니다. 조용히 움직이는 바람을 알려면 잎의 움직이는 방향을 보든지, 피부로 조용히 느껴야 합니다. 성령님을 이렇게 조용히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성령님에게 민감하려면, 기도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 없이 민감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기도의 끈을 놓고 있으면, 말씀이 죽습니다. 제 안에 생명이 메말라 버립니다. 그러나 기도가 살아있으면, 성령님의 소리에 민감합니다. 무엇이라고 하시는지 그 소리에 민감해집니다.
② 바람은 살아있습니다. 성령의 바람은 생명을 가져오는 바람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있던 마른 뼈들을 다시 살린 것이 생명의 바람이었습니다. 성령의 바람은 생명을 가져옵니다. 세상의 바람은 생명을 마르게 합니다. 헛된 것을 좇게 합니다. 그것을 좇다가 목적지라고 생각하고 도달하면, 텅 빈 것밖에는 없습니다. 세상의 일이란 이렇게 바람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허망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성령의 바람은 충만한 삶으로 인도합니다. 성령이 내 삶을 채우면,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육체의 생명만을 바라보고 살지 않습니다. 하늘의 생명을 바라보고 삽니다. 새로운 목적의식이 생깁니다. 심지어는 죽었던 관계가 다시 살아납니다. 단절된 관계가 회복됩니다. 상처 때문에 헤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만납니다. 성령의 바람은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나의 상처에 갖다 놓습니다.
③ 바람은 힘이 셉니다. 성령의 바람은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람은 엄청난 운동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무기력한 삶에 힘을 불어넣습니다. 능력을 공급합니다. 성령의 엄청난 힘을 의지하면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치 돛단배가 돛을 높이 올리기만 하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원리와 같습니다. 엄청난 힘으로 그분이 이끄시는 방향과 목적지로 이끌어 주십니다. 바람을 타야 합니다. 바람에는 길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길이 있습니다. 거기에 몸을 올려놓으십시오. 내가 주님의 일을 하려면 성령의 도움 없이 할 생각을 아예 꿈꾸지도 마십시오. 하늘의 사람은 하늘의 자원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 자원은 살아 있는 자원입니다. 바로 그 자원은 바람 같은 성령님입니다. 운동력 있는 성령님, 생명을 주는 바람 같은 성령님, 힘 있는 바람 같은 성령님을 의지하고 사십시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結論:
부활은 죽음을 이긴 능력입니다.
그 부활은 주님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죽음과 저주를 이기고 사는 선물들을 주십니다.
첫째, 평화, 둘째 사명, 셋째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 선물을 풍성히 누리십시오.
이 선물을 누리면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십시오.
그리고 더 깊고 넓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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