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의 열심
(사 9:6-7)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것을 기리는 성탄절이 점차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탄절하면 아이들은 산타크로스가 선물을 주시는 날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성탄절은 선물을 떠오르게 하는 명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날을 기리는 날로 세상에서 그 어떤 기념일보다 가장 기쁜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원히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이 세상에 오시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우연이 아니고 인간의 열심 때문도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열심 때문이라고 오늘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그래서 오늘 설교 말씀을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이라고 정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700여년 전에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열심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열심을 내셨는지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 깨닫고 감사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 구원의 점진적 계시
창조주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와 만물과 인간을 지으실 때 인간을 맨 첫날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지으신 창조의 순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배려, 인간만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특별한 섭리, 단 한 가지도 부족함이 없는 지상 낙원 에덴동산을 인간의 거처로 만들어 주신 일입니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이 수고하여 만드신 것들을 만들려고 한다면 수천만년이 걸려도 불가능한 일을 단 엿새 만에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뜨겁게 사랑하셨는가 하는 하나님의 열심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라고 선포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뜨거우셨는가 하는 것을 역력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속담처럼 인간에 대한 그와 같은 하나님의 기대가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물거품이 되고 말았을 때 하나님의 실망이 얼마나 크셨을까?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일만 가지 자유를 주시고 오직 단 한 가지 자유를 제한하신 선악과 사건입니다.
(창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미 인간에게 허락하신 일만 가지 자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단 한 가지 부자유함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감사하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이 금하신 단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 만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신 단 하나의 명령을 불순종하였을 때 그것을 지켜보신 하나님은 얼마나 속상하셨을까요?
그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헌신짝처럼 버린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인간을 아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아주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에게 처음 품으셨던 사랑은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인간에게 경고하신 말씀을 어쩔 수 없이 형 집행하실 수밖에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인간에게 내리신 형집행을 정지하실 특사를 계획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계획이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인간에게 약속하신 최초의 복된 소식인 구원을 약속하신 일입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그러나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이루어지기 힘든 약속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또한 그 약속의 말씀을 곰곰이 되새겨 듣지 않게 되면 무슨 뜻인지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귓전으로 흘려버리기 쉬운 약속의 말씀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거나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와 같은 약속을 하신 하나님만이 애태우시며 백년이 가고 천년이 가도 하나님은 그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열심을 다 하시는 동안 그 약속은 점차 새벽 미명에 샛별처럼 영롱하게 빛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신학적으로 계시의 점진성이라고 말합니다. 칠흑 같은 밤바다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멀리서 작은 점 같은 빛 하나가 보이듯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이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 하는 것이 점점 더 밝히 드러나는 것을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성경 말씀입니다.
2. 왕에 대한 예언
여러 개의 퍼즐 조각을 맞춰서 점차 그림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하게 하신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맞추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창세기 3:15에 최초로 약속하신 메시아가 남자의 후손이 아니라 여인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이라는 메시아 탄생의 예언은 그 후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좀더 구체화되었습니다.
1) 어떤 절차와 경로를 통해서 오시는가?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여인의 몸에서 태어나는데 과연 누가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메시아라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동정녀 탄생에 대한 예언의 성취입니다. 마치 점차 어두움이 물러가면서 점차 새벽이 밝아 오듯이 창 3:15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 통해서 좀 더 밝히 드러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인의 후손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신다는 좀 더 구체적인 예언의 말씀입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 예언의 약속을 처녀 마리아를 통해서 이루신 과정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열심히 얼마나 대단하셨는가 하는 것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눅 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눅 1: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눅 1: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여인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미가 선지를 통해서 예언하셨으나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여인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는 반드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여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동원하시어 로마 제국치하에 사람들은 모두 다 고향에 가서 호적을 하라는 황제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만삭된 몸으로 고향 베들레헴을 찾아간 것은 우연한 일이 결코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히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눅 2: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눅 2: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눅 2: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직선 거리만 해도 130km에 이릅니다. 만일 요단강을 건너서 베뢰아 지방으로 돌아간다면, 그 거리는 훨씬 더 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베들레헴은 해발 600m 고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호적하러 올라가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 어떤 신분으로 오시는가?
미가의 예언처럼 여인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다고 할지라도 과연 어떤 아기가 예언대로 세상에 오신 메시아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또 하나의 문제였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여인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의 구별된 신분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모든 나라의 왕은 누구를 막론하고 왕자로 태어나는 것처럼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여인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시는 메시아는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시되 종전의 왕들처럼 나라를 키우기 위해 전쟁을 벌려 많은 사람을 죽이고 백성들로부터 고혈을 짜내어 자기 배만을 불리는 그러한 불의한 왕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평강을 주는 평화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왕자는 왕의 가문에서 태어나는 법이고, 왕자는 왕궁에서 태어나는 법이고, 왕자가 태어날 때는 온 국민에게 그 소식이 알려져 기뻐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여인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아는 오늘 성경의 말씀처럼 평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한다면 베들레헴 말 구유위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가 어찌 평강의 왕이 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다윗 와의 가문의 후손인 마리아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록한 족보인 마태복음 일장 서두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왕의 족보를 통해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또한 아기 예수가 평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음을 멀리 동방에서 박사들을 동원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폭군 헤롯에게 제일 먼저 알리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평강의 왕으로 오셨음을 만천하에 드러내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라면 메시아가 평강의 왕으로 세상에 오신다는 오늘 성경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 얼마나 열심 하셨는가를 잘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 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마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예수 그리스도의 열심
폭군 헤롯이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자신의 기득권에 위협을 느끼고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자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두 살 미만의 사내아이들을 다 죽이는 포악함을 잘 드러내 보여주었습니다.
(마 2: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물론 하나님은 그것조차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시는 아기 예수의 탄생이 한치의 오차도 없는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였음을 이렇게 증거하셨습니다.
(마 2: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마 2: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그와 같이 무자비한 헤롯왕의 치하에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귀신의 왕 사탄의 지배하에 온갖 질고와 죽음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인간 세계의 축소판으로 약속하신 평강의 왕이 오셔서 어서 빨리 구원하셔야만 하는 때임을 절실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사단의 훼방에서부터 아기 예수를 보호하시기 위해 아기 예수를 애굽으로 피난가게 하시고, 그 후에 베들레헴이 아닌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자라나셔서 공적으로 일할 수 있는 나이 삼십이 되실 때까지 아무도 예수님이 이 땅에 평강을 주시기 위해 오신 만왕의 왕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르도록 하신 것도 하나님의 얼마나 열심을 다하셨는가를 역력히 드러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때가 이르렀을 때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게 하시고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마치 왕자가 왕위에 오를 때 머리에 왕관을 씌우는 대관식처럼 오늘 성경 말씀의 예언처럼 평강의 왕으로 세상에 오신 분이심을 하나님께서 징조를 보여주심으로 천하에 드러내셨습니다.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만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왕들처럼 화려한 금관을 쓰시지 않으셨지만, 성령의 권능이라는 왕관을 쓰시고 지금까지 죄와 질고와 죽음이라는 채찍을 휘두르며 인생들을 괴롭혀 왔던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그 손아래서 인간을 구원하는 일을 열심히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공생애기간에 열심히 하신 삼대 사역입니다.
1)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기 때문에 공생애 삼년 내내 가시는 곳마다 천국복음을 전하고 가르치셨습니다.
2) 사람들을 짓누르고 괴롭히는 온갖 질병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일을 가는 곳마다 하셨습니다.
3) 사람들을 쇠사슬보다 더 질긴 고통의 줄로 결박하여 질질 끌고 다니는 귀신을 쫓아내어 고치심으로 자유하게 하는 일들을 열심히 하셨습니다.
(마 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눅 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얼마나 열심히 그와 같은 일을 하셨는지 식사할 겨를도 없으셨다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막 3: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평화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임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귀신들은 먼저 알아보고 예수님에게 굴복하였습니다.
(눅 4: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귀신을 쫓아내고 사탄을 물리치는 일은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범죄한 인간을 꽁꽁 묶고 있는 죽음의 권세를 예수께서 이기심으로 예수님이 바로 인간을 죄와 질병과 죽음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자유와 해방과 평화를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만왕의 왕이심을 온 천하에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무덤에서 걸어나오게 하신 것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만이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기 위해 여인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만왕의 왕이심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요 1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세상에 그렇게 오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죽으신 분도 예수님뿐입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다시 살아나신 분도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예언의 말씀처럼 기묘자이시고 모사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영존하시는 아버지시고 영존하시는 왕이심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것만이 아닙니다. 왕의 가문인 다윗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셔서 마지막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예수님 십자가위에 달린 죄 는 살인이나 절도가 아니라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는 명패를 붙인 것처럼 예수님은 왕으로 백성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물리치시고 만민이 기도하는 아버지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다고 질책하시면서 좌판을 뒤엎으시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성전에서 내어 쫓으신 그 사건 때문에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칼을 갈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같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성경에 예언하신 말씀대로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고 예언하신 말씀을 기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요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예수께서 그처럼 죄없으신 거룩하신 몸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대신 채찍과 고난을 겪으심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운명하시고 빈 덤에 장사하여 사흘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신 것은 예수님만이 인류 최대의 적인 죽음을 이기신 만왕의 왕이심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사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베들레헴 마구 간에서 나시고 나사렛 목수의 가정에서 자라나시고 갈릴리를 중심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밤낮 수고를 하신 예수님의 그 열심히 아니었다면 오늘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받아 영광스럽게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열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와 같이 열심을 다하셨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열심, 예수 그리스도의 열심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을 받아 이렇게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여인의 후손을 세상에 보내시겠다는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열심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이처럼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은 그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열심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몇날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성탄절이 바로 그와 같은 하나님의 열심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주신 날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마음 깊이 감사하며 성탄을 기다리고 성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의 자세로 성탄을 맞이해야 할까요?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렇게 열심을 다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신앙 생활을 해야 할까요?
성경은 그와 같은 축복을 받은 우리들의 신앙이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뜨뜻 미지근하지 말고 서머나 교회처럼 뜨겁기를 요구하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맨 첫날 빛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왜 넷째날 태양을 지으셨을까요? 모든 생명은 반드시 빛이 필요한데 첫날 지으신 빛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지만 열이 없는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넷째날 지으신 태양은 빛만이 아니라 열이 있는 빛이었습니다. 그 태양빛이 없이는 모든 생명은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빛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착함의 빛만이 아니라 뜨거운 열심의 빛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우리를 채찍질하고 있습니다.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갈 4: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물론 우리 중에 단 한 사람도 이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이 말씀대로 모두 다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열심히 충성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이라고 핑계할 것입니다.
예화
장인의 보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도 하나님께 보검처럼 쓰임을 받고 싶습니까? 성령의 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연단하실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인내로서 담금질을 잘하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믿음 생활을 해 왔습니까? 내가 누구보다 약하고 부족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더욱 열심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예배하는 일, 기도하는 일, 말씀을 읽는 일, 전도하는 일, 주신 직분에 충성하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열심을 내어 독생자를 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심을 내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열심을 다해 우리를 구원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선한 일에 열심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딛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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