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우리 안에 있는 부활

하나님아들 2016. 4. 22. 14:33

 

 

 

우리 안에 있는 부활(18:19-20)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여러 번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사람들과 함께 하시다가 승천하시는 순간, 가장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들려주신 약속도 역시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마태복음 2828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20)고 약속해 주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들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을 비롯한 주님과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은 주님께서 이렇게 친히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약속들을 다 듣고 기억하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날에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쯤 떨어진 엠마로라는 마을로 내려가고 있던 제자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내려가면서 예수님 주변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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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두 사람의 동행 길에 한 사람이 더 끼여들었습니다. 그 분은 부활하신 주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제자가 스승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활하신 몸이시지만, 이렇게까지 몰라 볼 수 있을까요? 제자 둘이 똑같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주님께서는 너희가 길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자세하게 사흘 간에 있었던 일들을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시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죽으신 일과 부활하신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다 말씀드립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과 동행하시는 분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주님과 함께 가면서 주님이신 지를 모르는 이것은 비극입니다. 함께 하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일까요? 아니면 듣기는 들었는 데 잊은 것일까요? 아니면 잊지 않고 기억하지만 믿지를 않는 것일까요? 여러분, 우리에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여러 약속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약속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는 동행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을 어리석게 봅니다. 그러나 이 어리석은 이야기는 그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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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 주일입니다. 전 세계의 크리스천들이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찬양합니다.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사셨습니다. 크리스천이라면 이 부활의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역시 죽어도 주님과 같이 부활의 열매로 다시 살 것 또한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 내 안에 우리 안에 살아 계신 것을 믿는 믿음으로 가면 좀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다들 내 안에 우리 안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동행하심을 믿고 또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주님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요?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은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실 때의 주님의 능력보다 더 자유로우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님의 능력은 더 강하게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맨송맨송한 것입니까?

 

오늘 우리는 우리 안에 부활하신 주님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셔서 우리와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시고, 또 우리의 모인 곳에 늘 임재하십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주님의 능력은 어떻게 우리 안에 역사 하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능력을 어떻게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은 그것에 관해 함께 진리를 나누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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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조건은 마태복음 2827~28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가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제자 삼는 사역을 이루어 갈 때에 함께 하시는 부활의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제자 삼는 사역을 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가서 제자를 삼지 않아도, 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지 않아도, 분부하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지 않아도, 부활의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시지만, 부활의 주님의 능력을 나타내시지를 않으십니다. 일부러 나타내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타내실 이유가 없으신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철저하게 우리의 구원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으셨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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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구원을 위해 이루셨는데, 그 보혈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 부활의 능력들을 구원과 상관이 없는 곳에 사용하시겠습니까? 왜 나는 열심히 기도하는 데도 기도가 응답되지 않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되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그토록 열심히 기도한 기도의 제목이 과연 죽어 가는 영혼들의 구원과 상관이 있는 것입니까?

 

상관이 있다면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의 기도가 영혼구원만 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 일터에 어려움이 있을 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죽어 가는 영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직 내 일터가 잘못되면 내 밥줄이 떨어질 것만을 염려합니다. 그리고 오직 그 이유로만 기도합니다.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은 늘 영혼구원에 가슴 아파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느낍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고난과 죽음과 부활하신 것도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한 뜨거운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내 밥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직장을 영혼구원의 터전으로 삼습니다. 아직 주님을 모르는 직장의 동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기회를 봅니다. 때를 주실 때 놓치지 않고 수확합니다. 직장이 또 하나의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영혼구원에 투자할 물질을 얻는 곳으로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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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소득을 얻는 곳입니다. 그러나 또한 내가 주님을 위한 물질을 얻는 터전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를 축복하셔서 물질로 풍성케 해 주십시오.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입지가 넓어지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써야 할 것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 직장의 죽어 가는 영혼들을 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일터를 축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일터가 어려움이 있을 때 건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내 일터를 축복하시지 않으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구하는 데 지장이 되게 해 보십시오. 내가 축복을 구하지 않아도 축복해 주십니다. 너무도 소중한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 제자들을 양육하신 것도 역시 영혼 구원을 위해서 양육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서 제자 삼으라고 말씀하시는 것 역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전 사역이 구원을 위해 집중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마지막 명령 역시 우리의 삶이 구원을 위해 집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부활주일에 우리는 스스로 우리 안을 향해 강하게 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죽으셨느냐? 예수님께서 왜 부활하셨느냐?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너에게는 무슨 의미겠느냐? 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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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은 공동체 안에서 가장 강력하게 역사 하신다는 것을 기억 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어디에서 부활하셨습니까? ,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육체는 무덤에서 부활하셨지만 생명의 실체는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는 공동체 안에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존재양식이 공동체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한 분이십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성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떨어져 나오셨다가, 다시 삼위의 공동체 안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동시에 교회라는 공동체의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부활하셨다는 말입니다. 리 안에 부활의 주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 안에 사십니다. 공동체 안에서 강하게 역사 하십니다. 물론 개인의 심령 안에도 살아 계십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떠나 있는 심령에게서는 크게 역사 하시지 않으십니다.

 

어떤 분들은 나는 예수를 믿고 변화되고 싶은 데 변화가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고도 말합니다. 이것은 실패한 분들의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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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기도해도 아주 작은 내 결점들도 고쳐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예수 안에 있어도 결정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고린도 후서 517을 보십시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같은 역사는 사도 바울 개인만의 경험입니다. 아니면 거짓고백입니까? 아니면 미래에 있을 일을 말할 것일까요? 그런데 분명 이 선언은 완료형입니다. 새 것이 이미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내게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기도가 적었을까요?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금식하고 또 철야하면서 변화되기 위해 몸부림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봉사와 헌신이 부족해서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너무나 헌신적으로 일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렇다면 왜 변화가 없는 것일까요? 공동체를 떠나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살다보니 제 오른 손에 더러운 오물이 묻었습니다. 그럼 제 몸의 다른 지체들이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발은 당장 물이 있는 곳으로 오른 손을 데려갑니다. 왼손은 수도꼭지를 틀고, 오른 손을 씻깁니다. 그래서 오른 손은 깨끗하게 변화됩니다. 한 몸이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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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른 손이 잘 난 체 하느라고 저 혼자 뚝 떨어져서 저 구석에서 혼자 이 오물을 씻으려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씻어집니까? 굽혔다 폈다 주먹을 쥐었다 별 짓을 다해도 손은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머리되신 예수님의 몸인 이 공동체를 떠나 혼자서 깨끗해지고, 변화되고, 능력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붙어 있어야 합니다. 붙어 있으면 상처를 입어도 머리되시는 주님께서 다른 지체들을 통해 바로 치료받게 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나 혼자 독립적으로 몸을 이룬 것이 아니라 각 지체들을 통해서 한 몸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가족 같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으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 가족인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서로가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자식이 도둑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동네 사람들, 내 딸년이 도둑질을 했어요~ 내 딸은 도둑 년 이여유~ ”하고 소문내고 다니는 부모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부모가 아닙니다.

 

부모는 자식의 허물을 덮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피를 나눈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피로 사서 한 몸이 된 한 가족이요 한 형제 자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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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허물을 덮지 못합니까?  덮지 못하고 왜 소문내고 다닙니까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한 가족입니다. 한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사서 한 몸 된 식구들입니다. 내 안에 모든 것을 함께 내어놓고 나누고 기도하고 세우고 도우며 서로를 치유합니다. 그런 가운데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이 강하게 아주 강하게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을 공동체 안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과 내가 하나요, 또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지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 공동체에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놀라운 역사가 내게 일어나는 지 모릅니다.

 

여러분, 스스로 물어봅시다. 우리 교회는 공동체입니까?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이 맞습니까? 나는 한 몸에 지체로 붙어 있습니까? 확실히 그러합니까? 그렇다면 우리 안에 놀라운 역사와 변화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한 마지막 기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17:21)

더 이상 엠마오의 제자들이 되지 마십시다. 오늘 이 부활절에 공동체에서 부활하신 우리 주님의 부활의 강력한 능력을 경험하시는 자녀들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Coram Deo
글쓴이 : Coram De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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