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시편 138:2
(여는 말)
최근 뉴스에서 보니 천주교에서 미사나 성가, 기도 등에서는 '야훼(YHWH 또는 YHVH)'라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발음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지난 10월 17일 "교황청이 거룩한 네 글자(YHWH)로 표현되는 하느님의 이름을 전례(典禮, ritual)에서는 사용하거나 발음하지 말고 '주님'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지침을 보내왔다"며 "13~16일 열린 주교회의 추계정기총회에서 이를 확인했으며 앞으로 모든 문서 등에서 야훼라는 표현을 고칠 예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adonai(아도나이)'는 '주님'으로, 'YHWH(야훼)'는 '하느님'으로 번역하고, '아도나이 야훼'는 '주 하느님'으로 번역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부르는 이름이 크게 나누어 두 가지로 나옵니다. 하나는 '엘' 또는 '엘로힘'(엘의 복수형)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여호와'입니다. '엘'(또는 엘로힘)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주변의 다른 민족도 부르던 이름입니다. 곧 보통명사로 우리의 '하느님'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성경 창세기 1장부터 '하나님'으로 번역된 단어는 이 '엘로힘'이라는 단어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히브리인들만 부르는 이름입니다. 곧 고유명사입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보통명사로 메시아,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뜻의 타이틀입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이름은 고유명사입니다. 저는 목사라는 타이틀로 불리기도 하고 송명헌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엘이나 여호와에다 하나님의 성품을 표시하는 말을 덧붙여서 부르기도 합니다.
1. 믿음과 말씀의 관계
오늘 본문에서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음이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가장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여기서 '주의 모든 이름'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여러 가지 축복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축복하실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시는데 각각 다른 이름으로 주십니다. 예를 들어보면, 도무지 아무 것도 없어서 빈손으로 조마조마하고 있는 우리를 주님의 것으로 풍족하게 채워주실 때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이름으로 주십니다. 병들어 있을 때 '여호와 라파'의 이름으로 고쳐 주십니다. 적들이 쳐들어와서 어려움 가운데 빠졌을 때에는 '여호와 닛시'의 이름으로 적을 물리쳐 주십니다. 예기치 못한 일로 불안하고 두려운 때에는 '여호와 샬롬'의 이름으로 위로하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모든 상황이 나를 향해 등을 돌리고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했을 때 '여호와 샴마'로, '임마누엘'로 함께 하여 주십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하나님의 모든 이름이라는 것은 어려움 가운데 빠져 있는 성도들을 도우시고 축복하는 이러한 모든 체험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시를 쓴 시인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시는 모든 귀한 축복들과 체험들보다 가장 높은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 중에서 최고의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며 그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 하나님 전부를 붙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궁핍하고 가난할 때 돈이 생겨 부자가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한 축복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병들었을 때 병이 낫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더 귀중하고, 우리가 곤경에서 헤어날 길을 모를 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가장 귀중하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다른 무엇보다 말씀을 귀중하게 여기시며, 다른 모든 것보다 높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주를 만드셨으며, 우리 인생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말씀을 듣고 믿는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셨습니다. 로마서 10:17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말씀을 듣는 것에 근거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올바른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 두 주간 믿음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바른 믿음, 성숙한 믿음이 되어야 하기에 잘못된 믿음을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믿음 가운데 첫번째로 대표적인 것이 '마음의 확신', '적극적인 사고'입니다. 바른 믿음을 가지면 확신에 서게 되고 적극적인 사고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마음에 확신이 있다고 바른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의 심리상태, 곧 '꼭 이루어지리라' 믿는 확신에 있지 않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믿음은 마가복음 11:24 말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과 또 그 비슷한 말씀들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마음 속에 있는 확신만 있으면, 의심이 없이 무조건 믿는 그런 마음만 있으면, 우리 마음의 확신 대로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믿습니다."하고 기도합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더욱 세게 기도합니다. 작정기도를 하고 금식기도를 합니다. 그러다가 내 뜻대로 이루어지면 "할렐루야"하고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내 뜻이 종내 이루어지지 않으면 믿음을 잃고 맙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아무리 의심 없이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도 안되는 일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11:24 말씀이 나오기 전에 22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모든 이름 위에 높게 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말씀하신 것은 틀림없이 이루어지리라고 믿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믿음, 잘못된 믿음으로 두번째는 종교행위를 믿음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행위들은 믿음을 나타내는 귀중한 형식입니다. 참된 믿음, 성숙한 믿음으로 주님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주일 성수, 십일조, 새벽기도 등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러한 형식으로 믿음이 전부인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없이도 그런 열심은 얼마든지 낼 수 있습니다. 수년 전에 북섬의 어느 도시의 한 교회에서 한 집사가 여러 성도들의 돈을 사기쳐서 도망간 사건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도망가기 전에 일년을 그 교회에 출석했는데 주일을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고 새벽기도도 빠진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열심으로 교회 예배에 출석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그가 믿음이 좋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것은 모두 계획된 위장이었다고 합니다. 믿음이 없이도 의식(ritual)에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종교 의식은 우리의 믿음을 담는 그릇입니다. 믿음의 내용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진실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모든 것을 거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모르고 고향 친척 아비집을 떠났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의지했습니다. 나중에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을 때도 자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번성케 하고 만민의 조상으로 삼겠다고 하신 그 약속을 오직 그 아들을 통해서 이루시겠다고 하신 약속(창17:21)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장래를 걸었고, 자신의 유일한 희망인 아들 이삭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노아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여 120년 동안 산 위에서 방주를 지었습니다.
모세는 어떻습니까? 목숨을 내걸고 바로 왕 앞에 나아가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내 백성을 해방시키라신다."라고 할 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했습니다.
믿음이란 아무 것도 눈에 보이지 않고, 아무 것도 내 손에 잡히는 것이 없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고, 그 말씀에 우리의 모든 것, 인생을 거는 것입니다.
2. 거짓 신앙과 말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의 진리 가운데 설 때 신앙이 바로 섭니다. 말씀의 진리에 서 있지 않으면 신앙은 타락하며, 신앙이 타락하면 올바른 말씀이 사라집니다.
우리가 여러 차례 보았듯이 하나님이 심판을 경고하실 때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곧 이 백성이 '말씀을 떠났다.' 또는 '말씀을 버렸다'는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호세아 4:6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이러한 평가는 약 200년 후인 예레미야 6:1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또한 그로부터 약 600년 후의 바리새인을 향하신 예수님의 말씀 요한복음 5:46~47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하는 말씀들에 '율법을 잊었다', '법을 버렸다.' '글을 믿지 않는다.' 하는 표현으로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신앙이 타락하여 거짓된 신앙으로 빠지게 되면 하나님의 올바른 말씀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은 그것은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뜻입니다. 호세야 선지자 시대나 예레미야 시대나,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이나 율법을 줄줄 외우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무척 애썼습니다. 특별히 바리새인들은 조상들의 모든 과오를 성경으로부터 분명히 배워 율법을 배우고 지키는 것을 존재의미로 생각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들은 율법을 버렸고 믿지 않는 자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가, 곧 '율법을 버렸다.' '잊었다.' '믿지 않는다'는 말씀은 이론적으로 지식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았지만 그 말씀들이 실제적으로 그들의 삶에 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보다 다른 방법을 믿었으며, 말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들이 바라는 대로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지식적으로 이론적으로 따지면 호세야 시대, 예레미야 시대의 히브리인이나, 특별히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에 비하서 턱없이 부족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지식도 없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 성경 말씀도 열심히 배우지 않는데 알 수도 없지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지식조차 없으면서 하나님의 참 뜻을 알기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실재, 곧 삶에서는 어떻습니까? 비록 성경의 지식은 부족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훨씬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삶인가요?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과 예수님을 주님, Lord라고 부릅니다. 종이 주인을 부를 때 쓰는 말입니다. 곧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오니 명령하십시오. 따르겠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대로 행하지 않으면 죽거나 팔려갑니다. 종으로서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늘 듣습니까? 그 말씀을 따릅니까?
왜 예수 믿는 사람이 더 세상적이고 탐욕적이라는 평가를 듣습니까? 최근에 한국 감리교단 감독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시끄러운 분쟁이 있습니다. 회의장에서 고성이 오가고 몸싸움이 일어나고, 회의실을 잠그기도 하고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저마다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고, 내 방법이 하나님의 뜻 대로라고 주장만 하지 참으로 하나님 앞에 부서진 마음으로 진정 교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엎드려 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감리교회가 조롱거리가 되고, 개신교 전체가 웃음거리가 되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믿고 따르는 기독교 전체가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교회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모릅니까?
제가 해밀턴 있을 때 어떤 집사님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나라 참 좋다고. 바닷가에 가서 놀다가 한국에서 사온 비싼 썬글라스를 잃어버려 아까왔는데, 마침 집에 도둑이 들어 가재보험을 들어둔 게 있어 보험료를 청구할 때 끼워넣었더니 확인도 하지 않고 돈을 보상해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정직한 사람들의 행동의 결과로 오늘날 컨텐츠보험 클레임하는 절차가 엄청나게 까다로와졌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다움이 무엇입니까? 단지 교회 다닌다는 사실 빼고 삶에서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그밖에는 non-christian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면 우리가 무슨 낯으로 예수님 앞에 서겠습니다.
제가 잘났다고 누구를 비난하거나 깎아내리려는 말씀이 아님을 이해해 주십시오. 우리의 현주소를 함께 살펴보자는 말씀입니다. 돈 한 푼 손해보는 것과 예수님 앞에 떳떳한 것을 비교할 수 있습니까?
지난 월요일 우리 성도님들이 저희에게 귀중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제게 또한 갈등을 주었습니다. 성도님들의 그 갸륵하고 고마운 마음을 생각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나 아울러 이 말씀은 같이 나누고 싶었습니다. 비난이 아니라 함께 다짐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먼저 규칙을 지키십시다. 들키지 않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 규칙을 어기지 않는 마음을 먹는 것이 참된 은혜입니다.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주님의 이름을 위해 묵묵히 원칙과 기준을 지켜 나가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진정한 신앙과 말씀
진정한 신앙, 참된 신앙은 올바른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예수님께 찾아가서 예수님께 물어보고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시되, 당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와 목적 그대로 취하시고, 그 말씀을 자신의 생명으로 여기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반복해서 하시는 말씀은 "아버지께서 보여주시는 대로",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대로"입니다. 요한복음 12:50입니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말씀에 따르는 것은 부분적으로 취사선택해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분적으로 내 맘에 드는 부분만 사랑하고 나머지는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애의 모든 시간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이 부인에게 말하면서
"여보, 나는 당신도 사랑해"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그래도 한 달에 29일은 당신을 사랑하잖아."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한 달에 하루라도 "오직 당신만 사랑해."라고 해야 할 아내 이외의 여자에게 달려가는 것은 간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사랑하고, 돈도 사랑하고, 명예도 사랑하고, 권력도 사랑하고, 하나님과 동시에 사랑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사랑하는 이런 것들을 채워주시면 하나님도 사랑하고, 이런 것들을 채워주시지 않으면 하나님도 내버립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는 "주님 한 분 만으로 나는 만족해." 라고 하지만 만약 비자가 문제가 걸리고, 돈이 걸리고, 자식이 걸리면 어떻습니까? 그런 것 다 내 뜻대로 안되어도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십니까?
무화과 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이 내게 계심으로 인하여 기뻐하실 수 있으십니까?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리라
돈이나 명예나 권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귀중한 것,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신앙은 바른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내 앞에 놓인 어떤 선택이든지, 주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하며 따를 때, 비록 그것이 실수가 될지라도 하나님이 그 일 가운데서 일하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롬 8:28)
사람들은 흔히 그럽니다. "어떻게 말씀대로 살 수 있어? 그럴려면 목사가 되어야지." 성도들이 말씀대로 살도록 권면하고 독려하는 바른 목회자가 되지 않으면 목회자 자신도 그렇게 살려는 의지조차 갖지 못합니다. 목사는 목사대로 성도들을 바르게 인도하고, 성도들은 성도들대로 목사를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격려할 때, 공범이 아니라 참다운 길벗으로서 함께 하나님 나라로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목사만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목사를 포함한 모든 성도가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그리고 부분적인 순종은 불순종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완벽하게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내 맘대로 살면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라고 하는 것은 가증된 일입니다. 진정으로 주 뜻대로 살고자 애쓰면서 실패하고 넘어질 때, "아! 내 힘으로 안되는 구나. 나는 정말 죄인이야. 주여 도와 주소서! 내가 이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구나. 주여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신명기 30:11, 14입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마태복음 11:29~30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맺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떼어내어 스스로의 힘으로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자식입니까? 내 자존심입니까? 그걸 붙들고 예수 믿으려고 하니 얼마나 신앙생활이 고달픈지 모릅니다. 그런 것 다 내려놓으십시다. 오직 예수님의 멍에를 매십시다. 쉽고 가벼운 예수님의 멍에, 힘들고 어려운 것은 예수님이 감당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단순하게 예수님이 가자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 가시면 우리도 가고 예수님이 서시면 우리도 서고. 예수를 믿으십시다. 하나님을 믿으십시다. 하나님을 믿고 구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집니다.
우리 길벗교회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말씀대로 사는 것으로 우리를 차별화시키십시다. 거룩하게 구별하십시다. 세상 사람들과 차별화시키고, 교회다니는 것 빼고는 세상사람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그런 그냥 명목으로만 크리스찬인 사람들과 차별화시키십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움을 지키십시다. 세상에 대한 욕심 내려놓고 주님만 바라보면, 지금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초조하게 만들며, 지금 나를 견딜 수 없이 화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환경이나 조건들에 나의 인생을 내주지 마십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가운데,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우리 주님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삶 안에 거하여,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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