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에베소서 4:13~16
(여는 말)
제가 대학교 때 읽었던 짧고 간단한 한 책이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책은 나중에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서 더욱 그 의미가 실감이 나게 되었습니다. 트리나 포올러스 라는 분이 지은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그림동화집입니다. 줄무늬를 가진 예쁜 애벌레의 이야기입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배가 고파 나무잎을 갉아 먹다가 이 세상의 삶은 단지 먹고 사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가치 있는 일을 찾아 자신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먹을 이파리를 만들어 준 나무를 떠나 세상으로 나섭니다. 나무에서 내려온 애벌레는 풀과 흙과 구멍들, 작은 곤충들 등등 그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한 수많은 것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 애벌레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이윽고 줄무늬애벌레는 수많은 애벌레들이 무언가를 향하여 부지런히 기어가는 것을 발견합니다. 노랑줄무늬 애벌레도 궁금함을 가지고 열심히 그 대열에 섞여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마침내 이 애벌레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수많은 애벌레들이 꿈틀거리며 기어올라가는 높다란 탑이었습니다. 그 탐은 하늘에 있는 구름에까지 맞닿아 있었습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흥분을 느끼고 그 탑 위에 있을 무언가를 찾기 위하여 그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탑은 다름 아니라 수많은 애벌레 자체였습니다. 서로 위로 오르기 위하여 떠밀리고 짓밟히고 채이면서 기를 쓰고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기어오르는 탑 가운데서 노랑 애벌레를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줄무늬 애벌레는 꼭대기까지 오르고 싶은 야망 때문에 노랑 애벌레를 버리고 다시 그 높다란 탑에 기어오릅니다. 마침내 줄무늬 애벌레가 꼭대기에 도달했을 때,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꼭대기일 뿐이었습니다. 아래에서는 다른 애벌레가 계속 기어오릅니다.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줄무늬 애벌레는 그제서야 바닥에 있을 때 꼭대기에 올랐다가 떨어져 죽어가는 다른 애벌레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꼭대기에는 아무 것도 없어." 줄무늬 애벌레는 기를 쓰고 그 꼭대기에서 다시 내려왔습니다. 어떤 노랑 애벌레의 눈을 닮은 노랑 나비가 무언가 간절히 말하는 듯합니다. 그 나비를 따라 나뭇가지에 매달려 고치가 되고 나중에 그 고치를 찢고 멋진 나비가 탄생합니다. 노랑 나비와 줄무늬 호랑나비는 창공을 맘껏 나르며 멋진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갑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젖먹이와 같이 미숙한 상태에서는 자라나서 맘껏 하늘을 날아 오르는 나비처럼 성숙한 신앙의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될 때 죽음과 같은 고치의 삶을 통과하듯이 예사람이 죽고 새사람을 태어나는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13절)",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자라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1에서는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젖만 먹을 수 있는 어린아이와 같이 어린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있고, 어른 처럼 모든 것을 소화하며 삶에 열매를 나타내는 신령한 자, 성숙한 영적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2에서는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자라야 합니다.
1. 믿음이 아닌 것
우리는 믿음이라 하면 구원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나중에 죽을 때가 되면 믿을께. 그래도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했지?"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죽을 때가 되어서 믿을 수 없습니다. 믿는 척 할 수는 있겠지만 죽을 때가 되어서 믿겠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또 언제 죽을지 누가 압니까?
믿음은 그런 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말을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믿음을 설명할 때 이해하기 쉽게 천국행 티켓을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천국행 티켓을 사서 내 지갑 속에 넣어두듯이 믿음도 그렇게 소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자라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믿음에 대해 좀 진지하게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에 대해 알기 전에 먼저 믿음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 곧 신앙이 아닌 것을 자칫 믿음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선 믿음은 도박이 아닙니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신이 있다와 없다는 둘 중 하나의 선택을 내려야 할 상황에 우리가 처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쪽이 더 이득이 되는가를 확률로 따져보자는 것인데, 신이 있다는 쪽을 택한다면 이긴 경우 모든 것을 얻고 진다해도 잃을 것이 없으니 주저하지 말고 "신이 있다"에 걸어라고 했습니다. 만약 "신이 없다”에 건다면 이겨도 얻을 이익이 없으나 지면, 곧 '신이 있다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재미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도박하듯이 믿는 것이 믿음일 수 없습니다.
믿음은 확률이 아닙니다. 믿음은 경험으로 미루어 판단하는 추측이 아닙니다.
앞에서 마주 달려오는 차가 나에게로 덤벼들지 않을 것을 믿기 때문에 안심하고 차를 운전하고 도로를 달립니다. 이것처럼 확률적으로나 경험으로 보아서 추측하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확률이 0.00001%라도 옳으면 믿는 것이며, 경험한 적이 전혀 없는 일이라도 하나님이 믿게 하시면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자기 확신이나 적극적인 사고가 아닙니다.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했어. 내 안에 의심이 없어야 해. 믿자. 믿자. 그리고 어떤 목표에 도전합니다. 그렇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에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선교사로부터 말씀을 들은 어떤 청년이 바닷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는데, 하나님이 하게 해주시면 그런 일이 자기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자기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러주신 것이 맞다면 증거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물 위를 뛰어들었는데 빠져 죽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은 맹목이 아닙니다.
믿음은 열심이 아닙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하면 이런 말을 한번쯤은 듣습니다. "열심히 다녀요. 예배도 빠지지 말고,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도 열심히 읽으세요. 그래야 신앙이 자라는 법입니다." 저도 이렇게 권면합니다. 이런 열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 열심 자체가 신앙, 믿음인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성장을 위한 방편일 뿐입니다. 제가 그저께 고추 모종을 사다 심었는데 잘 자라게 하기 위해 밭에 심고 물도 주고 비료도 주고 가꿉니다. 열심히 돌볼 때 고추 모종이 잘 자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열심히 돌보는 것이 고추 자체는 아닌 것입니다.
믿음은 지적인 동의가 아닙니다.
여호수아 2장에 보면 이스라엘에서 두명의 정탐군을 여리고성에 보냈는데 그들을 기생 라합이 숨겨줍니다. 나중에 여리고성의 사람들이 다 죽었지만 라합과 그 가족들은 목숨을 건집니다. 여호수아 2장 8절부터 12절까지를 보시겠습니다.(구약 P322)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 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기생 라합이 정탐군 둘을 숨겨주었는데 이 일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잡히면 배신자로 죽임을 당할 일입니다. 라합은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소문을 들은 사람이 라합 만은 아니었습니다. 여리고 성의 성민 전부였습니다. 그들 모두 홍해가 마른 일을 알고 시혼과 옥이 진멸당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라합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께 나아와 생명을 보장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2. 참된 믿음
그러면 참된 믿음이 무엇입니까? 우선 믿음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믿음의 첫단계는 내가 애써 믿는 믿음이 아니라 저절로 믿어지는 믿음입니다.
제 경우를 생각해보면, 제가 젊어서 저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제 친했던 한 친구와는 얼굴을 붉히며 논쟁하고 그 뒤로 멀어진 친구도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어느 시점부터 복음의 진리가 믿어졌습니다. 처녀가 잉태한 것도 믿어지고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도 믿어지고, 하나님이 나에게 생명을 주신 것도 믿어지고,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과 나를 위한 계획이 있다는 사실도 믿어졌습니다. 믿어지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혜인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나름대로 비슷한 경험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아직 확신이 없더라도 교회에 나와 이런 말씀을 듣게 해주신 사실, 나의 마음에 이런 열린 문을 허락하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 보니 믿음은 성령의 은사 중 하나로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둘째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에 9가지 성령의 열매가 나오는데 그 중에 충성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영어 번역은 faithfulness인데, 헬라어 원어로는 pistis, 곧 '믿음'입니다. 믿음은 성령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열매를 생각할 때 흔히 잘 익은 열매만 생각합니다. 저희 집 마당에 있는 배나 사과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열매는 익어가는 것입니다. 열매는 봄에 꽃이 피고 지면 금방 열립니다. 그러나 쓰고 떫어 먹지 못합니다. 한 해동안 자라고 익어서 가을이 되어서야 맛있는 배나 사과가 됩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열매가 맺힙니다. 그것이 바로 9가지 열매, 우리의 인격이고 성품입니다.
세번째로 믿음은 신뢰입니다.
요즈음 세계적으로 경제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우리가 은행에 예금을 하는 것은 은행이 내가 맡겨둔 돈을 되돌려 줄 것을 신뢰하기 때문에 맡깁니다. 만약 은행이 예금을 돌려주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면 예금을 인출할 것입니다. 고객들이 일시에 예금을 인출하면 은행은 하루 아침에 망합니다. 은행이 고객의 돈을 다 은행 안에 쌓아둔 것이 아니고 다른 곳에 투자했거나 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으로 내 줄 돈이 없는 것, 그것을 유동성 부족이라고 합니다. 우리조국 대한민국이 1998년에 이른바 'IMF 사태'를 당했는데 나라가 돈을 돌려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믿음,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 투자했던 외국의 자본들이 돈을 다 인출해 갔고, 그 바람에 갚을 돈이 없어서 부도가 났고, 부랴부랴 IMF(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돈을 꾸어서 나라를 꾸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세계 경제가 다 그 위기에 놓여 있다고 야단들입니다. 신뢰할 수 있으면 돈을 맡기고 할 수 없으면 못 맡깁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우리의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은사로서의 믿음이나 성령의 열매로서 믿음이나, 결국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체와 같이 잘 자라면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자라지 못하면 말라 죽습니다.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프랑스의 곡예사 블롱댕이라는 사람이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있는 나이애가라 폭포 위를 외줄 타기로 건넜습니다. 우뢰와 같은 소리, 온몸을 적시는 물안개 속에 젖은 외줄을 타고 335m의 폭포 이쪽에서 저쪽까지 건넜을 때 수많은 구경꾼들이 환호했습니다. 다음해에는 눈을 가린채 건넜습니다. 그 때에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블롱댕이 말했습니다. "내가 사람을 목마 태워서도 건널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욱 환호했습니다. "여러분도 믿습니까?" 그랬을 때 사람들은 "아무렴요. 당신같이 위대한 곡예사는 그정도야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블롱댕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중 누구든지 나오십시오. 내가 목마 태워서 건너겠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는 일순 조용해졌습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단 1%의 실수만 있어도 죽는다고 생각하니 아무도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블롱댕은 자기의 아들을 목마태워서 나이애가라 폭포를 건넜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100%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믿음, 우리의 신앙은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3. 믿음에서 성장하자.
그러면 믿음에서 자라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자라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신령한 젖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말하기를 이 백성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에 관한 정보, information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라면 호세아 시대의 유대인들에게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지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 5:45입니다.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이 말씀을 볼 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은 성경의 내용을 잘 알고 글자 그대로 믿으려고 하던 것을 믿음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지적으로 동의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 믿음이라면 귀신도 갖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9절입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지금 새가족 성경공부와 청년부 제자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이 누구신가? 성령님은 누구신가? 이런 주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전능하신 분, 창조주, 영원히 계시는 분, 무소부재하신 분, 여러가지 설명이 나옵니다. 그런 지식이 믿음인 것은 아닙니다. 그 지식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신 것과 나와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분이라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인생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창조하여 가고 계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에서 하나님을 알고 그 친숙함에서 우러나오는 신뢰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 16절에서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각자가 모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룹니다. 몸의 지체인 우리가 각 마디를 통해서 서로 연락하고 돕고, 각 지체가 하는 일을 통해 몸인 교회가 자랍니다. 아울러 몸이 자라면서 각자가 스스로 자라고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믿음이 성숙하는 것은 교회를 통해서입니다. 교회 안에서 내가 자라면서 교회가 자라고 교회가 자라면서 내가 자라는 것입니다.
(맺는 말)
예수를 믿어도 육신에 속해 있으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온전히 누릴 수가 없습니다. 신령한 자가 되어야 참으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돕고 서로 세우면서 함께 성장하고 성숙하여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영적으로 성숙하고, 우리 개인이 저마다가 영적으로 성숙하는 놀라운 은혜를 입어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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