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통주의(neo-orthodoxy) 20세기 초반 수십여년 동안 서구 문화의 위기로 인하여 종교적 자유주의가 처하게 된 곤경은 흔히 바르트주의라고 불리는 신학적 르네상스를 위한 하나의 기회였음이 입증되었다. 이 바르트주의라는 명칭이 때때로 이 신학적 르네상스 운동에 주어지게 된 이유는 이 운동에로의 최초의 발발이 한 젊은 스위스 목사였던 바르트에 의하여 아주 극단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이 바르트는 과거에 독일의 자유주의 사상 안에서 철저히 훈련받았던 인물이었다. 최초로 출판된 바르트의 글은 상대주의의 문제와 씨름을 하는 것이었다.현대인은 더 이상 자기 자신 밖의 그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그는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리하여 설교자가 사람들에게 접근을 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율법을 적은 판은 설교자의 손으로부터 빠져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로마서에 관한 그의 주석 [Der Romerbrief]가 1919년에 최초로 나타나면서 그 이후 바르트는 종교적 자유주의에 대한 한 비평가요 신학의 고유한 주제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택하는 그런 한 신학의 투사로서 계속하여 왔다. 이러한 새로운 신학을 주도해 가는 대표자들 가운데 몇몇은 보다 neo(곧 '새로운 것'이라는 의미)적이고(틸리히와 니버가 그렇다), 그밖의 사람들은 보다 orthodox(곧 '정통적'이라는 의미)적이다(바르트와 브루너가 그렇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전체로 일관하여 자유주의적인 사람이 아무도 없고 또한 그 누구도 전체로 일관하여 정통적인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자유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신정통주의자들도 유신론자들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과는 달리 이 신정통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 위에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하였던 것처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절대적으로 질적인 차이가 있고, 그러므로 인간은 한 삼단론법의 결말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는 전혀 없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계시, 곧 하나님의 인격적인 '자기 계시'(self-dis-closure)이고, 이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구체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신학적인 방법에 관해서 이 신정통주의자들은 죄렌 키에르케고르에 의하여 뚜렷한 영향을 받았다. 이 키에르케고르는 덴마크 국교회의 생명력없는 정통주의에 반대하여 싸웠고 각 개인으로 하여금 진리에 대한 열정적 참여(passionate commitment)를 촉구하였다. 이러한 열정적 참여는 그 개인의 실존의 바로 그 형태를 변화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실존주의라는 용어가 나왔다. 이러한 실존적 진리는 한 신조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이러한 실존적 진리는 하나의 합리적 형태를 갖추어 정신이 그것을 이해 포착할 수 있도록 꾸며진 신앙의 명제들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명제화된 진리(과학상에 있어서는 이 명제화된 진리가 유일한 진리의 종류이고, 여기에서 이성은 그 자체의 고유한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한 신자의 지식을 증가시킨다. 그러나 이 진리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둔다. 그러는 반면에 실존적 진리는 개인을 구체적으로 지금 바로 여기의(here-and-now) '삶의 자리'(Sitz im Leben) 속에서 변화시킨다. 형식에 치우친 정통주의와 무감각한 자유주의에 대한 하나의 해독제로서 이 실존적 진리에 대한 강조는 아주 이로운 것이었다. 최상의 프로테스탄트 전통은 종교개혁자들이 fides historica라고 부르던 것, 즉 기독교의 진리에 대하여 단순히 지적으로만 승인하는 것과 그리고 비교종교학적 접근의 학문적인 중립성, 이 모두에 대해 항상 비난하여 왔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쪽에서의 강조는,흔히 교의와 신조들을 단순히 성경적 진리들을 희랍적이며 합리적인 사고의 틀안에 억지로 집어 넣은 것이라고 격하시켜 생각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하여 기껏해야 모든 신조들과 모든 신학서적들(여기에는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에 의하여 쓰여진 책들도 포함된다)은 글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명제화하려는,즉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려는 것밖에는 안된다. 바로 이 점이 왜 모든 신학이 그 자체가 역설들로 가득차 있는가라는 이유인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신정통주의 신학에 대해 역설의 신학 아마도 다가오는 신학적 진리에 대한 이실존적 방법이 인간의 타락에 관한 교리에서보다 더욱 뚜렷이 드러나는 곳은 없을 것이다. 한길 또는 다른 길을 통하여 신정통주의자들은 예수에 대한 자유주의적 해석을 내리면서 또한 그들은 인간에 대한 자유주의적 견해도 포기하였다. 물론 이 점은 부득이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 대한 성경적 증언을 생각하고도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그 어떤 진정한 시도도 반드시 그와 함께 인간을 죄인으로서 보는 성경적 증언을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경건한 신앙을 가진 사상가들의 경우에 있어 그들로 하여금 인간이 필연적으로 진보하게 되어 있다는 이론은 하나의 천박한 낙관주의요 또 무책임한 자만심이라는 결론으로 이끌어 간 것은 사물에 대한 논리라기보다는 인간의 체험과 인간의 역사였다. 유럽대륙에 있어서 제1차 세계대전은 인간의 선에 대한 천부적 능력들에 관하여 비관적 견해를 조장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심지어는 전쟁의 위기가 보다 덜 예리하게 느껴졌고 또 보다 덜 날카롭게 진단되어졌던 미국 내에서조차도 라인홀드 니버는 성경적인 원죄 교리에로 되돌아갈 것을 주창하여 1920년 말에 '시대를 위한 소책자들'(tracts for the times)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 신정통주의 사상가들이 믿기에 이른 것은, 창세기에 나와 있는 인간 타락의 설명이 왜 뱀은 다리가 없을까, 왜 잡초들이 자라날까, 왜 사람들은 옷을 입을까 하는 등의 이유들을 설명하기 위한 원시적인 이야기들의 한 합성물에 불과하다는 가정을 하고 있는 자유주의적 견해가 무미건조하고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비록 타락이 더 이상 한 역사적 사실로서 생각되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이 타락은 인간 본성 안에 감추어져 있는 악성(flaws)을 고의적으로 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필요한 관련성이 있다. 물론 바울-아우구스티누스-칼빈주의적 전통 안에서는 타락의 교리는 경험적인 차원 위에서의 한 사건임을 늘 암시하여 왔다. 신정통주의자들은 이러한 경험적 형태의 타락 교리는 과학과 충돌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충돌은 단지 유감스러운 결말만을 보게 된다(바르트는 성경의 원시 역사<창 1-11장>와 경험적인 사실의 관계성이라는 이 전체 문제에 대해 모호하게 그 의미를 전문화하였다-그러나 바르트의 이름을 딴 신학운동<소위 바르트주의>전체가 다 이런 것은 아니다-네덜란드에서 바르트는 정말로 에덴동산에서 뱀이 말을 했다고 믿는가라는 질문을 당했을 때, 그는 뱀이 말한 것이 무엇인지를 주의해 보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라고 답변하였다. 부루너는 바르트의 이런 태도 특히 네델란드에 있어서의 바르트의 이런 태도를 피할 수 없는 질문을 피하는 것이라고 일컬었다). 인간의 죄성을 중요시하는 신학이라면 어떤 신학이든지 물론 당연히 그리스도의 죽음을 단순한 한 역사적인 사실 이상으로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종교사학파의 역사 안에서는, 선한 양심을 가지고 되풀이해서 암송할 수 있었던 사도신경의 한 부분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한 지"라고 고백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신정통주의자들에게 있어 신앙고백을 이 부분만 한다는 것, 즉 예수가 자기의 시야를 넘은 상황들의 한 희생물에 불과하고, 한 선한 목적을 위해 고상한 순교를 한 순교자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유주의가 그들의 '역사적 예수'를 향한 탐구 속에서 무심코 드러낸 그 똑같은 깊이의 결여를 보여주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예수를 단순히 하나의 예언자로서만 여긴다면, 또 만일 우리가 예수의 생애를 시간과 공간 상의 연속체(time-space continuum) 내의 한 사건으로 축소시킨다면, 그렇게 되면 자연히 예수의 죽음은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던 것과 똑같은 범주 안에 위치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익명의'(incognito) 그리스도의 베일을 꿰뚫어 보는 그런 신앙, 인간적인 인격을 넘어 신적인 인격에까지 도달하여 보는 그런 신앙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죄.죽음.악에 대해서 승리하시는 것까지 감지한다. 그리고 이런 신앙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다"(고전 5:19)는 사실을 고백한다. 세계 갱신을 기대하던 진화론적 낙관주의(곧 "기독교적 아메리카주의 신정통주의 안에서 작용하는 실존적인 동기를 잘 나타내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렇게 중요한 발전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러나 또 다르게 재미있는 것은 신정통주의자들의 지도자들 중 몇몇, 특히 바르트 같은 신학자들이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을 '시간과 영원의 교차로' 위에 위치시키고(키에르케고르) 그리고 진리에 대한 열정적인 귀속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그런 신학 안에서는 대리인이 행하는 세례 서약의 이론적 설명이 어려워진다.바르트는 성례전 뒤에 숨어 있는 신학에 대해 공개적인 도전을 한 최초의 인물로서-그는 교회의 풍습(practice)에 대해 무엇이라고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현명하게도 그것을 직접 행하는 당사자들에게 맡겨버렸다-한 사람이 세례에 의하여 들어가게 되는 관계성을 인격적으로 수용하는 것의 이런 면에서의 필요성을 계속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밖의 사람들은(브루너) 사도들이 오늘날 행하고 있는 교회의 관습에 대하여 뭐라고 말씀하실까 라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임을 시인하고 있다. 한편 이에 대한 완강한 반대들이 쿨만(Cullmann) 같은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 운동 내에서도 생겨났다. 그리고 교회의 풍습을 조사 연구하는 특별위원회들이 몇몇 교단에 의해서 후원을 받게 되었다. 프랑스 교회개혁 위원회는 그 연구 결론에서 바르트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고, 한편 스코틀랜드 장로 교회는 바르트의 견해들에 반대하는 반작용을 꽤 강력하게 펼쳤다. 신정통주의 안에서 인간이 죄인이라는 교리는 이 신정통주의 신학 안에서의 실존적 방법론을 잘 드러내주는 것으로서만이 아니라, 이 신정통주의 운동 내에서의 하나의 분수계로서도 의미가 깊다. 이 분수계로부터 두개의 서로 다른 흐름의 강조점들이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내재라는 자유주의적 낙타가 자신의 진영에 코를 들이밀까봐 겁을 집어먹고는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 사이에 무한한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고 강조하는 경향을 띠었다. 그리고 그는 브루너가 하나의 자연신학으로서 발달해가는 것을 조금 의심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더욱 경계하는 빛을 띠어 갔다. 성령은 성령 자신이 창출하는 그런 접촉점 말고는 복음을 위한 어떤 다른 접촉점(point of contact,Anknuepfungspunkt)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브루너.니버 및 그밖의 신학자들은 바르트의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론에 대해 같이 참여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점을 주장하였다. 즉 타락한 인간은 아직도 어느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의 사랑의 진정한 정의인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역사 안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은, 비록 그것이 역사를 초월해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은총은 그 현재의 역사적 및 사회적 형태들과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신학자들은 우리 시대의 다른 그 누구보다도 이 현재의 악한 세계 내에 가능한 한 최고의 상대적인 정의를 구해야 하는 우리 기독교인의 의무에 종사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심각히 씨름하여 왔다.이러한 행위 가운데에서 이들은 인류학.심리학.사회학.역사학으로부터 추출된 통찰들과 성경의 가르침들을 연결해 보려는 노력을 하여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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