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주님의 십자가

하나님아들 2014. 3. 28. 16:14

주님의 십자가

 

    마태복음 27장 22절 - 37절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 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호산나 찬송을 받으시면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한 날을 기념하여 이 종려 주일을 지킵니다.

십자가는 로마 시대의 극악한 죄수들을 사형시키는 하나의 사형 도구입니다.

십자가에 많은 사람들이 사형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는 때에도 두 사람이 같이 사형 당하는 것과 같이 십자가의 죽음은 흔한 일입니다.

마치 오늘날 미국에서는 약물 주사로 사형을 시키고 한국에서는 교수형, 중국에서는 총살형을 시키는 것과 같은 일반적인 사형 방법이지만, 특별히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은 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 죽으라는 극악한 사형 방법입니다.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한 사람의 가족은 동네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나서 다른 모르는 곳으로 가서 살아야 하는 가족까지 멸시와 천대를 받는 저주의 사형 법입니다.

오늘날에도 어느 기독교의 교파에서는 십자가를 교회에다 달지 않고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저주의 사형 틀이지 그것이 신성한 교회에 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자체를 섬기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십자가를 교회나 집안이나 목에 장식으로나 아무런 생각이 없이, 느낌이 없이 십자가를 달고 있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히려 십자가가 우상화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대신 죽으신 일을 생각하며 나도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딸아 가겠다는 마음을 갖기 위하여 십자가를 교회나 가정이나 자신의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1. 십자가는 죄인이 못박여 죽는 것.

    자고 이래로 사형을 당하는 사람은 죄인이 죽는 것입니다. 물론 죄가 없지만 억지로 죄를 만들어서 누명을 씌워 죽이는 일도 역시 그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사형을 시키고 사형을 당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을 사형시키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사형 판결을 받고 가장 흉악한 죄인이 받는 십자가의 사형을 당한가를 생각하여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지만 죄인이기 때문에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면 서도 십자가의 사형을 당하면서도 한번도 나는 억울하다 하신 일이 없으신 것은 바로 예수님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스스로의 죄를 지은 일이 없지만, 나의 죄와 여러분의 죄와 온 인류의 죄를 대신 담당한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땅히 십자가에 사형을 당하여야 합니다.

  제가 중학교 일 학년 때입니다. 어느 친구가 낙서를 하였습니다. 담임 선생이 와서 종례 시간에 누가 낙서를 했나 하고 나오라고 할 때에 아무도 안 나오니 단체 기압을 받습니다. 자기의 의자를 들고 서 있는 기압입니다. 얼마를 지내고 보니 팔도 아프고 웃읍기도하여 저는 속으로 소리 내지 않고 낄낄대고 웃었습니다.

“누가 웃어 나와”하여 의자를 내려놓고 담임 선생 앞으로 나갔습니다. 선생님이 대막대기로 나를 몇 차례를 때리고서는 단체 기압이 끝이 났습니다.

얼마 후에 어느 친구가 나를 부르더니 미안하다고 합니다. 뭐가 미안하냐고 물었더니 그날 기압 받을 때에 왜 네가 나갔냐고 말하면서 실은 내가 낙서를 했다 하면서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누가 그랬냐 나와” 하는 선생님의 말소리를 “누가 웃었나 나와‘로 내가 잘못 알아듣고 내가 나갔더니 학급을 대표하여 맞고서 단체 기압이 끝난 것입니다.

내가 잘못 알아듣고 대신 나가서 매를 맞으니 낙서를 한 친구의 죄가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실상은 죄가 없으시면서 대신 죄를 받음으로서 십자가에 죽으시었습니다.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를 그치게 하기 위하여 대신 죄를 당하시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하여 내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지 않고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 知的同意로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를 믿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 동의는 믿음이 아님으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또한 자기 확신을 믿음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믿음을 만들고 하나님을 만들어 믿는 사람도 역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희망을 믿음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역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내 대신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면서 죽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감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 감격이 있는 증거로는 행동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기 대신 죽어 준 사람에 대하여 감사와 보은의 행동이 없다면 이는 역시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지적 동의나 자기 확신이나 희망을 가진 사람이지 실제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자기와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함으로 믿음은 행함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이 믿어지고 그 은혜가 고마워서 나도 보답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 - 16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원의 가장 큰 기본이 예수를 믿는 것이요, 그 믿는 것은 예수님이 내 대신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 아기 예수의 탄생을 믿는 사람이 많아서 세계적으로 성탄절을 크게 잘 지킵니다.

병 고치는 예수를 잘 믿음으로 병이 들면 병고침을 받으려고 예수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귀신을 좇아 내고 떡을 나누어주는 예수를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러한 예수를 믿는 것은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십자가에 내 죄 대신 죽으신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만 믿어지면 이 사람은 누가 뭐라 하여도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려면 내 스스로 자기 확신을 가지고서는 안 믿어지고 지적 동의로도 안 믿어지고 희망으로도 안

믿어집니다.

믿어지는 때는 성령께서 나에게 은혜를 주어서 믿어지게 하는 역사가 일어 날 때에 이 사실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는 사람은 마음에서 울어 나오는 감사가 있고 사랑이 있고 이 사실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솔직히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기도를 하기를 바랍니다.

믿어지게 하여 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믿어지게 하여 주시고, 감사와 사랑을 깨닫게 하여 주시고 보은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2. 십자가는 자기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구원은 각 개인의 구원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8절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십자가는 각 개인의 십자가입니다. 주님의 지신 예수 십자가를 각 개인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요 목사가 믿어 그 교회에 속한 온 교인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이 믿어 온 가족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가족 각 사람이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신 길을 나도 내 십자가를 지고 믿음으로 골고다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십자가는 양쪽 앞뒤로 십자가에 달아 못 밖아 죽이지 않고 매 십자가마다 한사람씩 못박아 죽이듯 단체, 집단의 십자가는 없는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을 상징합니다. 내 십자가가 있어서 이 고통을 이겨내려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이것이 나의 십자가입니다. 이 일이 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하게 되고 내가 낮아지는 것이 바로 나의 십자가이고 이 십자가로 인하여 기도하고 겸손하여 지는 사람은 실상은 복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십자가가 없음으로 기도하지 않고 교만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면 이 사람은 불행한 미래를 당할 사람입니다.

더욱이 주님의 일을 하기 때문에 당하는 십자가의 고통은 더욱 영광스러운 미래가 보장되는 것임으로 십자가가

있음을 감사하고 기뻐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사람은 행복하고 성공한 사람 같지만 주님은 내게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시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일로 인하여 당하는 괴로움, 고통을 나의 십자가로 알고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겸손하여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개중에는 자기의 탐욕을 따르다가 당하는 괴로움이 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가 당하는 징벌입니다.

십자가는 아무런 죄가 없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서 당하는 고통이요 징벌은 자기의 욕심을 다라서 행하다가 당하는 고통임으로 구분을 잘 하고 자기의 욕심을 따라서 욕심부리다가 당하는 고난을 십자가라 생각하지 말고

이런 일을 당할 때에는 회개를 하여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당하는 괴로움을 당할 때에는 주님께 합당한 자가

되었음을 알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십자가는 피를 흘리며 고통 당하는 것입니다.

  요한 1서 1장 7절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십자가는 고통을 당하면서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오후 3시에 운명을 할 때까지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달려서 고통의 피를 흘리시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림으로 이 보배로운 피가 우리를 죄에서 씻는 속죄의 피가 된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소나 양을 제사장에게 데리고 가서 내가 이러한 죄를 지었음으로 죄사함을 받기를 원한다 말하고, 소나 양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자기의 죄를 말하게 하여 죄가 소나 양에게 전가되게 합니다.

안수는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소나 양이 그 사람의 죄를 전가 받게 되었으니 죄를 전가 받은

짐승이 대신 피를 흘리면서 죽어야 합니다. 목이 잘리고 피를 쏟으며 껍질을 벗기고 고기는 태우고 피는 제단 앞에 뿌리고 쏟고, 고기가 모두 불에 타서 연기가 되어 사라진 후에 그 사람의 죄가 사하여 집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내 대신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피를 흘리며 죽으셨습니다.

믿음은 바로 나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시키는 안수와도 같은 것입니다.

옛날에는 전화 줄이 있어야만 전화가 되지만 요사이는 전화 줄이 없이도 전화가 되는 “따그다”라고 중국 사람이 말하는 Hand Phone이 있습니다. 양이나 소가 안 죽으려고 소리를 지르며 버티지만 결국 사람 대신 죄를 짊어지고 죽게 되고 죄를 속하는 구약 시대의 속죄 법은 전화 줄이 있어야만 통화가 되는 전화와 같은 것이요, 전화 줄이 없어도 믿음의 줄로 통화가 되는 “따그다”와 같이 믿음으로 예수님이 내 죄를 전달받아 내 대신 제물이 되어 죽으신 것을 믿어야 이 사람이 예수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사람으로 의인이요 구원받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 양손과 발에 피를 흘림은 -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요 - 원죄와 알고 지은 고범죄.

2. 창에 찔리어 피를 흘림은 -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 모르고 지은 죄

3. 채찍에 맞아 흘린 피는 -

   우리의 나음 - 질병의 고침을 주기 위함.

4.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머리에서 흘린 피는 -

   우리의 저주를 속하심 - 생활의 축복을 주기 위함

5.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쏟으신 피는 -

   우리의 고민을 - 정신적인 고통을 덜어 주시기 위함

 

예수님은 이러한 목적으로 다섯 차례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도 나의 십자가를 짐으로 다른 사람에게 구원을 주어야 하고 용서를 주어야 하고 병고침을 주고 행복을 주고

고민을 덜어 주는 이러한 십자가의 사역을 하여야 합니다.

이제 가지는 나를 위하여 살았지만 이제 부터는 주님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당하는 어려움, 고통이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 욕심을 채우는 고통, 나의 가족을 위하여 당하는 고통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내 십자가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이 나의 십자가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당하는 어려움이 없는 자, 희생함이 없는 자는 십자가가 없는 자입니다.

 

4. 십자가는 조롱 당하는 곳입니다.

   마태복음 27장 39절- 4절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 옷을 벗겨지고 벌거벗은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 백성의 어른인 장로들,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아는 서기관, 제사장 등 심지어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강도까지 예수님을 조롱하고 욕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은 괴니 자기와 상관이 없으면서도 욕을 당하고 조롱을 당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왜 그런 어려운 일을 당하냐? 성령 받은 사람이 꼴좋다.

성령 받은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 어째서 병이 걸렸냐, 어째서 가난하냐 하면서 자기와 상관이 없어도 조롱합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잘 믿을수록 조롱을 더 당합니다.

열심히 새벽 기도회를 다닌 사람은 새벽 기도를 안 다닌 사람보다 더 조롱 받습니다.

매일 새벽 기도회에 다니더니 그 모양이냐고 하면서 매사에 시비를 걸어옵니다.  새벽 기도회에 가다가 자동차에 치어 죽은 사람은 그냥 술 먹으러 가다가 자동차에 치어 죽은 사람보다 더 조롱을 당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을 동정하지 않고 조롱하는 것이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적당히 믿을 때에는 별스런 시험이 안 오다가도 예수를 잘 믿을 때에는 여러 가지 시험, 박해가 다가옵니다.

이러한 일을 당하면 내가 정말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 가는 사람임을 알고 더욱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마귀는 예수를 잘 믿는 사람과 적당히 믿는 나일론 신자를 잘 알기 때문에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을 삼키려고 달려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잘 믿고 십자가를 지면 그만큼 많은 사람으로부터 박해와 희롱과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알고 더욱 예수 십자가를 담대히 지고 끝까지 예수를 딸아 가야 할 것입니다.

 

5. 십자가는 죽어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살아서 내려오지 못합니다. 십자가에 오래 달려 있으면서도 죽지 않으면 다리를 꺾어서라도 죽인 후에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내려서 피를 씻기고 향품을 바르고 세마포 옷을 입히고 장사를 지냈습니다.

우리 성도는 십자가에서 죽은 후에야, 우리의 생애가 마친 후에야 안식의 세계에서 부활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성도는 죽기 전에는 세상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죽어야만이 십자가를 지는 일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는 동안 죽여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 째로는 꿈을 죽여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세상의 꿈을 이루려고 세상을 따라 살아가니 더욱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세상의 헛된 꿈을 버리고 나를 죽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다라서 살아가면 죽은 자로 평안 속에 살게 됩니다.

내가 지금 당하는 고통은 아직 내가 죽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세상의 욕망을 죽이면 평안하게 사는 것입니다.

  산에서 금식 기도하는데 미국 할아버지가 나를 찾아와서 말동무를 하면서 자기를 말합니다.

자기는 25년 동안 군대 생활을 하면서 한국, 월남, 아프리카 등을 다니면서 CIA에서 일을 했지만 지금은 35년 동안 같이 살던 부인에게 다 뺏기고, 직업도 이제는 늙어서 못 얻고 TRUCK 하나와 TRAILER 하나를 갖고 살데가 없어서 산에다가 Trailer를 갖다 두고 거기서 먹고 잔다 하면서 1주일에 10불을 갖고 산다고 합니다.  5딸라는 자동차 기름 값이고 5불은 식비로 쓰는데 아직 배가 나와 있다고 하면서 Swap meet에서 토, 일요일에 일을 하면 50불쯤 번다고 하면서 20불은 장소 값이요 20불은 물건값이니 10불을 갖고 산 속에서 살고 있으니 참으로 좋다고 합니다.

이 할아버지는 세상에서의 꿈을 버리고 1 주일에 10불을 갖고 만족하면서 아직 배가 나왔다 하면서 배를 두들기면서 나는 그렇지 못하여 부끄러웠습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나의 꿈이 죽어야 평안이 오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기 성격을 죽여야 합니다.

자기 성격을 자기가 죽이지 못하면 상대방이 못 마땅하게 느껴지고 신경질이 나고 울화통이 터지고 자기의 혈압이 오르는 고통과 해를 스스로 당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성격 탓에 스스로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도 못된 성격이 있어서 이 일로 인하여 사서 고생을 하는 때가 있습니다.

자동차가 조금 이상한 소리가 나면 낡은 차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가지 않고, 끝까지 원인이 규명 될 때까지 찾아내고 고쳐 놓아야 잠을 자게 됩니다.

기도를 하려고 산에 갔는데 도중에 양철 울리는 소리가 나서 차를 세우고 손을 보았는데 또 소리가 나서 차를 세우고 손을 보고하면서 기도하는 산에까지 갔는데 또 소리가 나서 기도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차를 세우고 고치는데 시간을 다 허비하는 일을 범한 때도 있습니다. 돌아 올 때에도 역시 소리가 나서 짐에 와서도 계속 손을 보았지만 이것을 고쳐진지는 그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입니다. 그 동안에 별것도 아닌 양철 울리는 소리가 나를 몹시 괴롭혔지만 이 괴로움은 나 스스로의 성격 때문에 당한 고생입니다.

십자가에서의 해방은 내가 죽을 때에 이루어집니다. 자기 성격이 죽고 꿈을 죽일 때에 평강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식물 인간들을 가금 병원에서 봅니다. 아무런 감각이 없이 죽은 자와 같이 되어 있어서 오히려 식물 인간들이 더 장수하면서 평안히 지내는 것 같습니다.

 

셋 째로는 자기의 원리 원칙을 죽여야 합니다.

사람들 중에 원리 원칙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앞에는 세상에 의인이 하나도 없고 모두 죽일 놈이요 도적놈이요 죄인입니다. 그 원리 원칙 앞에서는 모두 죽일 놈이요, 나쁜 놈이니 이 사람은 항상 나쁜 놈, 죽일 놈하고 살고 있으니 평안이 없고 친구도 없고 평안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원리 원칙 때문에 늘 혈압이 오르고 마음의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갑니다.

나의 원리 원칙도 지당한 말씀이고 옳은 것이지만, 다른 사람을 자기의 원리 원칙을 떠나서 너그럽게 대하여 주며 용서하여 주고 이해를 하여 주고 결점 대신 장점을 보아 줄 때에 내가 오히려 더 평안하여 지는 것입니다.

내 원리 원칙을 내세우면, 내가 더 고통을 당함으로 나의 원리 원칙을 십자가에 죽여 버리면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나의 원리 원칙대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면 모두 죽일 놈이요, 나쁜 놈들뿐입니다.    그러나 내 원리 원칙을 죽인 자가 십자가의 고통에서 해방이 됩니다.


넷 째로는 내 체면을 죽여야 합니다.

체면을 죽이지 못하면 비가와도 뛰지를 못해 비를 홈빡 맞는 것과 같이 체면을 죽이지 못하면 얼마나 나의 삶에

손해가 오는 지 알 수 없습니다.

체면 때문에 고통을 당하면서 속앓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체면을 죽이지 못하면 성령을 받지 못하고 거룩한 장로 교회의 교인으로만 손해를 보면서 살게 됩니다.

체면을 죽이면 십자가의 고통에서 벗어납니다.

나는 목사이기 때문에 어느 장소에나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가야하고 특별히 교회에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 피닉스에 있는 갈보리 교회에 가니 그 교회는 설교하는 목사가 평상복을 입고 넥타이나 양복을 안 입고 설교를 하고 예배를 인도합니다.  평신도야 얼마나 자유스로운지 모릅니다.

나는 이 교회에 나가면서 양복을 안 입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니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체면 때문에 뜨거운 여름에 양복 입고 넥타이 매는 고역에서 벗어나니 얼마나 자유스러운지 모릅니다.

미국에 살면서 미국인들이 체면을 차릴 때에는 엄격히 차리지만 대부분 소탈하고 자유스럽게 자기 편리한대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죽어야만 십자가에서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있는 한 십자가의 고통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정리:

우리는 주님의 고난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나도 내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주님 따라서 가야 합니다.

주님이 죄가 없으시면 서도 나의 죄를 전가 받아 십자가에서 죄인이 되셔서 못박여 피를 흘리며 고통을 당하면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이 이 십자가를 지심은 바로 나의 죄를 인함이라는 것을 알고 감사함으로 나도 다른 사람을 위한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죄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임을 알고 나도 이 사실을 믿고 아는 자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감격이 있고 그 감격으로 인하여 행함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 십자가의 사건의 감격 속에서 나도 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을 걸어야 할 것이고 이 사건을 널리

증거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의 마땅한 할 도리입니다.

                                                                     할렐루야 !




2013년 4월 22일에 104세로 소천
출처 : 마라나타 COME BACK 2014 은혜(恩惠)
글쓴이 : jinsook55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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