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復活의 信仰 (요 20장19-29)

하나님아들 2016. 4. 22. 14:41

 

 

 

復活信仰 (2019-29)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의 신앙은 개신교를 비롯하여 로마 카톨릭과 동방의 정교회에 이르기까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종파가 가지고 있습니다. 부활을 말하지 않고는 십자가의 의미가 상실됩니다. 십자가가 기독교의 뿌리라면 부활은 열매입니다. 초대교회를 비롯하여 오늘까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이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부활은 역사상 주님이 처음입니다. 하늘나라로 승천한 에녹이나 엘리야는 죽음을 맛보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들은 나중에 다 죽었습니다. 부활은 다시는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주님이 십자가에 죽은 후 제자들이 두려움에 문을 잠그고 한 곳에 모여있을 때 주님께서 나타나서 그들에게 평강을 선언하였습니다. 그날 새벽에 여인들이 주님의 무덤에 갔다가 시체가 없음과 막달라 마리아가 주님을 만난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전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자 도마는 그 자리에 없어 주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주님이 부활한 사실을 말했을 때 도마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불신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십자가에서 죽었고, 죽은 지 3일이 지났기에 다시 살아날 확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직접 주님이 못박힌 손과 옆구리를 확인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8일이 지난 후 도마가 있는 그 곳에 주님이 나타나 여전히 그들에게 평강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는 도마에게 자신의 상처난 손과 옆구리를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본 도마는 부활의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주님을 향해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도마를 비롯한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목숨을 걸고 증거 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부활의 신앙은 말씀을 믿고 체험하는데서 시작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제자들의 신앙은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사실만 인정했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능력을 인정했습니다. 병자를 고치고, 풍랑을 잔잔케 하심과 오병이어의 이적도 믿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믿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자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망각했습니다.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문을 잠그고 숨어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불안해하는 그들에게 평강을 선언했습니다.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에게 나타나 부활의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는데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실재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데서 제자들은 확고한 신앙이 자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서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삭은 약속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자손이 번창 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죽이면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번제에 쓸 제물을 모리아 산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는 부활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가리켜 믿음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거인 장수 골리앗 앞에 당당히 맞선 소년 다윗이 부활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누가 봐 도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99%가 골리앗이 이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하나님이 물리쳐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이든 간에 자신은 살아날 것이고, 골리앗은 죽을 것이라는 확신이 결국은 부활의 신앙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부활의 신앙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삶이 신앙입니다. 기독교는 말씀대로 행동하는 종교입니다. 바리새인의 특징은 말씀을 많이 알고 있는데 행동이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일은 때로는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낮아져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부활은 고난의 십자가에서 시작됩니다. 주님의 말씀 앞에 낮아지고 순종할 때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부활의 신앙은 성령을 통해 증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인류의 고질적인 병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라고 했는데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 부활의 열매는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죽은 자들은 다 부활을 하고, 살아있는 자들은 변화되어 주님을 맞이합니다. 중요한 것은 영생의 부활이냐, 심판의 부활이냐가 중요합니다. 인류의 행복과 불행은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행복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우리가 영원히 살아야할 시간에 어디에 있느냐 입니다. 천국이냐 뜨거운 지옥이냐? 그래서 주님은 이 사실을 증거 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오늘 우리에게 영생의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할 뿐 아니라 복음증거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바람은 모든 인류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모든 인류를 위한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아담으로부터 주어진 인류의 원죄는 사라졌습니다. 원죄 때문에 심판을 받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유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어 그들을 물게 했습니다.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불뱀에 물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모세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이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모세에게 제시합니다. 그것은 구리로 뱀의 모형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놓고 그것을 쳐다보는 자는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놓고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 수 있습니다.” 두 종류의 사람들로 나타났습니다. 모세의 말에 순종하여 쳐다 본 사람들과 여전히 모세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자들은 그것이 무슨 능력이 있느냐고 불신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결과는 쳐다본 사람들은 살았지만, 쳐다보지 않은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똑같이 하나님을 원망하여 불뱀에 물렸지만, 모세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생명이 주어졌지만, 여전히 불신한 사람들은 죽었던 것입니다. 인류는 원죄 때문에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부활을 목격하고 부활의 신앙을 체험한 제자들과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주님의 부활의 사실을 증거 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모세가 구리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매달아 놓고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여기를 쳐다보라고 외치는 것과 같습니다. 절망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부활하신 주님을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 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삶의 목적입니다. 교회의 존재가치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부활은 특정인을 위한 부활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한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의 사실을 효과적으로 증거 하기 위해 성령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증거 하는데 결정적인 능력이 됩니다. 성령의 능력을 입지 않고는 복음을 효과적으로 증거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할 때 우리에게 임합니다. 그러나 그 성령이 우리에게서 충만해야만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부활의 복음을 증거 하는 것도 성령이 충만할 때 담대히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 없이 지식적인 부활 증거는 생명력을 줄 수 없습니다.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곳에는 기독교 복음이 활발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생명력이 있는 부흥하는 교회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가정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사모해야 합니다. 자신의 교만과 욕망을 버리고 겸손과 순종의자세로 성령님을 우리에게 초대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부활의 신앙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작가 엔도우 슈사꾸의 예수의 일생이라는 소설을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이 소설의 특징은 예수의 생애를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소박하고 인간적인 예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은 다 빼버렸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이나 물위로 걸어간 사건, 불치의 병자를 고치신 사건, 죽은 자를 일으킨 사건, 그리고 다시 살아난 부활의 사건들을 예수의 생애에서 지워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 생애의 마지막을 십자가에 비참한 죽음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런데 엔도우씨는 글을 마치고 편집후기에 예수의 생애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두 개가 있다고 진술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군병들에게 잡힐 때 모두다 두려워 도망간 겁쟁이 들인데 어쩌서 예수가 죽은 후에 그를 위해 목숨을 바쳐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가? 두 번째는 갈릴리 서민들로부터 시작한 나약한 예수의 종교가 그것도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어 끝나버린 예수의 종교가 어떻게 해서 지금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가? 라고 작가는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말하지 않고는 제자들과 오늘의 기독교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을 통해 우리의 가족과 이웃과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부활의 참된 의미입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Coram 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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