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로 가라(마28: 1-10)
어떤 목사님이 인생에 대하여 말하기를 ‘인생은 오고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을 ‘온다’는 말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간다’는 말 역시 하나님에게서 났으니 하나님께로 간다는 의미로서 표현했을 것입니다.
※ 어떤 부인이 남편의 장례식에 사람들을 초대하면서 남편은 본향으로 갔으니 오셔서 축하해 달라고 했답니다. 참 귀한 신앙이지요. 평상시에는 하나님 나라를 본향이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 보내면서 하나님 나라 본향으로 갔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있을 수 있지만 자신과 죽음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죽음은 인생이 정할 일이 아니며, 반드시 모든 사람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죽음을 향한 삶의 형태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생의 모습을 예수님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을까요? 결론으로 말한다면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또 완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두 가지 단어 곧 ‘보냄을 받았다’는 단어와 ‘내어주었다’는 단어를 통해 예수님의 삶과 삶의 목적을 말씀해 주었습니다.
‘보냄을 받았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태어나게 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내어주었다’는 말은 아무런 죄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죄를 구속하시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려고 친히 희생제물이 되어서 십자가에서 죽도록 자신을 내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두 단어를 통해서 볼 때,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시기에 인간이 지니는 삶의 형태를 그대로 가지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의하여 왔고 또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가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인생의 일반적인 형태와 예수님에 대한 이 두 단어를 언급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삶이 어떠한 삶이었는지를 알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처음부터 가장 낮은 자리로 보냄을 받았고 비천한 곳에서 생활하였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으로 자신을 내어주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땅 위에서의 예수님의 삶은 철저하게 우리를 위한 삶이었고, 우리를 향한 극진한 사랑에서 시작하여 극진한 사랑으로 마친 삶이었습니다.
오늘 부활의 아침을 맞이합니다. 만약 이 아침을 예년과 같이 매년 맞이하는 날로만 생각한다면 부활의 의미를 이미 놓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부활의 아침에 우리 개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망극하신 사랑을 기억하고 감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부활의 주께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신지를 생각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을 살펴본다면 “갈릴리로 가라”는 말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천사들은 왜 두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실 것이라고 말하였을까요? 왜 예수님은 그 여인들에게 천사와 똑같이 갈릴리로 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는 장소를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로 굳이 정하셨을까요?
■ 첫째,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죄를 짓지 않도록 배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이 삼일간 시체를 떠나지 않고 그 주위를 맴돈다고 생각하였고 또 그렇게 믿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혼이 이 땅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즉시 하나님께로 가서 영광 중에 거하거나 지옥에 가서 고초와 흑암 안에 있습니다. 주의 재림 때까지 그런 상태로 있다가 최후심판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제자들 역시 동일한 생각을 가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러한 자들과 예루살렘에서 만나신다면 믿음이 연약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였을지도 모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시체를 떠나지 않은 혼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의 경우까지 생각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손길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옛날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을 떠날 때 가나안으로 향하는 지름길로 가지 않고 홍해가 있는 쪽으로 돌아서 간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당시의 기록인 출애굽기 13장 17절에는 이러한 기록이 있습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였음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세미한 사랑과 배려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제자들을 사랑하시는지, 얼마나 아끼시는지, 그들이 오해하고 부활을 부인할 것까지 염려하신 것입니다. 이같은 사랑은 오늘 부활의 아침을 맞는 여러분에게도 동일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시편 103편 14절에서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을 아시기에 우리에게도 한결 같으신 사랑으로서 깊은 배려를 주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어린 자식에게 생선을 줄 때 그냥 주는 법이 없습니다. 일일이, 혹시라도 가시가 목에 걸릴까 일일이 가시를 빼서 먹여 주십니다. 자식의 연약함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도 우리가 시험에 들거나 연약함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지키시기를 즐거워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하여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하신 말씀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만약 예수님의 말씀을 미리 접하지 아니했다면 그가 과연 그렇게도 빨리 회개할 수 있었을까요? 아니 회개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이와 같이 우리를 늘 돌아보시고 우리를 지키시며 시험으로 인해 죄를 짖지 않도록 도우시는 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지금의 모습으로 지키시고 인도하신 그분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 둘째,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이것을 통하여 믿음을 북돋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려고 갈릴리로 가는 것은 말처럼 간단하고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크게 낙심한 상태였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오해 때문에 정치적인 성공을 기대한 제자들로서는 큰 실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체포와 죽음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스승인 예수님께서 가장 악독한 사형에 처해진 현재입장에서 그 제자들로서 당연히 체포의 위협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체포되었을 때에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도망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재판과 고문과 십자가 처형 그리고 장례까지 일절 얼굴도 보이지 못하고, 이름도 내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믿음도 없고, 인간적인 용기도 없는 자들이니 당국의 눈을 피해 갈릴리로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아마도 제자들 간에 많은 논쟁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갈릴리로 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체포와 죽음 그리고 부활의 소식을 듣는 제자들의 태도 등을 보면서 제자들이 얼마나 연약한 믿음을 가졌는지를 알게 됩니다. 갈릴리로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머뭇거렸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제자들은 형편없는 믿음의 소유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을 갈릴리로 오라고 부르시는 예수님의 부름 속에서 여전히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며 품에 안으시는 따뜻한 사랑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믿음과 머뭇거리는 모습 속에서도 그들이 성숙한 믿음으로 자랄 것을 보셨습니다. 믿음의 성장을 위해 기다리시고 인내하셨습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갈등은 한층 성숙된 믿음을 갖게 만듭니다. 성경에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러한 갈등과 연약함 속에서 성장한 경험들이 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젊은 시절에 자기 힘과 능력으로 동족을 구원하려 했으나 철저히 실패하고 도망자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 도망자의 신분은 40년이나 이어졌고 나이 8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습니다. 애굽으로 가서 신음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성경은 「모세」의 갈등과 주저함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려 다섯 번에 걸친 사양과 변명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겸손한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친 숫자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갖고 있는 갈등과 연약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인내하셨고 끝까지 모세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로 하여금 믿음으로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수 있도록 하셨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내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극복과 믿음의 성장과 사역은 누구도 경험할 수 없었던 엄청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 역시 믿음으로나 용기로나 연약한 제자들을 버리지 않고 인내하셨습니다. 기다려 주셨습니다. 확신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결국 갈등을 극복하고 믿음의 성장을 이루었으며 하나님 나라의 큰 일꾼들로 맡겨진 사역을 충실히 감당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 역시 제자들이나 「모세」가 받은 요구를 받습니다. “갈릴리로 가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도 들려집니다. 그 가는 길이 지금으로서는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실현 불가능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갈등과 머뭇거림 속에서 마음이 답답하고 골치가 아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인내로 믿음으로 기다려 주십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그러셨듯이 여러 가지 방법과 모양으로 우리에게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우리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야 합니다. 갈등을 극복하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순종의 길을 걸어갈 때 제자들이 그러했듯, 「모세」가 그러했듯, 놀라운 일들을 경험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용되는 능력 있는 일꾼들이 될 것입니다.
■ 셋째, 갈릴리가 가진 정서적 특성과 지역적 특성 때문입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의 사역을 대표하는 곳입니다. 많은 제자들이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처음으로 뵈었고 그곳에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의 많은 기억들이 있었습니다. 폭풍 속에서 두려워 떨 때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예수님을 보았고 믿음 없음을 책망 받았습니다.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소리쳤던 부끄러운 일도 갈릴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또한 갈릴리를 중심으로 한 가버나움이나 벳새다 같은 곳에서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갈릴리 근처의 산에서 그 유명한 산상수훈을 들었습니다.
갈릴리는 제자들에게 영적인 고향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믿음이 시작되었고 자라났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기억이 가장 많이 묻어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 역시 제자들의 이러한 마음과 생각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제자들의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고, 믿음이 떨어져 있음을 아신 예수님은 신앙이 태동된 곳에서 새 힘을 얻기 원하셨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 믿음을 다시 일으키고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여기 갈릴리에서 지금까지의 어떤 명령보다 가장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지상명령을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감격과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며 갖는 감회가 아우러져 얼마나 큰 힘을 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요즘 말로 하면 제자들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런 장엄함 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8절부터 끝까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성도 여러분! 때로 지칠 때도 있습니다. 때로 갈등으로 힘들어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 믿음이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다시 회복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어진 일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 갈릴리로 갑시다. 그곳에서 우리에게 지상명령을 주시며 죽어 가는 영혼들을 바라보라는 말씀을 들읍시다. 저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들읍시다. 현실과 자기 생각에 묻혀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힘을 내어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뜨거운 음성을 들읍시다.
부활의 이 아침에 갈릴리로 향하는 여러분에게,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뜨거운 심장으로 세상을 향하는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님의 능력과 평강이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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