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자녀를 축복하라/창27:1-14

하나님아들 2014. 4. 4. 13:13

전 국무총리를 지낸 이수성 씨는 「사랑 만한 교육은 없다」라는 책에서 자기
어머니가 자기를 축복했던 경험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수성이는 지도력이 뛰어나서'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자
녀들은 반은 타고난 성품대로, 나머지 반은 부모님의 덕담으로 성장하는 것이
라고 생각하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성이 뿐만이 아닙니다. 어머니는 자
식들의 장점을 크게 부각시켜 지나가는 말처럼, 주술처럼 아이들의 뇌리에 박
히도록 심어주시곤 했습니다. 수억이는 어릴적부터 끈기 하나는 아무도 못 따
라갔어. 수인이는 목소리가 우렁차 나중에 한 몫 할거야. 수윤이는 머리가 비상
해서. 수전이는 꼼꼼하고 계산이 빨라서….
그 덕분인지 우리 형제들은 어머니의 덕담대로 풀린 것 같습니다. 수성이의 지
도력은 정치인이 된 지금도 탁월한 것으로 회자되고, 수인이는 형보다 먼저 정
치를 시작해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수윤이는 철학교수가 되었고, 수억이는 방송
국 편성국장이 되었습니다. 샘이 빠르고 꼼꼼한 수전이는 세계통화기금에 들어
가 30년 동안 세계경제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부모님의 끊임없는 덕담은 자식들의 울타리를 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스스
로의 장점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자신감으로 인생을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 되기
도 하는 것 같습니다."

자녀를 축복하는 것은 부모의 특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녀를 양육할
때, 축복함으로 기른다고 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는 것
이 그들에게는 가장 큰 행사였습니다. 그들은 어떤 특별한 일이 있어도 축복했
습니다. 전쟁에 나가게 되어도 축복했고, 사업을 시작해도 축복했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축복했습니다.
축복과 격려 속에 자란 사람이 큰 일을 합니다. 이스라엘은 2000년 동안 나라
가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지대한 공헌을 하거나 영향을 미친
사람들 중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받은 사람의 10%
이상이 유대인입니다. 미국이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 살고 있는 유대인의 인구
비율은 전체 미국 인구의 3%미만이지만, 전국 대학 교수의 30%가 유대인이라
고 합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많은 학자들은 유대인의 독특한 교육
방법에서 그 이유를 찾았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은 자녀를 축복하며,
격려하며 길렀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로 자라게 만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한국 교회에 잘못된 기복신앙에 대한 비판이
많이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창조 후에 제일 먼저 아담에게 복 주는 일부터 했
습니다.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후에도 하나님은 노아에게 복을 주어 '생육하
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시어
구속사를 시작할 때에도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라고 축
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주신 복이 계속 전수되고, 번져나가고, 발전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에게 복을 주어야합니다. 자녀를 축복으로 길러야 합니다. 그들에게
자주 축복기도를 해 주어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내용입니다. 이삭이 아들을 축복하는 얘기, 아버지 아브
라함으로부터 받았던 복을 다시 그 아들에게 전수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우리가 자녀들에게 축복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른데, 그 다른 점은
이삭의 축복은 일반적인 축복이 아니라 구속사를 이어갈 사람을 선택하는 문제
였습니다. 그러기에 두 아들을 다 축복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이삭이 당면한
문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약속의 계승자로 정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이삭보다
먼저 이스마엘이 있었지만, 그는 서자였습니다. 사라가 죽은 후에 후처 그두라
를 통해서 여섯 명의 아들을 더 낳았지만, 이삭의 경쟁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야곱과 에서 중에서 누굴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어갈 축복의 계
승자로 선택할 것인가는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쌍둥이라는
것입니다. 서열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형, 아우가 결정되었는데,
작은놈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 아이들을 잉태하고 있
을 때, 하나님께서 두 국민이 네 태 중에 있구나 하시면서 "두 민족이 네 복중
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
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회적인 법이나, 전통에 따르면 단 몇 분이라도 먼
저 에서가 우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당시 사회적인 통념이나 상식을 깨
뜨리고 반대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이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이삭에게 있어서
그것이 고민이고, 문제였습니다.
일단 우리가 이삭의 이런 고민을 전제로 하고 본문을 들여다 보아야합니다. 여
기서 이삭이 실수합니다. 판단을 잘못했어요. 방법도 옳지 않았습니다. 이삭만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리브가도 잘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판단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식구들 중에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잘못된 축복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족간에 모든 신뢰가 깨어졌습니
다. 형제가 원수가 되었습니다. 급기야 야곱은 멀리 외삼촌 집으로 피신해야했
습니다. 가족간에 생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리브가가 언제 죽었는지, 기록이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만, 성경에는 야곱이 다시 리브가를 만났다는 기
록이 없습니다. 이런 비극이 어디 있습니까? 잠깐 피한다고 떠났는데, 그 어머
니는 다시는 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습니까?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삭이 무엇을, 얼마
나, 어떻게 잘못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습니다.
야곱과 에서가 잉태되었을 때 하나님은 분명히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은 그것을 무시하고, 사회적인 관습을 따랐습니다. 하
나님의 뜻을 알고도 그것을 무시하면 어려움이 생깁니다. 사회적인 관습, 전통
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
야합니다. 항상 그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거기에 평화가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둘째는 편애입니다.
편애는 자녀의 인생을 망가뜨립니다. 형제간에 반목과 시기, 질투는 대부분 부
모의 편애 때문입니다. 야곱이 요셉을 편애하여 그에게만 채색 옷을 입혔더니
형들의 손에 의해서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형들은 요셉의 그 채
색 옷에 양의 피를 묻혀서 아버지에게 보여 주며, '이것이 요셉의 옷이 아닙니
까?' 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야곱의 편애가 하나는 불행으로, 다른 하나는 위선
과 거짓에 빠지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삭은 에서를 편애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했습니다. 경쟁적
으로 자기가 편애하는 아들이 축복의 계승자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 경쟁 속
에서 가족애가 무너지고, 형제 사랑은 간 곳 없어졌습니다.

셋째는 조급함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이삭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이삭은 자기가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빨리 축복의
계승자를 정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이 후에 몇 년을 더 살았는지 아
십니까? 최소로 잡아도 30년 내지 40년입니다. 최대로 잡으면 80년 더 살았다
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삭이 180세에 죽었습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챘다가 외삼촌 집에서 20년간
종살이를 하고 돌아 온 후에도 이삭이 죽지 않고 오래 동안, 약 10년 이상 더
살았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30년 정도는 더 살았습니다.
80년 더 살았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26장 34절에 있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기
록하고 있습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리에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
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에서가 결혼한 직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삭이 60세에 야곱과 에서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에서가 40세가 되었습니
다. 그러면 이삭의 나이는 100세입니다. 이 때 이런 일이 있었다면, 이삭은 이
일 후에도 80년을 더 산 것이 됩니다.
내가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던 사람이 이렇게 오래 살았습니다. 한마디로
이삭이 너무 서둘렀습니다. 좀더 지켜보면서 과연 누가 축복의 계승자가 될 수
있는지 살폈어야했습니다.
야곱과 에서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예언이 그들의 삶 속에서 이미 하나 둘씩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산 것이라든지, 에서
가 이방여인들과 결혼해서 그 부모의 근심이 되었다는 것이라든지. 이런 것은
축복의 계승자가 누구인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증거들이었습니다.
복 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지만, 가만히 보면 복 받을 사람은 복 받을 짓을
합니다. 아무리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는 행동이나 말을 보면, 이
사람이 복 받을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은 기다리면서 그것을
살폈어야하는데, 금방 죽을 줄 알고 기다리지 못하고 급하게 서둘다가 일을 어
렵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넷째는 별미를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별미 가져오면, 그것 먹고 축복하겠다' 고 했습니다.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먹는 것 타령만 하고 있습니다. 아직 식욕이 왕성하다는 뜻입니다. '실
컷 먹고 기분 좋게 축복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삭이 착각을 해도 크게 하고 있
습니다. 이삭의 축복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
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을 이어갈 약속의 계승자를 정하고, 그에게 축복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경건하게, 진지하게, 많이 기도하는 가운데 결정하고 축
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별미로 배를 채운 후에 하겠답니다. 귀중한
것을 너무 가볍게 여겼습니다.
성경에서 별미 먹고 축복하겠다는 사람은 이삭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야곱이
아들들을 축복할 때, 별미 먹고 축복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자기 아들들을 야
곱에게 데리고 왔을 때, 야곱이 별미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죽기 전
에 이스라엘의 12 지파를 축복하는데 별미 먹고 축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자기 후계자로 삼았는데, 별미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갑절의 영감을 달라고 쫓아오는 엘리사에게 별미를 요구하지 않았습
니다.
별미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도 너무 별미 좋아하면 안됩
니다. 가끔 어떤 부흥사들은 헌금하면, '별미 축복'을 한다고 말합니다. 엉터리입
니다. 이삭은 별미 좋아하다가 가정에 어려움을 만들었습니다. 형제간에 불화를
만들었고, 부모 자식간에 생이별하게 했습니다.

다섯째는 가족들 간에 합의가 없이 비밀리에 진행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제가 느끼는 것은 '이삭의 가정이 콩가루 같은 가정이다'
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고 에서를 약속의 계승자로 삼
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별미 만들어 오면 내가 그것을 먹고 마음껏 축복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소리를 리브가가 엿들었는데, 리브가는 이삭의 그러한 결정을 인정하지 않
았습니다.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장의 권위가 없습니다. 남편의 결정을 하
나도 존중하지 않습니다. 남편에게 뛰어 들어가 '지금은 축복할 때가 아니라'고
하던지, '그들을 잉태했을 때 받았던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하면서 에서가 아니
라 야곱에게 축복해야한다'고 설득하던지, 그래야 할 텐데 아무 얘기가 없습니
다. 가정에서 이미 대화가 끊긴지 오래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은 부부간에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텐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무시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처
리합니다. 아내도 질세라 남편을 대화하고 설득하려고 하지도 않고, 뒤에서 음
모와 계략을 꾸몄습니다.
이 가정의 비극 이미 예고되었던 것입니다. 한 순간의 잘못된 결정이 아닙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무엇인가 꼬여져 있고, 대화는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여섯째는 영적인 어두움입니다.
모든 문제, 모든 실수와 잘못의 원인이 영적인 어두움에 있었습니다. 이삭은 영
적인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우서
이삭은 매일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주는 그 아들에 대한 편애에 빠져
장자권을 팔아먹고, 이방여인들과 결혼하는 그 아들의 잘못이 얼마나 심각한지
를 깊이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워 죽을 때가 아직도 멀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급하게 서둘렀습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우니 육적인 별미
만 찾았습니다. 영적인 어두움은 가족들의 의견을 하나로 묶어 나갈 지혜도 어
둡게 했습니다. 그러니 가장의 권위도 떨어졌습니다. 아내에게 무시를 당하고,
아내의 계략에 속아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질서는 깨어졌고, 가족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에서는 분노로 치를 떨
었고, 야곱은 분노한 형을 피해 도망가는 도망자가 되어야만했습니다. 가족들은
생이별을 해야했고, 가족해체의 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눈이 어두워서 그랬습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육신의 눈을 의미합니다. 이삭은 노안으로 거의 실명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영안 마저 어두워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
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6:22-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
은 눈이 어두웠습니다. 그러니 온 몸이 어둡습니다. 영적인 눈도 어두웠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그릇 판단합니다. 행하는 것마다 잘못되었습니다. 가장의 눈
이 어두워지니 한 가정이 위기로 몰렸습니다. 모든 판단이 흐려지고, 권위는 상
실되고, 질서는 사라졌습니다. 이삭의 눈은 그 가정의 눈이었습니다. 이삭이 눈
이 어두워 그 가정의 모든 식구들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깊은 어둠 속을 헤매
게 되었습니다.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으면, 무엇보다도 눈이 밝아야합니다. 대통령의 눈이 밝
으면, 온 나라 백성들이 밝게 살지만, 대통령의 눈이 어두우면 온 백성이 어둠
속을 헤매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높은 자리에 설수록 눈이
밝아야합니다.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이 밝아야합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이끌었던 모세가 생각납니다. 신명기 34장에 보면, 모세가
죽을 때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
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34:7). 모
세에게는 영적인 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습니다. 하나
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눈이 있었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약속의 땅 가나안
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람 보는 눈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를 후계자로 세우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이끌고 갈 수
있을지를 알았습니다. 신명기 34장 9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눈
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했다' 이 말은 그를 후계자로 임명했다는 말입니다.
그에게 축복의 계승권을 주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 볼 줄 아는 영적인
안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이가 들수록 이런 영적인 눈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
랍니다. 어른이 될수록 이런 눈이 필요합니다. 지위가 높을수록 이런 눈으로 다
스려야합니다.

자녀를 축복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그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온 가
족이 기쁨과 감사한 마음으로 축복하고 축복을 받아야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축제가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이삭은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
하고, 편애하다가, 서둘렀습니다. 자기 입에 맞는 별미만 찾다가 가족간에 합의
도 도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쁨의 축제가 되어야할 축복의 장이 암투와
경쟁, 거짓과 분노의 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이런 잘못을 잘 알고 있었던 야곱은 나중에 그 아들들과 손자들을 축
복하는데 멋지게 합니다. 이때 야곱도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웠습니다. 창세기
48장 10절을 찾아보세요(77쪽).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
지 못하더라." 똑같이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야곱의 오른 손을
장자 므낫세 머리에 올리게 하고, 왼손을 차자 에브라임에게 올리게 했는데, 야
곱은 팔을 엇바꾸어 축복했습니다. 영적인 안목이 있어서 작은 자가 더 크게
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축복하세요. 장점을 보고 축복하세요.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축
복하세요.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이 축복한 대로 될 줄 믿습니다

출처 : 하늘농장(Heaven農場)
글쓴이 : 하늘일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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