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131117(추수감사주일 한영혼사랑예배)
눅 16:19-31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영원을 두고 볼 때 인간 생명이 너무나 보잘 것 없음을 탄식하고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시 90:) 『[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인간 삶의 허무맹랑함, 너무나 허무함을 뼈저리게 노래한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인생의 일생의 허무함을 이처럼 뼈저리게 탄식한 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오늘날 과연 모세처럼 인생허무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죽음의 절망을 사색하며 그 바탕 위에 현실의 삶에 임하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느냐는 것입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은 절망적인 존재인데 자기가 절망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그것이 더 큰 절망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실존은 실상은 절망입니다. 자기가 절망이라는 것을 알지 못 하는 것이 더 큰 절망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는 바로 이런 삶을 잘 보여주는 실례로서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한 동네에 큰 부자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옛날에 자색 옷을 입는 사람들은 다 관리입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부자는 굉장한 권력이 있어 권력으로 치부한 것 같습니다. 고운 베옷은 호사스러운 사람이 입는 것입니다. 권력이 있어 좋은 베옷을 입고 날마다 주연을 펼치고 연락했습니다. 그는 한 평생 충분히 살아갈 넉넉한 돈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죽을 것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 해서 풍류를 즐기며 날마다 주지육림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부자는 영생에 대한 것이라든지 죽음에 대한 것은 전혀 마음속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자가 오늘날 우리가 볼 때는 현대에 사는 무신론자, 인본주의자, 소위 말하는 황금만능주의자들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사실, 본문의 전후문맥에 입각하여 볼 때, 여기의 부자는 바리새인들처럼 스스로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확신하며 살아가던 자칭 신앙인이었다는 것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영원에 대한 것, 하나님과 죽음과 저 영생에 대한 것에 그리 큰 관심들이 없는 듯합니다. 이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모이면 세계 경제 동향에 대해서 신경을 쏟고 있습니다.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이냐, 오늘 주가지수가 얼마가 올라갔다가 얼마가 떨어졌다, 뉴욕 증시가 어떠며 런던이 어떠며 일본이 어떻다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환율변동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엔화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달러가 비싸졌다 낮아졌다, 한국의 원화가 어떻게 되었냐... 그래서 환율 변동에 따라서 울고 웃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이 모이면 이러한 세계의 경제 동향이나 환율 동향, 주식 시장의 주가 변동에 관해서 무시무시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에서 일로일희(한번 노하고 한번 웃는다)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뿐 아니라 사람들은 모이면 이 세상의 국내외 정치 흐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대권에 여당에서는 누가 나올 것이냐, 누구누구일 것이냐, 야당은 누가 나올 것이냐, 어느 누가 또 손을 잡을 것이냐... 끝없는 추측에서 끝없는 흥미를 가지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어떻다든지, 중국의 최고 권력자 시진핑 주석이 어떻다든지, 뭐 이런 여러 가지 세계 정치에 대한 관심은 있으나 영원에 대한 문제는 추호도 말하지 않습니다. 혹은 문학을 말하고 예술을 말하고 혹은 음악을 말하고 더구나 요새는 레저 시대라 축구 경기가 어떻게 되었다, 야구 경기가 어떻게 되었다, 겨울철에는 스키 경기가 어떻게 된다, 그런 경기에 대한 이야기에 사람들은 흥미가 있고 그런 뉴스를 바라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하늘나라나 영적인 일에는 전혀 취미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마치 이 부자가 자색 옷을 입고 좋은 베옷을 입고 날마다 주지육림 속에서 연락하면서도 영원에 대한 것은 전혀 관심이 없는 그러한 삶과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세계는 배금주의, 다원주의, 인간성 상실, 뉴에이지 사상과 문화 이런 것 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성경 야고보서 5장 5절에 보면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바로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합니다. 죽음 저 건너편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흥미도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현실에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옛날의 그 부자나 오늘날 소위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과 똑같은 것입니다.
옛날의 그 부자는 오늘날 중산층 정도의 생활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그는 큰 부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대다수의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의 관심사는 물질적인 것에만 있지 영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에 보니까 거지 나사로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부자의 대문가에 거지 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온 몸에 헌데를 가지고 있었고, 전혀 스스로 살아갈 힘이 없습니다. 대문가에 앉아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데 사람들은 이 거지를 전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상대하지도 않고 함께 이야기도 안 합니다. 그러므로 개들이 와서 그와 함께 있고 그와 함께 자고 개들이 헌데를 핥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거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거지는 어떻게 된 일인지 이 세상에 부모 형제 처자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 공명도 물질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 거지 나사로가 한때는 큰 재산가였는지도 모릅니다. 큰집을 짓고 많은 종들을 거느리고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얻어먹으려면 부잣집 대문가에 있어야 한다고 알고 과거의 자기 경험대로 그 부자집 대문가에 와서 쭈그리고 앉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사로는 한때 정치적인 큰 영향력을 미친 훌륭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 거지가 되어 있다고 해서 그가 태어날 때부터 거지며, 태어날 때부터 비참한 인간이라고만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거지 나사로는 한때 스포츠맨이나 연예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과거가 어찌되었든지 상관없이, 그의 현실은 병든 거지였습니다. 그는 현재 있을 곳도 없습니다. 그는 현재 물질의 거짓됨을 뼈저리게 느끼고 깨닫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현대에도 이런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현대 생활에서는 하루아침에 부자가 될 수도 있고 하루아침에 거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증권 투자했다가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되는가 하면, 하루아침에 완전히 빈손 든 거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회사가 부도가 나면 하루아침에 거지보다도 더 못하게 비참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사회의 부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이 거지 나사로는 이 세상의 부귀영화 공명이라는 것이 다 물거품 같다는 것, 물질적인 부요와 풍요도 한 순간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유물주의적인 것, 인본주의적인 것, 물질적인 것이 얼마나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하고 나니 ‘인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 이제 그러한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인간의 삶의 진실이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왜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런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처지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의 이 부자는 지금도 세상 부귀영화 공명에 취해서 이 세상의 지나갈 것을 부여잡고 그 거품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사는데 반해, 이제 이 거지는 이 세상의 모든 거품이 다 사라지고, 부귀영화 공명이 다 사라지고 인간의 절대적 허무에 부딪혔기에 이제는 인간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찾는 그런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 부자는 아직까지 정신 차리지 못 하고 하나님을 모르지만, 이 거지는 이제야말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자기의 영원한 삶의 목표, 영원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그러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하나님은 나의 도우심”이라고 하는 “나사로”라고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자고 깨고, 자고 깨고, 열심히 일하고 살고 있지만 현실의 너울이 벗겨지는 날이 신속히 다가옵니다. 잘했다 못했다를 다 떠나서 현재 무덤 속에 있는 저명인사들을 보십시오. 한때 5.16 혁명을 일으켜서 한국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나 그 부인 육영수여사를 보십시오. 그들은 비운에 갔고 무덤 속에 들어간 다음에 아무 소리도 없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도 떨어뜨릴 것 같았던 그 권력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온데간데 없습니다. 그 이름조차 이제 서서히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나름대로 열심히 정치한다고 하였지만 지금은 어디에 가 있습니까? 한 때 대통령의 위치에서 천하를 호령한고 하시던 분들이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날 그들이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이제는 그 이름들조차도 서서히 잊혀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니라! 내일 일을 자랑치 마라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느니라.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나니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현실의 너울을 벗겨버리면 인간은 너무나 적막한 상황 속에 처해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거짓된 너울도 벗겨질 날이 곧 다가오는 것입니다.
(잠 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그러므로 여러분의 개인 개인의 너울도 다 벗겨질 날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거지가 죽는 날에는 세상이 그를 버리고 그도 세상을 버린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부자가 죽던 날에 부자는 빼앗긴 영화를 무덤에까지 가져가려고 화려하게 상여를 꾸미고 수많은 조객들이 줄을 서고 휘장을 날리고 만기를 날리면서 그들은 무덤을 향해 가서 장엄하게 의식을 집행하고 무덤을 파고 무덤 주위를 장식했겠지만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 화려한 장례식, 그 힘찬 발구덩이 그의 허물까지도 덮을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미남 거부로 휴즈 항공회사를 설립하고 ABC방송사를 운영하며 할리우드에 영향력을 나타내 세계적으로 유명하였던 하워드 휴즈! 그는 결국 정신병에 걸려서 그 많은 재산을 두고 머리를 허리까지 내려오도록 철렁거리고 손톱이 매의 발톱처럼 나오게 하고 병균을 겁내서 그는 사람들을 피해 있었고, 오직 수프만 먹다가 뼈만 앙상해서 죽었다고 합니다. 그가 죽고 나니까 그를 위해서 울어줄 처자 한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수없이 많은 여자를 바꾸고 지나갔지만 아무 여자도 그를 위해서, “아이고, 여보!” 하고 울어줄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당신이 부자되기를 원하면,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이 하는 대로 따라 하라.”는 말을 하였던, 석유왕 폴 게이트! 그도 헤아릴 수 없는 큰 부자가 되었지만 그가 영국에 있을 때 신문기자가 “폴 게이트씨 당신은 행복했습니까?”하고 물으니까, “행복이 어디 있느냐?” 소리를 버럭 질렀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큰 부자였지만 그는 행복이란 두 글자는 취하지 못 했습니다.
부귀영화 공명으로 인생의 자랑을 삼고 그것이 인생의 가치인 줄 알고 그 안에서 안주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너무나 처참한 비극을 발견하게 된다는 이야기들입니다.
왜입니까? 물질 자체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고, 죽음 저 건너편까지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잠 23:4-6) 『[4]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6]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지어다』
한평생 있을 곳을 얻기 위해서 몸부림과 발버둥을 치고, 있을 곳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발버둥치지만 종국에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빈손으로 떠나게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공수래공수거인생이라는 말이 나왔지 않습니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기술연수, 유학,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있을 곳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돈벌이, 더 좋은 지위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런 것들을 얻은 사람은 그런 것들을 뺏길까 싶어서 몸부림치고 안 뺏기려고 애를 씁니다. 또 다가오는 사람은 그것을 빼앗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영원히 이 땅에 있을 곳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다 내놓아야 합니다. 다 뺏깁니다. 그러고 난 다음 최후에는 마지막 있을 곳인 육신의 장막집도 뺏기고 맙니다. 인간은 결국 있을 곳이 없는 나그네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망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마라 하나님을 믿으라.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14:1-2)한 것은 있을 곳이 없어 방황하는 사람들에 대한 최후의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아무리 이 세상에 있을 곳을 찾아도 결국에는 이 세상 있을 곳에서 쫓겨난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사회적인 지위에서 쫓겨나고, 마지막 네가 몸담은 집에서도 쫓겨나고, 네 육신의 장막집에서도 쫓겨나고, 너는 있을 곳을 잃어버린 가장 처절한 고독한 버림받은 사람이 되고 만다. 오직 네가 영원히 있을 곳이란 하나님께서 너를 위하여 예비해 두신 영원한 하늘나라의 집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자가 이 땅에 부귀영화 공명으로 짧은 세월동안에 잠시 있을 곳을 얻었다고 생각해도 그 있을 곳은 영원한 것이 못 되고 그가 호화롭게 무덤을 장식하고 그곳에 있으려고 해도 그곳은 구더기가 다 파먹고 그곳에 영원히 있을 곳은 없는 것입니다.
자! 부자와 나사로가 인생을 졸업하고 영원한 세계를 만났을 때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경에 보니까 부자가 만난 영원한 세계는 음부 속에 들어가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한다고 했습니다. 부자가 죽어서 그냥 무덤 속에 들어가고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랬으면 차라리 편하지요. 그러나 부자는 죽어 음부에 내려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음부라는 곳은 마지막 심판인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내려가기 전에 갇혀있는 미결수 감옥입니다. 그 미결수 감옥인 음부만 하더라도 불꽃이 타고 괴롭습니다. 나중에 심판을 받고 마귀와 그 사자와 함께 들어갈 곳은 영원히 무섭게 불타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심판 받기 전에 미결수들이 들어가 있는 그러한 감방인데도 음부는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이 부자가 간 곳은 바로 그 음부였습니다. 그는 전혀 죽음 저 건너편에 무관심하고 죽음이 자기에게 다가오지 못 할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죽음은 순식간에 다가와서 그를 잡아서 음부로 데려갔습니다. 세상에 있던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버림받고 마는 것입니다. 그는 음부에 들어가서 불꽃 중에 괴로워하고 고통하고 그리고 바라보니 저 건너편에 아브라함의 품에 나사로가 안겨 호화스럽게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중에 괴로워하나이다.” 여러분 얼마나 뜨겁고 고통스럽기에 물 한 방울을 원합니까? 옛날에 세상에서는 흔하디 흔한 것이 물이었는데 이제는 그 물 한 방울이 없어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물 한 방울로 내 혀를 서늘하게 해주소서. 여러분 음부에 내려가면 아무 느낌도 아무 감각도 없을 것이라 하는데 어림없습니다. 이 부자는 음부에 들어가서 그 불꽃 속에서 괴로워했습니다. 영과 마음과 그 몸 전체가 괴로워했습니다. 감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 예리한 감각을 가지고 더 예민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음부에 내려가면 아무 것도 모를 것이라 했는데 그는 분명히 아브라함도 알아보고 나사로도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이해력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기억력도 가지고 있으며 모든 감각도 그대로 다 느낍니다.
사람이 죽고 나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 했는데 천만에요. 육신을 가지고 있을 때보다 더 예리한 영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아브라함이 뭐라 했습니까? “오냐! 나사로를 보내서 물 한 방울 주마”, 그렇게 말했습니까? 아닙니다. 그곳에서는 끝없는 절망밖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히 버림받은 처소이기 때문에 그의 탄원과 기도는 응답 받지 못 했습니다. 너는 세상에 있을 때 잘 살고 너는 영적인 문제에 무관심했지 않은가? 그래서 너는 오늘날 불꽃 가운데 떨어져서 고생하고 있지 않으냐? 유비무환이라고 했는데 네 죽음이 다가올 때 네가 준비하지 않았잖느냐? 그러므로 넌 불꽃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또 너와 나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어서 내가 건너가지도 못 하고 네가 여기 건너오지도 못 한다고 했습니다.
부자가 “그러면 저 세상에 내 형제 다섯이 있는데...” 보십시오. 죽고 난 다음에도 이 세상 기억이 그대로 있습니다. “저 세상에 내 형제 다섯이 있는데, 나사로를 부활시켜 보내서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음부에 들어간 사람은 완전히 버림 받은 것이요 희망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기도와 간구도 거부됩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그들에게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고 했습니다. 부자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라고 했지만,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 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는 말만 듣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비록 죽은 자가 살아나서 말을 해도 안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결국 부자의 최후의 간구도 거부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음부에 내려간 사람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있었던 부모 형제의 인연을 그대로 알고 있음을 이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영원을 만난 부자는 완전히 영원한 절망이요, 영원히 버림받은 처소입니다. 영원한 불구덩이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지는 어떻게 됐습니까? 거지는 이 세상 살 동안에 물질을 다 잃어버린 거지로 살았기 때문에 이미 세상에 대한 소망을 끊었으므로 그는 거기에서 인생의 진실성을 찾았습니다.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 거기에서 그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비록 그가 개하고 같이 자고 헌데를 가지고 있고 부자의 떨어진 밥상에서 부스러기를 먹었지만, 그러나 그 영혼은 한없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그는 마음을 준비했었습니다. 그 육체가 그를 내어 쫓는 날에 그는 사람들이 거적더미에 둘둘 말아서 공동묘지에 내던져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몸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니 거기에 좋은 관을 만들어서 깊은 무덤 속에 들어가나 그냥 땅에 던져버리나 흙은 똑같은 흙입니다. 그 속에 살던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 육체 속에 살던 나사로는 그 육체를 떠나자 천사들이 그를 받들어서 낙원 아브라함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제는 모든 염려 고통 근심을 다 버렸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염려도 없습니다.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도 없습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이 예비한 낙원, 오직 영육간의 즐거움이 꽉 들어찼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꽉 들어차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 꽉 들어찬 곳이었습니다. 너무나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이 거지는 자기가 세상에 살 동안에 당한 모든 시련을 꿈같이 잊어버렸습니다. 나날이 그는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새로웠습니다. 하늘나라가 놀라운 것은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이라고... 새것이라고 말한 것은, 새것은 피곤하지 않습니다. 낡은 것은 지쳐버리지만 새것은 피곤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새것입니다. 세월이 지나가도 새롭고 또 새롭고. 끝없는 새로움만 있는 곳에서 끝없는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시 16:9-11)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그저 기쁨이 충만하고 즐거움이 넘치는 그 속에서 나사로는 즐거워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 그들은 이 땅에서는 너무나 차이가 있었지만 저 세상 영원을 맞았을 때는 끝없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은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마음속에 현실과 물질만 있고 영원에 대한 관심사는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전도서에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며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을 참으로 잘 사는 사람은 죽음의 벼랑 밑을 깊이 내려가 본 후에 마음속에 죽음의 준비를 하고 난 다음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이 세상을 살아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죽음의 심연을 들여다보지 않고 사는 사람은 이 땅에서도 올바르게 살지 못 합니다. 그러나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요 나는 조만간 죽는다는 그 현실을 깊이 인식하고 바라본 사람은 이 땅에 잠시 주어진 삶을 살 때라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경건하게 살고 마음을 다스리면서 살고 쓸데없는 세상의 탐욕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있을 곳이 있으면 거기서 만족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 부귀영화 공명을 추구하다가 영원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 하나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자기 목숨과 무엇과 바꾸겠습니까?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나사로처럼 “하나님은 나의 도우심입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다가 인생을 졸업하는 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갑시다. 절대로 지옥에는 들어가지 맙시다.
전 세계적으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미국의 게리우드 박사, 30년 동안이나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살았던 케빈 베스코니, 말도둑이었던 조지 래낙스, 6세 소년 알렉스 말라키, 로널드 레이건, 메리 백스터여사, 4시간동안 죽었다 살아난 멕시코의 티오네즈, 말라리아로 죽어 화장하지 직전에 다시 살아난 미얀마의 불교승려 파울루, 콜럼비아의 일곱 청년, 스페인의 17세 소녀 제리퍼 페레즈, 칠레의 연구공무원이었던 리카르도, 아프리카의 다니엘 에큐츄크, 에콰도르의 안젤리카 잠브라노, 우리나라의 박용규목사, 염태영어린이, 김웅삼씨, 박영문씨 등등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고 돌아와서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런 분들 중의 한 분을 소개할까 합니다.
2007년 1월, 천국과 지옥을 다녀오신 故 김수용(66세)할아버지를 소개합니다.
서북시립병원에서 1월 2일에 혼수상태에 들어가신 후 1월 4일에 깨어나셨습니다.
혼수상태에 있을 때 의사는 살 가망이 거의 없다고 단정하였습니다.
그러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시자 지옥과 천국을 다녀왔다며 간증하였습니다.
이분은 그 전에 잠시 교회에 다니신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 수년 동안은 가족 (아내와 3딸)을 매우 힘들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혼수상태에 깨어나신 후,
가족들에게 잘못을 구함으로 가족 간에 화해가 일어났습니다.
2007년 1월 28일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24일간 병상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천국과 지옥은 있다고 간증하셨습니다.
이분을 자주 간호한 셋째 딸에 의하면,
이분은 “자기 힘만을 의지하며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셨던 분”이셨다고 합니다.
그러셨던 분이 혼수상태 가운데 천국과 지옥을 체험하시고 난후,
예수님을 진실하게 믿는 것만이 천국에 이르는 생명의 좁은 길임을
가족, 친족, 의료진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전에 아프시기 전까지 병원신세 한번 안 지실 정도로 건강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경찰공무원으로 일하시다가 정년퇴임 하셨고
그리고 건장하고 힘이 세신 분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임종하시기 전 며칠 간은 아침에 눈을 뜨면,
“하나님, 저 이제 천국가고 싶어요!”라고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임종하신 후에 이 분의 모습을 보았는데 매우 평안해하고 웃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세 딸들은 서로 각자가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님께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너무도 완고하셔서,
지옥보고 오지 않으면, 주님을 믿지 않을 것 같고 변화되지도 않을 것 같으니,
지옥보고 오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였었답니다.
그래서 아마도 이 세 딸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 같습니다.
이분은 지옥과 천국을 보고 와서 완전히 변하였습니다.
이 동영상은 2007년 1월 10일 본인의 허락을 받고 찍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동영상을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영상을 찍은 후 18일 후에 이분은 숨을 거두시고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지금부터 이 분의 간증을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 http://cafe.daum.net/gvlove0691/EnQA/90
(동영상 시청 후)
저는 이제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저는 차마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예수를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믿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독약이 든 컵을 놓고 “이것은 독약입니다. 먹든지 먹지 않든지 그것은 당신의 선택입니다.”라고 하는 것은 범죄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독약을 먹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멱살을 잡아서라도 머리채를 잡고라도 말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살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구원이 필요하기에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만이 여러분의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서라도 붙들어야 할 만큼 값지고 소중한 생명이십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리며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지금 이 시간이 주님을 영접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단 한 분도 주님이 내미시는 피 뭍은 손을 외면하거나 거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이 시간에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받은 백성이 되기 원하는 마음으로 우리 교회의 교우들이 찬양을 한 곡 부르겠습니다. 가사를 보시면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셨네 추악한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 흘리신 그 피로 나의 죄 눈같이 씻겼네.
<후렴> 당신도 오시오 예수님 품으로 그 모습 그대로 새로운 인생길로
2. 예전엔 어려운 일 많았었고 괴롬도 컸었습니다.
지금의 나의 맘속에는 기쁨이 넘치네 넘치네.
<후렴> 당신도 오시오 예수님 품으로 그 모습 그대로 새로운 인생길로
3. 당신은 무엇을 믿고 가나 무엇을 바라며 사는가?
고달픈 인생의 험한 길을 예수님 내 짐을 지셨다오.
<후렴> 당신도 오시오 예수님 품으로 그 모습 그대로 새로운 인생길로
4. 괴로운 인생길을 다 버리고 고통도 괴롬도 버리고
그 모습 그대로 오시오 예수님 그대 짐 지셨다오.
<후렴> 당신도 오시오 예수님 품으로 그 모습 그대로 새로운 인생길로
5. 당신도 이제는 알게 되리 예수님 그대 짐 지심을
기쁨이 넘쳐서 찬양하네 생명을 주신 주님께.
<후렴> 당신도 오시오 예수님 품으로 그 모습 그대로 새로운 인생길로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구원함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단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고통 가운데 살아가시거나 지옥의 백성이 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바라기는 다음의 기도를 한 분도 빠짐없이 다 같이 따라 하심으로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다 함께 기도 합시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저의 죄를 처리하심을 믿습니다. 지금 저의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저의 구주, 저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제 안에 오셔서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옵소서. 지금부터 천국에 이르기까지 저를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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